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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의 핵몽둥이-255화 (219/300)

255화 돼지가 뿔났다(3)

머리가 복잡했다.

아니, 단순히 복잡하다는 말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무언가 머릿속 실오라기 하나가 끊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내 낯빛이 새하얗게 질렸으니까.

탄약그룹의 역린. 그리고 한씨 집안의 역린.

선대 회장이었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구미 화약공장 폭발 사건.

그 끔찍한 프리퀄에 해당하는 화재가, 지금 같은 장소에서 반복되고 있었으니까.

마치 나를 과녁에 세우고는 활시위를 당긴 것처럼.

“바로 구미로 이동합시다, 지금 당장.”

워낙 긴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이어서 운전기사를 부를 겨를조차 없었다.

곧바로 아무 차에 올라탄 나. 그나마 운전대를 잡을 정신은 아니라는 것은 인지했는지, 운전석에는 김원철 아저씨를 앉히고, 나는 조수석에 앉았다.

“현장 상황, 어떻게 돌아가고 있습니까? 담당자가 조치를 취했나요?”

“일단, 성원식 사장이 내려가긴 했어야. 피해 정도는… 아아, 지금 보고 들어왔네.”

딩동, 알림 소리와 함께 울리는 김원철 아저씨의 회사용 태블릿 PC.

비서실의 유세나 보좌관이 보낸 메시지에는 이번 일에 대한 개요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보일러실에서 시작해서 공장 제1 창고 절반이라.”

“제1 창고라면… 그나마 큰 문제는 없겠네요.”

“그렇지. 완성품 화약이 아니라 대규모 폭발까지는 안 일어났다네. 천만다행이여.”

구미 화약공장은 제1 창고부터 제9 창고까지 대규모 설비를 갖춘 상황. 아직 화약이 되기 전의 원재료에만 불이 붙은 모양이었다.

그깟 보일러실 정도가 망가진 것쯤이야, 지금 상황에서 크게 신경 쓰일 일도 아닐 터였다.

김원철 아저씨의 말대로 천만다행이라면 천만다행인 상황.

그러나.

“…그러게 말입니다. 그런데.”

“응?”

온몸의 끝자락에서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무언가 묘한… 불안감 내지는 기시감.

어딘가 어색하게 일그러진 균열은 내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부자연스러움.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순히 표면상의 이유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 저번 사고 이후로 화재 안전 시스템을 삼중 사중으로 해 두지 않았던가요?”

“확실히… 그렇지. 어지간하면 불씨가 튈 일 자체를 없게 만들었으니까.”

철저하게 설계부터 화재 방지에 중점을 둔 구미 화약 공장.

그리고, 그 부자연스러움 탓에 점점 쭈뼛 소름이 돋기 시작하는 내 양 팔뚝.

“설령 작은 불이 나더라도, 관리자들이 똑바로 지켜보고 있다면 바로 끌 수 있게 해 뒀고.”

“그러니까요. 그런 상황인데도 불이 났다? 그것도 이렇게 큰 규모로?”

“그건… 생각해 보니 그렇네? 뭐가 앞뒤가 안 맞는디.”

“느낌이 좀 그렇네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나 버렸으니.”

과속 단속 카메라가 몇 번이나 셔터음을 울렸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미칠 듯한 속도로 내달려서일까?

어느새 대전을 지나 구미 인근, 경북 김천에 들어선 차량.

때마침, 현장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된 모양이었다. 김원철 아저씨에게 걸려 온, 성원식 탄약 인프라 사장의 전화.

“어, 성원식 사장님! 거긴 좀 어때요? 불은 다 껐고?”

-예! 소방 쪽에서 바로 협조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이게 참… 뭔가 이상해요.

“이상해요? 뭐가?”

이상함이라는 말 한마디.

성원식 사장 또한 느끼고 있는 걸까?

이 기묘하고도 기묘한… 어긋난 현 상황을.

-저희가 지금 CCTV 중 하나를 살려서 봤는데요. 원래 불이라는 게, 처음에는 작게 시작했다가 시간 지나서 확 번지잖습니까?

“그렇죠. 그런데요?”

-화면에 화재 원인까지는 안 잡혀서 정확히는 말씀드리기 그렇지만… 이게 불이 처음에 날 때부터 크게 올라오더라고요.

“처음부터요?”

-네. 마치 누군가가 대규모로 작정하고 휘발유 같은 것으로 방화를 한 것처럼.

말없이 옆으로 흘긴 눈동자로 서로를 바라보는 김원철 아저씨와 나.

룸미러에서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우리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누군가가… 작정하고?”

“실화(失火)가 아니라 방화(放火)다?”

점점 증폭되는 기이함.

그때.

-지이이이이잉!

이번에는 내게 걸려 온 전화.

일본의 총리대신이었다.

“네, 총리대신님. 무슨 일입니까?”

-한 회장? 괜찮습니까? 지금 신변에 문제는 없지요?

“괜찮… 다니요? 그건 또 무슨 말씀입니까?”

-급보요. 지금 돌아가는 상황이 상당히 심각합니다.

“네…?”

오늘 무슨 마가 단단히 낀 날인 모양이었다. 구미 화약 공장에 이어 일본에서까지 이러다니.

단순히 일진이 사납구나 싶다는 생각이 든 그 순간.

-장성택이… 죽었습니다. 사인은 암살. 범인은 북한 공작원이고.

“……!”

내가 생각했던 범주를 아득히 초월해 달려가는 현실.

-시신에 고문 흔적이 역력한 것으로 보아, 무언가 정보를 캐다가 죽였을 겁니다. 그리고, 그 정보는 분명.

전혀 상반된 두 가지 사건.

그리고 어쩌면… 나라는 매개체를 둔다면 연결될 법도 한, 두 가지 사건.

내 침묵을 어찌 받아들였는지 모르겠지만, 총리대신의 우려 섞인 목소리는 계속해서 이어폰을 통해 내 귀로 들려왔다.

-장성택 망명과 가장 연관이 깊은 사람에 대한 것. 즉.

듣고 싶지도, 마주하고 싶지도 않은 이야기를 담아서.

-한서준 회장. 당신과 관련된 정보일 가능성이 큽니다.

“……!”

-혹시 모르니, 아무쪼록 경호에 좀 더 신경 쓰는 편이….

그리고, 그 이야기는 곧바로 현실로 다가왔다.

덜컹! 무언가 묵직한 장해물에 걸려 멈춘 차량. 때마침 바뀌는 빨간불 신호.

그리고… 차 옆 유리창에 비친, 빛을 받아 반짝이는 금속. 군대에서 몇 차례 보았던 그것은 바로.

-한 회장?

저격용 총이었다.

“회장님! 당장 수그려!”

“당장 숙이세요!”

* * * *

소나무 숲이 빼곡한, 산이라 불리기엔 야트막한 언덕배기.

북한의 보위부에서 파견한 요원 중 하급자가 망원경을 꺼내 들어, 피격된 차량을 바라보았다.

“고저, 보위부 본부 놈들 탐지력 하나는 알아줘야갔어. 그나저나, 저 간나새끼들 벌집이 따로 없구먼. 죽었나…?”

저격용 총을 해체해 다시 케이스에 집어넣으며, 상급자가 말했다.

“내리 가 직접 눈으로 보고 오라. 총소리가 났으니, 5분 내로 확인하고 날라야 한다.”

“내가 말입네까?”

“네가 말입네다. 툭 튀어나온 주둥아리 집어넣고 싸게 싸게 안 튀아 가나!”

구둣발로 언덕을 뛰어 내려가는 하급자.

뒷주머니에 찬 권총을 만지작거리며, 그는 차량에 가까이 다가갔다.

“거, 1년 선배라고 맨날 궂은 일은 다 내한테 시킨다! 썩을 놈 같으니.”

뒷좌석을 여러 차례 관통해, 구멍이 숭숭 뚫린 검은색 승용차.

“히야, 그 좋던 차가 걸레짝이 되았네.”

이쯤 되면 분명 뒷좌석에 탄 사람은 고기 조각이 되었을 터다. 앞좌석 운전기사야 아마 오줌이나 지리고 있을 것이고.

작전이 성공했다는 확신에 방심이라도 한 걸까?

권총을 빙글빙글 돌리며, 하급자 요원은 차량 앞쪽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앞좌석에 앉은 이가 누구일지에 대한 생각은 애당초 접어둔 채로.

“갈 때 가더라도 심장에 총알 한 발씩 박아 넣고 가라… 으잉?”

그리고, 그때.

“으악…! 이 종간나 새끼들 살아있었나!”

순식간에 운전석에서 뻗어오는 두 손. 우악스럽게 하급자 요원의 목을 거머쥔 김원철의 손은 순식간에 아래쪽을 향했다.

“어서! 권총부터!”

조수석에서 외치는 젊은이의 목소리.

아차 하는 순간 바로 빼앗긴 권총.

“됐다!”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었던 걸까?

아니면, 죽음의 사선을 이미 여러 차례 넘었던 경험이 있던 걸까?

딸깍, 거리낌 없이 당겨진 방아쇠. 그리고, 그대로 하급자 요원의 어깻죽지에 박힌 납탄.

“끄아아아아!”

고통스러워하는 북한 공작원.

곧바로, 차창에 손을 대고 기댄 그의 콧대에 제법 묵직한 대머리 박치기가 가해졌다.

“후우, 왕년의 특전사 김원철이 아직 안 죽었쥬?”

“그러다 진짜 죽는 수가 있습니다. 빨리 액셀이나 밟으세요!”

“오케바리!”

빛의 속도로 사라지는 차량.

언덕 위에서 통신 장비로 본부와 교신하던 상급자 요원은 상황이 심상치 않은 것을 알았는지, 헐레벌떡 아래쪽을 향해 내려왔다.

“저, 저! 머저리 같은 개종자가…! 야 이 썩어 터질 놈아, 니 지금 뭐 하자는 거니!”

“끄으… 실없는 소리 집어치우고 날래 총이나 쏘시라우! 저것들 죄 앞자리에 타고 있었습네다!”

탕! 탕!

허공을 향해 쏴지는 권총.

그러나, 전속력으로 달리는 차량을 쫓기에는 무리수였다. 털털거리는 엔진 소리와 함께, 어느새 지평선 너머로 사라진 검은색 차량.

“이런 개나발 같은 일이…!”

실패한 작전.

부상을 입은 팀원.

최악의 상황 속에서 상급자 요원은 결단을 내려야 했다.

적어도 최악의 결론만큼은 피하기 위해서.

“바로 이동하라! 지금 당장 산자락을 넘어 대구까지 뛴다!”

* * * *

죽다가 살아났다.

이제부터 그 말은 관용구로라도 함부로 쓰면 안 될 것 같다. 아직도 심장이 마구잡이로 뛰고 있을 정도이니까.

“헉, 헉! 저 미친 것들, 대관절 뭐지?”

“북한 보위부 요원들일 겁니다.”

“보위부 요원? 대남 공작원 애들이 왜 우리 회장님을 노려?”

“장성택이 죽었으니까요. 고문당한 흔적도 있다고 하고.”

멍한 표정을 짓는 김원철 아저씨.

잠깐의 계산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아저씨의 벌어진 입이 제자리를 찾았다.

“잠깐만. 그렇다는 건, 분명히…?”

“네. 기무라 와치루가 저라는 사실을 김정은이 알아낸 것이겠지요. 고문당한 장성택의 입에서.”

-회장님! 김 비서실장님! 괜찮으십니까!

일본 총리대신의 전화와 달리, 성원식 사장의 전화는 아직 끊기지 않은 모양이었다.

지지직거리는 잡음과 함께 돋우는 그의 목청.

-갑자기 총소리가 나다니요!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사건 현장이 보이지 않을 만큼 멀어져 가자, 그제야 다시 평정을 되찾은 내 심장.

“만약 저들이 일본에서 장성택을 먼저 작업했고, 바로 이리로 왔다면…?”

호들갑을 떠는 성원식 사장의 목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나는 그럴싸한 추론 하나를 시작했다.

“아마 가짜 일본인이거나… 아니면, 재일교포 신분으로 들어왔겠지. 그렇다면.”

내게 총을 겨눈, 그리고 어쩌면 구미 화약 공장에 불을 질렀을 저들을 사로잡을 가장 간단한 방안을.

-아니지, 아니지! 바로 경찰에 신고를…!

“경찰이 먼저가 아닙니다. 성 사장님.”

-회장님…? 회장님!

통화가 연결되었다는 사실에 감정이 북받친 듯한 성원식 사장.

그 마음이야 알겠다만,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다. 일단은 당면한 상황부터 풀어나가야 하니까.

내 휴대전화 액정이 깨져 있기에, 나는 곧바로 그에게 지시 하나를 내렸다.

“국가정보원장 번호, 가지고 계시죠?”

-그, 그렇습니다만…?

내 두 번째 인생을 그대로 앗아갈 뻔한 인간들.

“지금 바로 대구·경북 일대에 일본인 또는 재일교포 남성의 출국을 유예하라고 해 주세요. 특히.”

그리고, 내 역린을, 탄약그룹의 역린을 제대로 건드린 인간들. 그들을 생으로 잡아다 거꾸로 매달 수 있는 지시를.

“어깨에 부상 입은 남자가 포함된 2인조라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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