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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의 핵몽둥이-260화 (224/300)

260화 핑핑이(3)

야심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

핑 주석의 첫인상은 그랬다.

“…….”

나를 불러 놓고는 인사도 받지 않은 채 위아래로 훑어보는 핑 주석.

붉은색으로 칠한 용 조각 의자에 앉은 그는 나라는 사람의 크기를 재어 보고 있었다. 제법 무거운 눈길로.

‘속일 수 있을까…?’

째깍째깍, 시곗바늘 움직이는 소리만이 가득 찬 방 안.

이 묵직한 침묵 속에서 큰 산처럼 존재감을 과시하는 핑 주석.

그러나.

‘아니, 속일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알고 있다.

현대 중국의 시황제가 되고 싶은, 아직 세상에 까발려지지 않은 날것 그대로인 이 사람의 욕망을.

그리고.

‘속여야만 한다. 반드시.’

제아무리 거대한 위압감을 가진 이일지라도, 욕망이라는 그림자는 본체보다 길게 드리워지는 법이니까.

꿀꺽, 목구멍 너머로 넘어가는 침방울 소리. 그것을 신호라 여긴 건지, 자리에 앉은 핑 주석은 찻물로 입술을 적시고는 내게 말을 건네었다.

“나를 보고 싶다고 했던 자가 자네인가?”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자리에서 일어난 핑 주석.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천천히 내 앞을 향해 걸어와 코앞에 마주한 그가 나를 다시금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젊군. 이제껏 이룬 위업에 비하면 더더욱 젊고.”

“과찬이십니다.”

“서론을 길게 끄는 것 따위 원치 않는다. 나를 독대하고자 했던 이유를 말하도록.”

생각했던 것보다는 직설적인 성격. 오히려… 좋다. 이 정도라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을 다잡은 나는 애써 여유로움이라는 가면을 얼굴에 뒤집어쓰고는 대답했다.

“주석께서는 급하신가 봅니다.”

“일국의 지도자는 늘 바쁜 법. 재벌 그룹의 회장이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아니요. 제 말뜻은 그게 아니라.”

그가 가진, 내면의 원초적인 부분을 건드리면서.

“마음이 조급해 보입니다. 꼭 무언가에 쫓기고 계신 것처럼.”

“내가… 쫓긴다고?”

“상하이방, 그리고 한때 베이징의 노괴라 불리던 장 대인.”

무심한 듯, 그저 툭, 툭 던지는 낱말 몇 개.

그러나, 고작 몇 개의 키워드를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그의 마음속 연못에 파동을 일으키기엔 충분한 모양이었다.

핑 주석의 미간에 세로로 잡히는, 몇 개의 불편한 주름.

파동으로 열린 작은 문틈을, 나는 결코 놓치지 않았다.

“그들을 처리하셔야 진정 신중국의 시황제 자리에 오르시지 않겠습니까?”

“…계속 들어보겠다.”

털썩, 소파에 앉아 다리 한쪽을 꼬고는 내게도 앉으라 손짓하는 핑 주석.

절반이 조금 넘게 열린 듯한, 마음속 빗장. 나는 그 열쇠 구멍 사이로 그럴듯한 무언가를 집어넣기 시작했다.

“제게 꽤 괜찮은 아이템이 있습니다. 홍콩으로 떠난 반역자들의 마지막 자금줄을 말려 버릴 아이템이.”

욕망으로 된 황금 열쇠를.

“인간의 뱃속에 끝없는 욕망을 부풀리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새에, 터져 버리게 되는 법이니까요.”

그리고, 누군가의 욕망과 다른 이의 욕망이 부딪혀 충돌하는 그때가 되면… 나는 위로 올라설 것이다.

눈먼 자들의 시체 위에서.

“핑 주석님, 혹시 비트코인, 다른 말로 가상화폐라는 것에 대해서 들어보셨습니까?”

* * * *

“흥미롭군.”

내게 비트코인에 대한 설명을, 더 정확히는 비트코인을 이용해 자신의 정적을 제거할 가능성을 들은 핑 주석.

미묘한 웃음을 입에 걸친 그는, 단번에 이야기의 핵심을 짚어내었다.

“독이 든 성배일지도 모르는 것을, 제 놈들의 뱃가죽이 터질 때까지 퍼 마시게 만들겠다?”

최대 정적인 상하이방과 그들의 손을 잡은 장 대인.

당장이라도 그들의 뱃가죽을 터트리고 싶어 안달이 난 모습의 핑 주석. 그는 손가락으로 비트코인 차트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그 성배에 탈 독은 그대가 말한 비트코인이라는 가상화폐 놀음인 것이고.”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고심하는 듯해 보이지만, 이미 그 모습만으로도 그를 설득하기에는 충분했다.

그 고민의 모습은, 그저 이 그럴싸한 아이템을 가지고 온 내가 얻을 수 있는 반대급부가 무엇인지를 아직 모른다는 것일 뿐이니까.

그렇기에, 나는 깍지 낀 손을 한쪽 무릎에 얹으며 어물쩍 말 한마디를 보태었다.

“물론 여기에는… 조연 하나가 필요합니다.”

“조연?”

핑 주석의 집무실 벽 한쪽을 통째로 채운, 황금으로 조각된 중국 지도.

번쩍이는 황금 옆, 중국 국경선 너머의 은으로 조각된 이웃 국가들.

나는 손가락으로 그 국가들 가운데 하나를 가리키며 웃음 지었다.

“혹시 핑 주석님께서는 동북쪽의 번국을 다스리는 두령을 진심으로 아끼십니까?”

북한, 중국의 꼭두각시 국가이자, 때로는 실타래에서 제멋대로 벗어나 말썽을 피우는 국가를.

“김가 놈 말이로군. 그딴 놈을 아낄 이유 따위 없다. 그저 북조선이라는 국체가 망하지만 않는다면 그것으로 족할 뿐. 애시당초.”

천운이 따르는 걸까?

김정은에 대해 박한 평가를 내리는 핑 주석.

“기무라 와치루라고 했던가, 그 왜놈에게 사기나 당한 멍청이 따위 손톱만큼도 아낄 가치도 없다. 헌데, 그것은 왜?”

참 우습게도, 그 박한 평가의 한쪽 날개는 내가 만들어낸 것이었던 모양이다.

기무라 와치루라는, 내 또 다른 신분이.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중요한 이유가 있어서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 기회를 굳이 넘길 필요 따위는 없다. 재킷 안쪽, 손을 넣어 네모난 작은 종이뭉치를 만지작거리는 나.

“무슨…?”

금실로 치장된 국화무늬가 그려진 붉은색 여권. 나는 그 일본 여권을 꺼내어 핑 주석 앞에 펼쳐 보였다.

“이 가짜 신분으로도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한국인 한서준이 아닌, 일본인 기무라 와치루로서.”

제법 개구진 미소와 함께.

“하! 하하…! 그런가, 그렇게 된 것이었나.”

내가 보인 단서 몇 개만으로도 빠르게 상황을 파악한 핑 주석.

“자네를 위협할 그 김가 놈도 홍콩 반역자 놈들과 같이 엮어 버릴 생각이로군.”

“훌륭한 통찰력이십니다.”

이로써 모든 당위는 충족이 된 상황. 이제 강하게 밀어붙이는 일만 남았다.

달그락, 빈 찻잔을 내려놓으며 내가 몰아붙이듯 핑 주석에게 물었다.

“해서, 이 계획. 이 자리에서 바로 재가받을 수 있을는지요?”

다소 결례가 될 수도 있는 상황.

그러나.

“배짱이 좋은 것인지, 겁이 없는 것인지… 이봐! 밖에 누구 있는가!”

나름 호방한 모습으로 바깥의 비서관을 불러오는 핑 주석.

“도장을 가지고 오도록. 문서를 하나 작성해야 한다.”

생각보다 금방 마무리된 서류 작업. 비공식적인 것이어서인지, 간단한 합의 내용 몇 가지가 적힌 문서 위에는 금방 핑 주석의 묵직한 옥새가 찍혔다.

쿰쿰한 잉크 향이 채 마르기도 전, 내게 사뭇 세속적인 물음을 던지는 핑 주석.

“그 비트코인 말이지, 롤러코스터를 태울 생각인가?”

“측근분들을 뒷좌석에 태우시겠습니까? 오로지 상승 구간에서만요.”

“이야기가 빨라서 좋군. 그럼, 어디 자네 마음대로 해 봐.”

그 대화를 마지막으로 파한 독대 자리.

자금성 문밖을 지나는 그 순간까지도, 긴장되는 심장은 계속해서 빠르게 혈류를 뿜어대고 있었다.

맥이 탁하고 풀린 것은 호텔에 돌아오고 나서였다.

“성공이다….”

그리고, 그 순간.

장난처럼 울리는 휴대 전화.

-아직 멀은 겐가?

홍콩에서 한참 내 지령을 수행하고 있는, 장 대인의 문자 메시지였다.

“이 영감님도 참, 타이밍 맞추는 데는 귀신이네.”

아마 지금쯤이면 슬슬 제임스 왕 이사의 뱃속을 비트코인이라는 신기루로 가득 채우고 있을 터.

간단하게 준비가 되었다는 답장을 날린 후, 나는 곧바로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방 한쪽에 놓아둔 가면을 얼굴에 쓰기 시작했다.

예전, 광저우 카지노에서 유세나 보좌관과 함께 쓰던 천사 가면을.

“역시 상대방을 기만하는 데에는… 이만한 것도 또 없지.”

* * * *

같은 시각. 홍콩.

“여기는…?”

호텔 지하 안쪽, 가장 깊숙한 곳.

카지노 VIP룸과 연결된 곳에 도착한 제임스 왕 이사.

어안이 벙벙한 그에게 장 대인이 능구렁이처럼 말을 건네었다.

“본래 세상사 다 그렇지 않던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그러고는, 자신이 내뱉은 말을 확인하듯 뒤따라온 가상화폐 관련 홍콩 경제인에게 되묻는 장 대인.

“그렇지요?”

“하하, 그렇습니다, 장 대인. 그런 의미에서 비트코인이라는 놈은 꼭 카지노에서 칩 전부를 던지고 콜을 외치는 것과 같지요.”

툭, 칩 하나를 꺼내어 룰렛 위에 던지는 의문의 사내.

탄약그룹에서 파견되어 온, 이 사내는 장 대인과 함께 합을 맞추며 그럴싸한 분위기를 연출해 내었다.

“성공하는 자가 모든 것을 다 먹는. 물론, 승률은 저희가 정하는 것이지만.”

무언가 사람 마음을 홀리게 하는, 그런 분위기 속.

아주 자연스럽게 리모컨을 들어 모니터 화면을 켜는 의문의 사내.

무슨 일인지 채 파악하지 못해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우는 제임스 왕 이사. 곧바로, 지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화면에서 누군가의 모습이 등장했다.

-반갑습니다. 제임스 왕 이사님.

천사 가면을 쓴, 신원을 파악할 수 없는 자의 모습이.

“이분은…?”

장 대인에게 물음을 던지는 제임스 왕 이사. 무어라 대답이 오가기도 전에, 화면 속 인물은 생각할 시간조차 주지 않겠다는 듯, 제 할 말을 연이어 나갔다.

-이 판 위에서 인사는 얼굴이 아닌 돈으로 하는 것이 타당하겠지요? 일단 이것부터 보셨으면 합니다.

“무슨… 허억!”

순식간에 다른 장면으로 바뀌는 화면.

거대한 공장 외부의 모습. 그리고, 그 안에서 미칠 듯한 열풍을 내며 돌아가고 있는 수천, 수만여 대의 기계장치.

놀라움을 금치 못한 제임스 왕 이사가 말을 더듬으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설, 설마… 이게 전부 채굴기입니까?”

-그렇습니다. 지난 3년여의 시간 동안 하루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간 채굴 공장입니다. 그 결과.

또다시 바뀌는 화면.

거기에는 생생한 데이터가 일목요연하게 나타나 있었다.

얼마만큼의 비트코인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 총액수가 얼마인지를.

-저희 조직은 전체 채굴량의 절반이 넘는 비트코인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절반이 넘는… 그렇다면, 70억 달러!”

기함을 토하게 하는 거액.

묘한 카지노 룸의 분위기가 심장을 자극해서였을까?

반쯤 눈이 풀린 채로 욕망에 찬 모습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제임스 왕 이사.

“제게 무엇을 원하십니까…?”

-가상화폐 시장에 거품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그는 모르고 있었다.

지금, 기적처럼 찾아온 이 기회가, 실상은 자신의 배를 욕망으로 채워 넣어 터트리게 될 것임을.

-장 대인께서 강하게 추천하시더군요. 본토와 홍콩을 넘나들며 이번 일의 실무를 맡을 적임자라고.

“아아… 감, 감사합니다!”

-잘하리라 믿겠습니다. 세부적인 소통은 여기 장 대인을 통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빠르게 제 할 말만을 남긴 채, 꺼진 모니터 화면.

제임스 왕 이사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장 대인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건네었다.

“기회일세.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장 대인…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 그래. 자네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게야. 아, 참. 그리고.”

묘한 감정이 섞인 미소를 짓는 장 대인. 말끝을 흐리던 그가 문 쪽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한 분이 더 오시기로 했네.”

“다른 분이요?”

“그래, 마침 오시는구먼.”

저벅저벅. 발걸음 소리가 멈추자마자 노크와 함께 열린 문.

어색한 양복을 입은 중늙은이가 쓰고 있던 중절모를 벗고는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아이고. 이거, 반갑습네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외경제상 직에 있는 윤정호라고 합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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