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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의 핵몽둥이-257화 (221/300)

257화 돼지가 뿔났다(5)

대통령, 그러니까 지금 청와대 안주인이 된 최 대통령 말고, 실질적인 상왕 노릇을 하는 전(前) 대통령.

이제는 속칭, 성북동 어르신으로 불리는 그의 사저는 성북동 산자락 아래 있었다.

퇴임 후, 산속에서 유유자적하는 삶을 즐기겠다며 사람들에게 자신을 잊어달라던 그였으나, 이게 웬걸.

“오래 기다렸나 한 회장? 이거야 원, 앞의 사람이 하도 말을 못 알아먹어서 말이지.”

그의 사저는 이 상왕 아저씨를 보려는 사람들로 늘 북적거렸다. 심지어 나 역시 한 시간을 응접실에서 기다려야 할 정도로.

“북한 놈들 때문에 고생이 많았다고 들었네. 나보다 빨리 저세상으로 갈 뻔했다지?”

“어째 입으로는 안타까워하시는데, 입꼬리는 올라가 있습니다만…?”

“퇴임하고 한동안 적적하겠구나 싶었거늘, 이거 하루 만에 이런 이벤트를 가지고 오니 웃지 않을 수가 있겠나.”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 했던가.

나를 보며 킬킬거리던 이 상왕 아저씨는 거실 창을 활짝 열고는 푸르른 잔디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컹! 컹컹!

골든레트리버 복실이에게 공을 주워 오게 하며, 내게 물음을 던지는 성북동 상왕.

“해서, 우리 최 대통령이 방방 뛰고 난리도 아니었다지?”

신임 최 대통령.

일종의 바지 사장 내지는 꼭두각시 취급을 받는 그 양반은, 내가 총격을 받았다는 사실을 듣고는 길길이 날뛰었다.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지금이 60년대도 아니고, 어떻게 북한 간첩이 대한민국 땅에서 활개를 친단 말입니까!’

‘어떻게, 좀 해결 방법이 있겠습니까?’

물론 말로만이었지만.

‘그… 이런 일은 제가 처리하기 난해해서 말입니다. 성북동 전(前) 대통령께 가 보시지요.’

이 배짱도 배포도 없는 아저씨는, 이런 민감한 일을 스스로 처리하지 못한 채, 공을 성북동 상왕에게 넘겼으니까.

잔디밭에서 복실이가 물어다 준 공을 받으며, 나는 어깨를 으쓱 올린 채로 대답했다.

“뭐, 보시다시피요. 팔자에도 없는 특급 경호 대상이 되었습니다.”

저 멀리 담장 너머 보이는, 검은 선글라스 낀 험상궂은 아저씨들.

성북동 상왕은 숨은 권력자답게 생각보다 빠른 조치를 취해 주었다.

적어도 갑자기 총에 맞아 뜬금없이 비명횡사하지는 않을 정도로.

“한 회장 자네가 직접 만든 팔자일세. 김정은이의 코털을 죄 뽑아버렸으니 말이야.”

“저 좋자고 뽑은 것만은 아닙니다. 적어도 오른쪽 코털은 이번 정부 만드는 데에 썼다고 보거든요.”

“에이, 코털 이야기하니 이야기가 뭔가 더러워지는구먼. 밥도 먹어야 하는데.”

자기가 먼저 꺼낸 코털 이야기였으나, 뻔뻔하게도 말을 돌리는 모습이 참 한결같은 캐릭터다.

그래도 나름 손님 대접은 해 주는 모양이었다. 반주와 함께 나오는 제법 근사한 식사.

그는 내게 전통주 한 잔을 따라주며 물음을 던졌다.

“그나저나, 이제 정말 어쩔 셈인가?”

“뭐가 말입니까?”

“한 회장 자네, 경호 인력 뒤꽁무니에 딱 붙어서 숨어 있을 사람은 아니라는 것쯤은 다 알고 있네.”

시치미는 그만 떼고, 어서 생각했던 걸 말하라며 웃음 짓는 성북동 상왕.

생각보다 정보력 하나는 확실한 모양이었다.

바로 엊그제 국정원에서 있었던, 몇 사람밖에 알지 못한 그 일에 대해서도 파악하고 있었으니까.

“거기에, 국가정보원 지하 취조실에서도 거하게 푸닥거리 한 판 했다지?”

* * * *

며칠 전, 국가정보원 지하 비밀 취조실.

‘끄아아아아아아! 살려 주시라요!’

즐거운 소꿉놀이, 향상된 심문 기법, 다른 말로는… 그냥 대놓고 고문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몽둥이찜질을 당하던 북한 공작원.

역시 몽둥이는 진실을 아는 법이다. 이제는 착한 어린이가 된 그가 고무장갑을 낀 국정원 수사관에게 마음의 소리를 털어놓기 시작했으니까.

‘기무라 와치루… 위원장께서 분노하시어 우리를 남조선에 보내신 이유입네다. 크헉!’

‘말 똑바로 안 하냐? 위원장께서가 아니라, 돼지 새끼가!’

올바른 언어 사용법과 세세한 문법 교정까지, 사랑의 매로 참교육을 실천하는 국어 선생님이자 국정원 수사관.

물론 그 교육의 효과는 확실했다.

‘아… 알았습네다. 김정은이 그 돼지 새끼가 단단히 화딱지가 났다고 들었습네다. 인민들을 위한 통치 자금을 날려 먹었다고.’

좀 더 진도를 빼 심화 과정을 나가려는 국정원 수사관.

나는 잠시 몽둥이를 든 그를 제지하고는, 북한 공작원 앞에 쭈그려 앉아 입에 담배 하나를 물려 주었다.

‘공작원. 이번에 침투했던 당신들 말고도 여럿 있습니까? 규모는? 훈련 수준은?’

칙, 칙. 라이터를 들고는 떨리는 입술에 문 연초에 불을 붙여 주는 나.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굿 캅(Good Cop) 역할을 한 건지, 공작원이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대답했다.

‘얼추 기백 명은 됩네다. 쓸만한 놈은 좀체 없지만서도… 올해 연말쯤엔 아마 다시 작전조가 꾸려지지 않갔습네까?’

‘그럼, 김정은이 나를 노릴 거다 이겁니까? 앞으로도 계속, 죽을 때까지?’

‘고저, 미제 놈들 말하는 식으로 하자면… 그 스탠딩 오더(Standing Order)라는 게 있지 않습네까?’

스탠딩 오더.

대상이 죽을 때까지, 또는 명령을 내린 독재자가 명을 철회하기 전까지 무기한으로 계속되는 암살 시도.

‘장성택이가 그랬듯이, 한 회장님도 마찬가지입네다. 스탠딩 오더, 김정은이는 한번 찍은 상대를 절대 포기할 놈이 아닙네다.’

죽음의 그림자는 여전히 내 곁에 머물고 있었다.

하기야, 미화 70억 달러를 공중분해 시켰으니 죽이고 싶은 마음이 이해 안 가는 건 아니지만.

“후우.”

그날, 국정원에서 있었던 일을 회상하며, 성북동 상왕이 준 술잔을 한 번에 비운 나.

“공작원 양반이 그래도 협조적이었지요.”

“매 앞에는 장사 없는 법이지. 국정원장 스타일 하나는 화끈하거든. 여하간에.”

게슴츠레 뜬 눈으로, 그가 내 잔을 다시 채우며 물었다.

“해서, 이제 어쩔 생각인가?”

“어쩌고 자시고 할 것도 없습니다.”

그렇다. 어차피 어쩌고 자시고 할 것도 없는 법이다.

그저, 잔을 가득 채운 이 술처럼 꽉 찬 자신감으로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뿐이다. 늘 그래왔듯이.

한쪽 주먹으로 가슴팍을 툭툭 두들기며 내가 대답했다.

“그냥 헤쳐나가야죠. 이제까지 그랬듯이, 앞으로도 계속.”

“생각해 둔 것이 있나 본데?”

“저를 건들 생각조차 못 할 만큼, 그럴 여유조차 없을 만큼, 극한까지 몰아붙이고 또 몰아붙이면 될 일입니다.”

어차피 암살조를 계속 보낼 예정인 김정은.

그렇다면, 아예 암살조를 보낼 엄두조차 내지 못할 만큼, 극한의 상황으로 만들면 될 일이다.

그것이 경제의 문제든, 안보의 문제든, 아니면 김정은 개인의 문제든 간에.

한 마디로.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다. 이 격언을 몸소 실천하자는 것이지요.”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을 자네 입에서 들을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제 목숨을 직접 노렸으니 확실하게 제압할 겁니다. 전쟁이라도 하는 것처럼.”

마침 탁자 위에 놓여있는 책 한 권. <총, 균, 쇠>.

장난기 어린 얼굴을 한 나는 곧바로 그 제목 아래에 포스트잇을 붙여, 펜으로 이렇게 세 글자를 적어 넣었다.

-돈, 핵, 뽕.

“돈, 핵, 뽕?”

“제 반격 계획입니다. 처참할 정도로 돈줄을 말리고, 핵 개발에 어깃장을 놓고. 그리고 마지막에는.”

<총, 균, 쇠>의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한 문명의 운명을 좌우한 것은 총과 세균과 강철이었다고.

그리고, 나는 이제부터 어떤 한 독재자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다.

돈과 핵과, 그리고.

“뽕쟁이로 만든다.”

뽕. 북한이 그렇게 수출에 열을 올리는 북한산 마약으로.

“하! 돈, 핵, 뽕이라. 이거 기대되는구먼.”

“기대하시는 만큼 좀 도와주시죠. 여러 방면으로.”

휘잉, 북쪽을 향해 불기 시작하는 남서풍.

어느덧 초록이 짙은 산자락을 눈에 담으며, 나는 이 성북동 상왕에게 웃음 지었다.

“그러면… 퇴임하시고서도 한동안 적적하실 일은 없을 겁니다. 최고의 볼거리를 선사해 드리지요.”

* * * *

같은 시각.

판교 인근 교외의 <코코아> 데이터 센터.

<코코아>의 데이터 센터는 단지 서버 관리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가장 깊은 지하 최심부. 공업용 냉각 장치로도 채 가시지 않는 열기를 내뿜는 전자 설비.

이곳에 출입이 허용된 오직 한 사람, 한서희는 실시간으로 오르는 비트코인 차트를 보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미친 것 같은데. 이게 그래프가 말이 되는 건가?”

뭔가 비정상적인 그래프.

그 그래프는 일차함수의 모양도, 로그함수의 모양도 아니었다.

어떤 포인트를 지나는 순간, 급격히 로켓처럼 상승하는 그 그래프는.

“하하… 거의 로그함수 그래프네.”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한서희.

한 달 전과 비교했을 때, 거의 서른 배 가까이 뛴 가치.

이미 비트코인 총발행량의 절반이 넘는 물량이 <코코아>에. 아니, 한서준 개인 소유의 가상화폐 자산은… 이미 가볍게 조 단위를 넘은 상태였다.

“처음에는 도대체 이딴 데이터 쓰레기를 왜 모으나 했었는데… 진짜 돈이 되잖아? 서준이가 말한 대로.”

물론, 원 역사의 전성기에 비하자면 아직 발끝도 따라오지 못한 가치.

그런데도, 이 상황이 가리키는 것은 명백했다.

비트코인. 분명… 이 물량을 다 받아줄 시장 생태계만 형성된다면. 그리고, 전성기 가격에 도달한다면, 어쩌면 세계 최고의 부자도 가능하겠다는 것을.

“이래서 물량 확보 이야기를 그렇게 한 거였나? 비트코인… 이 가상화폐 시장을 손바닥 위에 올려두고 제멋대로 통제하기 위해서?”

멍하니 모니터 불빛을 바라보는 한서희. 때마침, 그녀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김원철이었다.

“네, 김 비서실장님.”

-통화 괜찮으신가 모르겄어.

“지금은 괜찮아요. 무슨 일이세요?”

-아아, 그 이번 주 수요일에 그룹 주간 회의 있는데, 혹시 참여하나 해서리. 보고할 것 있으면 그때 하면 공유도 되고 좋잖어.

그룹 주간 회의.

원래대로라면, 이 정도 성과는 조직원 전체에 공유하는 것이 옳을 터였다.

그러나.

“아무래도 그건 안 될 것 같네요.”

-응? 무슨 따로 일 같은 게 있어서 그러시나?

“아니요. 그게 아니라.”

언제나 예외는 있는 법.

그것도 지금처럼… 도저히 감당이 안 될 규모의 건이라면 더더욱 그렇고.

“이번 정기 보고… 무조건 회장님 독대로 해야 할 것 같거든요. 아마, 다른 임원들이 듣게 된다면.”

캄캄한 공간 속, 모니터 불빛에 비치는 한서희의 미소 짓는 모습.

비록 자신의 소유는 아니었지만, 그 존재만으로 그녀의 심장은 뛰고 있었다.

과연 이 막대한 금액을 어떻게 현금화할 것이고, 현금화한 다음에는… 어떻게 이 자금을 사용할 것인지를 궁금해하며.

“반쯤 정신이 나가버리고도 남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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