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6화 마지막 넘어야 할 산(2)
생각보다 북한 지역은 빠르게 안정화되어 가고 있었다.
핵도 없고, 미사일도 없고, 북한군 수뇌부마저 대규모로 투항한 상황에서, 식량만 뿌려대면 현지 주민들의 협조야 손쉽게 얻을 수 있었으니까.
“충! 성!”
그리고, 지금.
중국을 코앞에 둔지라, 아직은 조금 긴장이 감도는, 서한만 일대의 지역에 도착한 나.
국토부 장관과 함께 온 데다가, 아직은 민주평통 부의장이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어서일까?
경계 근무를 서는 군인은 잔뜩 기합이 들어간 채로 내게 경례를 올려붙였다.
“수고들 혀유. 여 애들 고생허는디 휴가라도 한 닷새 보내주고.”
“예, 알겠습니다! 장관님!”
구수한 사투리로 담당 군 간부를 치하하는 국토부 장관.
그는 옆자리에 앉은 내 눈치를 살짝 보고는, 이내 걸쭉한 미소와 함께 나를 추켜올리기 시작했다.
“에이, 나야 뭐 힘이 있는감. 이북 지역에서는 여그 한서준 부의장님이 남바 완이시제.”
이북 지역 넘버 원(No. 1).
조금은 과한 수식어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느 정도 사실이기는 하다.
지금 점령 지역 내에서, 대한민국 최고 규모의 방산업체인 탄약그룹의 영향력은 이루 말할 정도가 아니니까.
기왕 칭찬 내지는 아부를 들었는데도 가만히 있기에는 좀 그렇다. 나는 흰 봉투 하나를 꺼내어, 지갑에 있는 현금 뭉치를 대충 집어넣고는 군 간부에게 건네었다.
“여러모로 고생이 많으십니다. 금일봉이라 하기는 뭐하지만, 적당히 밑에 병사들과 회식이라도 하시지요.”
“감, 감사합니다, 부의장님!”
대충 소속 대대원 전원이 여유롭게 회식하고도 남을 돈을 넣어주자 얼굴에 화색이 도는 군 간부.
역시 현금은 전쟁 중에서도 최고긴 한가 보다. 아까보다 훨씬 더 우렁찬 목소리로, 그리고 제식까지 더해 경례를 붙이는 모습이 뒤이어졌으니까.
“부의장님께 받들어, 총!”
“충! 성!”
덜컹거리는 비포장도로를 지나 마침내 들어선 곳은, 컨테이너로 만든 가건물 여러 개가 놓인 장소였다.
“자, 다 왔구만유. 여기여유. 아주 어마어마한 곳이구먼유.”
서한만을 바로 코앞에 둔 이곳에서는 벌써부터 석유 특유의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앞으로 수백여 년 동안, 부와 번영을 가져다줄, 검은 황금의 냄새가.
“국토부에서 매장량 조사를 다시 하셨다고 들었습니다만?”
“예. 세 번을 더 해 봤는디, 처음허구 똑같혀유. 300억에서 1,500억 배럴.”
연구소 간판이 달린 가건물 안으로 들어서는 국토부 장관.
호들갑스러운 목소리로, 그는 내게 연신 이 유전의 경제성이 얼마나 뛰어난지에 대해 목청을 높였다.
“아마 대충 계산하믄. 500억 배럴은 너끈히 나오지 않겄슈?”
“500억 배럴이라.”
“시추조사 샘플도 좀 보셔야쥬. 하이고, 요거 때깔도 고운 것 보소.”
유리병에 든, 검은색 원유.
“시꺼먼 게 아주 기가 맥히지 않은감유? 품질이 두바이유랑 별 차이도 없어유, 한마디로.”
딱 봐도 좋아 보인다. 매장량뿐 아니라 질도 빼어난 모양이다.
“요거, 요거 서한만 석유 독점권만 가져가시믄 뽕을 뽑고도 한참 남는다, 이 말이여유.”
탐이 나기는 한다.
아마 저 정도면 탄약그룹 정유 설비를 뜯어고칠 필요도 없이, 그냥 원유를 넣고 돌리면 될 터.
너털웃음을 난사하는 국토부 장관을 잠시 떨어트려 놓고는, 나는 따로 뒤따라온 성원식 부회장에게 눈치를 주었다.
“회장님.”
“지금은 부의장입니다.”
“아아… 부의장님. 잠시 이쪽으로.”
얼마 전, 부회장 자리에 올라간 그는, 내 눈썹이 살짝 올라가는 것만으로도 의중을 알아챈 듯, 따로 자리를 마련했다.
그리고, 곧바로 내 귀에 대고 들뜬 목소리로 속삭이는 성원식 부회장.
“확실합니다. 노다지입니다.”
“그 정도입니까?”
“아까 국토부 장관이 말한 부분에서 하나도 틀린 게 없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고개를 좌우로 조심스레 흔들고는, 아무도 듣는 이가 없음을 확인하는 성원식 부회장.
뒤이어, 탄약그룹에서 별도로 조사한 기밀 내용이 보고되었다.
“석유뿐 아니라, 부가적으로 따라오는 천연가스 매장량도 상당합니다.”
“천연가스까지요?”
주섬주섬 내게 건네진, 요약된 보고서.
이건 참… 뭐라고 해야 할까. 로또 1등 복권에 딸려 오는 연금복권 1등 같은 느낌이라 해야 하나?
정말이지, 이건 안 사고는 못 배기는 복권이다.
“가질 수만 있다면, 무조건 당첨되는 복권이기는 한데.”
가격이 조금 비싼 게 문제일 뿐.
“복권 가격이 1,000조 원이라….”
찰랑, 나는 유리병 안에서 고혹적인 자태를 뽐내는 그 검은 황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확실히, 탐이 나지 않으면 거짓말이다. 어지간한 전 세계 메이저급 유전 이상의 매장량에, 이 정도 퀄리티라니.
아무래도 이 복권… 반드시 사야만 할 것 같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말이지.
만족스러운 미소를 입에 건 나는, 성원식 부회장을 바라보며 물음을 던졌다.
“일단 알겠습니다. 다른 특이사항은 없습니까?”
“대규모 국책사업 발주 때문에 그룹 계열사 전체가 호황입니다. 종전만 되면 그때부터 도약의 시간일 테고요. 다만….”
“다만?”
곤란하다는 듯 말꼬리를 흐리는 성원식 부회장.
보안팀을 호출해, 행여나 있을 도청 장치를 다시 한번 확인한 후에야, 그는 낮게 내린 목소리로 하던 말을 이어나갔다.
“중국 쪽이 문제가 있다는 말이 자꾸 들려옵니다. 그룹 내 정보팀뿐 아니라, 외부의 정보 채널에서까지도요.”
중국이라.
요즘 여기저기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자꾸 들어온다.
하기야, 일단 내가 핑 주석을 물 먹인 것도 있고, 한미연합군이 압록강 턱밑까지 올라온 게 불만이기도 하겠지.
거기에 더해… 이 찰랑거리는 검은 황금에 대한 권리까지.
“뭐, 국정원장님을 통해 정보는 이미 접했습니다.”
나는 유리병에 든 석유를 가만히 바라보며 머릿속에 기억을 떠올렸다.
바로 며칠 전, 나를 지하 벙커로 부른 국정원장의 심각한 표정과 뒤이은 대화 내용을.
“베이징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말이죠.”
* * * *
며칠 전, 용산 지하 벙커.
나를 이 어두컴컴한 곳으로 또 부른 국정원장은, 서론이고 뭐고 다 자르고 대뜸 충격적인 이야기부터 내질렀다.
‘중국 측에서 우리 쪽 대사를 추방했습니다. 그 어떤 말미도 주지 않고, 통보하자마자 즉시.’
긴장감을 올리기 시작하는 베이징.
아마 핑 주석이 단단히 뿔이 나긴 한 모양이었다. 나는 노파심에 조심스레 있어서는 안 될 가정 하나를 툭 던졌다.
‘설마 중국 쪽에서 참전하겠다, 뭐 그런 뜻입니까?’
‘아, 그건 아닙니다. 저들도 머리통이 그저 장식품은 아니니까요.’
다행히 핑 주석의 머리통 안에 뇌 대신 마요네즈가 들어있거나 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깍지 낀 손에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자, 곧바로 하던 말을 이어나가는 국정원장.
‘그렇기에, 대사를 추방하는 식으로 항의를 하는 것이지요. 지금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식으로.’
‘하긴, 저쪽에서 당장 어떻게 걸고넘어질 방법은 없으니까요. 내부 사정을 막대기로 쑤셔진 벌통처럼 만들어 놓았으니, 화가 나도 참전할 여력은 안 될 겁니다.’
핑 주석의 태자당 vs 최대 계파 상하이방.
내가 만든, 이 숨 막히는 내부 투쟁은 여전히 지속 중이었다. 물론 그 끝이 머지않았지만.
‘옳으신 말씀입니다. 기존에 한 부의장님께서 짜 놓은 판이 워낙 정교하니까요. 하지만… 저쪽에서 조금 편법을 쓰려는 모양입니다.’
‘편법이요…?’
‘일단, 이것부터 좀 보시죠.’
편법이라는 말에 자동으로 찡그려진 내 미간.
그럼 그렇지. 핑 주석, 그 양반이 가만히 당하고 있을 사람은 아니다.
나는 국정원장이 건넨 자료를 바라보고 짧게 탄식을 내뱉었다.
‘중국이 확보한 백두혈통. 아마 세 사람 중, 여기 김한소라는 친구가 얼굴마담이 될 겁니다.’
‘북한 망명정부 수립 계획이라.’
그 난리통에, 그 짧은 시간 내에, 꼭두각시로 쓸 백두혈통을 셋이나 확보하다니. 제법 골치 아픈 외통수다.
그리고, 그 외통수가 이어진 곳은 비단 안보 문제만이 아니었다. 핑 주석의 정보력은 벌써 이곳 서한만까지 뻗어 있었으니까.
‘아마 저쪽 국방 문제가 가장 큰 이유이겠지만… 핑 주석이 저러는 데에는 석유 문제도 지분이 클 겁니다.’
팔락, 넘어가는 종잇장.
곧바로, 서한만 일대 해안을 측량한 해저 지도가 내 눈에 들어왔다.
‘해저 지형이 참, 예술이네요.’
‘기가 막힌 형국이지요. 딱 청천강 하류에 시추 빨대를 꼽으면, 중국 쪽에서는 닭 쫓던 개 꼴이 될 판이니까요.’
내게 압도적으로 유리하기에… 역으로 반드시 어깃장이 놓일 것이 확실한,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지도가.
* * * *
베이징, 중난하이.
“석유? 조선반도에 말인가?”
“예, 그렇습니다. 그것도 규모가 상당합니다.”
추정 매장량 500억 배럴의 서한만 유전에 대한 정보가 핑 주석의 귀에 들어가는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저희 중화의 핵심 유전인 다칭 유전. 그 열 배에 가까운 규모입니다.”
“하! 조선 놈들 기가 막히는군. 대운을 맞은 남조선 놈들이나, 이걸 가지고 있으면서도 못 캐낸 북조선 놈들이나.”
잔뜩 심술이 난 얼굴로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 핑 주석.
그런데도, 그는 생각만큼 크게 분노를 표출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미 서한만 일대에 석유가 매장되어 있다는 설은, 중국 정보기관 내에서도 암암리에 제기되는 문제였으니까.
하지만.
“뭐, 그래도 잘된 일이다. 요동 반도 쪽에서 시추 지점만 잘 잡는다면, 남조선 놈들에게는 껌값만 던져 주면 그만일 터.”
“저… 그것이 말입니다.”
실제 측량에 들어가자 뒤집혀 버린 계산식.
중국 측에 압도적으로 유리한 것으로 알았던 그 시추 지점. 그러나, 다시 측량된 해저 지형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무리 요동 반도 앞바다에서 빨대를 깊게 꽂아 봐야, 서한만 시추 지점이 모든 자원을 분출해 낼 것이라고.
“해서, 압도적으로 남조선 놈들에게 유리한 판국입니다. 기술적으로도 뒤집기는 불가능합니다.”
“이런… 하필이면, 일이 이렇게 꼬이는군.”
세부 보고를 받고는, 단단히 머리가 아픈 모양이었다.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매만지는 핑 주석.
그리고, 머리가 아플 일은 비단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가만히 두어서는 안 될 성싶습니다. 지금 서한만 석유 건은 특히나.”
이제는 핑 주석의 역린이나 다름없어진, 그 이름이 서한만 유전에 깃발처럼 휘날리고 있었으니까.
“탄약그룹 한서준, 아무래도 그자가 독점권을 가지게 될 것으로 보이니까요.”
“뭐라…! 그 쳐죽일 놈이 말인가!”
이마에 작은 핏줄 하나가 툭 도드라진 핑 주석. 곧바로 회의실을 가득 메우는 사자후가 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가만히 두어서는 안 될 일이다! 절대로!”
베이징 중앙정치판을 마구잡이로 뒤집어 놓은 자.
하루아침에 북한이라는 완충장치를 허물어뜨린 자.
그가 이제는… 역대급 매장량을 가진, 전략자원인 석유를 손에 쥐게 된다니.
핑 주석은 이를 용납할 수 없었다. 용납해서도 안 되었고.
“당장 왕룽 외교부장을 불러오라! 최대한 빨리 북조선 망명정부를 세워, 조선반도 북부에 남조선이 손을 떼게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