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장님의 핵몽둥이-258화 (222/300)

258화 핑핑이(1)

그룹 주간 회의가 끝나고, 내 집무실로 찾아온 서희 누나.

같이 가볍게 샌드위치나 먹자며, 탁자 위에 점심거리를 내려놓은 누나는 바로 옆에 보고서 하나를 더 두었다.

<비트코인 채굴현황>이라는 제목이 적힌, 의미심장한 보고서를.

“당분간은 연말에만 보고해도 된다니까.”

“그러려고 했는데, 사안이 좀 심상치 않아서.”

긴장한 모습의 서희 누나.

대관절 무슨 일이기에 이러는가 싶어 보고서 첫 페이지를 열자, 굵은 폰트로 작성된 숫자 하나가 곧바로 내 눈을 사로잡았다.

“52.1%…?”

눈을 비비고 다시 바라봐도 똑같은 숫자, 52.1%.

어디 기업의 지분이나 공정의 진행률 같은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전체의 절반이 넘는 이 막대한 수치가 의미하는 것은 바로.

“그러니까… 현재까지 채굴한 비트코인 총발행량의 절반. 그 정도 규모를 채굴했다고?”

무려 500만 개의, 아니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시시각각 늘어만 가고 있는 비트코인의 숫자.

펄럭, 바로 바삐 다음 페이지를 향해 넘어가는 내 손가락.

개당 가격이 100만 원이 조금 넘는다는 말에 내 머릿속이 조금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가격상승이 너무 빠른데….”

원 역사보다 다소 높은 거래가격. 물론 가상화폐 시장 활황기 때의 절정에 비하면 미약한 수준이기는 하다.

그때 아마, 비트코인이 1억 원까지 간다고 했었나? 기억으로는 7,500만 원대에서 멈춘 것 같았지만.

“아무튼, 처음에 지시받았던 대로 명의는 한서준 개인이 아닌, 수백여 개의 페이퍼컴퍼니 산하에 다 흩뿌려 두었어. 그러니까.”

내게 샌드위치 하나를 건네며 입을 여는 서희 누나.

아무래도 오늘 점심은 제대로 먹기엔 그른 모양이었다. 뒤이은 누나의 의미심장한 말이 배고픔 따위는 쏙 들어가게 만들었으니까.

“가상화폐 세계의 거물. 시장의 판을 흔들 힘이… 서준이 네게 있는 거지.”

“음….”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이거, 한화로 5조 원이 넘는 금액인데.”

5조 원.

단순히 액면가로 보았을 때, 물론 큰돈이긴 하다.

하지만, 예전 역사를 알고 있는 내가 봤을 때, 아직 올라갈 잠재력이 차고도 넘치는 상황.

보고서를 유심히 들여다보니, 확실히 아직까지는 수급이 부족한 모양이었다.

“그때 큰손이 어떻게 붙었더라….”

큰손.

나는 눈을 감고서 가상화폐 시장을 펌핑시킬 큰손의 존재를 조금씩 되짚기 시작했다.

가상화폐 붐이 한껏 달아올라 교도소 담장 안쪽에까지 뜨거운 열풍이 후끈 불어오던 그때를 회상하며.

* * * *

회귀 이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신문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가상화폐 관련 소식이 연신 보도되었으니까. 그리고.

실제로 내 주변에도 그 대박을 맞은 사람도 존재했었고.

‘행님! 행님! 빅 뉴스임다. 빅 뉴스!’

‘어따, 요놈의 새끼는 노역만 갔다 하믄 바로 촉새가 되어부러잉. 또 씰데없는 이바구 털려고 시동 거는 것이여?’

일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온 촉새.

잔뜩 들뜬 모습의 그는 심드렁한 방장의 모습에도 계속해서 목소리를 올려대었다.

‘아, 진짜. 지대로 된 뉴스임다! 그, 왜 신삥 간수 하나 있었잖아예? 찐빵 닮은 놈.’

‘아아, 이름이 아마 양 뭐시기였는디, 금마는 왜?’

‘대박 나가, 간수 일 확 때리 치았답니더!’

‘뭣이여라? 도대체 뭣으로!’

뭐긴 뭐겠는가.

이 시대에 대박이라면 딱 하나뿐이었지.

‘거, 비트코인인지 개나발인지 해가, 70억 벌고 은퇴했심더!’

‘70억! 고것이 참말이여잉?’

그리고, 그 열띤 분위기에 보던 책을 덮고 안경을 추켜올리는 한 사람.

나름 먹물깨나 먹었다던, 금융 관료 출신의 김 교수 또한 곧장 한 마디를 보탰다.

‘아아, 나도 들었던 것 같네요. 그 소식. 요새 가상화폐가 하도 들썩이다 보니 여기저기서 대박 난 사람들 많다고 합니다.’

‘어따, 김 교수님요. 대관절 뭣땀시 그 사이버 머니가 팍팍 오르고 난리인 것잉교?’

사람 좋은 미소와 함께 방장의 질문에 대답하는 김 교수.

‘중국 쪽에서 투기 바람이 불었다나? 아아, 그리고 하나 더 추가하자면.’

손가락 두 개를 까딱거리며, 그가 말했던 마지막 내용이 낡은 비디오테이프처럼 내 머릿속에서 재생되었다.

‘북한에서 돈세탁할 때도 쓴다고 하더군요. 국제 금융 제재 피한다고.’

중국, 북한. 그리고 비트코인.

감옥 안, 김 교수의 그 쇳소리 섞인 목소리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내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당면한 김정은과 <상하이 캐피탈>이라는 숙적, 어쩌면… 이 비트코인이라는 린치핀으로 단번에 엮어버릴 수 있지 않겠냐고.

“서준아…?”

“아아. 미안, 누나. 뭐라고 했지?”

그리고, 지금.

회상을 마친 나.

앞으로 돌아갈 미래를 모르는 서희 누나는 불안함이 섞인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어떻게 할 거냐고. 이 큰돈 슬슬 현금화해서 나올 타이밍인 것 같은데, 지침을 좀 내려주었으면 하는데.”

사실상 슬슬 타이밍을 잡고 매도하자는 의견.

그러나.

“팔지 마.”

“그래, 팔지 말고… 아니, 뭐라고?”

“더 올라. 그리고, 더 오르게 만들 방법이 있고.”

“그게 무슨…?”

이걸 고작 개당 100만 원 언저리에 팔 리가 있나.

그뿐만 아니라.

“때마침 핵심 키워드 두 개가 맞물려 떨어지고 있네.”

그럴싸한 생각도 새롭게 피어오르고 있고.

종이 한 장을 꺼내 동그라미 여러 개를 그리며 그 안에 이름을 채워 넣는 나.

흰 종이 위에 김정은, 제임스 왕 이사의 이름이 적히기 시작했고, 그들을 중심으로 어디론가 뻗어 나가는 가지들.

어느덧 까맣게 변해버린 종이, 그 중심에는 전혀 다른 제삼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김정은, <상하이 캐피탈>, 비트코인. 이들을 한데 엮을 촉매가 될 자의 이름이.

“후우, 그럼 이렇게 해야겠다.”

의아해하는 서희 누나를 뒤로한 채, 내선 전화기를 집어 들고는 곧바로 유세나 보좌관과 통화를 시작하는 나.

“최대한 빨리 베이징 방문 일정 잡아 주세요. 한국 외교부 측에 협조해 달라고 하면, 회담에 자리 하나 만들 수 있을 겁니다.”

내가 다짜고짜 본론부터 말해버리자 조금 당황한 모양이었다. 내게 되묻는 유세나 보좌관.

-저… 회장님, 혹시 방문 목적이 어떻게 되십니까?

그리고.

“핑 주석을 만날 겁니다. 무조건.”

-회장님…?

추가 설명을 하자 더더욱 당황해 하는 유세나 보좌관.

“서준아…?”

서희 누나 역시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복잡하게 꼬인 매듭을 한칼에 잘라버릴 방법이 방금 떠올랐거든요.”

오직 나 혼자만, 이 매듭을 풀 방법을 알고 있었으니까.

남이 가지고 있는 칼을 빌려서.

“그리고, 그 칼은 지금… 핑 주석, 그 절대 권력에 눈이 돌아간 시황제가 허리춤에 차고 있고요.”

* * * *

베이징의 정치 중심지, 중난하이.

자금성 인근, 녹림이 우거진 후원(喉院).

“곤란하게 되었군.”

다부진 체구에 제법 큰 키.

관료와 정치인의 얼굴이 동시에 들어 있는 이 남자는, 연못에 먹이를 뿌리며 물가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물에 떨어진 먹이가 원형의 파동을 그리며 넓게 퍼져가는 모습이, 꼭 자신의 영향력이 중화 대륙 전체에 퍼지는 것만 같다고 느끼는 핑 주석.

“구렁이 같은 노인네다. 하필 상하이방 측에 붙어먹을 줄이야.”

“진즉 목을 쳤어야 했습니다! 이제는 아예 홍콩으로 가버려서 손을 쓸 수도 없게 되었으니.”

“들었다. 제임스 왕 그놈과 함께 세력을 불리고 있다지.”

베이징의 노괴. 그리고 그와 손을 잡은 제임스 왕과 배후 세력인 상하이방.

핑 주석의 고민은 자신의 권력 기반을 위협하는 그들과의 대립이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북조선에서 장성택에게 그랬던 것처럼, 저희도 홍콩에 암살조를 보내는 방법이….”

“아니.”

한쪽 손을 올려 기율위원회 서기, 리펑의 말허리를 끊어버린 핑 주석.

“아직 권력 기반이 취약하다. 지금은 후폭풍을 감당할 수 없다.”

최대한 객관적인 시각으로 그는 자신의 불안정한 입지를 바깥에서 바라보듯 말을 내뱉었다.

“흔들리기 쉬운 상황에서 서구권의 포화까지 맞게 되면, 지나치게 위험할 터.”

“그건 그렇습니다만….”

“답답하지만 조금 멀리 돌아가야겠지.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일 것이다.”

“끄응… 알겠습니다, 주석님.”

툭, 툭.

통에 든 나머지 먹이를 손에 쥐고는 연못에 그대로 흩뿌려 버린 핑 주석.

뒤돌아선 채 해가 뜨는 동쪽을 바라본 그가 물음을 던졌다.

“마침 북조선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김가 놈은 어찌 지내고 있는가?”

“그게, 조금 위험한 상황입니다. 불확실성이 급격히 커져서 말입니다.”

“불확실성?”

그리고 이어지는, 리펑 기율위원회 서기의 간략한 보고.

최근 몇 달 새 어떻게 김정은의 쌈짓돈이 터져나갔는지를 설명하자, 핑 주석의 입가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한 웃음이 번져나갔다.

“하! 기가 막히는군. 미화 70억 불이 하루아침에 공중분해 되었다니.”

“사기꾼 한 놈에게 소국일지언정 일국의 지도자가 단단히 잘못 걸린 셈입니다.”

“못난 놈이 혈통 하나 믿고 왕위에 올랐으니 그렇지. 해서, 김정은이를 벗겨 먹은 그자의 이름은 뭔가?”

“기무라, 기무라 와치루였습니다.”

“예전에 외교부 보고서에서 본 것도 같군. 하여간, 그래서 자꾸 북조선 김가 놈이 우는소리를 한단 말이지.”

우는소리.

돈줄이 바싹바싹 마른 김정은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구걸뿐이었다.

뒷배로 삼는 중국은 어쨌거나 북한을 살려는 두게 했으니까.

“응석 부리는 것을 허락하실 생각이십니까?”

“음. 자네, 혹시 맹견 다뤄본 적이 있던가?”

“맹견이요…?”

한 발짝 한 발짝 걸어 나가며 작은 동물원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핑 주석.

세계 각국에서 온 희귀 동물들이 전시된, 핑 주석만의 동물원에는 오로지 맹수만이 창살 너머로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처음엔 말이야. 개가 목줄을 찼다고 인지를 못 한다네. 시퍼런 송곳니를 번득거리며 주인의 팔뚝을 물어뜯으려고 발광을 하지.”

“그렇습니까?”

“그래. 그때, 즉시 목줄을 틀어쥐어야 해. 숨통을 단숨에 조여 다시는 이빨을 들이밀 수 없게끔 몸에 각인을 하는 것이지.”

“길들이실 생각이시군요. 김정은이를.”

사육사로부터 고깃덩어리 하나를 건네받은 핑 주석.

그는 눈알을 번득거리는 하이에나 우리 위로 생닭 한 마리를 통째로 던져넣고는 대답했다.

“두어 달쯤 애간장을 태워 봐. 제 아비처럼 천방지축으로 하고 다니기 전에 미리 버릇을 들여 둬야지.”

그리고, 그때.

“주석님.”

“아아, 왕룽 외교부장.”

타이밍도 적절하게 찾아온 왕룽 외교부장.

“그래, 남한에서 장관이 온다고?”

“그… 외교부 장관이 경협 관련으로 올 예정이긴 합니다만, 실제 이유는 조금 다를 것 같습니다.”

조금 난감하다는 얼굴로 보고를 올리는 그에게 핑 주석이 되물었다.

“무슨 소리인가? 다른 이유가 있다니?”

“그쪽 정부에서 하는 이야기로 추측건대, 탄약그룹의 한서준 회장. 그자가 주석님께 무슨 제안 비슷한 것을 던질 모양입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