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3화 트로이의 목마(4)
Q. 베이징이라는 도시를 단어 하나로 정의하시오.
A. 아마도 이에 대한 대답으로는 [권위]가 적절할 것이다.
자금성이라는 황금 궁전을 중심으로, 격자무늬 바둑판식 도로가 사방으로 뻗은, 중국의 정치 중심지.
그러나, 이 권위적인 도시의 빛나는 낮과 달리, 베이징의 밤은 자유로웠다.
“대박이다.”
혈관을 타고 흐르는 피가 유독 뜨겁게 느껴질 만큼의 대박.
베이징에서 사모펀드를 운용하고 있는 리 대표.
서한만 유전을 담보로 한, 북한 망명정부의 채권. 그 채권 발행 역할을 맡기로 한 그의 입꼬리는 내려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건 무조건 대박이야, 무조건!”
구름처럼 몰려드는 사회지도층 고위 인사들의 모습에서, 미칠 듯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부(副)의 역동성을 맛보고 있었기에.
“푸젠성 서기장님, 이쪽입니다. 바로 자리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오, 그래. 간만에 보는구먼. 가만있자, 리 대표는 위층에 있나 보구먼.”
1층 중앙 홀에서, 계단 위쪽 자신을 바라보며 손을 흔드는 고관대작의 모습과.
“중앙군사위원회 판공처장님 오셨습니다! 어서 의전 준비해 주십시오!”
“하하, 괜찮네. 천천히 하게나. 사람도 이리 많은데.”
제법 포악한 성정으로 유명한 관리의 유순한 모습까지.
황금빛 샹들리에 아래 환한 불빛에 비친 이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대박이라는 말 외에는 설명할 수 없었다.
“그렇지, 사람도 이렇게 많은데, 대박이 안 날 수는 없는 법이지. 으흐흐흐…!”
“이런, 이 사람. 또 그런 음흉한 미소나 짓고 말이야.”
그리고, 그때.
리 대표에게 다가와 말을 건네는 한 사람.
“제법 큰 판을 벌여 놓았군.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인데?”
“아, 왕 부장!”
왕룽 외교부장이었다.
사석에서는 말을 편히 할 정도로 친한 관계인 두 사람. 그들은 서로 샴페인 잔을 들고는 이 탐욕의 광경을 천천히 감상했다.
“중국 공산당 정·관계 인사들은 죄다 온 것 같은데? 거기에 재계 인사들까지도 포함해서 말이야.”
“기가 막힌 돈 냄새를 이렇게나 풍기는데, 없는 시간도 만들어서 와야겠지. 특히나.”
목구멍 너머로 쭉 들이켜는 황금빛 샴페인.
한 방울도 흘릴 수 없다는 듯, 욕망의 액체를 집어삼키며 리 대표가 말했다.
“저번 비트코인 폭등 때, 우물쭈물하다가 재미 못 본 인간들이 눈이 뒤집혀 달려왔다니까, 흐흐흐흐.”
“정보를 줘도 못 믿는 놈들은, 숟가락 위에 밥을 떠먹여 주려 해도 입을 벌리지 않는 것들이지.”
가상화폐 폭등이 있기 전, 절반 이상의 인원이 의구심을 가지고 먼발치서 바라만 보던 태자당 일파.
그때, 비트코인이라는 보물을 잔뜩 실은 배는 그들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렇기에, 저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잔뜩 몸이 달아 있는 태자당 일파.
베이징이라는 이 화려한 둥지 안에서, 그들은 어서 자신들에게 두 번째 보물선을 앞에 대 달라고 짹짹거리고 있었다.
왕룽 외교부장이 내뱉은 말처럼.
“뭐, 이번에는 전부 아기 새라도 된 것처럼 다들 입을 못 벌려서 안달이지만.”
“참으로 훌륭한 고객님들 아니겠냐 이 말이야. 낄낄낄.”
쨍, 허공에서 부딪히는 두 개의 샴페인 잔.
난간에 몸을 살며시 기대며, 왕룽 외교부장이 리 대표에게 물었다.
“그런데, 이번 채권 아이디어 말이야. 리 대표, 자네 생각이 아니라고 했던가?”
“어어, 내 거래하는 치들 중에 남조선 놈들이 몇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이런 말을 하더군.”
제아무리 전쟁통이라도 상인들은 가만히 있지 않는 법. 한국과 중국, 양국을 오가는 상인들은 서로가 이런저런 이슈를 물어다 주는 것이 일상다반사였다.
물론, 그 모래 알갱이처럼 수많은 이슈 가운데에는… 지금과 같은 번뜩이는 아이디어도 있었고.
“어차피 우리 대중화가 꼭두각시로 움직이다가 버릴 꼭두각시인데, 그 앞으로 부도 어음 좀 달아두면 되는 것 아니냐고. 서한만 석유를 담보로 해서.”
마치, 리 대표 자신의 몸에 딱 맞는 옷을 미리 준비해 놓기라도 한 것처럼.
“그러고, 곧바로 손바닥을 내밀데? 내 그 자리에서 아이디어값으로 미화 1,000만 달러를 손 위에 올려 주었지.”
“하! 하여간 조선 놈들, 배포도 작단 말이지. 옛날에는 대동강 물도 팔아치웠다더니만, 이제는 제 조국을 헐값에 넘기다니.”
“뭐, 그야 내 알 바 아니지. 아아, 시작한다.”
딸깍, 스위치가 꺼지자 점점 어두워지는 장내.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조금씩 커지는 그 순간, 연단 중앙에 환한 불이 밝혀짐과 동시에 재즈풍의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환영합니다, 위대한 중화 대륙을 이끌어 나가시는 신사 숙녀 여러분! 그간 잘 지내셨지요?”
무대 위로 올라오자마자 좌중을 휘어잡는, 재간둥이 느낌의 사회자.
달아오르기 시작하는 분위기.
때마침, 관중 중 한 사람이 그 들뜬 분위기에 유쾌한 방점을 찍었다.
“잘 못 지냈네! 나는 비트코인 열차에 못 올라탔었거든.”
“하하하! 어르신도 참.”
지난번 가상화폐 붐에 머뭇거리던 전직 관료.
아쉬움이 가득 찬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사회자가 익살스러운 말투로 그 몽니를 받아쳤다.
“하이고, 차관님. 저희가 태워 드리는 황금 열차 시간표 꼭 좀 기억하시라니까. 확실하지 않으면, 저희는 출발을 안 해요! 물론!”
당장이라도 사람을 홀릴 것만 같은 말솜씨와 함께.
“오늘 출발하는 열차도 무조건 확실한 것이고.”
두둥, 사회자의 신호에 맞추어 갑자기 울리기 시작하는 북소리.
듣는 이의 심장을 마구잡이로 널뛰게 하는 타악기는, 장내의 분위기를 연신 두들겼다.
꽃가루와 함께 터져 나오는, 화려한 폭죽 효과가 무대에 나타나기 전까지.
“자, 소개합니다! 내부에서만 도는 극비 정보! 북조선 망명정부 계획과… 서한만 유전 프로젝트!”
거대한 스크린에 비치는, 커다란 한반도 지도.
청천강이 흘러가 황해에 맞닿은 서한만. 푸르른 바닷속으로 잠수해 들어간 화면은, 이내 심해의 지질에 눈을 돌렸다.
검은 황금이 역동적으로 뿜어나오는, 땅속 유전을 향해서.
“허어… 저게 사실인가?”
“어마어마하구먼. 만주에 있는 다칭 유전의 다섯 배. 아니, 열 배까지도 되겠어!”
막대한 매장량.
막대한 예상 판매 대금.
굳이 계산기를 두드릴 필요조차 없이, 화면에 떠 있는 숫자만으로 그들은 알 수 있었다.
“신중국을 위해 노고가 많으신 공산당원 동지 여러분! 이 검은색 황금 연못은 여러분을 위해 나타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 채권 투자를 빙자한 권력형 투기.
100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하는, 이 거한 기회의 버스에, 발 하나라도 걸쳐 올라타야겠다는 것을.
“수익률 5,000%! 서한만 유전을 담보로 한, 북조선 망명정부 채권에 지금 바로 투자하세요! Right Now!”
“와아아아아아아!”
탐욕과 광기로 가득 찬 중앙 홀을 내려다보는 리 대표. 옆에 선 왕룽 외교부장은 피식 웃음 지으며 이 쇼를 본 소감을 중얼거렸다.
“입담이 끝내주는군. 저 사회자 뭐 하던 놈이지?”
“아아, 저 친구가 그 친구야. 그 1,000만 불짜리 조선놈.”
“음?”
너무나도 형편 좋게 풀려가는 일.
연회장 천장을 올려다보는 리 대표와 왕룽 외교부장. 두 사람의 눈에 비친 것은 푸른색 사파이어를 이어 붙인, 그들만의 만들어진 하늘이었다.
“미리 기획서까지 만들어서 내놓더군. 마치 이번 기회를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처럼 말이야.”
스스로 돕지 않아도 자신들을 돕는 하늘.
그러나, 그들은 알지 못했다.
저토록 밝게 빛을 발하는 하늘이 무너져 내릴 수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뭐, 그래봐야 일회용품으로 쓰고 버릴 놈이지만.”
무너져 내린 가짜 하늘. 그 날카롭게 세공된 보석 덩어리들이 자신들의 머리통을 찍어 내릴 것이라는 미래를.
* * * *
“일회용품이라. 어처구니가 없네.”
권력은 참 좋은 것이다.
민주평통 부의장직을 사임했음에도, 이렇게 국정원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으니까.
“쓰이다 버려질 놈들이 누가 누구더러 일회용품이라는지, 원.”
헤드셋을 끼고서 국정원 본관에서 동시통역사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나.
사회자로 잠입한 국정원 직원은, 내가 쓴 각본대로 감쪽같은 연기를 해내고 있었다.
무대는 베이징. 관객은 나 한 사람. 그리고 배우는 그 자리에 참석한 모든 이들.
오직 사회자를 맡은 국정원 직원을 제외하고는, 다른 모든 배우는 자신들이 무대 위에 올라가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그나마도 지금 나한테 쓰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면서.”
마치 인형극의 손가락 인형이 움직이는 것처럼.
“거의 다 왔다.”
더 들을 것도 없다.
헤드셋을 내려놓고는 의자에 깊게 몸을 묻은 나.
가만히 눈을 감은 나는, 얼마 전 마카오 카지노에서 있었던 일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차후에 한 번 더 주사위 게임에 모실 기회가 있으면 합니다. 목마(木馬) 가면 신사분.’
이번 연극의 시발점(始發店)이 된, 김한소와의 주사위 게임이 끝났던 그때를.
‘한 번 더…?’
핑 주석으로부터 받아낼 북한 망명정부 예산을 가로채겠다는 계획.
은유로 점철된 주사위 게임을 하면서, 나는 김한소에게 내 의사를 전달하는 데에 성공했다.
그러나, 여전히 남아 있던 마지막 산 하나.
‘절반의 재미밖에 채우지 못했으니 말이죠.’
부족한 금액. 원화 400조 원을 뜻하는, 칩 4개.
나는 김한소 쪽 테이블 위에 황금 테두리를 입힌 그 칩을 살며시 올리고는, 지긋이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물론, 부족한 부분은 채우면 그만입니다.’
‘어떻게…?’
‘얼토당토않은 패가 나올 수 있습니다. 그건 언뜻 보시기에 목마 가면 신사분을 뼛속까지 발라먹으려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지금은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중국 쪽에서 북한 망명정부 채권처럼 얼토당토않은 말을 한다면. 그리고, 그 제안이 김한소 자신에게 불쾌감을 주는 것이라면.
‘그때는 저를 한번 믿고 즐겨보셨으면 합니다. 다음에 다시 열릴 주사위 게임에서.’
그냥 그 제안, 덥석 받아 봐.
김한소 당신은 그저 돌아가는 판을 보고 구경이나 하면 될 뿐.
모든 플레이는… 패를 전부 읽고 있는 내가 직접 할 테니까.
‘…알갔습네다. 그리하지요.’
모호한 말일지언정 충분히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던 김한소.
그리고, 그 순간 자리에서 일어났던 태자당 쪽 중국 정보 요원.
‘으허허허! 카지노에서 도원결의라, 아주 눈물이 다 날 지경일세. 자, 꼭두각시 목마 양반. 이제 슬슬 갑시다. 자유 시간은 끝이요.’
목각 인형이 된 김한소의 팔다리에 질긴 실이 걸리던 그 모습.
회상을 마친 나는, 부신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한소가 다시 자유 시간을 얻게 될 날이 그리 멀지 않은 것 같은데 말이지. 그리고.”
이 판에서 이기는 것 외에 다른 것 따위는 일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는 듯한 얼굴로.
“잘난 분들께서 대동강 물을 비싸게 살 날도 그리 멀지 않은 것 같고.”
나는 곧바로 휴대전화를 들어 전화를 걸었다.
“유세나 보좌관. 상하이방 쪽에 연락을 넣으세요.”
이제 마지막 전쟁의 준비는 모두 끝났다.
밤이 새고, 긴장이 풀린 모두가 깊이 잠에 빠지는 그 순간.
“김한소라는 트로이의 목마(木馬). 그 거대한 뱃속에 무장한 병력이 들어갈 시간이라고.”
목마(木馬)에 들어간 병력은 그들을 부술 것이다.
다시는 내게 반격할 수 없도록 철저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