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4화 비트코인(3)
가끔 사람들은 광기에 빠진다. 자기들이 거품을 만들어 내고서는, 자기들 손으로 부수고 경악하는 광기에.
때로는 튤립이, 때로는 주식이, 때로는 다른 무언가가 대상이 되는 투기.
가상화폐, 그중에서도 비트코인이라는 것 또한 광기에 빠지기 좋은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었다.
-비트코인,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나? 연일 멈출 줄 모르는 고공행진!
-개당 20,000달러를 넘긴 비트코인 가격. 과연 그 최종 가치는 얼마가 될 것인지?
최근 몇 달간, 배가 터지기 직전까지 공기를 들이마신 거위처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비트코인 가격.
물론 여기에 내가 펌프질을 한 것도 있기야 하지만, 여하간에 비트코인은 원 역사에서의 1차 폭등 지점보다 더 높은 곳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마치 자기들은 날개 없이도 추락 따위 경험하지 않을 생각이라도 하는 것처럼.
-상승! 상승! 그리고 끝없는 상승! 하버드대 토마스 교수, ‘가상화폐에 미래가 있다.’
구깃, 비트코인의 장밋빛 전망에 대한 논설문을 거칠게 구겨 그대로 쓰레기통으로 직행시킨 나.
의자 목 받침에 머리를 깊게 누이며, 나는 작게 웃음 지으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미래는 개뿔. 그런 거 없다.”
모두의 기대를 꺾어버릴,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한마디를.
“묵직한 현실만이 있을 뿐이지.”
서희 누나에게 지시를 내린 지 채 10분도 지나지 않은 지금. 이제까지의 장밋빛 전망은 우둔한 이의 허튼소리가 되어 버렸다.
하락, 급락, 폭락.
추락하는 차트에는 시장 참여자들의 곡소리만이 울려 퍼지고 있을 뿐.
-이게 머선 일이고! 왜 차트에 폭포수가 흘러 내리는 거임?
총발행량의 절반.
그 막대한 물량이 시장에 한순간에 풀려버리자, 끝을 모르고 아래쪽을 향해 떨어지는 거래 가격.
-으어어엌. 코인 20,000달러에 들어간 흑우들 집에 목 메달을 밧줄은 있것쥬?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데! 돈이 삭제가 된다고!
벌써 인터넷 커뮤니티를 비롯한 곳에서는 격한 반응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 판의 끝을 알리는 장송곡 비슷한 소리가.
그리고, 그걸 보고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커피잔을 집어 든 나. 씁쓸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나는, 곧바로 전화를 걸어 서희 누나에게 물음을 던졌다.
“현재 상황은?”
-지금… 보유량의 11%가량을 팔아 치웠어. 평 단가는 개당 12,700달러.
시장가에 마구잡이로 던졌는데, 그래도 제법 선방한 모양이었다.
물론, 지금 거의 3분의 1토막을 낸 상황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
“시장이 붕괴해도 상관없으니, 계속 매물 뱉어내도 돼. 선물거래 쪽은?”
-일단 우리 쪽 숏(Short) 포지션은 대박이야. 보통 5배… 아니, 어떤 것은 레버리지에 따라 50배짜리도 있으니까.
시장 전체가 붕괴한 만큼, 반대로 나는 이득을 보는 상황.
최종적으로 얼마가 될지는 끝까지 가야 알겠지만… 아마 어지간하면 한국 부자 랭킹 1위 정도는 너끈하게 찍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세계 규모로 가면, 빈 살만 왕세자 같은 사람들이 있으니까, 한 10위 안에는 들려나 싶고.
-하하… 이제 재벌이라도 확실히 수준이 달라졌네. 여하튼, 축하해. 이것도 다 네 능력이야.
“능력은 무슨, 운이 좋았지. 그나저나, 홍콩 쪽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지?”
즉답 대신, 딸깍거리는 마우스 소리를 내며 무언가 파일 하나를 여는 듯한 서희 누나.
그리고, 곧바로 모니터 화면 아래 떠오르는 메시지 알림.
-아마 직접 보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데.
서희 누나가 보낸 파일을 열어 보니, 거기에는 제임스 왕 이사가 대표로 있는 법인의 대략적인 손실 추정액이 계산되어 있었다.
마이너스 표시와 함께 적힌, 끝도 없이 늘어진 시뻘건 숫자들이.
“제대로 박살이 났네. 원금 전액 손실은 무조건이고… 마진콜까지 하면 수조 원, 아니, 수십조 원은 깨졌겠어.”
-그 깨진 돈만큼 먹는 사람이 있는 법이지. 서준이 너처럼.
수십조 원의 손실.
이제… 제임스 왕 이사, 그는 영원히 재기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도저히 탈출 방법을 찾지 못한 지금, 이렇게 내게 간곡히 영상통화를 요청할 정도로.
“마침, 그 단단히 깨진 사람이 나를 애타게 찾는 모양이네.”
내 휴대전화 화면에 찍힌, 수십여 통의 부재중 통화.
피식, 가볍게 웃음 지은 나는, 주섬주섬 천사 가면을 머리에 뒤집어쓰고는 혼잣말을 내뱉었다.
“이제… 마지막 가면 놀이를 할 시간이겠어.”
그러고, 곧바로 연결된 제임스 왕 이사와의 영상통화.
“무슨 일이지요?”
-큰, 큰일입니다! 지금 비트코인 시장에 대규모 하락이…!
반쯤 울먹이듯 내게 외치는 제임스 왕 이사. 이런저런 말을 두서없이 늘어놓는 그 모습에, 나는 한쪽 손을 들어 그의 말허리를 끊어버렸다.
“알고 있습니다.”
-네…?
어안이 벙벙한 모습의 제임스 왕 이사. 당황한 듯한 그의 얼굴은 조금씩, 조금씩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내가 천천히 가면을 벗어 던지는 모습에 합이라도 맞추듯이.
“전부 내가 계획했던 대로이니까. 비트코인 시장의 붕괴와 더불어.”
-한, 한서준…? 당신이 어째서…!
이제, 진짜 끝이다.
뒤집을 수 없을 정도로, 확실하게.
“제임스 왕 이사, 당신의 몰락까지도 함께.”
* * * *
제임스 왕 이사, 그의 직감은 분명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다.
갑자기 아무런 이유도, 사전 조짐도 없이 내던져진 대량의 매물. 그리고, 끝을 모르고 급락하는 비트코인 가격.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었다. 무릇 어떤 시장이든지 큰손은 있는 법이고, 세력과 세력이 서로 힘겨루기를 하는 법이니까.
그러나.
‘장 대인, 이 노괴가 어째서…?’
그 난리가 났음에도 아무런 연락도 없던 장 대인. 아니, 그는 연락은커녕 잠적이라도 한 듯 모든 행적을 지우고 사라져 버렸다.
그렇기에 물벼락을 맞은 듯 서늘해진, 제임스 왕 이사의 머릿속.
‘아니다. 아닐 것이다. 아니어야만 한다.’
애써 부정의 말을 내뱉었으나, 그 또한 느끼고 있었다.
이번 일이 단순히 심상치 않음을 넘어서, 자신의 나머지 모든 인생을 파멸로 몰아넣을 것이라는 사실을.
‘제발….’
그렇기에, 마지막 동아줄이라 생각했던 천사 가면에게 비굴하리만큼 매달리던 제임스 왕 이사.
간신히 연락이 닿은 그에게 간곡히 울먹이며 외쳐 본 그였으나.
-전부 내가 계획했던 대로이니까. 비트코인 시장의 붕괴와 더불어.
맥없이 끊어져 버리고 만, 최후의 동아줄.
“무, 무슨 말씀이십니까? 장난이 과하십니다!”
-장난이라. 아아, 그랬지.
벼랑 끝에서 끊어진 동아줄을 잡고 절규하는 제임스 왕 이사를 기다리는 것은.
-아직도 이걸 벗지 않았으니, 그럴 만도.
오로지, 그 끝을 모를 만큼 깊고 어두운 심연뿐이었다.
“한, 한서준…? 비트코인 세계의 거두가… 천사 가면을 쓴 자의 정체가… 한서준 당신이었다고?”
-동시에, 당신을 선물거래 판에 밀어 넣은 사람 또한 나이기도 합니다.
“그럴… 그럴 수가. 이럴 리가 없는데….”
그리고, 점점 멀어져가는 벼랑을 바라보며, 붕 뜬 그의 몸을 노리는 승냥이 떼.
쿵! 쿵! 쿵! 문에 난 작은 유리창 너머로 거칠게 문을 두드리는 사내들의 모습이 제임스 왕 이사의 눈에 비쳤다.
“중화인민공화국·홍콩 합동 증권감독국 수사팀이다! 제임스 왕! 어서 이 문 열어!”
“이런, 빌어먹을…!”
우지끈 소리를 내며 맥없이 부서지는 나무 문짝.
권총을 든 우두머리 격 사내는 품에서 영장을 꺼내어 보이며, 두 손을 든 제임스 왕 이사를 향해 천천히 걸어 나갔다.
“제임스 왕! 너를 자본시장법 위반 및 외국환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긴급 체포한다!”
물론, 제임스 왕 이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체념한 채 고개를 떨구는 것뿐.
“…당했군. 빠져나갈 곳도 없을 정도로.”
-이젠 완전히 끝입니다. 이번 삶에서의 반목도. 그리고.
철컥, 묵직한 수갑이 손목에 걸리는 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그리고, 화면 속, 벗어 던진 천사 가면의 모습에서 씁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난 삶에서의 반목까지 모두 합해서, 전부.
모든 숙제를 전부 끝마친 자의 허탈한 듯한 목소리가.
* * * *
같은 시각. 평양.
기쁨조 여성들과 함께 사우나에 모여 앉아 거침없이 포도주를 들이켜는 김정은.
재잘거리는 미녀들의 웃음소리 때문일까? 그는 오늘따라 유독 신이 나 보였다.
“어머나! 그러면, 그 비트코인인가로 저희 손가락에 보석 반지를 걸어 주시는 거야요?”
“위원장 동지, 소첩은 요트를 타고 나가 원산 앞바다에서 물장구를 치고 싶사와요!”
비트코인.
대박의 신기루에 취한 것은 단지 김정은만이 아니었다.
그의 첩이나 다름없는 기쁨조 여성들 또한 헛된 꿈을 꾸고 있었으니까.
물론, 그 꿈에 가장 깊게 취한 것은 김정은 자신이었지만.
“기럼! 기럼! 내래 네년들에게 못 해줄 것이 무에 있겠나! 자, 보라!”
비서에게 지시해 태블릿 PC를 가져오게 한 김정은.
살찐 손가락으로 몇 차례 화면을 두드리자, 홍콩 소재의 비트코인 거래소 사이트가 화면에 나타났다.
“이거이 비트코인이라는 것이 얼마나 널뛰기를 하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이렇게 오른쪽 우에를 향해 솟구치는 기백이 마치….”
심해처럼 칙칙하게 푸른색으로 물든, 폭락의 그래프와 함께.
“마치… 마치… 허억!”
“위원장 동지…?”
“손 치우라!”
아까까지 그의 몸에 딱 달라붙던 기쁨조 여성들을 밀치고는, 곧바로 사우나 바깥으로 뛰쳐나간 김정은.
“이, 이, 이게 뭐이간! 기, 기렇디, 대외경제상! 지금 바로 대외경제상을 불러오라!”
“예! 안 그래도, 지금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습네다!”
미리 이 사실을 알기라도 했던 걸까?
헐레벌떡 김정은에게 달려오는 대외경제상.
평소처럼 애꿎은 부하에게 사자후를 날리려는 김정은. 그러나.
“너이, 간나 새끼…!”
“바로 홍콩으로 가겠습네다.”
“뭐이?”
김정은이 격노를 터트리기도 전, 아주 차분한 모습으로 덤덤하게 말을 이어나가는 윤정호 대외경제상.
“그쪽에서 작업을 진행하던 도중, 잠시 오류가 난 모양입네다. 두 번 다시 이럴 일 없게끔 엄중히 단도리를 치고 오갔습네다.”
“크흠, 기, 기래? 별문제는 없는 거이야?”
“일시적인 조정입네다. 염려하실 필요는 전혀 없습네다.”
눈알을 빙그르르 돌리는 김정은.
마침 사우나 바깥에서 불어온 찬바람에 코를 훌쩍이던 그는, 애써 불안감을 묻고는 손을 휘휘 저었다.
“뭐… 알겠다. 그만 가 보라!”
끼익, 닫힌 문 안쪽에서 들려오는, 깔깔거리는 애첩들의 웃음소리.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가로저은 대외경제상은, 홀로 차 안에 들어가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한서준 회장님? 나 대외경제상 윤정호입네다. 지시하신 대로 김정은이 놈의 자금 내역은 정리해 보냈습네다.”
그러고는, 차량 앞좌석 정중앙에 놓은 자그마한 가족사진에 시선을 고정하는 대외경제상.
“약속한 대로 일가족과 함께 홍콩으로 갈 터이니, 뒷일을 부탁하갔시오.”
뚝, 긍정적인 시그널과 함께 종료된 통화.
지갑에 들어있는 홍콩행 비행기 표 넉 장을 만지작거리며, 윤정호 대외경제상이 혼잣말을 내뱉었다.
“기럼, 이제 한서준이 입장에서 처단해야 할 마지막 사람은… 새끼 돼지 놈 하나 남은 셈이로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