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8화 정은쿤(4)
북한, 신의주 세관.
야심한 시각. 압록강을 가로지르는 철교를 건너, 중국에서 북한으로 들어온 화물열차 한 대.
평소였다면 벌써 산적 떼라도 된 것처럼, 열차에 들이닥쳤을 북한 세관원들이었으나, 오늘은 유달리 새색시처럼 얌전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뒤집은 비트코인 사건. 그에 따른 대북 제재와 의 무역 독점은, 북한 세관원들의 주머니를 채우는 데에는 영 도움이 되지 못했으니까.
“끄응, 이거 영 마음에 안 드는구먼. 안 그렇습네까, 지도원 동지?”
수입 서류를 확인한 후, 화물 내역을 원칙대로 점검하는 세관원. 그는 상위 직급의 지도원에게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로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무역 일꾼 하나하고만 거래하라니. 그것도 떼놈 직속 비스무리한 거이라 뇌물이라곤 한 푼도 고이질 못합네다.”
“내래 뭐 달리 방법이 있간?”
수량이 맞는지를 확인하는 지도원. 그 역시 답답하기는 매한가지였던 모양이었다.
“고저, 엔젤 마스큰지 아새끼 인두껍인지. 그 떼놈 회사 하나 때문에 세관 전체가 쫄쫄 굶게 생깄다.”
애당초 월급 자체가 없는 세관원이기에, 밀수와 관련한 뇌물이 없다면 손가락을 빨아야 하는 상황.
검사를 마친 지도원은, 물자 위의 치장막을 다시 내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식량이나 공산품이나 들여오면, 몰래 농간이라도 치는데. 죄 통치 물자만 들여오고….”
“크흠, 거, 들여오긴 하지 않습네까? 식량이랑 공산품.”
“뭐이…?”
까악, 까악. 고요한 야밤에 오로지 까마귀 우는 소리만이 침묵을 깨트린 그때.
두리번두리번 주위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세관원이 조심스레 귓속말을 하기 시작했다.
“공산품이야 죄 핵무력 건설에 쓰이는 거이니, 내 알 바 아이고. 이건 괜찮지 않갔습네까?”
묘한 미소를 입가에 띄운 세관원.
손은 눈보다 빠르다고 했던가. 이미 그의 양손에는 각각 치즈 덩어리 하나와, 포도주 한 병이 들려 있었다.
물론, 화들짝 놀란 지도원의 다그침이 곧바로 이어졌지만.
“야, 이 간나 새끼야, 너이 그거 함부로 건들다간 진짜 삼대가 멸족당한다는 것 모르니!”
“아, 한 병 정도는 괜찮다 아이요. 거기에 요거, 요거.”
왼손에 든 치즈를 주물럭거리는 세관원. 스위스에서 온 고급 치즈에서는 특유의 훈연 향이 침샘을 고이게 하고 있었다.
“소젖 굳힌 요 누런 덩어리를 안주 삼아 마시는 거이, 평양 높으신 나으리들이 하는 유희 아이요?”
꿀꺽, 너 나 할 것 없이 목구멍 너머로 흘러가는 침방울.
배고픔은 곧 충동을 부르고, 충동은 겁을 없애는 법이었다.
“슬슬 교대 시간인데… 요래 파손 처리하고 요 근처 숲에서 마시는 것 어떻습네까?”
“…하나만 건들라, 하나만.”
치익, 석탄 태운 증기를 내뿜으며 느릿느릿 신의주역을 떠나는 열차. 동시에 교대 시간이 되자, 곧바로 근처 숲으로 달려가는 두 세관원.
“크흐, 오늘은 내래 백두혈통 혓바닥 체험을 다 하는 깁네다.”
“말주접 좀 떨지 말라! 쥐가 듣고 새가 듣는다! 그나저나.”
녹림이 우거진 숲속.
아직 채 동도 트지 않은 어스름한 새벽, 치즈와 포도주를 걸신들린 듯 먹어 치우는 지도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거이… 술이 좀 희한한데?”
“독해서 그런 거 아입네까?”
“포도주가 독하긴 무신, 그리고.”
분명 취한 것은 아니건만, 살짝 풀려버린 두 눈. 입가에 고인 침을 연신 삼켜가며, 지도원이 손에 든 치즈를 보며 입을 열었다.
“요 소젖 굳힌 덩어리도 좀… 묘한 거이, 꼭 뭐랄까.”
지금 자신이 먹고 마시는 이 치즈와 포도주가, 누구의 뱃속으로 들어가게 될지는 생각지도 않은 채로.
“소싯적에 아편 달인 물 마셨을 때 느낌허구 비슷한 것 같다 해야 하나?”
* * * *
북한의 남파 공작원 투입은 당분간 멈춘 모양이었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옮겨야만 했던 거처.
어차피 돈도 거하게 벌었겠다, 나는 북한산 자락과 맞닿은 평창동 저택 네 채를 통으로 사들였다.
거의 요새에 가까운, 집이라고 하기에는 외형이 꼭 벙커처럼 보이는 건물을 짓기 위해서.
그리고, 이제 막 완공이 된 벙커. 그곳에 온 집들이 손님은 다름 아닌 성원식 탄약 인프라 전(前) 사장이었다.
“그럼, 당분간 고생 좀 해 주시죠.”
왜 현직이 아니냐면, 이 양반은 오늘부로 새로운 곳에 발령이 났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상당히 그 직책을 낮추어 가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행여나 오해가 있으실까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이번 인사 조치는 유배나 좌천이 아니라는 점, 꼭 좀 기억해 주시길.”
“아, 아닙니다, 회장님. 전혀 그런 생각일랑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성원식 전(前) 사장.
그는 형체도 없는 새로운 회사, 의 고문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사실 보안 때문에 직책만 고문이지, 실제로는 사장 이상의 권한과 책무를 모두 가지게 되었지만.
“흐흐흐, 사실상 부회장 가시기 전에 징검다리 찍고 간다고 보면 되는 거유.”
“부회장…!”
그리고, 내 옆에서 특유의 너털웃음을 지으며, 성원식 고문과 화담을 나누는 김원철 아저씨.
뭔가 서로 나이대도 비슷하고 하니, 은근히 죽이 잘 맞는 모양이다. 이렇게 서로 진심 어린 말을 건넬 정도로.
“괜찮으시겠습니까? 차기 부회장 자리에 제가 간다면, 김 비서실장님께서는…?”
“에이, 그 자리 줘도 안 간다니까. 그냥 우리 회장님 옆에 껌딱지처럼 딱 붙어 있는 게 낫지.”
인사 문제도 적당히 논의되었으니, 이제 본론을 꺼낼 타이밍이다.
의자 팔걸이에 팔을 괴고 앉은 나는, 엄지손가락 위로 만년필을 빙글빙글 돌려대며 입을 열었다.
“자, 그럼. 마지막으로 점검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지익, 흰 종이 위에 그어지는 만년필 펜촉. 나는 숫자 1 옆에 곧바로 ‘Food’라는 단어를 적어 넣었다.
“일단, 식품 및 사치품 분야. 사치품이야 그냥 적당히 넘기시면 되고요. 식품이 중요합니다.”
입맛 하나는 고급인 김정은.
식재료 하나만큼은 재벌 회장인 나보다 훨씬 까다롭게도 먹는 모양이었다.
특히, 치즈와 와인의 경우는 더더욱.
“김정은의 사용인들이 포장을 먼저 뜯으면 안 되는, 고급 식재료들에 미량의 마약을 티 나지 않게 넣는 겁니다.”
그리고, 그 까다로운 식성은 곧 독이 되어 그를 갉아먹을 것이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단번에 걸리지 않게, 서서히 사람을 아래쪽부터 갉아먹게끔.”
“알겠습니다. 재포장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이겠습니다.”
칸을 한 줄 띄워, 그 아래에 숫자 2를 적어넣은 나.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그리고, 공산품 부분.”
내가 최측근이라고 생각하는 성원식 고문을 총책임자로 보낼 만큼, 민감하고 또 세심한 일 처리가 필요한 것이니까.
“탄약 인프라 쪽 직원들이 파견을 갈 겁니다. 특히, 원자력 분야 담당자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성원식 고문.
이번 사안에 대해 아직 명확하게 알지 못하는 그는, 그저 머릿속으로 막연한 추측을 하는 모양이었다.
“원자력 말입니까? 도대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시기에…?”
그리고, 그 추측은.
“간단한 것 아니겠습니까.”
생각보다 제법 정확하게 맞아떨어졌고.
“튼튼하다 여겨왔던 생명줄이 실은 낡은 노끈에 불과해지는 순간, 미친개에게 남은 것은 솥에 들어갈 일뿐일 테니까요.”
* * * *
조금 시곗바늘을 앞으로 돌려, 성북동 상왕의 자택을 방문했던 그날.
나는 이 나라의 실권을 쥔 그를 바라보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자금 문제는 간단히 해결할 수 있습니다.’
아주 명료하고 확실한 근거가 내 통장 잔고 안에 숫자로 찍혀 있었으니까.
‘제 전 재산을 북한 지역에 쏟아부을 테니까요.’
‘…간단하기는 하구먼. 무식하지만 확실한 방법이니.’
‘비트코인으로 벌어들인 자금. 비록 안전자산에 넣어 두었지만, 수익률이 제법 되긴 합니다. 아마도 김정은을 다 처리하고 나면.’
입을 벌린 채, 이어질 내 말을 기다리던 성북동 상왕. 나는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이며 웃음 지었다.
‘원화로 200조 원. 그 언저리쯤으로 불어나 있지 않겠습니까?’
‘하! 200조 원이라. 다시 들어도 기가 막히는 금액이로군.’
이 정도라면, 유사시 어지간한 급한 불은 끌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감당이 안 되는 외국 자본에 목숨줄을 내놓을 상황까지는 가지 않을 터.
‘물론, 북한 지역 기간 산업에 대한 권리는 챙겨갈 겁니다. 200조 원짜리 자선사업은 사양이니까요.’
물론, 챙길 수 있는 것은 전부 챙길 것이다. 각종 사업권부터 대규모 토지와 공기업 불하까지.
200조 원을 그대로 태울 생각은 없으니까.
‘뭐, 그야 차차 논의해 보도록 함세. 자네가 돈값을 못 한다 생각지는 않게 할 터이니. 그런데.’
말허리를 중간에 자르고는, 나를 지그시 바라보는 성북동 상왕. 그는 곧바로 남은 한 가지 문제를 말하기 시작했다.
‘아직 하나가 덜 나왔군.’
‘제일 중요한 것 말이죠. 피.’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이는 성북동 상왕.
‘그것도 재래식 무기가 아닌 핵무기가 앞에 나선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피가 흐를지 상상조차 안 되는군.’
대규모 인명 피해를, 아니, 소규모일지언정 되도록 인명 피해 자체가 없어야 하는 상황.
물론, 일반적인 전략, 전술의 경우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그래서 제가 개구멍 관리자 역할을 맡은 것 아니겠습니까.’
이미 나는 그에 대한 대비도 끝내 놓은 상황. 이 북한이라는 파탄 국가를 들락거릴 개구멍, 그 관리자 역할을 괜히 얻은 것은 아니니까.
‘두 가지 안전장치를 걸어둘 겁니다. 첫 번째는 핵탄두의 기폭장치.’
핵무기는 정밀한 기폭장치가 있어야 작동이 된다. 약간의 오차라도 있다면, 제대로 터지지 않는 까다로운 무기가 핵무기니까.
‘기폭장치에 들어갈 반도체. 저희 탄약 반도체로 바꿀 겁니다. 제멋대로 원격 조종이 가능한.’
만약 이 기폭장치를 조종할 수 있다면?
비싼 돈 들여 만든 핵무기를 예쁜 쓰레기로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흐음.’
내 계획에 제법 흥미가 동한 것인지, 성북동 상왕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나를 보챘다.
‘그리고, 두 번째는…?’
‘그야 투발 수단인 미사일이 아니겠습니까. 미사일에 들어갈 고체 연료에 티 나지 않는 불순물을 섞어야지요.’
기술력이 달려서, 미사일 발사에 필요한 연료마저 중국에서 수입하는 북한.
이들은 알지 못할 것이다. 탄약그룹 화학 부문의 기술력이 그들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를.
‘제대로 뜨지도 못하게, 하늘 위로 날아가려는 그 순간.’
국가의 모든 역량을 투자했던 핵과 미사일.
‘굉음 소리와 함께, 북한 스스로 자멸의 길을 걷게끔 말입니다.’
그 모든 것이 신기루처럼 사라지게 될 운명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