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9화 핑핑이(2)
생각보다 베이징 출장까지는 한 달이라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마음이야 바로 당일에 출발하고 싶었지만, 일단 정부와 이런저런 일정을 맞추어야 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한 가지 일을 더 하고 가야만 했다.
핑 주석, 현대 중국의 시황제를 꿈꾸는 이 사람을 상대하기 위해서.
“나는 이게 참… 위험하지 않나 싶걸랑, 사실.”
그리고, 그 사전 작업에 대한 사실을 알고 있는 김원철 아저씨.
베이징으로 가는 비행기 안. 아저씨는 내게 우려를 표하는 것을 아끼지 않았다.
“김정은이 때도 그랬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독재자의 코털을 핀셋으로 뽑으려는 건… 아예 목숨이 간당간당해지는 거잖어.”
말이야 김원철 아저씨 말이 맞기는 하다.
위험성.
특히나 일국의 독재자를 상대로 한, 마치 부채를 든 광대가 외줄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보폭을 밟는 듯한 위험성.
아마 준비한 것에 어긋나 핑 주석의 속을 긁는다면, 김정은 때보다 훨씬 더 거한 보복이 있을 수도 있는 상황.
그러나.
“재밌지 않습니까. 그 느낌이.”
구름 위를 헤치며, 창공을 날아다니는 이 비행기처럼, 내 심장은 두근거리고 있었다.
이까짓… 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사이즈가 큰 위험. 하지만, 늘 그렇듯이 나는 극복해 낼 것이니까.
“…엉?”
“그리고, 마냥 저번처럼 상대를 기만하는 것도 아니고요.”
단지 대책 없는 배짱이 있어서가 아니라, 치밀하게 구상한 계획이 있으니까.
“이번에는 나름 윈-윈 게임을 할 겁니다. 물론, 누가 큰 승리를 가져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핑 주석이야 모르는 일이겠지만.”
특히나, 한 달 전 만나보았던 베이징의 노괴, 장 대인과의 만남.
중앙 정치에서 밀려날 대로 밀려난 그를 한국으로 초청한 나는, 아무도 없는 밀실에서 이렇게 제안 하나를 던졌었다.
그에게 있어서 도저히 거절하지 못할 만한, 그런 제안을.
* * * *
‘나더러… 홍콩으로 가라고? 가서, 상하이방과 손을 잡으라?’
한 달 전.
탄약그룹 소유의 호텔 플로렌스 꼭대기 층.
한때 중국의 숨은 실세였던 장 대인의 등은 흔한 노인이 그렇듯 힘없이 구부러져 있었다.
마치 지금 그가 처한 처지를 나타내기라도 하듯이.
‘납득이 빠르셔서 좋습니다. 역시 장 대인이십니다.’
‘하!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누구에게 들은 게지? 나를 실각시킨 근본적인 원인이 그딴 소리를 지껄이다니!’
쿵! 분기를 참지 못하겠다는 듯, 마주 앉은 둥근 탁자를 주먹으로 쳐대는 장 대인.
쨍그랑, 녹차가 담긴 도자기 잔이 바닥으로 깨졌다.
다시 새 잔을 가지고 오려는 비서. 그러나, 나는 한쪽 손을 들어 그녀를 막고는, 곧바로 장 대인에게 말 한마디를 던졌다.
‘허면, 저승으로 가실 날만 계속 기다리실 겁니까?’
‘뭐라고…?’
홍당무처럼 붉어진 장 대인의 얼굴. 그런 그의 감정 따위야 안중에도 없다는 것처럼, 나는 내 잔에 녹차를 채워 넣으며 말했다.
‘장 대인께서야 단지 권력을 잃으셨을 뿐, 피비린내 나는 숙청의 칼날은 맞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자녀분들의 앞길에는… 그 칼날이 없으리라 보십니까?’
아직까지는 중국 내에서 당원의 위치도, 가지고 있는 재산도 몰수당하지 않은 장 대인의 자녀.
그러나, 어디까지나 아직일 뿐이었다. 언제 숙청의 칼날이 성큼성큼 다가올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
‘……!’
순식간에 벌게진 얼굴이 얼음장처럼 파랗게 변한 베이징의 노괴.
이대로… 충분했다. 이 정도만 말하더라도 눈치 빠른 그는, 내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고 있을 터.
‘받으십시오.’
‘이건…?’
탁자 위에 올려진 홍콩 소재의 모 은행 계좌 하나.
‘홍콩에서 자리를 잡으시지요. 이 정도 금액이면 충분할 겁니다.’
‘…내게 이러는 이유가 뭔가? 필시 반대급부가 있을 터인데.’
역시 이 노괴는 비교적 말이 잘 통한다.
앞으로 전개될 미래에 희생양으로 스러지기엔 조금 아깝다 싶을 정도로.
‘간단한 부탁 하나만 들어주시면 됩니다. 가시는 길에… 사람 한 명만 데려가 주십시오.’
‘사람 하나?’
그리고, 은행 계좌 옆 나란히 놓인 한 사람의 사진.
‘<상하이 캐피탈>의 제임스 왕 이사. 그와 함께 떠나 주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홍콩 경제인 행사 전날에 알려드리겠습니다.’
싱긋, 웃음 짓는 나.
계좌와 사진을 챙겨 떠나는 장 대인의 뒷모습에, 나는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말 한마디를 덧붙였다.
‘가상화폐라는, 제법 그럴싸한 행운을 준비해 두었으니까.’
* * * *
홍콩, 경제인 행사가 열리는 R 호텔.
거대한 샹들리에가 걸린 연회장 안, 한쪽 벽을 가득 채운 대형 TV 화면 속에서는 한국 외교부 장관의 방중(訪中) 소식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거기에 동행한 재벌 그룹, 탄약그룹 또한 포함된 총수들의 소식까지.
“고생 많았네. 내 사정은 다 들었었네.”
샴페인 한 잔을 들고는, 제임스 왕 이사에게 다가가는 한 사람.
“기무라 와치루였나? 그 왜놈 하나에게 지독하게 걸려서 다 된 일을 망쳤다지?”
홍콩으로 망명하듯 떠난 상하이방의 모 정치인 출신 기업가.
그는 주눅이 든 제임스 왕 이사를 보듬으며 연신 위로의 말을 건네었다.
“때로는 운이 따르지 않을 수도 있지. 마치… 지금 여기 홍콩에 피난해 온 우리처럼.”
툭, 툭.
제임스 왕 이사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기고는 곧바로 다른 쪽으로 떠나는 남자.
생각지도 못한 환대에 어안이 벙벙해져 있는 제임스 왕 이사에게, 장 대인이 다가가 물음을 던졌다.
“어떤가. 오길 잘하지 않았나?”
“아아, 다들 친절히 대해주시더군요. 실패를 연달아 한 저에게까지도.”
“도망자들 신세야 다 거기서 거기인 법이지. 안 그래도 부족한 힘을 모으려면. 나나 자네 같은 사람도 필요한 법이고.”
그 말에 희망이라도 부푼 걸까?
넥타이를 바로 하고는 바싹 마른 입안을 포도주로 적시는 제임스 왕 이사.
“어디, 기회를 잘 노려 보게나. 혹시 또 모르지, 말도 안 되는 부(富)를 틀어쥘 행운이 자네에게 찾아올지도.”
급한 전화가 온 모양이었다.
자리를 떠나 어디론가로 향하는 장 대인.
“말도 안 되는… 하긴, 말도 안 되는 것이니, 이리 몽상이라도 할 수 있는 건가.”
덩그러니 홀로 연회장에 남은 제임스 왕 이사는 남은 포도주를 모두 마시고는 씁쓸하게 혼잣말을 읊조렸다.
“시간이 많지는 않은 상황인데….”
마치 째깍거리는 시곗바늘 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것처럼, 점점 체감되는 부족한 시간.
책임을 뒤집어쓰고 감옥에 간, 그의 오른팔 옌룽. 그리고, 점점 몸집을 불려 가는 적, 탄약그룹.
조급함은 제임스 왕 이사,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의 어깨 위에 올라타 있었다.
바로 지금, 근처에서 스쳐 지나가듯 들리는 이야기에도 귀를 쫑긋 세울 정도로.
“그나저나, 자네는 가상화폐라고 들어봤는가?”
“가상화폐? 그 비트코인인가 하는 것?”
바로 옆 테이블.
기업가로 보이는 두 남자가 가상화폐라는 새로운 화제를 던졌다.
“그거, 숫제 부르마블 게임 머니 비슷한 것 아닌가? 난 아직도 이해가 안 가던데, 무슨 그런 데이터 쪼가리에 가치가 있다고.”
“이 사람, 모르면 말을 말게. 요새 본토에서 얼마나 난리인데.”
탈중앙화니 금융의 디지털화니 하는 소리와 함께, 태블릿 PC 화면에 보이는 그래프.
거기에는 마치 산등성이를 그린 것처럼, 거대한 붉은 불기둥 수십여 개가 연속으로 솟구쳐 있었다.
“비트코인…?”
“어, 제임스 왕 이사! 자네도 아는 모양이구먼. 이게 말이야, 요 한 달 새에 두 배가 넘게 올랐단 말이지. 어이쿠야!”
반짝.
완만하던 불기둥이 눈 깜짝하는 순간, 용트림하듯 치솟아 올랐다.
“그새 또 올랐잖아? 허허허.”
“수익률이 350%…!”
제아무리 금융 판에 몸을 담갔던 사람일지라도, 넋을 잃고 입을 벌리게 되는 기형적인 시장. 비트코인.
무언가 둔탁한 것으로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표정의 제임스 왕 이사.
그의 벌어졌던 입이 닫힌 것은, 다시 나타난 장 대인이 말을 걸고 나서였다.
“아아, 자네도 보았구먼, 그래.”
“어르신 저 비트코인이라는 건 도대체…?”
“내 아까 말하지 않았던가.”
씨익, 뜻 모를 미소를 짓는 장 대인.
앞에 마주한 제임스 왕 이사를 보며 그는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생각했다.
“말도 안 되는 부(富)를 틀어쥘 행운이 자네에게 찾아올지도 모른다고.”
어서 이 젊은 친구를 발판으로 삼아… 다시금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생각을.
“잠시 여기 계신 분과 내빈 전용 공간으로 가세나. 아무래도… 오늘 이야기가 길어질 듯하니.”
물론, 장 대인 자신도 그저 쓰다 버려질 장기 말일 것이라는 사실은 꿈에도 모르는 채로.
* * * *
그 시각. 중국, 베이징.
-성공했네. 제임스 왕, 그 얼치기가 관심을 가지더구먼.
내게 짤막한 문자 메시지 하나를 보낸 장 대인.
제임스 왕 이사를 비트코인에 빠지게 만들라는 내 첫 번째 지령은 순조롭게 먹혀들어 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계속 진행해 주십시오. 눈치채지 못하도록 서서히 빠져들게끔.
답장을 마치고, 나는 소파에 몸을 깊게 묻으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너무 늦지 않게 되어서 다행이네.”
아슬아슬하기는 했다. 핑 주석을 만나기 전까지 어느 정도 빌드업 단계는 거쳐야 했으니까.
풀어진 긴장감에 눈을 비비고 있는데,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 회장님?”
“아아, 장관님.”
한국의 외교부 장관이었다.
“일단, 저희 쪽에서 판은 깔아 두었습니다. 원래 핑 주석은 기업가와 독대를 하지는 않습니다만… 간신히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런데, 저… 이번에는 도대체 무슨 일인 겁니까?”
일본, 후쿠시마에서부터 나와 함께했던 외교부 장관.
이제는 제법 정이 든 모양인지, 그는 손가락으로 안경을 추켜올리며 내게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사우디, 태국, 미국, 일본, 교황청, 그리고 북한까지. 이제는 중국이라니. 이번 일,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겠지요?”
“글쎄요. 다른 건 모르겠습니다만.”
그리고, 나는 그 잔소리에 장난기 섞인 웃음으로 답했고.
“적어도 이제껏 있었던 일들보다는 한층 더 역동적으로 돌아갈 것 같습니다.”
“아이고, 두야….”
머리를 감싸 쥐며 괴로워하는 외교부 장관.
이 아저씨, 당분간 고생 좀 하긴 할 것이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동북아시아의 외교·안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 틀림없으니까.
그리고, 바로 그때.
“한서준 회장?”
“아, 네.”
검은 양복 상의 오른쪽에 견장을 찬, 무섭게 생긴 중국 남성.
내게 다가온 그는 간단한 인적 사항을 확인하고는, 고압적인 태도로 나를 일으켜 세웠다.
“따라오십시오. 수행원들은 모두 여기에 두고 오직 혼자서만.”
핑 주석.
대륙의 새로운 시황제가 있는 곳으로 나를 이끌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