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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의 핵몽둥이-277화 (241/300)

277화 마지막 넘어야 할 산(3)

쿵, 쿵, 쿵. 마루를 힘차게 내딛는 내 발걸음 소리.

모름지기 마음을 먹었으면 바로 행동에 옮겨야 하는 법이다. 설령 마음을 먹었던 때와 장소가 영 적절치 못한 곳일지라도.

“결심이 섰습니다. 완전히.”

드르륵, 소리를 내며 열린 미닫이문.

예기치 못한 등장에 깜짝 놀라서였을까? 김원철 아저씨는 생선 살을 바르던 젓가락을 식탁에 떨구고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엉…?”

탄약그룹 본사 근처, 모 한정식집.

별채 안에서 늦은 점심으로 주린 배를 채우는 김원철 아저씨에게 다가간 나는, 다짜고짜 내면의 다짐을 바깥으로 끄집어냈다.

아주 우렁찬 목소리로.

“올해 안으로 1,000조 원을 만들어 서한만 유전을 가져갈 겁니다. 그리고 동시에.”

털썩, 거세게 앞자리 방석에 앉아 컵에 담긴 물을 모조리 비운 나.

폭탄선언은 단지 1절에 그치지 않았다.

그리고.

“자꾸 제 앞길에 어깃장을 놓는 핑 주석을 나락으로 보낼까 합니다.”

2절 가사는 1절보다 센 것이 인지상정이고.

“와우….”

뎅그렁, 젓가락에 이어, 식탁 위로 떨어트린 밥숟가락.

입 안의 음식을 간신히 삼키고, 소화제까지 하나 먹고 난 후에야, 김원철 아저씨는 말을 이을 수 있었다.

“밥 먹는 중에 찾아와서 갑자기 할 말이 있다더니, 무슨 폭풍이 따블로 몰아치게 생겼네.”

“무슨 폭풍씩이나. 이젠 익숙한 거 아닙니까?”

한 알로는 모자랐던 걸까?

또다시 가방 속을 뒤져 두 번째 소화제를 입에 털어 넣는 김원철 아저씨.

“하긴, 그것도 그렇지. 여태까지 한 것들로 봤을 때… 아니, 아니. 그래도 그렇지. 이번엔 좀 사이즈가 다르잖어.”

그룹 내 경영권 분쟁에, 해외 세력 분쟁에, 사이비 종교와 조직폭력배와 이번 북한 붕괴까지.

별의별 사건을 겪어오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사이즈는 점점 커져만 갔다.

“1,000억 원도 아니고, 1,000조 원이라니까? 그리고, 북한 같은 하꼬 거지 국가 왕초 때려잡는 게 아니라, 중국의 따거 형씨를 잡아야 한다는 겨.”

그리고, 지금.

이제껏 경험해본 모든 사건들 가운데 가장 사이즈가 큰 판이 내게 다가오고 있었고.

그 압도적인 규모에 잠시 생각을 정리하다가, 간신히 입술을 떼는 김원철 아저씨.

“아닌 말로, 미국 바로 뒤에서 칙칙폭폭 달려가는 나라가 중국인디, 거기 대빵을 뭘 어떻게 죽이게.”

“누가 죽인답니까? 생명은 소중한 법입니다. 제가 무슨 연쇄 살인범도 아니고요.”

‘김정은이는 돼지 바비큐로 만들어 놓고선….’ 이라는 말이 들려온 것 같지만, 일단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넘기기로 했다.

쪼르륵, 반주로 곁들인 듯한 모주 병을 집어 곧바로 빈 잔을 채운 나.

방금까지 식탁 위 한정식의 일부였던 모주 병은, 곧바로 한쪽 구석으로 치워졌다.

앞으로 핑 주석이 겪을 운명처럼.

“중국 전체를 적으로 돌릴 수는 없습니다. 다만, 핑 주석만 적으로 돌리는 것은 가능하지요.”

“핑 주석만? 뭘 어떻게 하려고…?”

“베이징 중앙정치 내부 사정. 어지간한 계파는 줄줄 꿰고 있는 상황 아닙니까, 제가.”

중국 내의 권력 다툼.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불어온 일련의 폭풍.

반쯤은 내가 불러일으켰던 폭풍이나 다름없기에, 이제까지의 그 궤적은 속속들이 아는 상황이다.

핑 주석의 태자당이든, 그에 반대하는 상하이방이든 간에.

잠시 생각에 잠기고는, 이내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김원철 아저씨.

“그야… 그렇지. 그런데, 적대 계파인 상하이방을 나락 보낸 건 우리 회장님이잖어.”

비트코인으로 재산이 쪽 빨리고, 홍콩에서 반쯤은 망명 생활 중인 상하이방.

자신들을 이 꼴로 만든 내 손을 그들이 과연 잡을 것이냐는 타당한 질문에 내가 대답했다.

“발상의 전환을 해 보십시오. 나락을 보내 놓았으니, 다시 극락으로 올리는 것은 왜 못합니까?”

“엉…?”

“어차피 상하이방과 척진 이유야, 제임스 왕 그 사람 하나 때문이었는데 말이죠. 나머지와 손을 못 잡을 이유는 없습니다.”

“생각해 보니… 그건 또 그렇네.”

내가 나락으로 보냈기에, 오히려 더 손잡기 쉬울 것이다. 비록… 한때 자신들에게 타격을 준 상대라 할지라도, 나 이외에 다른 대안은 없는 상황.

어차피 이대로라면 그들은 목에 걸린 밧줄이 점점 조여지는 것을 느껴가며 죽어갈 운명이다.

원수의 손이라도 잡을 수밖에.

“근데, 중국 대빵은 날려버린다 치고, 1,000조 원은 어떻게 조달하게? 넘어야 할 산이 두 개면 암만 그래도 힘든 법인디.”

내게 당면한 두 가지 숙제.

① 서한만 석유 독점권을 위해 1,000조 원의 통일비용을 조달하는 것.

② 자꾸 북한 망명정부니 하는 것으로 나를 위협하는 핑 주석을 실각시키는 것.

하나하나 나누어 보았을 때,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는 이 두 개의 문제.

분명 어렵다. 큰 산처럼 넘기도, 해결하기도 어려운 일들이다.

하지만.

“왜 두 개입니까. 하나지.”

“무슨 소리여…?”

조금만, 조금만 판을 바라보는 렌즈를 바꾸어 낀다면… 이 거대한 쌍둥이 산 두 개는 그저 요철에 불과할 뿐이다.

그것도 하나로 합쳐 보게 된다면 말이지.

“관점을 좀 달리해서 보면 됩니다. 그러니까, 핑 주석을 나락 보내는 것, 1,000조 원을 만드는 것.”

식탁에 떨어진 젓가락을 집어 각기 따로따로 양손에 쥔 나.

나는 곧바로 이 길쭉한 은제 젓가락 한 벌을 오른손에 쥐고는, 딸깍딸깍 소리를 내며 반찬을 집어 올렸다.

“이 두 개를 따로따로 처리하려니 힘들어 보이는 거죠. 한꺼번에 묶어서 가면 되는 것을. 마침 상황이 좋아요.”

“상황이 좋다니?”

“중국 측에서 백두혈통을 가지고 장난질을 치려 하는 게, 새로 판을 짜기에 딱 좋은 상황이니까요.”

대머리 위에 큼지막한 물음표 하나를 띄워두고는, 선문답에 혼란스러워하는 동자승 모습을 하는 김원철 아저씨.

하기야, 당연히 그렇겠지. 아마 김원철 아저씨뿐 아니라, 그 누구도 상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핑 주석의 꼭두각시로 쓰일 운명인 이 곁가지 백두혈통.

그를 어떻게 구워삶고 내 편으로 만드느냐에 따라… 1,000조 원이라는 자금의 조달도, 핑 주석을 나락으로 보내는 것도, 모두 가능하게 될 테니까.

앞에 놓인 모주를 벌컥벌컥 들이켠 나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김원철 아저씨에게 손을 뻗으며 말했다.

이제부터 시작될, 마지막 무대의 피날레를 화끈하게 장식해 보자고.

“다 드셨으면 슬슬 일어납시다. 일단… 싱가포르에 있는 장 대인에게 소일거리로 뭘 좀 시켜야 하니까요.”

* * * *

김한소. 김정은의 조카.

핑 주석이 확보한, 세 명의 백두혈통 가운데 가장 쓸모가 있는 이자의 가정사는 참 복잡했다.

“후우….”

혈통 하나는 잘 타고났기에, 최고 존엄 자리에 강제로 옹립될 수 있었던, 그의 아버지 김정남.

김정은이 보낸 독침에 제 아버지가 죽는 것을 본 김한소는 생각했다.

절대로, 앞으로는 이 북한이라는 나라와 엮이지 말자고.

아마 해외를 떠돌던 그의 성장 이력 또한 이런 생각을 갖는 데에, 필시 거하게 한몫했으리라.

“…필요 없습네다.”

그렇기에, 지금.

중국에 신변이 확보된 상황에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거부하는 김한소.

벌써 이틀째 모든 식음을 전폐한 그는, 식사를 가지고 온 중국 측 정보요원을 되돌려 보내며 말했다.

“내래 차라리 굶어 죽겄시오. 이만 가 주시라요.”

그러나.

“단식투쟁 같은 방법이야 너무 예스러운 것 아니겠습니까?”

이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중국 측 정보요원.

오히려 그런 모습이 어린애의 투정처럼 보이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피식, 대놓고 실소를 내비칠 정도였으니까.

“이미 김한소 씨, 당신이 대 중화의 품에 안긴 이상, 우리는 당신을 가만히 죽게 놔둘 생각이 없습니다.”

“무슨…?”

“먹지 않아 쓰러지게 되면, 약을 넣을 겁니다. 포도당이든 뭐든 혈관에 쑤셔 넣어 절대 죽지 못하게 할 테니.”

허공 위에서 맞닿은, 두 사람의 노려보는 시선.

중국 측 정보요원은 한숨을 내뱉으며, 김한소의 양어깨를 꽉 쥔 채로 말했다.

더 이상의 칭얼거림을 받아주는 것은 이제 없다는 것을 시사하기라도 하듯이.

“장고 끝에 두는 것은 늘 악수(惡手)뿐입니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속히 받아들이는 편이 나을 것이고요.”

그는 내뱉은 말을 입증할 생각이 확실한 모양이었다.

툭, 탁자 위에 올려놓은 사진 한 장.

베이징 인근 모 군부대를 배경으로 한 그 사진 속에는, 김한소의 여동생이 담겨 있었다.

잔뜩 겁에 질린 모습을 한 채로.

“이런 간나 새끼들이…!”

울분이 터져 내지른 김한소의 주먹. 그러나, 그 힘없는 주먹은 제 주인의 모습처럼 곧바로 허공에서 멈추고야 말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막은 주먹을 되돌리고는, 천천히 입을 여는 중국 측 정보요원.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김한소 씨 당신이나 우리나, 둘 다.”

무심한 말 한마디를 남긴 그는, 일주일의 말미를 주고서는 곧바로 떠나갔다.

혼자만 남겨진 방 안.

이 창살 없는 감옥 안에서, 김한소는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찢어 죽일 새끼들…!”

창문도 없는 밀실이기에, 탈출할 수도 없는 상황.

거울 속, 백두혈통을 증명하는 자신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며, 김한소가 힘 빠진 목소리로 읊조렸다.

“간신히 북조선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건만, 어째서 또다시 이런 개 같은 운명이…!”

떠나간 중국 정보요원이 남긴 것은, 비단 여동생 사진뿐만이 아니었다.

-북한 망명정부 수립 및 무장 투쟁 시나리오.

붉은색 군사 기밀문서 표시가 붙은 보고서. 앞으로 김한소 자신이 맡을 역할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그 보고서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백두혈통 김한소를 차기 후계자로 세워, 청천강-함흥시 선 이북에 한미연합군의 영향력을 제거하는 식의 접근이 필요하다.

-안보적 관점 외에, 서한만 석유라는 전략자산을 결코 남조선 측에 넘겨서는 안 되며….

“제 놈들의 이익 때문에 또 수백만, 수천만 명의 인민들을 지옥도에 빠트려야 하는 긴가!”

물론. 여기에 더해.

-만일, 예정 일자까지 김한소의 협조를 얻지 못할 시, 즉각 본인을 포함한 그 직계를 전부 제거한다. 그리고, 김정철을 옹립하는 Plan B를 가동하여….

최악의 협박까지 곁들이는 것조차 잊지 않았고.

좌절한 듯, 털썩 바닥에 주저앉은 김한소.

“저항할 일말의 힘조차 없다니….”

“스스로 가치가 없다 여기십니까?”

그 순간.

갑자기 문을 열고 다가온, 상하이방 출신의 또 다른 정보요원.

아까 전 자신을 겁박한 태자당 출신의 요원과는 다른 인상의 그는, 부드러운 얼굴로 김한소에게 손을 내밀었다.

“자신의 가치는 직접 만들어나가는 법이지요. 최악의 상황에서라도.”

“…언제 온 겁니까.”

“그런 사소한 것 따위야 중요하지 않지요. 진짜 중요한 것은.”

무언가… 알 수 없는 속내를 조금씩 내비치면서.

“김한소 씨, 당신에게 저항 의지가 남아있느냐, 하는 것이지.”

“무슨…?”

“보는 이가 많으니, 길게 말하지는 못합니다만. 이것 하나만은 확실하다고 말하겠습니다.”

그리고, 조심스레 내민 쪽지 한 장.

종이 맨 아래쪽, 한국의 민주평통 로고가 박힌 그 문서를 본 김한소의 눈이 왕방울만 하게 커졌다.

“김한소 씨, 어쩌면 생각보다 운이 좋은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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