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4화 케이크처럼 쉽게(2)
용산 지하 벙커 상황실 대형 스크린으로 바라보는 전면전은, 뭐라고 해야 할까… 그야말로 비현실적이었다.
“북한군 부대 지휘부 중 75%가 투항 결정! 나머지 25%는 현재 고심 중입니다!”
“적 핵탄두 및 미사일의 광범위한 파괴 확인! 지상군 투입 시작합니다!”
왜 반세기쯤 전에 그런 말이 있었지 않았는가. 아침은 개성, 점심은 평양,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는다는 모 장관의 망언.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지금, 어쩌면 그 망언은 명언의 반열에 오를지도 모르겠구나 싶다. 화면 속, 비정상적인 군부대 진격 속도를 보고 있자니 말이지.
“장관님, 저 푸른색 화살표가 한미연합군의 진격 방향인가요?”
“그렇습니다, 한 부의장님. 지금 보시는 대로 별다른 방해 없이 계속 올라가고 있지요. 지금 추세로 보았을 때, 추정컨대.”
실시간으로 변하는 푸른색 화살표를 지휘봉으로 가리키며, 내게 차근차근 설명을 이어나가는 국방부 장관.
분명 전면전이라는 심각한 상황임에도, 그는 유독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냉철한 전략가여서가 아니라, 돌아가는 상황이 너무나도 긍정적이었으니까.
“역사상 최소 피해로 최대 성과를 얻어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게 다 한서준 부의장님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무슨. 고개 들어 주세요. 남부끄럽습니다.”
진짜 성과가 대단하긴 한 모양이었다. 이 자존심 센 양반이 직각으로 내게 허리를 굽혀 고마움을 표할 정도이니.
그리고.
“한 부의장?”
내게 저자세로 허리를 굽힐 사람은 비단 국방부 장관만이 아니었다.
옆에 선 안경잡이 중년 남성과 함께 내게 다가와 말을 거는 성북동 상왕.
“무슨 일입니까?”
“잠깐 따로 좀 보세. 이제 나머지 일들은 군사 전문가들이 알아서 할 일이니까. 그리고.”
그는 옆에 선 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는, 내게 뜻 모를 웃음을 비쳤다.
“여기 금고지기 양반이 자네와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은 모양이더군.”
“처음 뵙겠습니다. 한서준 회장님. 아니, 한서준 부의장님.”
임명된 지 채 며칠도 되지 않은, 신규 기재부 장관.
대한민국의 국부가 보관된 금고 전체를 총괄하는 이 남자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 닫힌 입을 연신 움찔거렸다.
“김 장관은 통일 이후, 주인 없는 북한 땅을 어떻게 개발할지 아주 관심이 많은 모양일세. 특히나.”
내게 가까이 다가가 한쪽 어깨에 손을 올리는 성북동 상왕.
잘 풀려가는 것만 같아 보이던 이번 일. 그 앞에는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장해물이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자네가 쥐고 있는 원화 200조 원이 넘는 금액을 어디에 투입할지에 대해서.”
* * * *
“각론은 전부 김 장관 저 친구에게 맡겨 두었네. 그럼, 이야기 나누어 보게나. 나는 우리 불쌍한 최 대통령에게 가 봐야 하니.”
지하 벙커 최심부. 밀실이나 다름없는 작은 회의실 안.
나를 이곳에 밀어 넣은 성북동 상왕은, 뜻 모를 웃음을 지으며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다.
마치 이번 건에는 엮이고 싶지 않다는 것처럼.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신임 기재부 장관, 김은행입니다.”
“한서준입니다. 반갑습니다.”
이름부터가 김은행인 이 양반은, 커리어 자체도 재정 쪽과 관련이 깊었다.
애초에 신임 기재부 장관으로 발탁된 이유가, 북한 붕괴 후에 있을 모든 돈 문제를 일임하기 위해서였으니까.
콧잔등에 흘러내린 안경을 추켜올리며, 조심스럽게 내게 물음을 던지는 김 장관.
“일단…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거의 승리는 확실하다고 봐도 되지 않겠습니까?”
“뭐, 그런 것 같네요. 과장 좀 보태면, 정말 점심은 평양,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을 판이니.”
“그래서 말입니다만… 좀 도와주시지요, 한 부의장님.”
밑도 끝도 없이, 대뜸 내게 도움을 요청하는 김 장관.
무어라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그는 곧바로 묵직한 서류 하나를 내게 내밀었다.
“이건…?”
“저희 측 추산 자료입니다. 통일 비용으로 당장 올 한 해 필요한 금액이요.”
어른 팔뚝만 한 굵기의 서류를 다 읽을 필요는 없었다.
그저 빠르게 넘겨 보는 것만으로도, 제법 치밀하고 꼼꼼하게 예산을 산정한 티가 났으니까.
물론… 그렇게 세심하게 짠 예산은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내용이었지만.
“300조 원? 아니, 무슨 예상 금액이… 이거 대한민국 1년 치 예산 수준 아닙니까?”
“기존 정부 예산은 따로 두고, 추가로 필요한 금액입니다. 그것도 올해 한정으로.”
통일 비용 전체를 말하는 줄 알았건만, 그나마도 1년 치에 해당하는 추가 예산이 300조 원이라니.
그 막대한 금액에 어처구니가 없어 작게 실소를 토해내고 있는 내게, 김은행 장관이 진지한 얼굴로 서류 하나를 더 내밀었다.
“앞으로 필요한 최소 예산입니다. 매년 100조 원씩, 7년간 돈을 쏟아부어야 합니다. 아까 말씀드린 300조 원에 합쳐서.”
진짜는 그다음에 있다는 듯한 목소리로.
“도합 1,000조 원. 대한민국 정부가 추산한 최소한의 통일 비용입니다.”
“…….”
원화 1,000조 원.
내가 가진 200조 원의 딱 5배에 해당하는 막대한 금액.
하기야… 국가 두 개가 한 번에 합쳐지고 후폭풍을 감내하는 것이다. 이 정도 금액이 마냥 비현실적이지만은 않겠지.
원형 탁자 가장자리에 몸을 기댄 나는, 관자놀이를 매만지며 입을 열었다.
“딱 급한 불만 끌 수 있는 것이었네요. 제가 가진 200조 원은.”
“이런 말씀을 드리기는 민망합니다만… 현실이 그렇습니다. 참으로 송구합니다.”
김은행 장관은 내게 작금의 현실에 대해 구구절절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국채를 추가로 발행한다거나, 국유재산을 매각한다거나 하는 식의 자본 조달이 왜 어려운지에 대해서.
“세계 경기가 워낙 안 좋은지라… 만에 하나 국채가 전부 발행이 된들, 후세의 빚으로 남게 됩니다. 아주 비싼 이자를 물어야 할.”
“추가로 800조 원이 더 필요하다라.”
들을수록 한숨이 푹푹 나오는 상황.
새까맣게 타버린 프라이팬처럼 검게 변한 내 마음이야 알 수 없겠다는 듯, 김은행 장관은 내게 고개를 숙이며 읍소를 시작했다.
“만약 한 부의장님께서 부족한 통일 비용만 조달해 주신다면, 저희 정부 측에서는 상당한 대우를 해 드릴 예정입니다.”
“아, 왜 이러십니까. 고개 좀 드세요.”
물론, 이 아저씨… 내가 말리는 말 따위 귓등으로 흘려 넘기고는, 제 할 말만 계속하고 있었지만.
“북한 지역 내의 모든 공항, 항만, 철도, 터미널 독점 운영권. 지하 광물 개발권에 주요 도시 외곽의 수백만 평 규모의 토지까지!”
그럴듯한 이권을 하나씩 나열하는 김은행 장관.
사실 그가 이렇게 말한 것들만 따지고 보았을 때, 분명 투자 가치는 충분했다. 돈이 모자라서 그렇지.
“모든 외국인 투자와 기간 산업 건설은 전부 탄약그룹을 거치도록 하겠습니다! 1,000조 원의 투자가 그 값어치를 다 하도록!”
정말이지, 돈만 만들어 오면 어지간한 것은 다 내줄 기세다.
“면목 없습니다만…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한 부의장님!”
점점 직각을 넘어, 예각 삼각형 모양으로 바닥을 향해 숙이는 김은행 장관의 허리.
이 당황스러운 상황을 어떻게 넘겨야 하나 고민하는 그 순간.
“아이고, 여기 계셨군요. 어디 계신가 했습니다.”
“외교부 장관님? 무슨 일입니까?”
시의적절하게 난감한 순간을 끊어주러 온 외교부 장관.
물론, 이때 나는 알지 못했다.
“핑 주석이 보낸 메시지가 왔습니다. 이거, 아무래도.”
외교부 장관 또한 어지간히 골치 아픈 문제를 가지고 나를 찾아왔다는 사실을.
“이번 전쟁이 순조롭게 마무리된다고 하더라도, 조금… 곤란해질 것 같습니다. 중국 때문에요.”
* * * *
아침 해가 떠오르는 것을 바라보며, 잠자리에서 깨어난 대다수의 중국 수뇌부.
맛있는 아침 식사로 무엇을 먹을지 같은 행복한 고민을 할 여유는, 곧바로 사색이 된 채 달려온 비서관의 보고에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아침밥이고 나발이고, 일단은 최대한 빨리 베이징 외곽의 지하 벙커로 달려가야 했으니까.
“기가 막히는군!”
중국 수뇌부가 모인 지하 벙커 안.
가로·세로 각각 10m 규모의 한쪽 벽을 가득 메운 거대한 화면 속. 한반도 지도에는 수십, 수백여 개의 화살표가 북쪽을 향해 진군하는 모습이 보였다.
벌써 시간은 오전 10시 30분. 매섭게 나아가는 화살표는 개성을 지나, 벌써 평양 아래쪽을 창끝처럼 들쑤시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압록강까지 쭉 밀고 올라갈 것처럼.
“이 무슨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일이란 말인가! 기습이라니! 북한의 붕괴라니!”
이미 돼지 바비큐가 된 김정은.
하루아침에 방사능 고철 덩어리로 변한 북한의 핵무기. 불을 댕기면 그 자리에서 폭발하는 미사일 연료까지.
모든 상황을 보고받은 핑 주석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썩어 문드러지기 시작했다.
특히, 자신이 대북 무역 독점권을 준 가 이번 일에 얼마나 깊숙이 관여되어 있는지를 듣고 난 후로부터는 더더욱.
“그렇다면, 모든 것이 다 이를 위함이었단 것인가? 그때 그 가상화폐 놀음도, 장 대인 그 늙은 구렁이를 빼돌린 것도. 그리고.”
탁자 위에서 부들거리며 파르르 떨고 있는 핑 주석의 두 주먹.
“감히 대국의 내부 숙청 과정에 손을 뻗은 것도!”
쾅! 분을 이기지 못한 나머지, 연신 탁자를 부술 듯 위아래로 내리치는 주먹.
붉으락푸르락 홍당무처럼 시뻘겋게 변한 얼굴을 한 핑 주석이 중국 정부의 수뇌부를 향해 소리쳤다.
“입이 있으면 말을 해 보라! 어째서 중화 대륙의 통치자가 한낱 조선 장사치에게 놀아나야만 했던 것인지를!”
“…송구합니다, 주석 각하. 저희들이 불민한 탓입니다.”
그저 고개를 푹 수그린 채, 아무런 변명조차 내뱉지 못하는 고위 관료들.
그 답답한 모습에 핑 주석이 한 번 더 눈이 뒤집히려는 찰나.
“하지만, 이미 컵이 깨져 엎지른 물을 다시 담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
조금 늦게 지하 벙커에 도착한, 왕룽 외교부장이 가쁜 숨을 내쉬며 의견을 개진했다.
“모쪼록 최대한 빨리 새 컵을 준비하심이 옳지 않으신지요?”
그리고.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겠다는 듯, 한쪽 눈썹을 움찔거리는 핑 주석.
“새 컵이라니. 그게 무슨 허튼소리인가! 이미 무능한 북조선 놈들은 청천강까지 밀린 판국이거늘!”
“이번 난에서 살아남은 백두혈통이 있습니다. 저희 외교부가 극비리에 보호 중인.”
“뭐라…?”
중국 외교부의 수장이 이 중차대한 자리에 늦은 이유.
찬찬히 숨을 고른 왕룽 외교부장. 그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입가에 걸고는, 핑 주석에게 다짐하듯 하던 말을 이어나갔다.
“결코, 이대로 가만히 한미연합군이 베이징 지척에 자리를 깔게 둘 생각은 없습니다. 북조선이라는 최소한의 방파제조차 없이는.”
새롭게 이어질 갈등을 암시하기라도 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