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6화 정은쿤(2)
“? 우리 조선말로 번역하자믄, 천사 가면?”
비서관의 말을 듣고는 오만 상을 찌푸리는 김정은. 본능적으로 드는 막연한 불안감은 짜증이 되어 입 밖으로 튀어나오게 되었다.
“그기, 무신 무역회사 이름이 그따위인 기야? 탈바가지 만드는 사업소도 아니고.”
“그, 그러게 말입네다. 여하간에 중국 쪽에서도 이래저래 신경을 쓰고 있다고는 합네다.”
갑자기 중국 측의 배려라는 주장을 하는 비서관.
꿈보다 해몽이라고, 실상은 제 포악한 성미에 질려서 입에 발린 말을 늘어놓았을 뿐이지만.
“흠….”
사실 이 변변찮은 수작이 먹힐 만도 하기는 했다.
얼마 전, 주(駐) 평양 중국 대사가 김정은에게 찾아와 이런 하소연까지 내질렀으니.
‘골치 아픈 일 좀 그만 벌이시지요. 제아무리 상국(上國)이라 한들, 번국(藩國)의 응석을 매번 받아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핵무기 개발 건으로 상국, 번국 운운하며 김정은의 속을 박박 긁던 주(駐) 평양 중국 대사.
무언가 잘못된 이해를 한 김정은은 피식 코웃음을 치며, 전혀 맞지 않은 두 상황을 억지로 꿰맞추었다.
“하여간, 떼놈들. 결국엔 다 두손 두발 들고 내어 줄 놈들이, 이래저래 잔소리에 핀잔은 주렁주렁 매달고 온다.”
“그러게 말입네다.”
“여하간에, 그건 되었고. 핵 개발과 백두혈통의 품위 유지. 두 가지는 반드시 차질 없이 진행하도록!”
“예, 위원장 동지!”
명령을 받고 머리를 조아리는 비서관.
종종걸음으로 그가 물러나자, 김정은은 옆에 차렷 자세로 얼어붙은 보위부장에게 핀잔을 주듯 말을 내뱉었다.
“밥버러지 같은 놈. 네놈은 왜 아직도 안 죽고 살아있니?”
“…….”
“처음 암살조 놈들이야 실패했다 치고, 이번 암살조는 아예 휴전선도 못 넘어 보고 잡혀 들어갔다지비?”
또 국정원 지하 심문실에 갇히고 만 암살조. 점점 촘촘해지는 경호망에 커지는 실패 가능성.
물론, 이런 말을 함부로 내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보위부장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머리를 조아리고 손바닥을 싹싹 비비는 것뿐.
“송구, 또 송구합네다.”
“다음번엔 시간을 좀 들여서라도 제대로 된 놈들을 보내라! 괜히 얼치기들 보내서 무신 일을 하갔다고!”
“…알갔습네다.”
자기가 빨리 보내라 재촉한 사실은 그새 잊은 건지, 역정을 내고는 축객령을 내린 김정은.
습관처럼 작은 종을 울려 시종을 부른 그는, 곧이어 나온 스위스제 고급 치즈와 붉은 포도주를 입에 담으며 투덜거렸다.
“쯧쯧… 밥풀만치도 쓸데없는 놈 같으니. 내 저딴 놈을 믿고 일을 맡겨야 하는 긴가? 그나저나.”
벽 한쪽을 가득 메운, 핵개발 일정 진척도를 자랑스럽게 바라보면서.
“핵 무력 완성… 최대한 빨리 진행해야 할 텐데.”
* * * *
내가 비트코인으로 대박을 치는 동안, 지주사 전환 업무 수행으로 바빴던 김원철 아저씨.
해당 일을 마무리하고서야 비로소 코빼기를 비춘 아저씨는, 이번 일의 수확물 이야기를 듣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히야. 그러니까, 우리 회장님 재산이 원화로 150조 원이 넘는다? 그것도 당장 뽑아다 쓸 수 있는 현찰 다발이다?”
정확히는 환율이 그새 또 올라서 160조 원에서 170조 원까지도 바라볼 수 있는 상황. 거기에 현금이라는 말도 맞는 말이고.
살면서 어지간한 거액은 다뤄 보았을 김원철 아저씨에게도 이 정도 규모는 확실히 볼륨이 남다른 모양이었다.
특히나, 가상화폐라는 것 자체에 의구심을 진하게 가지고 있었으니까.
“아니, 무슨… 크흐, 현실에 이런 게 존재할 거라 상상을 못 했는디.”
“저도 이런 결과가 나올 거라고는 생각 못 했습니다. 비트코인 채굴량이 그렇게 많았을 줄이야.”
“아주 봉이 김선달이여. 세상에 그런 쓸모라고는 개코도 없는 데이터 쪼가리로 떼부자가 되다니. 그나저나.”
들뜬 모습을 조금 억누르고는 진지함을 얼굴에 띄운 김원철 아저씨.
곧바로. 간단하지만 근본적인 질문 하나가 툭 던져졌다.
“이제 어쩔 거여? 그 많은 돈 가지고?”
“음….”
마냥 썩힐 수만은 없는 거액의 돈.
원래대로라면 굴려야 하는 것이 옳다. 내가 능력이 안 된다면, 어디 헤지펀드 같은 곳에 위탁하는 일이 있더라도.
“아닌 말로다가, 어지간한 한국 알짜 기업들은 싹쓸이해도 될 판이고. 미국이나 일본 쪽도 화끈하게 지를 수 있을 거잖어.”
“그야 그렇죠. 하지만.”
나는 입술에 커피잔을 가볍게 가져다 대고는, 잠시 말허리를 끊었다.
고작 한번 입에 대었다고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워진 라떼 아트.
아마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외부의 찬바람이 불어와 휘청거리게 될, 파탄 국가의 미래 모습이.
그렇기에, 단호하게 내릴 수 있었던 결정. 그건 바로.
“아직은 아닙니다. 당분간 묶어두려고요.”
“응? 그게 뭔 소리여? 그 돈을 왜 묶어놔?”
답답한 듯, 고릴라에 빙의해 가슴팍을 주먹으로 두들기는 김원철 아저씨. 곧바로, 내 눈앞에는 묵직한 서류 다발 하나가 쿵 소리를 내며 앞에 놓였다.
“이거 봐보라니까. 내가 딱 우리 회장님 대박 났다는 말 들었을 때, 사흘 밤을 꼴딱 새서 엄선한 기업 인수 리스트여.”
펄럭, 가벼운 마음으로 넘기기 시작한 서류 뭉치.
사실… 제법 놀랐다. 이 아저씨, 안목 하나는 기가 막혔으니까.
미래에 대박이 날 법한 사업 위주로 구성된 포트폴리오는 나도 침을 꿀꺽 삼키게 만들기도 했고.
“방산, IT, 화학, 의료기기까지. 기가 막힌 놈들만 쫙 뽑아 뒀걸랑? 우리 회장님은 고르기만 하면 돼.”
“확실히 탐나긴 하네요. 여기 리스트에 올라간 기업들.”
“그렇지? 역시 우리 회장님 안목은 나하고 일심동체 짝꿍이여….”
하지만.
“그래도 안 됩니다.”
“엉…?”
“일단 탄약그룹 방산 쪽 분야 설비만 좀 확충하고요. 나머지는 계속 은행에서 재워 둘 겁니다.”
“아니, 어째서…!”
뭉크의 <절규> 그림처럼, 양쪽 볼에 손을 올려 절규하는 김원철 아저씨.
어쩌면, 아니, 확실히 지금 내 모습은 그저 말도 안 되는 고집을 부리는 것처럼 비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단 한 가지의 가능성. 혹여나 있을 그 가능성을 직감적으로 느낀 나는 이번 한 번은 몽니를 부려보기로 마음먹었다.
“어쩌면 말이죠. 어쩌면… 이 큰돈을 단 한 순간에 왕창 써야 할 순간이 생길지도 몰라서 말이죠.”
“150조가 넘는 돈을, 한순간에 태운다고?”
“일단, 이동하시죠. 중국 갔다 온 이야기도 못 나눴는데, 가면서 이야기합시다.”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코트를 입고 바깥으로 나설 채비를 하는 나.
김정은이야 김정은이고, 어쨌거나 회귀 전 굵직한 악연 두 사람을 완전히 처리했으니, 이걸 기념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의 기억을 향해 발걸음을 되돌린 나는,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뒷말을 덧붙였다.
“추억이 서려 있는 교도소로.”
* * * *
“아, 좀 말해줘어. 말 좀 해달라니까.”
혼잣말처럼 작게 중얼거렸다고 생각했건만, 이 귀 밝은 아저씨는 다 들었던 모양이다.
“여주 교도소에 무슨 추억이 서려 있는 건데, 진짜로.”
자꾸 옆자리에서 물음표를 난사하는 김원철 아저씨.
“드라이브 같은 겁니다. 거기까지 풍경이 좋아서요.”
“핑계 같은디.”
“됐고요. 중국 이야기나 마저 좀 하지요. 왜 장 대인을 따로 뒤로 빼돌렸는지부터.”
그날, 비트코인 폭락의 날에 장 대인을 싱가포르로 몸을 피하게 만든 나.
당연히 핑 주석은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쳐다보았었고, 예정된 보상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을 내게 가져다주었다.
“아! 나 그것도 궁금하긴 했어. 도대체 왜 그런 겨? 보나 마나 핑 주석이 가자미눈을 뜨고 째려봤을 게 뻔한디.”
물론, 장 대인이 이뻐서 그런 것은 결코 아니다.
김정은, 핑 주석. 그리고 나.
세 사람이 들어간 큰 그림을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았을 때… 분명 장 대인 카드는 가지고 있는 것이 유리했으니까.
“혹시 모를… 역사적 전환점이 있을까 봐 그랬다면 믿을 겁니까?”
“그게 무슨 소리여.”
“제가 말입니다. 일단은 과거에 있었던 악연은 다 털어냈거든요.”
끼익, 여주 교도소 정문 앞에 멈춘 차량.
과거, 내가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갇혀 있었던 곳.
이곳에서 쌓인 업, 숙부와 제임스 왕 이사는 이제 깔끔하게 털어내고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데, 현재 마주한 악연은… 어떤 결론이 날지 차마 예측이 잘 안되어서요. 그게 개인 단위라면 또 감당이 될 텐데.”
이전 삶과 별개로, 새롭게 생긴 악연.
내 목숨을 노리는 그 빌어먹을 빈대 같은 악연은, 어쩌면 박멸하기 위해서라면 초가삼간을 태워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
“혹시나, 국가 단위, 전 세계 단위로 불씨가 옮겨붙으면, 그 대비도 좀 해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무슨 꼭 전쟁이라도 목전에 둔 사람처럼 말하네?”
“세상일은 모르니까요. 나라 하나를 살 수 있는 돈을 갖게 될 줄도 몰랐고.”
그렇기에, 지금 가진 160조 원, 170조 원에 육박하는 이 자금은 허투루 쓰여서는 안 된다.
다가올 미래는, 어쩌면 핵몽둥이가 날아다니는 전쟁터일 수도 있으니까.
“다시 움직입시다. 이번엔 추억팔이용 장소가 아닌, 좀 진지한 논의를 해야 할 것 같네요.”
부릉, 멈춰 있던 차량에 다시 걸리는 시동 소리.
가만히 북쪽을 바라보며, 나는 천천히 목적지를 입밖으로 내뱉었다.
“전(前) 대통령인 성북동 상왕. 그 너구리 같은 양반과 함께.”
* * * *
지금은 성북동 상왕이라는 호칭으로 유명한 전(前) 대통령의 자택.
늘 외부 손님들로 북적이던 그의 집은, 오늘따라 유독 조용했다.
권세가 떨어져서가 아니었다. 일부러 오늘 하루는 손님을 딱 두 명만 받기로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북에서 또 암살조를 보냈었다고?”
첫 번째 손님, 국정원장에게 물음을 던지는 성북동 상왕.
“숙련도가 부족한 것으로 보아, 김정은의 역정을 이기지 못한 아랫사람이 임시방편으로 땜질을 한 모양입니다.”
“그래, 그래. 분명 그럴 테지.”
바람에 맞아 움직이는 풍경 소리를 귀에 담으며, 녹차를 한 모금 입에 댄 성북동 상왕.
금세 생각을 마친 그는 헛웃음을 내지르며 의미심장한 말 한마디를 던졌다.
“허허… 이거 우리 한 회장 자꾸 마음 졸이고 살게 생겼구먼.”
“쉽게 포기할 자는 아니니까요. 이래저래 골치입니다.”
“경호에 신경 좀 더 써 주게. 물론 국정원 힘든 것이야 내 잘 알고 있지만.”
“예, 어르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는 허리를 굽혀 작별 인사를 고하는 국정원장.
두 번째 손님이 오기까지 남은 시간은 10여 분. 곧 방문할 그 빈객을 기다리며 성북동 상왕은 머릿속에 대국 하나를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보자… 김정은이가 단단히 뿔이 났으니, 이거 여러 사람 고생 좀 하겠구먼.”
무언가, 일반적이지는 않은 수까지 가정해 가며.
“아예 그 꼬마 돼지가 죽어버린다면 또 모를까. 허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