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장님의 핵몽둥이-275화 (239/300)

275화 마지막 넘어야 할 산(1)

자신만만하게 보고를 마치고 베이징 지하 벙커를 빠져나온 왕룽 외교부장.

그러나, 핑 주석을 상대했을 때의 자신만만한 얼굴은 어디로 사라진 건지, 그는 곧바로 어두운 모습으로 부하에게 질문을 던졌다.

“해서, 이번 전쟁통에 몇 명이나 건진 것이지? 그 많던 백두혈통 중에서.”

사실 이번 전쟁에서 죽은 사람은 군인과 민간인 모두 그리 많지 않았다. 대규모 전면전임에도 말이다.

사전에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전부 고철덩이가 된 이유뿐만이 아니었다. 김정은이 폭사한 시점에서 항복 요구를 받은 북한군 사령관들이 자신의 목숨을 너무나도 소중히 여긴 것도 있어서였다.

문제는 백두혈통.

삽시간에 남한군이 진격해 올라오는 그 난리통 속에서, 중국 측이 확보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일단은 셋입니다. 김정은의 친형 하나, 이복동생 하나, 그리고.”

뚜벅, 뚜벅. 외교부 청사로 걸어 들어가는 왕룽 외교부장과 그 부하.

집무실 안, 모니터 위에 띄워진 보고서에는 세 남자의 얼굴이 나타나 있었다.

“김정은의 조카뻘… 이라고 할 수 있는, 김정남의 아들 하나. 이렇게 셋을 확보했습니다.”

“이거야 원, 셋 다 영 마음에 차지는 않는구먼.”

미간을 찌푸리며, 곤란하다는 듯 한숨을 내뱉는 왕룽 외교부장.

인사 카드 하나하나를 세세히 살필 필요조차 없는 모양이었다. 이미 그의 머릿속에는 이 세 사람에 대한 정보가 부정적으로 박혀 있었으니까.

“일단 1번 후보, 김정은의 친형인 김정철. 이자는 반쯤 폐인이나 다름없고.”

딸깍, 마우스 클릭 소리와 함께 커진 1번 후보 김정철의 모습.

약물 부작용으로 호르몬계가 이미 비정상이 된 그는, 이미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다.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젓고는, 곧바로 다음 파일을 여는 왕룽 외교부장.

2번 후보. 김정은의 숨은 이복형제, 김덕수였다.

“이쪽은… 후우, 하여간 김정은이 이놈은 참으로 잔인한 놈이로군. 어떻게 사람을 이 꼴로 만들 생각을 한 것인지.”

1번 후보 김정철의 사진을 보았을 때보다, 한층 더 깊어진 시름을 토해내는 왕룽 외교부장.

아니, 어쩌면 이 시름에는 연민이라는 감정이 추가된 것이리라. 곧바로 재생된 영상에서는 입가에 게거품을 문 김덕수의 고함이 스피커를 찢을 듯 터져 나왔으니까.

-잘못했습네다! 잘못했습네다, 선생님! 내래 다시는 백두혈통이라 말하고 다니지 않갔습네다! 제발 채찍질만은…! 으아아아아!

심각한 정신착란 증세.

아마 북한에서 겪었던, 고문의 후유증이었던 모양이다.

더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 2번 후보 파일을 닫아버린 왕룽 외교부장.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문 그가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마지막 선택지를 꺼내 들었다.

“후우, 그러면 남은 카드는, 3번 후보, 김정은의 조카인 김한소 한 사람인데.”

“유일한 선택지라 보심이 맞으실 겁니다.”

신체에도, 정신에도 아무런 이상이 없는, 그나마 중국 측이 확보한 백두혈통 가운데 가장 멀쩡한 꼭두각시 후보 김한소.

그러나.

-내래 그럴 생각일랑 일절 없습네다! 내가 왜 그 지옥 같은 북조선의 독재자가 되어야 하는 거임네까!

아직 20대 대학생 나이인 그는, 자신의 운명을 곧바로 수용할 준비가 아직 안 되어 있었다.

-내 아바이도 그 잘난 백두혈통 때문에 종국엔 객사하지 않았습네까? 그런데 또 같은 멍에를 나더러 메라니!

갖은 회유와 협박에도 쇠고집을 부리며 버티고 있는 상황.

어느새 꽁초 산이 수북이 쌓인 왕룽 외교부장의 재떨이. 마지막 한 개비의 연초가 모두 타들어 가고 나서야, 그가 탄식 어린 감상을 내뱉었다.

“이래서야 원… 어지간히 골이 아프구먼.”

“그래도, 그나마 내세울 수 있는 인물은 이쪽뿐입니다. 제아무리 얼굴마담 꼭두각시라 한들, 겉보기에 대놓고 병신은 아니어야 하니까요.”

“그렇기야 하지. 일단, 자네가 좀 더 설득해 보도록 하게. 어쨌거나… 주석 각하께서는 확실하게 마음을 먹으신 모양이니 말이지.”

아직도 베이징 지하 벙커 안에서 애꿎은 수뇌부를 닦달하고 있는 핑 주석.

그 곰돌이 푸를 닮은 얼굴을 떠올리며, 왕룽 외교부장이 의미심장한 말 한마디를 내뱉었다.

어쩌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북한의 붕괴가, 단지 레퀴엠의 전주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암시하면서.

“북조선 임시정부라는 겉껍질. 그리고 게릴라 빨치산을 가장한… 중국 특수부대의 한반도 북부 투입을 말이야.”

* * * *

내가 벙커에서 나온 것은, 그날 가 실행된 후, 무려 일주일 만이었다.

간만에 쬐는 따사로운 햇볕.

용산 기지 입구에는 김원철 아저씨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크흐, 아주 속전속결이여. 내가 10년만 젊었어도 바로 백두산 꼭대기에 일 빠따로 깃발 꽂고 있었을 텐데.”

허리춤에 붙인, 진한 파스 냄새를 풍기며.

“허리 디스크 생겨서 이젠 골프 스윙도 못 치게 생긴 분이, 무슨 깃발을 꽂습니까.”

“그게 다 탄약그룹과 우리 회장님을 위해서, 내가 요 전쟁통에 죽살나게 뛰어다녔던 결과여.”

“뭐, 인정합니다. 제가 용산 지하 벙커 들어간 동안, 그룹 실무 일은 전부 진두지휘하셨으니까요.”

빈말이 아니라 정말 고생이 많았던 김원철 아저씨.

어쨌거나 탄약그룹의 본질은 방산기업이다. 이 전대미문의 대규모 전쟁통에 업무가 폭증되지 않을 수가 있나.

눈 밑에 그늘이 진 김원철 아저씨. 차를 타고 양평 낚시터로 이동하는 도중, 내 옆자리에 앉은 아저씨는 조심스레 물음 하나를 던졌다.

“그나저나… 이제 어쩔 겨? 200조 원 가지고는 택도 없다며?”

김은행 기재부 장관과 논했던, 전후 복구 겸 통일 비용.

1,000조 원이라는 말도 안 되는 거액을 조달해야 한다는 말에, 김원철 아저씨는 잠시 정신을 잃었다고 한다.

“택도 없는 건 아니고요. 그 돈으로 한 1년은 버틸 수 있긴 합니다.”

“음… 이게 말이지. 꼭 무리해야 하나 싶걸랑.”

얼룩무늬 전투복 차림의 군인들이 지키는 검문소를 지나, 양평군 일대에 들어선 차량.

김원철 아저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난 사실 모르겄어. 김은행 장관이 말했던 인프라 깔고 그러는 거야, 어차피 대한민국 모든 기업이 일감 하나씩은 맡을 것이고.”

대규모 전후 복구 과정에서 탄약그룹만 일감을 맡을 수는 없다. 공정성 차원을 떠나서 애당초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업무량이고.

“땅을 준다고 하는 것도… 사실 좀 영악하게 굴면, 북한 주민들에게 헐값에 사들이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란 말이지.”

평양, 개성, 신의주 일대의, 부동산 투기거리가 될 만한 알짜배기 땅들.

사실, 이 또한 맞는 말이다. 탄약그룹은 그 정도 매입 여력이 되는 기업이니까.

끼익, 브레이크 소리와 함께 낚시터 입구에 멈춘 차량.

트렁크에서 낚시용품을 꺼내 들며, 김원철 아저씨가 하던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갔다.

“아닌 말로, 200조 원을 가져다 박을 가치는 있다고는 봐. 하지만, 이걸 묻고 800조 원을 추가로 더 태운다? 도합 1,000조 원을?”

으쓱, 어깨를 위아래로 조금씩 움직이며 더 이야기해 보라는 제스쳐를 보이는 나.

이참에 속에 쌓인 말을 다 하고 싶다는 듯, 떡밥 끼운 낚싯바늘을 수면 위에 던지고는, 곧바로 입을 여는 김원철 아저씨.

“이만한 자금. 조달하기도 하늘의 별 따기고, 나중에 회수하기도 하늘의 별 따기 아니겄냐 이거야.”

“뭐, 그렇긴 합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는요.”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일방적으로 손해 보는 장사.

기업가에게 애국심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서는 차치하더라도, 일단은 1,000조 원이라는 규모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상황.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 문서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지요.”

내가 가진 200조 원, 그 다섯 배의 거액을 망설임 없이 베팅할 수 있는 이유.

바로 어제, 용산 지하 벙커에서 내게 전해진 극비 문서 하나.

붉은색 글씨로 <1급 기밀>이라 쓰인 그 문서에는 예상치도 못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흡사 단군 할아버지의 선물이라 해도 좋을 만한.

그리고.

“서한만 석유매장 규모 추정치…? 아니, 잠깐만. 이게 도대체가 뭣이여.”

서한만. 평양 앞바다에 미칠 듯한 규모의 석유가 잠자고 있다는 정보를 보고서, 벌린 입을 좀처럼 다물지 못하는 김원철 아저씨.

“최소 300억에서… 1,500억 배럴? 이거 숫자 오타 난 것 아니지?”

“저도 오타 난 줄 알고 국정원에 두 번이나 물어봤습니다.”

“히야… 이게 진짜라면 말이 안 되는 규모인데. 막말로 1,500억 배럴이면 이란보다 매장량이 더 많단 말이여.”

300억에서 1,500억 배럴이라는 막대한 물량.

한국의 1년 치 석유 사용량이 10억 배럴이 조금 안 되니, 최소 30년에서 최대 150년을 쓰고도 남을 규모라 할 수 있다.

“아마 그 정도까지는 안 될 겁니다. 아마 500억 배럴 언저리겠지요. 하지만.”

물론, 좀 보수적으로 잡자면 한 50년 치 사용량이 있다고 보는 게 맞겠지만.

여하간에, 결론은 하나다.

“값어치는 충분히 하고도 남을 겁니다. 제가 이 서한만 유전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그야 그렇지. 수도꼭지 틀면 검은 황금이 콸콸콸 쏟아진다는 건데.”

서한만 석유 유전.

이것 하나만으로도 1,000조 원을 태울 가치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결론에는 김원철 아저씨 또한 생각을 같이했다.

“이러면 또 계산이 달라지지. 여기에 스끼다시로다가 다른 자원 개발권하고 인프라 공사 수주도 있을 거 아니여.”

“그래서 고민인 겁니다. 1,000조 원. 이 말로만 들어도 숨이 턱턱 막히는 미친 금액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를.”

모르긴 몰라도 최소 열 배 장사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것도 그냥 돈만 가져가는 게 아닌, 글로벌 석유 메이저급의 영향력까지 같이 가져가게 될 터.

“어어… 일단, 머리 좀 식히자고.”

어지간히 마음에 동요가 일었던 건지, 흔들리는 찌에 신경조차 쓰지 못했던 모양이다.

이미 물고기들이 다 떡밥을 먹어버렸는지, 빈 낚싯바늘을 회수해 다시 미끼를 꽂는 김원철 아저씨.

잔잔한 수면 위에 생긴 동그라미 물결이 자취를 감추고 나서야, 이 달아오른 분위기는 조금 진정이 되었다.

“물고기들 기다리는 동안, 우리 회장님 벙커 있었을 때 이야기나 좀 들어야겄네.”

“그래요, 그럽시다.”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바꾼 대화 주제.

그러나, 지금 상황이 상황인 만큼, 바뀐 주제 또한 묵직하기는 매한가지였다.

“해서, 높으신 고관대작분들은 다 뭐라고 하데? 뭐, 중국 건으로 말이 또 나왔다면서?”

“아아, 중국. 그것도 골칫거리죠.”

중국.

북한 붕괴 이후 곧바로 보인, 핑 주석의 행보가… 아무래도 여간 날카로운 것이 아니었으니까.

“산에 사는 멧돼지를 잡느라 곰을 속였는데, 아무래도 그걸 안 곰이 단단히 뿔이 난 모양입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