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화 모두에게 이익인(1)
미국의 워싱턴 D.C 인근의 한 대형 교회.
뎅그렁, 구리로 만들어진 종이 묵직하게 울리자, 곧바로 시작되는 웅장한 장례식.
백색의 국화로 장식된 관 위에 성수(成水)를 흩뿌린 목사. 그는 성경책을 펼침과 함께 추도를 시작했다.
“고인은 여든아홉의 생을 사는 동안, 늘 하나님의 뜻을 따라왔으며, 미합중국의 영광을 떨치는 데에 온 힘을 다했습니다.”
향년 89세의 일기로 사망한, 미합중국의 전 부통령.
이제는 그저 이름 없는 망자가 된 그의 급작스러운 죽음은, 미국 정계에 잔잔하지만 확실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차기 부통령.
그 명예로운 자리를 누가 차지하게 될지에 관한 바람을.
“부디 그 고결한 영혼이 주의 곁에서 영면하기를! 모두 다 같이 손잡고 기도합시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복음과 함께 마무리된 장례식.
때마침 추적추적 내리는 빗방울에 숲의 풀 내음이 진하게 나는 지금. 장례식에 참여했던 백악관 행정관 두 사람은, 처마 밑에서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았다.
“사실 가실 때가 되기야 했지. 거의 아흔 가까이 정정하시지 않으셨냐 이 말이야.”
“그 연세에도 현직에 계셨을 만큼 힘이 넘쳐흐르셨으니까. 물론… 이렇게 하루아침에 가시게 될 줄은 몰랐지만.”
칙, 칙. 습기 때문인지 잘 붙지 않는 불꽃.
의자에 걸터앉은 두 행정관은 멍하니 검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다가올 미래를 논하기 시작했다.
“해서, 차기 부통령 말이야. 어떻게 한다지? 예전에도 이런 전례가 있었던가?”
“없지는 않았다네. 이런 경우에는 대통령이 후임 부통령을 지명하고 의회가 추인한다 하더군.”
결정권은 대통령에게.
그러나, 발목을 잡을 것인지 여부는 의회에게.
사실 여당이 의회 다수 석을 점하고 있다면, 전혀 문제가 될 일은 아니었다. 그저 내부 계파만 신경을 좀 쓰다가, 대통령이 원하는 사람을 꽂아 넣어도 되는 일이니까.
하지만.
“의회 추인까지 받아야 한다고?”
야당이 다수당인 현 상황.
결국, 간단한 사칙연산으로 풀릴 것 같았던 식은, 복잡한 고차방정식이 되어버렸다.
“이거 곤란하게 되었는걸. 저쪽 야당 인간들이 어디 쉽게 넘어갈 작자들이냐 이 말이야.”
“거물급들이 올라오는 건 싹 배제하려 들겠지. 그래서 생각보다 쉽게 결정이 날 것 같으이.”
“쉽게 결정이 난다고? 오히려?”
좀처럼 불이 오르지 않는 라이터를 쓰레기통에 버려두고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백악관 행정관.
생각했던 것보다 손쉽게, 군더더기 없이 해(解)가 나와버린다는 그 말에, 동료 행정관이 조심스레 말꼬리를 흐리며 물음을 던졌다.
“그럼, 누가…?”
“뭐, 대충 견적이 나오지 않겠나. 우리 당에서 겉도는 사람이면서, 저쪽 당이 좋아하는 소수 인종인 사람.”
순식간에 머릿속에서 추려지는 후보들.
당내에서 얼마 없는 겉도는 인물에, 백인이 아닌 다른 소수 인종.
거기에, 현직 의원이나 장관이 아닌 인물은 바로.
“그것도 저번 주지사 선거에서 떨어진 후, 힘도 쭉 빠진 그 인간 말이야.”
“아아! 그 시뻘건 스테이크!”
양 웬리 전(前) 국무장관이었다.
“그 미친 인간은 운도 좋아. 아마 서준 한 회장 아니었으면 이번 하마평(下馬評)에 오르지도 못했을 테니까.”
* * * *
-짝짝짝짝!
“축하드립니다, 부통령 각하!”
“미합중국의 새로운 부통령, 양 웬리에게 축복을!”
힘찬 박수 소리와 함께 마무리된 부통령 임명식.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미합중국의 대통령은 양 웬리 부통령에게 독대를 청해, 자신의 집무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양 웬리 부통령, 그대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야.”
아까까지의 친근한 미소 따위는 연회장 한쪽에 그대로 두고 온 채로.
“국무장관에서 끝났어야 했던 정치 인생, 이렇게 부활하게 될 줄이야. 이것 좀 보게나.”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데이터의 나열. 미국의 정치 상황을 나타내는 그 데이터 정중앙에는 사진 한 장이 박혀 있었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세 종교의 상징과도 같은 이들이 예루살렘에서 손을 맞잡고 평화의 선언을 하던 모습이 담긴 사진이.
“뭐, 저쪽 당 인간들이 좋게 보더군. 평화, 관용, 미합중국의 숭고한 결단. 뭐 그런 것들에 눈 돌아가는 작자들이니까.”
성가시다는 듯, 그 사진이 들어간 서류를 구겨 쓰레기통으로 직행시키는 미국의 대통령.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양 웬리 부통령의 어깨 위에 그가 손을 올리며 말했다.
“여하간에, 덤을 얻었다 생각하게. 자네가 가져가지 못했을 것을 운 좋게 가져간 이 상황을 말이야.”
딱 여기까지라는, 명백한 선을 그으며.
“어찌 되었든, 이 나라에 자네가 더 오를 자리는 없으니까.”
* * * *
“하! 노친네, 쓸데없는 개소리도 어지간히 심하군.”
끼익,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을 나서자마자 속에 담겨 있던 거친 말을 내뱉는 양 웬리 부통령.
“신도 너무하시지. 전(前) 부통령하고 행사 상품으로 묶어서, 내일쯤 저세상으로 넘겨버리면 얼마나 좋은가 이 말이야!”
대놓고 기어오르지 말라는 대통령의 엄포. 그 불쾌함은 해일처럼 양 웬리 부통령의 머릿속을 파고들어 갔다.
물론, 그렇다 한들.
“좋군. 아주 좋아! 미칠 듯이 좋아!”
그의 욕망이 꺾이는 일은 없었지만 말이다.
부통령 집무실 책상 위, 멋들어지게 장식된 명패를 바라보며 웃음 짓는 양 웬리 부통령.
창문 커튼 사이로 살며시 비치는 백악관 반대편 건물의 모습. 먼발치서 대통령 집무실을 바라보며, 그는 탐욕스러운 입맛을 다셨다.
“저 자리에 올라가게 된다면… 더더욱 좋을 것만 같겠고.”
털썩, 의자에 몸을 깊게 묻고는 자그마한 액자를 들어 올리는 양 웬리 부통령.
참 얄궂은 일이었다. 방금 대통령에게 모욕을 당했을 때 보인 그 사진 속 인물이, 어쩌면 또다시 자신을 높은 곳으로 이끌어줄 것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으니까.
예루살렘 한가운데에서 Y자 포즈로 자신의 손을 마주 잡은 그 모습. 사진 속 인물을 바라보며, 양 웬리 장관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서준 한. My lucky boy… 또 재미있는 장난을 생각 중인 건가 보군.”
북한 측과의 잦은 접선. 무언가 위험한 일에 자꾸 발을 담그는 모습까지.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제까지 그래왔듯이.
그리고, 그때.
“부통령님, 부르셨습니까?”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을 열고 들어온 비서관. 양 웬리 부통령이 무슨 일을 벌이지 않을까 불안한 심정이 얼굴에 그대로 나타난 모습이었다.
물론 양 웬리 부통령은.
“늦어! 이제부터 할 일이 태산인데, 뭐가 이리 굼뜬 건가!”
그딴 사소한 것 따위야 일절 신경조차 쓰지 않았고.
“지금 바로 한국 정부에 연락을 넣도록. 극비리에 회담을 잡자고.”
“회담이라 하시면, 정상회담 말씀이신지…?”
“그딴 얼치기 바지사장 따위는 얼굴조차 마주 볼 가치도 없지. 아닌 말로, 청와대에 내려앉은 꼭두각시 인형 아니던가!”
청와대라는 말을 내뱉고는 갑자기 또 조용해지는 양 웬리 부통령.
한 나라의 권력이 집중되는 최중심지.
“한국 쪽 인선은 대강 알아서 정해서 오라고 하도록. 어차피 모든 중요한 이야기는 전부.”
그 역시 최중심지의 주인이 되고 싶었다. 자신을 이 자리까지 올라오게 해준, 묘하디묘한 매개체를 다시금 통해서.
“서준 한, 그자와 나눠야 할 일이니까.”
* * * *
같은 시각. 평양 의료원.
평양 최대의 의료시설인 이곳은, 오늘따라 외래 환자라고는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아니, 애당초 이곳에 입원 중이던 환자들마저 모조리 다른 곳으로 보내버린 상황.
그 이유는 바로.
“위원장 동지, 위원장 동지?”
“커헉! 뭐, 뭐이야! 지금 무슨 일인 기야?”
김정은.
그의 급작스러운 의식 상실과 그에 따른 입원 때문이었다.
어질어질한 듯, 간신히 몸을 세워 앉은 자세를 취하는 김정은. 그의 앞에는 푸른 눈의 서양인 의사 하나가 알 수 없는 언어로 무어라 소리를 내지르고 있었다.
“tu étais sur le point de mourir!”
“이 코쟁이 놈이 뭐라 하는 기야?”
쭈뼛쭈뼛 눈치를 보는 비서관.
황망하다는 듯한 얼굴로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불란서 의사 양반 말이… 위원장 동지께서 자칫 잘못되었다간 서거하셨을 수도 있다고 합네다.”
“죽을 뻔했다고? 내가? 어째서!”
으쓱, 어깨를 한 번 움직이고는, 침착하게 말을 이어나가는 프랑스인 의사.
“Vous êtes un toxicomane sérieux.”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김정은이 경악하기에 충분한 내용이었다.
“고저, 그것이… 마약 중독이라고 합네다.”
“마약 중독?”
“예, 아마도 추정컨대… 유럽산 치즈와 포도주. 누가 그 안에 장난질을 친 모양입네다.”
매일매일 흡입하다시피 먹고 마시던 치즈와 포도주. 그리고 그 안에 아주 조금씩 섞여 들어간 마약.
그 모든 전말을 전해 들은 김정은은, 코에 낀 산소호흡기를 냅다 빼버리고는 격노에 찬 함성을 내질렀다.
“도대체 어떤 간나 새끼인 기야! 당장 알아오라! 그 사지를 찢어 죽일 개 잡놈을… 쿨럭! 쿨럭!”
“Prenez un repos absolu!”
이미 썩을 대로 썩어 버린 몸뚱이인지라, 예전만큼 목청을 크게 돋우지는 못했지만.
“일단, 불란서 의사는 절대 안정을 취하라 합네다. 위원장 동지, 부디 옥체를 중히 여기시라요.”
“안정은 무신! 이깟 거 필요 없다!”
팔뚝에 간신히 박아 넣은 링거까지 아예 뽑아 던지는 김정은.
마약 중독자 특유의 잔뜩 충혈된 눈을 한 그가 소리쳤다.
“이번 반역질과 관련한 보고 자료부터 올리라! 당장!”
* * * *
“쿨럭! 쿨럭! 해서, 내 몸뚱이에 장난을 친 간나 새끼는, 아마 그 무역 독점권을 가진 회사 관계인이다?”
“일단은 그렇다고 추정됩네다.”
병원 안에서 비서관이 올린 보고를 받는 김정은. 불쾌함이 잔뜩 묻어나는 얼굴로, 그는 상상하기도 싫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핑 주석, 그 인간이 나를 제거하려는 것인가…?”
“아, 그런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네다. 베이징 중앙 정계는 지금 피바람이 부는 중인지라.”
한참 숙청의 칼바람이 부는 베이징. 물론, 당하는 이도 바보가 아닌 만큼, 그 저항은 만만치 않았다.
사실상의 총성 없는 내전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내부 투쟁 때문에 핑 주석이 다른 곳에 신경을 쓸 수 없는 상황입네다. 그쪽은 용의선상에서 지움이 나을 것 같습네다.”
“ 단독 소행이라… 최대한 빠른 시일에 알아보라! 그리고!”
좁혀진 범위.
자신을 지옥문 코앞까지 끌고 간 의문의 세력에 잔뜩 분노한 김정은.
자리를 털고 일어난 그는, 곧바로 밀려 있던 통치 사업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다음 달 내로 핵무력 개발 시설 일정을 잡으라! 밀린 일을 빨리 처리해야갔어!”
이미 열린 지옥문 틈새로 자신을 잡아끌 사신(死神)의 모습이 주위에 어른거린다는 것은 알지도 못한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