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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의 핵몽둥이-280화 (244/300)

280화 트로이의 목마(1)

베이징, 김한소가 머무는 안전 가옥 안.

“나, 참. 그렇게 안 한다고 뻗대더니만. 결국, 여느 20대 대학생들처럼 놀고 싶어서 징징거리던 거였군.”

핑 주석의 파벌인 태자당 소속 정보 요원.

그간 고집스러운 김한소를 대하던 것이 여간 성가셨던 걸까?

비아냥이 잔뜩 묻은 말투와 함께, 그는 김한소를 바라보며 피식 웃음 지었다.

“하긴, 나 같아도 가슴팍이 답답해질 테지. 당장 후줄근한 인민복 입고, 할아비인 김일성 모습 흉내 낸답시고 살까지 뒤룩뒤룩 찌워야 하니까 말이야.”

별도의 우상화 작업을 위한 외모 및 체형 교정까지 이미 정해진 상황.

태자당 쪽 정보 요원은 앞으로 김한소가 지켜야 할 점을 숱하게 나열하기 시작했다.

“말투, 손동작, 걸음걸이. 전부 고쳐야 하는 것 잊지 말도록. 당신은 이제부터 하나의 개인이 아니라, 망명정부의 상징물이니까.”

그러고는, 툭 소리와 함께 탁자에 내려놓은 신용카드 한 장.

마치 철없는 어린애에게 용돈을 쥐여주는 것처럼, 태자당 쪽 정보 요원은 김한소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겼다.

“그럼. 마지막 휴가, 어디 잘 다녀와 보시지. 유흥 자금이야 넉넉하게 넣어 두었으니, 돈 떨어질 걱정은 말고.”

언뜻 보기에 달가워 보이는 이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는 채로.

“어이, 상하이방 찌꺼기.”

그리고, 기세가 오른 듯, 상하이방 출신의 후배 정보 요원의 팔을 툭툭 건드는 모습.

“출국 전까지 김한소 옆에 딱 붙어서 감시 잘 하라고. 괜히 숙청당한 너희 선배들처럼 경거망동하지 말고.”

끼익, 금속제 경첩이 맞물리는 소리와 문을 열고 나서는 태자당 출신 정보 요원.

“마카오는 내가 동행한다. 그 전까지 김한소 정신 교육 확실히 하도록.”

그는 마지막 말 한마디를 남기고 떠나갔다.

뚜벅뚜벅, 그 발걸음 소리가 멀어져 귀에 들리지 않게 되어서야, 비로소 입을 여는 상하이방 쪽 정보 요원.

“저 얼간이가 하는 말은 신경 쓰지 마십시오.”

“상관없습네다. 어차피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가 주둥아리 나불대는 것에 지나지 않으니.”

김한소와 상하이방 쪽 정보 요원. 두 사람 모두 한참이나 무례함을 겪었으나, 화가 나거나 언짢은 기색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저 차분한 모습으로 앞으로의 일정을 머릿속에서 찬찬히 상기할 뿐.

“마카오… 카지노라 했지비.”

마카오 카지노.

철없는 어린애를 연기하는 김한소가 얼마 남지 않은 며칠의 시간 동안 활동할 장소.

그는 재킷 안주머니에 고이 접어둔 쪽지를 매만지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겉표지에 한국의 민주평통 로고가 박힌 예의 그 쪽지를.

“부담스러우십니까?”

“솔직히 아니라고는 말 못 하갔습네다. 아무래도 거물 아입네까, 그 한서준이라는 자는.”

그리고, 김한소는 곧 만나게 될 것이었다.

그 쪽지에 적힌, 말도 안 되는 계획을 짠, 이제는 거물이 된 남자를.

“북조선도 무너뜨리고, 중국 대륙 정계를 쇠꼬챙이로 죄 헤집어 놓았으니까.”

가짜 신분이 들어간, 겉에 자금성 모양의 금실이 수놓아진 붉은색 여권.

탁자 위에 신용카드와 함께 놓인 그 여권을 챙기며, 김한소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뭐, 그래도 만나야갔지요. 가서 정말 깜이 되는 남자인지 직접 확인해 보갔습네다.”

조금은 설레는, 기대감으로 두근거리는 가슴을 꼭 부여잡고서.

“북조선이라는 이 저주받은 굴레를 끊어내기 위해서라믄 얼마든지 말입네다.”

무언가 잊은 듯 뒤돌아선 김한소.

자그마한 열쇠로 잠긴 서랍장을 열어, 속에서 가면 하나를 꺼낸 그는 손바닥으로 까끌거리는 겉을 매만졌다.

목재로 만들어진, 말 머리 모양의 가면.

마치 트로이의 목마를 연상케 하는 그 가면은, 김한소 본인이 핑 주석을 대하게 될 모습과 꼭 닮아 있었다.

“한번 가 봅시다. 과연 한서준이라는 사내가… 그 굴레를 끊어줄 거물인지 확인해 보러.”

* * * *

마카오 국제공항.

탄약그룹 전용기에서 내리자마자, 곧바로 내 옆에 딱 붙어서 투덜거리기 시작하는, 상하이방의 원로 주 전(前) 총리.

“이거야 원. 어처구니가 없구먼.”

탁, 탁.

앙상한 팔로 지팡이를 짚어가며 발걸음을 옮기는 그는,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연신 나를 쏘아붙이듯 입을 열었다.

“다짜고짜 마카오로 가자니. 대관절 가서 무얼 보여주겠다고, 이 늙은이를 예까지 끌고 온 겐가?”

사실, 주 전(前) 총리, 이 양반이 이러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바로 몇 시간 전, 싱가포르에서 상하이방 일당과 만남을 가지자마자 있었던 일.

‘한서준입니다. 주 전(前) 총리님 되시죠?’

가볍게 내민 악수.

주 전(前) 총리의 고목(古木) 같은 손을 붙잡자마자, 나는 이 노인장에게 다짜고짜 이렇게 말을 건넸다.

‘긴 말씀 드리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와 함께 어디로 좀 가시죠. 보여드릴 게 있습니다.’

‘뭐라…? 이 천둥벌거숭이 같은 자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게야…!’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언성을 높이던 주 전(前) 총리.

그러나.

‘말로는 믿지 않으실 터이니, 눈으로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이번 일, 제가 어떻게 풀어나갈지 직접 보고 판단하심이 어떠신지요.’

‘크흠….’

그렇게, 못 이기겠다는 듯, 반쯤은 끌려오다시피 나와 이곳 마카오까지 동행한 주 전(前) 총리.

“귀가 먹은 게야? 왜 나를 여기 마카오까지 끌고 온 게냐고?”

퉁, 미리 준비해 둔 차량 뒷문이 닫히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그에게 이번 출장의 목적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각진 서류 가방에서 나온, 오래간만에 만져 보는, 가시 면류관이 올려진 천사 가면도 함께 꺼내며.

“주 총리님. 혹시 도박 좋아하십니까?”

“도박? 갑자기 그건 또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제가 말입니다. 주사위 놀이 하나는 카지노 테이블 위에서 기가 막히게 하거든요. 특히나.”

가까이서 보니, 확실히 소름 끼치는 천사 가면. 감긴 눈 아래로 흘러내리는 붉은 눈물 자국이 인상적이다.

피식, 뜻 모를 웃음을 지은 나는 거리낌 없이 가면을 뒤집어쓰고서는, 하던 말을 이어나갔다.

“이 천사 가면을 쓰고서라면 더더욱 그렇고요.”

손과 함께 내민 의 명함 한 장.

복잡한 표정의 주 전(前) 총리가 얼굴을 찡그리고는 나를 흘겨보았다.

“…지금 자네 날 우롱하는 겐가?”

“그럴 리가요. 그저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히 말씀드리려고 하는 겁니다.”

“무슨…?”

“제가 이 천사 가면을 뒤집어쓰고 했던 도박은 이제껏 실패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요.”

끼익, 호텔 앞에서 멈춘 차량.

화려한 고층 빌딩들 사이에서도 존재감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호텔. 호텔의 온몸을 칭칭 두른 그 화려한 존재감은 바로 지하 시설에 있었다.

반짝이는 불빛으로 사람들을 매혹하는 카지노에.

“그리고, 이번 도박 역시 반드시 그러할 것이고요.”

딸그락, 딸그락.

거친 소리를 내며 서로 부딪히는, 빈 컵에 담긴 두 개의 주사위.

작은 손놀림만으로도 위아래로 충분히 흔들린 주사위는, 반대쪽 내 손바닥 안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물론.

“김한소를 확실히 제 편으로 끌어들이는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서.”

주사위 두 개의 합의 값은… 볼 것도 없이 6+6. 12라는 퍼펙트를 나타내고 있었고.

“나락으로 떨어졌던 상하이방의 화려한 부활. 그 역시 확실히 이행되리라는 징표 또한 보시게 될 겁니다. 바로 여기, 마카오 카지노 안에서.”

딸깍, 말을 마침과 동시에 열리는 차량 왼쪽 문.

아. 참 오래간만에 본다. 이 모습.

광저우 카지노에서 나와 함께 합을 맞추던 유세나 보좌관.

그 이후로, 죽어도 하려고 들지 않았던 그 모습은 바로.

“준비되었습니다, 회장님.”

복슬복슬한 하얀 털이 매력인, 토끼 가면을 쓴 유세나 보좌관.

그녀가 건네주는 손을 잡으며, 나는 차에서 일어나 카지노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 나갔다.

마지막 도박.

트로이의 목마 모습을 한, 김한소와의 주사위 놀이를 즐기기 위해서.

“자, 들어갑시다. 트로이의 목마, 아니, 북한 망명정부의 목마가 될 사람과 어서 마주하고 싶네요.”

* * * *

“진짜… 도대체 무슨 생각이신 거냐고. 우리 회장님은.”

또각또각, 대리석 바닥을 울리는 하이힐 소리.

빨간색 드레스 차림의 유세나는 길게 늘어진 금귀걸이를 고쳐 매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갑자기 북한을 붕괴시키질 않나. 서한만 유전을 통째로 먹어 치운다고 하지를 않나. 1,000조 원을 조달해야 한다질 않나.”

요란한 불빛과 기이한 소리를 내며 울리는 슬롯머신 사이를 걸어가며, 중앙 홀에 놓인 테이블을 향해 직진하는 그녀.

처음 오는 카지노도 아니었건만, 유세나는 이 비현실적인 환경이 여전히 익숙하지 않았다.

비단, 슬롯머신에서 나오는 불빛과 소리뿐만이 아닌, 이 순간부터 자신이 해나가야 할 임무까지도.

“거기에 몰락한 백두혈통과 만나는 것까지 해야 한다니….”

입술을 위아래로 붙였다 떼었더니 더욱더 도드라지는 립스틱의 붉은 색감.

콧잔등에 걸쳐진 하얀색 토끼 가면을 살짝 올려 쓰고는, 혼잣말을 내뱉는 그녀.

“하아… 다시는 이 망할 토끼 가면을 쓰는 날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그리고, 마침내 마주한, 중앙 홀 한가운데에서 목마(木馬) 가면을 쓴 남자, 김한소.

“……!”

흠칫, 놀란 눈치의 유세나.

분명, 상하이방 쪽 정보 요원이 동행한다고 했건만, 김한소 옆에 붙은 이는 다름 아닌 핑 주석의 파벌인 태자당 쪽 인물이었다.

‘낭패네… 그래도, 일단 시작한 작전을 그만둘 수는 없어.’

심호흡을 내뱉은 유세나.

김한소에게 가까이 다가간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척 영어로 말을 건네었다.

“Mister, May I interrupt…?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What is this in reference to, Lady? (무슨 일이십니까, 숙녀분?)”

김한소 또한 이 곤란한 상황을 최대한 자연스레 넘기고 싶던 모양이었다.

일부러 가짜 너털웃음을 짓고는 유세나의 손목을 잡고서, 춤을 추듯 끌어들인 김한소.

누가 말릴 새도 없이 가까이 붙은 상황, 유세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바로 귓속말을 시작했다.

“천사 가면께서 오셨습니다.”

“……!”

“VIP 룸에서 상하이방 원로 분과 함께 기다리고 계십니다. 바로 안내해도 되겠습니까?”

끄덕, 고개를 위아래로 저은 김한소.

그는 곧바로 유세나의 팔짱을 끼고는, 술에 취한 망나니를 연기했다.

“이거, 아무래도 여기서 하는 놀음은 잠시 멈춰 두고, 여기 숙녀분과 내실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구먼, 기래!”

“하! 편한 대로 하시지. 망나니 백두혈통.”

“나중에 좋은 시간이 찾아오면, 괜히 방해나 하지 말라. 기런 눈치는 있갔지비?”

나름 그럴듯한 연기였던 걸까?

한심하다는 듯 웃음 짓는 태자당 측 정보 요원.

그는 손을 툴툴 털어내며 떠나가는 김한소를 보냈다.

“되었으니, 계집 앞에서 허세나 실컷 부려 보시게. 암만 미인계에 휘둘려 돈이 빨린들, 중화의 자금력에 생채기 하나 날 리 없으니.”

뜻 모를 표정을 짓고는, 그에게서 멀어지는 김한소.

빨간 드레스를 입은 유세나를 보며 입맛을 다시던, 태자당 쪽 정보 요원은 미처 알지 못했다.

지금, 자신이 무심결에 저지른 방심이… 그토록 자부하던 중화의 자금력에 깊은 자상(刺傷)을 남기게 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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