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2화 트로이의 목마(3)
최근 베이징의 촉각이 곤두선 곳은 동쪽 바다 너머였다.
이제는 붕괴해 버린 지 오래되어, 형해화(形骸化)한 국체만이 남아 있는 북한이라는 정치 집단.
앙상한 시체처럼 메마른 북한이라는 국체에, 중국 공산당 수뇌부는 숨결을 불어 넣고자 애쓰고 있었다.
“해서, 김한소 그 철없는 놈이 마카오에서 얼마를 썼다고?”
바로 지금.
왕룽 외교부장의 정기 보고를 받는 핑 주석처럼.
“미화로 500만 달러 치를 일주일 만에 써재꼈다고 합니다.”
인생의 마지막 휴가를 즐기겠다는 명목으로 마카오로 떠난 김한소.
나름 그럴싸한 그의 연기가 먹혔던 것인지, 아니면 동행한 태자당 쪽 정보 요원이 무능해서인지, 보고서에는 힐난에 가까운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토록 사람을 모자란 얼간이로 묘사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미인계에 홀려 VIP 룸에 들어갔다가, 주사위 게임에서 남은 돈을 전부 잃었다라.”
“어찌나 도박에 빠져 있던지, 계집질조차 관심을 끊고 살았다는 보고입니다.”
팔락, 무심한 듯 무표정으로 보고서를 넘겨보는 핑 주석.
보고서에는 목마(木馬) 가면을 쓴 채, 주사위를 내던지며 환호성을 지르는 김한소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맞은편, 어쩐지 으스스한 느낌의 천사 가면을 쓴 상대 도박사의 모습까지도.
“…….”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안한 직감.
그러나, 핑 주석은 이내 고개를 가로젓고는, 그 알 수 없는 불쾌함을 애써 털어낸 후 입을 열었다.
“뭐, 살짝 모자란 놈일수록 통제하기 쉬운 법이지. 거기에 더해서.”
툭, 툭. 손가락으로 김한소의 사진을 두들기는 핑 주석.
“이제는 노름이고 뭐고 영영 못 할 팔자 아닌가. 내가 늘어뜨린 실에 매달린, 한낱 꼭두각시로 살려면 말이지.”
“옳으신 말씀입니다, 주석 각하. 앞으로 도박은 손에도 못 대게 해야지요. 무릇, 번국(藩國)의 우두머리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서라면.”
[북조선 망명정부 수립계획 각론-세부 예산안 내역] 이라는 제목의 문서를 탁자에 내려놓고는, 하던 말을 이어나가는 왕룽 외교부장.
“신중국의 황제께서 친히 내려주시는, 원화 400조 원에 해당하는 자금을 허투루 쓰지는 못하게 주의를 주어야 합니다.”
원화 400조 원이라는 막대한 자금.
북한이 망하기 전, 1년 정부 예산이 대략 8조 원 언저리였으니, 이는 50년 치를 한꺼번에 받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만큼, 한반도 북부와 서한만 유전을 손에 넣는, 이번 북한 망명정부 계획에 상당한 공을 들이는 핑 주석.
“뭐, 어차피 그 자금의 태반은 북조선 망명정부의 군사를 조직하는 데에 사용될 터.”
만년필을 들어 특별 예산안에 서명한 그는, 묵직한 잉크 냄새와 함께 말 한마디를 덧붙였다.
“김한소 그 어린놈이 유희를 즐길 만큼 몰래 자금을 뺄 여력조차 없을 것이다.”
중국 인민해방군 물자를 대놓고 동원하기에는 국제사회의 눈치가 보이는 법이다. 일부 특수부대야 투입하겠지만.
결국, 러시아를 비롯한 외부 군수품을 구매해 북한 망명정부에 넘겨주는 형태가 될 터.
투입되는 자금만큼이나 상당히 신경이 쓰일 이번 일. 길게 담배 연기를 내뱉은 핑 주석은, 재떨이 가장자리에 담뱃재를 툭툭 털고는 물음을 던졌다.
“후우, 그럼 다음 의제로 넘어가지. 서한만 유전 건은 어찌 돌아가고 있나?”
“일단 긴장감은 유지하고 있습니다. 남한 정부가 시추 조사는 하게 놔두되, 감히 개발에 손을 뻗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적절하군. 일단 현 상태를 계속 유지하도록. 그리고, 하나 더.”
자기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린 모양이었다. 핑 주석의 이마에 깊게 새겨진 가로줄.
상당히 언짢고 신경 쓰이는 무언가를 떠올리기라도 한 듯, 그는 한쪽 눈을 찡그리며 입을 열었다.
“한서준, 그자의 행방이 최근 묘연하다고?”
“제 놈도 이래저래 듣는 귀가 있지 않겠습니까? 너무 큰 먹이를 목구멍으로 삼키려 들다가는, 중화의 철퇴를 맞을 수 있다는 것을.”
조용할 리가 없는 자의 조용한 행보. 핑 주석의 머릿속에서 울리는 경보음은 붉은색 사이렌을 번쩍이며 계속 경고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저 가만히 둘 일은 아니라고. 무언가 꿍꿍이가 있을 것이 분명하다고.
그러나.
“최근, 민주평통 부의장직도 사임한 것으로 보아, 내부 경쟁에서도 밀린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니 조용히 있는 것이겠지요.”
그럴듯한 설명을 곁들인, 왕룽 외교부장이 가지고 온 안심.
신경 쓸 일이 태산처럼 켜켜이 쌓인 지금, 핑 주석은 잠시 그 경보음을 꺼두기로 마음먹었다.
적어도 김한소를 북한 망명정부의 수장으로 올리고, 대외적으로 공표하는 일을 끝낼 때까지는.
“…잘되었군. 따로 손을 쓸까 했건만, 굳이 그럴 필요조차 없이 스스로 무너져 내린 것인가.”
“그럼, 이만 물러나 보겠습니다. 주석 각하.”
물론, 그 안일한 결정은… 조금씩, 조금씩 핑 주석이 서 있는 벼랑 끝에 실금을 가게끔 하고 있었다.
바로 지금, 보고를 마친 왕룽 외교부장에게 걸려 온 전화 통화처럼.
“어어, 그래. 리 대표. 요새 바쁘다더니만, 어떻게 간만에 전화를 다 하고?”
태자당의 자금을 맡아 굴리는, 중국의 사모펀드 책임자 리 대표.
그는 지난 가상화폐 건으로 태자당 파벌이 큰돈을 만지는 데에 모든 실무적인 일은 도맡아 한 자였다.
“돈벌이? 나는 외교부 쪽인데, 무슨 힘이 있다고.”
그리고, 쿰쿰한 돈 냄새를 제대로 맡은 듯한 그는 왕룽 외교부장에게 요청하고 있었다.
“북조선…?”
어디선가로부터 들은, 제법 그럴싸한 투자 건에 대해서.
“하! 그래, 그런 방법이 있었군! 알았네. 내 그럼 주석 각하께 건의해 보도록 하지.”
감탄과 함께 끊긴 통화.
탁, 탁. 붉은색 기둥이 줄지어 선 복도 회랑을 걸으며 왕룽 외교부장이 미소 지었다.
“누군지 모르지만, 이걸 생각한 놈은 참 머리통도 비상하군.”
새로운 투자라는 달콤한 황금.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지난번 비트코인처럼 태자당 일당의 부를 늘려줄 그 생각.
지금, 그 달콤함을 머릿속에 그리는 왕룽 외교부장은 알지 못했다.
그 기발한 황금색 아이디어에 어떤 독이 묻어 있는지를.
“서한만 앞바다에서 나게 될 석유, 그걸 담보로… 북조선 망명정부 앞으로 채권을 발행해 보겠다라.”
* * * *
“채권을 발행할 겁니다. 북한 망명정부 앞으로.”
마카오 카지노에서 나온 것은, 주사위 게임을 끝낸 후 꼬박 하루가 더 지나고 난 후였다.
터덜터덜, 지긋한 나이 때문인지, 밤샘 노름에 진이 다 빠진 모습의 주 전(前) 총리.
“뭐, 뭐라고…?”
그러나, 채권을 발행하겠다는 말에 그는 감긴 눈을 부릅뜨고는 나를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뜬금없는 헛소리인 게야!”
“헛소리라뇨. 기껏 아이디어 짜느라 힘들었는데. 일단 식사부터 하러 가시죠.”
“멈춰 서게! 안 그래도 내 할 말이 많았으니!”
이 영감님도 참, 힘도 좋다.
뒷좌석을 쩌렁쩌렁 울리는 목청 탓에 운전기사가 깜짝 놀랐을 정도였으니까.
“김한소를 만나러 이 늙은이를 예까지 끌고 와놓고는, 한다는 것이라고는 죄 노름질이었네! 이게 무슨 짓이냔 말인가!”
호텔 근처에 다 왔음에도, 뒷좌석 분위기 탓에 주변을 빙글빙글 도는 차량.
빨간불 신호에 걸려 잠시 차가 멈춰 서자, 그제야 주 전(前) 총리는 조금 언성을 낮추어, 하던 말을 연이어 나갔다.
“거기에, 뭐? 북조선 망명정부 채권을 발행하겠다? 한서준이 자네, 무슨 정신병이라도 앓고 있는 게야!”
“만나시지 않았습니까. 바로 저기서 말입니다.”
한쪽 손을 들어 반대편 방향을 가리킨 나.
대낮임에도 불을 끌 생각일랑 없는 듯,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화려한 네온사인.
불과 몇 분 전까지 김한소와 함께 있었던, 바로 그 카지노였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김한소 말입니다. 물론, 목마(木馬) 가면을 쓰고 있었으니, 잘 모르셨겠지만.”
“그자가, 그 나무로 만든 말대가리가, 김한소였다고? 그게 정말인가!”
“옆에 태자당 쪽 정보 요원이 붙어있는지라, 서로 정체를 밝힐 수 없었습니다.”
당황스러운 기색이 눈동자에 한가득 서려 있는 주 전(前) 총리.
그리고, 타이밍도 적절하게 바뀐 신호. 초록색 불빛이 반짝이자, 나는 운전 기사에게 다시 호텔로 가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러고는 덧붙이듯 주 전(前) 총리에게 설명 한 꼭지를 곁들이는 것을 잊지 않았고.
“주사위 놀음을 통한 선문답. 그것만으로도 나눠야 할 대화는 이미 충분히 나누었으니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허어… 그런, 그런 것이었나. 그 뜻 모를 대화에 그런 뜻이 있었다니….”
그리고, 이 괄괄한 영감님은 팔순의 나이에 비해 생각보다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고.
“크흠… 내 쓸데없는 오해를 했으이.”
“괜찮습니다. 미리 말씀드릴 상황도 못 되었으니까요.”
“허면, 결국 핑 주석 그놈이 북조선 망명정부에 쓸 자금은 원화로 400조 원이라는 게지?”
“그렇습니다. 뭐, 그렇게 되면.”
북한 망명정부 앞으로 배정될, 중국 정부의 특별예산.
무릇 나쁜 이들이 말하길, 나랏돈은 먼저 먹는 놈이 임자라 하지 않았던가.
“핑 주석의 독 밑에 큼지막한 구멍을 내는 것이지요. 그 400조 원이라는 돈을 전부 가로챌 수 있도록.”
“허어….”
이번에는 내가 나쁜 남자가 될 차례다. 뭐, 남의 나랏돈을 내 나라로 끌어오는 꼴이니, 마냥 나쁜 놈이라고 하기도 뭐하지만.
“헌데… 자네 말일세.”
내 계획을 듣고는 기가 찬다는 듯 입을 벌리고 있던 주 전(前) 총리.
마치 매끄러운 옥에 거슬리는 티가 있다는 것처럼, 그는 내가 세운 계획의 맹점 하나를 지적했다.
“서한만 석유를 갖고 싶다 하지 않았던가? 필요한 자금은 1,000조 원이고.”
얼핏 보기에 단순한 계산 실수처럼 보이는 허점을.
“자네 돈 200조 원. 핑 주석에게 빼앗을 400조 원, 허면 나머지 400조 원은 어디서 가지고 오려고?”
차창 너머로 시선을 돌린 나.
중국의 가장 큰 4개의 강 중, 가장 아래쪽 남부 지역 전체를 아울러 흐르는 주강(珠江).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 물을 판 것처럼, 나도 신중국의 황제를 옹립하는 자들에게 없는 것을 한번 팔아보겠노라고.
“아주 훌륭한 자선 사업가분들이 계십니다. 예전에는 대동강 물을 돈 주고 사신 분들이지요.”
“……?”
그리고, 그 대동강 물은… 북한 망명정부의 서한만 석유를 담보로 한 채권이 될 것이다.
“그분들의 이름은 보통 호구라고 하더군요. 뭐, 때와 장소에 따라서 호칭이 좀 바뀌기는 하니까, 이 경우에는.”
어차피 조만간 망해 없어질 운명인, 그래서 일절 지급 의무가 없게 될 채권이.
“태자당. 중국 공산당 태자당 파벌 분들이 북한 망명정부 국채라는 대동강 물을 사 주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