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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의 핵몽둥이-261화 (225/300)

261화 핑핑이(4)

북한, 평양의 김정은 집무실.

오늘따라 김정은은 유독 초조해 보였다.

육수라고 해도 좋을 만큼 이마에서 삐질삐질 흐르는 땀방울. 줄기를 타고 내려온 비지땀이 그의 양복 셔츠 옷깃을 진하게 물들일 정도였으니.

째깍째깍, 연신 손목에 찬 시계만을 바라보던 김정은. 인내심에 한계가 찾아온 그가 비서에게 역정을 내며 말했다.

“이봐! 대외경제상 그 늙다리 영감탱이는 도대체가 언제 오는 거이야!”

“아, 아마도 오늘 오후 중에는 도착할 것으로 보입네다! 송구합네다!”

“공항 내리자마자 바로 이리로 오라 하라! 서면도 필요 없고, 직통으로 보고해도 상관없다!”

평소 잘 정돈된 서류와 함께 보고받는 것을 선호하는 김정은이었지만, 초조함과 기대감에 휩싸인 오늘의 그에게는 그런 것들 따위야 사소한 장식품에 불과했다.

“빌어 처먹을 노친네… 느려 터진 것이 굼벵이를 삶아서 아가리에 쑤셔 넣어도 시원찮다!”

걸쭉한 욕을 입가에 붙이며 마우스를 딸깍거리는 김정은.

몇 차례 인증 절차를 거치자 곧바로 화면에 나오는 외환 계좌 현황.

툭 튀어 오른 혈관 아래 구겨진 미간. 김정은은 초라해진 계좌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이거, 이거. 숫제 꽃제비 새끼꼴이 되어 버렸구먼, 기래.”

분노가 듬뿍 섞인, 진한 한숨을.

“한서준 그 쓰레기 같은 종간나 새끼 때문에…!”

쾅! 거칠게 마우스를 뽑아 벽에 던져버리는 김정은.

털썩, 소파에 몸을 깊이 묻은 그가 긴 장초 하나를 꺼내어 입에 물었다.

몽롱하게 피어오르는 잿빛 연기. 독한 기운에 가까스로 진정이 된 그는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가 왜 지금 이토록 초조하게 대외경제상 윤정호를 기다리고 있는 이유에 대한 생각을.

‘뭐이야? 그기 참말이간?’

며칠 전.

벅찬 얼굴로 김정은에게 보고를 올리던 윤정호 대외경제상.

그는 지금은 홍콩에 있는, 한때 베이징의 노괴라 불리던 장 대인으로부터 가상화폐에 대한 투자 제안을 받았다는 사실을 김정은에게 보고했다.

그게 제 주인의 목을 옥죌 올가미인 줄도 모르고.

‘기래서, 그 떼놈들이 말하는 비트코인인가에 투자하면, 곱절도 넘게 차익이 난다?’

‘그렇습네다, 위원장 동지. 자세한 것은 홍콩으로 가 이야기를 들어야 하지만….’

휙, 휙. 가지고 온 서류를 이리저리 펄럭거리며 대략적인 내용을 눈에 담는 김정은.

가파른 해안가 절벽처럼 미칠 듯한 각도로 솟구치는 그래프. 점점 늘어나는 발행량과 그에 못지않게 불어나는 시장 참여자들.

약간의 유동성. 그리고 촉매 역할을 할 광기만 있다면 곧바로 하늘 위로 날아갈 것만 같은 잠재력에 김정은이 감탄을 내뱉었다.

‘하! 기가 막히는구먼! 대놓고 돈 고이는 냄새가 난다! 그런데.’

움찔, 눈썹 한쪽을 올리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던 김정은.

그는 붉은색 펜을 꺼내 들어 거칠게 종이 위를 찢어질 때까지 직직 그으며 대외경제상에게 타박을 주었다.

‘베이징의 노괴야 그렇다 치고. 제임스 왕? 이 머저리 떼놈과 같이 작업한다고?’

‘그것이… 아무래도 어찌어찌 장 대인에게 줄을 댄 모양입네다. 운용 역을 맡길 놈이 필요했던 거이 아닐는지요?’

‘하! 목숨줄도 질긴 놈!’

김정은 자신과 함께했을 때, 한 번. 그리고, 그 이전에도 수차례 같은 상대에게 패배했던 이력이 있던 제임스 왕 이사.

분명 마음에 들지 않은 인선이었지만, 김정은은 딱히 추가적인 몽니를 부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뭐, 되었다! 피차 그 어설픈 놈도 그 사실만 알려주면, 복수심에 칼을 갈고 한계까지 능력을 쥐어짤 테지.’

어차피 그가 생각했을 때… 이번 가상화폐 건의 대항마는, 그저 어리숙하고 선동당하기 쉬운 일반 대중들이었으니까.

제임스 왕 이사, 그리고 자신마저 패배케 한 그 남자가 아니라.

‘무슨 말씀이신지…?’

‘아, 제임스 왕 그놈도 동기가 있어야 일을 열심히 할 것 아닌가! 그러니 기밀 하나쯤은 알려줘도 좋다!’

물론, 그 착각은… 스스로 빠져나올 수 없는 모래사막 한가운데로 밀어 넣는 것이나 다름없었고.

‘기무라 와치루, 그 개잡놈의 정체가 사실 한서준의 위장 신분이었다는 사실을 말이지.’

그렇게 이런저런 기대감을 두 손 가득 들리게 한 후, 홍콩으로 떠나보낸 대외경제상 윤정호.

팔짱을 낀 김정은이 과거 회상을 마치고 다시 눈을 뜬 바로 그때.

똑, 똑, 노크 소리와 함께 들리는 비서의 목소리.

“대외경제상 도착 소식입네다! 바로 올 수 있도록 도로를 통으로 비워 두었습네다!”

비트코인.

그 광풍의 날갯짓이 평양에서도 불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 * * *

“경애하는 위원장 동지. 저는 공화국의 명운을 걸어도 될 정도의, 신천지를 보고 왔습네다.”

“신천지? 그 정도라고?”

생각보다 과감한 어투로 말을 꺼내는 윤정호 대외경제상.

평소 소심했던 그가 이토록 확언을 하자, 김정은에게는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는 모양이었다.

“어이, 대외경제상. 이것 좀 보라.”

곧바로 계좌를 열어 남은 액수를 보여주는 김정은.

“남은 거이 닥닥 긁어도 꼴랑 미화 100억 달러가 안 되는 기야. 이게 머인 뜻인 줄 알간?”

“…….”

“실패하면 공화국은 끝이라, 이 말이지비. 대외경제상, 너이 지금 내뱉은 말에 책임질 수 있간?”

“그, 그야….”

책임의 전가.

실패하는 순간 바로 대외경제상의 목을. 아니, 그의 일가친척 전부의 목을 따 버리겠다는 것을 은연중에 암시하는 김정은.

‘답을 정해 놓고 묻는 포악한 종간나 새끼.’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어차피 지금 자금 상황이라면 대외경제상은 언젠가는 책임을 지게 될 터.

“물, 물론입네다, 위원장 동지. 제가 어찌 감히 거짓부렁을 말하갔십네까?”

가상화폐라는 거대한 위험을 감수할지라도, 그에게는 승부수를 던지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었다.

그의 속마음이 말하는 것처럼.

‘이래 죽나 저래 죽나. 일단 질러나 보자 이 말이지비. 정 뒤질 운명이라믄 장성택이처럼 확 탈북이라도 하던지.’

그렇기에, 머릿속 위험 계산과는 달리 과감하게 말을 내뱉는 대외경제상.

“고저, 홍콩 떼놈들이 대차게 일을 벌일 심산인 모양인지라, 저희는 그저 조용히 돈만 묻어두면 그만일 것입네다.”

“기래, 기렇단 말이지…?”

그 의외의 모습에 진정성 비슷한 것이 있다 믿은 걸까?

“통치 자금으로 절반은 따로 떼어두어야 하니… 거, 받아 적으라.”

그에게 펜과 종이를 툭 던지고는 입을 여는 김정은.

궁지에 몰린 그는 탐욕이라는 추진제를 달고, 벼랑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대외경제상, 네놈에게도 마지막 기회인 기야. 미화 50억 불을 줄 테니, 그걸로 어떻게든 두 배, 아니 세 배 이상으로 불려 오라!”

“명 받들갔습네다, 위원장 동지!”

비트코인이라는 디지털 세상 속, 가상의 신기루를 좇으며.

* * * *

같은 시각.

홍콩의 한 호텔 방.

“…….”

맥이 풀린 듯, 멍한 표정으로 침대 위에 누운 제임스 왕 이사.

“할 수 있을 것인가…?”

혼잣말을 내뱉는 그는 공허해 보였다. 아니, 정확히는 그에게 다가온 기회가 기회의 탈을 쓴 파멸일지 모른다는 직감에 고뇌하고 있었다.

찬찬히 눈을 감고, 몇 시간 전 VIP 룸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는 제임스 왕 이사.

베이징의 노괴, 장 대인은 장밋빛 미래와 함께 가시 달린 줄기를 건네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알다시피, 워낙 판이 크지 않던가. 전 세계 사람들의 허파에 바람을 불어넣어야 하니 말이지.’

‘어떻게 하시겠다는 말씀이신지…?’

‘이 사람, 금융가 출신이 지금 내게 묻는 겐가?’

손에 꼭 쥐는 순간, 단단히 박혀 다시는 빼낼 수 없는 독한 가시가 주렁주렁 달린 장미 줄기를.

‘거, 왜. 주식 판에서도 비슷한 게 있다지? 서로 짜고 주식을 돌리면서 호가를 올린다는.’

‘불법 자전거래…!’

‘예끼, 이 사람. 불법일 리가 없지 않은가!’

과장된 호통을 친 후, 다시 뱀의 혀 놀림처럼 사근사근 귓가에 속삭이는 장 대인.

‘어차피 제도권에서 신경도 안 쓰는 데이터 쪼가리인 것을. 그렇지 않은가? 윤… 이름이 뭐라 했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외경제상 윤정호입네다.’

‘아, 그렇지. 거, 북조선에서도 자네쯤 되는 위치이면, 이쯤 들어도 감이 올 것 아닌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눈앞에 있다는 것을. 끌끌끌.’

황금알을 낳는 거위.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이들이 보고 있는 새.

분명 거위는 지금 이 순간에도 쉴 새 없이 황금알을 낳고 있었다.

영원히 쉬지 않고, 그들의 욕망을 채워주기 위해 태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그러나.

‘헌데… 한 가지만 물어도 되겠습니까?’

그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 아니, 정확히는 그 거위를 가진 주인에 의문을 제기하는 북한 대외경제상 윤정호.

‘방금 화면에 나왔던 그 천사 가면 말입니다. 그분은 도대체 누구시기에 저런 어마어마한 물량을 다 가지고 계신 건지요…?’

굳게 입을 다문 장 대인.

같은 의문을 가지고 있던 제임스 왕 이사 역시 그 말을 받아 조심스레 물음을 던졌다.

‘저도… 좀 알았으면 합니다. 저 베일에 가려진 진짜 우두머리가 누구인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하! 지금 그게 중요한 일인가! 그것도 일반 금융쟁이도 아니고!’

작위적인 분노를 얼굴에 그리고는, 두 사람에게 사자후를 내뱉는 장 대인.

‘자네들처럼 지옥 끄트머리 절벽에 매달린 사람들이? 주제를 알아야지 어딜 감히…!’

누군가를 지옥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다는 죄책감 따위는 없이, 그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거리낌 없이 등을 떠미는 장 대인.

‘…….’

‘…….’

두 사람의 침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장 대인 역시 알지 못했다.

자신 또한… 결국은 이 큰 그림에 있어서, 그저 잘려 나갈 운명인 흠집에 불과한 사실을.

그렇기에, 의뭉스러운 듯한 얼굴로 암시 하나를 던지는 베이징의 노괴.

‘뭐, 그래도 차후에 모든 것이 끝나면 내 정식으로 소개해 줌세. 아마 두 사람 모두 깜짝 놀랄 게야.’

섬찟하고 잔인한 웃음.

스스로 제 목을 조르는 줄도 모르는 꼭두각시가 제물 두 사람에게 의기양양한 태도로 말했다.

‘모든 작전이 끝나게 되면, 그 사람은 어쩌면 세계 최고 부자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지.’

그런 장 대인의 모습을 회상하며, 침대에 누운 채로 손을 뻗어 전등 빛을 가리는 제임스 왕 이사.

“할 수 있다.”

번쩍, 유달리 강하게 느껴지는 전등 빛.

그 빛줄기는 제임스 왕 이사의 시야를 흐리고 있었다.

“아니… 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비단 비트코인이라는 것뿐이 아닌, 김정은이 선심을 쓰듯 대외경제상에게 들려 보낸 선물 보따리에서 나오는 빛 때문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보위부 문서] 기무라 와치루의 정체는 남조선의 탄약그룹 회장 한서준인 것으로 조사가 완료되었음.

“내가 해내야만, 한서준, 그 찢어 죽일 놈을 처단할 수 있으니까.”

와락, 빛줄기를 쥐어 잡듯 주먹을 움켜쥔 제임스 왕 이사.

마침내, 침대에서 일어난 그가 휴대 전화를 들고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장 대인, 제임스 왕입니다.”

짧게 들이쉬고 내뱉는 심호흡.

마침내, 그가 나락의 입구에 스스로 발을 들여놓았다.

“맡겠습니다. 해당 페이퍼 컴퍼니 법인 대표에 제 이름을 올리겠습니다. 모든 것에 대해 무한 책임을 짊어질 각오는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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