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장님의 핵몽둥이-285화 (249/300)

285화 칸(Хан) 회장(1)

-[NY Times] 한반도 정세 급변화! 북한 망명정부 인민해방군, 한반도 북부 지역 군사활동 시작!

-[La Monde] 개마고원의 자연환경, 불지옥 전쟁터로 변화하나? 장기화 조짐이 보이는 제2차 한국전쟁.

백두산 천지에서 있었던 발표 이후, 외신들은 그야말로 난리였다.

최근 몇 달 사이 한반도에서 수시로 굵직한 떡밥이 뿌려지고 있었고, 그걸 받아먹는 기자들은 수면 위에서 펄떡이고 있을 정도였으니까.

“흠….”

팔락, 종잇장을 넘기는 핑 주석.

중국 정보부에서 올라온 보고서에 담긴, 외신 반응을 바라보는 그는 퍽 만족스러운 미소를 입에 담았다.

곧바로 이어지는, 조금은 불편할 수도 있는 뼈 있는 기사를 봤음에도 불구하고.

-[Bloomburger] 단독보도! 북한 망명정부 군사활동에 중국군 개입 정황 발견. 묵묵부답인 베이징, 과연 진실은 무엇인가?

눈 가리고 아웅이지만, 일단 북한 망명정부 산하 인민해방군 소속으로 되어 있는 중국의 특수부대.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은 눈 덮인 개마고원에서 반쯤 산적 떼 노릇을 하고 있었다.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상당히 소극적인 모습의 한미연합군과 약간의 충돌도 없이.

“외신 기자 놈들 정보력도 만만치 않군.”

탁, 보고서가 끼워진 서류철을 닫음과 동시에, 머릿속에 켜켜이 쌓여있던 이런저런 생각도 함께 닫아버린 핑 주석.

이미 던져진 주사위인 만큼, 되돌릴 수도 없는 상황.

담배 한 대를 입에 물고는, 연기를 길게 내뿜은 핑 주석이 말 한마디를 덧붙였다.

“뭐, 한동안 서방 쪽에서 시끄럽게 소리를 질러대겠군. 패권국의 개입을 반대한다 어쩐다, 말 같잖은 헛소리나 지껄이면서.”

“신경 쓰지 마십시오, 주석 각하. 미국이나 남조선 놈들도 뭐라 하지 못할 것입니다.”

핑 주석의 맞은편에 차렷 자세로 선 채, 긴장한 얼굴로 보고를 이어나가는 왕룽 외교부장.

“한미연합군은 절대로 압록강을 넘지 못하는 군대입니다. 그러니, 저희 대(大)중화가 개마고원에 손을 뻗어도 저들은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평소보다 딱딱하게 굳은 그의 모습을 보고서 다른 생각이 든 모양이었다.

피식, 얼굴에 조소를 띄운 핑 주석.

“자네 말이 맞지. 오히려… 지금 상황에서는 신경 쓰이는 것은 따로 있기도 하고.”

책상 끄트머리로 팔을 뻗은 핑 주석은, 곧바로 회색 신문지 하나를 집어 왕룽 외교부장의 발 앞에 던져버렸다.

-[Foxy News] 북한 망명정부, 서한만 유전 담보 채권 발행의 의문점! 막대한 수익률, 오직 중국 고위층만이 가져간다?

“…….”

핑 주석 자신에게 직접적인 보고 없이 일을 벌였다는 점에 대한 질책. 그럼에도 제법 괜찮은 성과를 냈다는 칭찬 비슷한 감정이 섞인 행동.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허리를 숙여 신문지를 집어 드는 왕룽 외교부장. 그런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핑 주석이 입을 열었다.

“아이디어가 좋군. 왕룽 외교부장, 자네 작품이라지?”

“…과, 과찬이십니다. 주석 각하.”

“그 꼴을 보니, 뭘 잘못했고 뭘 잘했는지는 따로 말할 필요는 없겠군.”

울타리 너머에 제멋대로 넘어가 그럴듯한 사냥감을 물어온 개.

사냥개에게 울타리를 넘지 말라는 경고를 한 후에는, 사냥감을 물어온 것에 대해 칭찬을 해야 하는 법이다.

잿빛 연기를 내뿜으며 무표정으로 하던 말을 이어나가는 핑 주석.

“기발한 생각이다. 안 그래도 북조선 망명정부에 추가 재정이 필요했으니 말이야. 물론, 태자당 개개인의 자금력도 늘어나게 되고.”

“하하… 이해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석 각하.”

그제야 긴장이 풀린 듯, 한숨을 토해내는 왕룽 외교부장. 핑 주석이 북한 망명정부 채권 발행액이 얼마냐고 묻자, 그는 곧바로 대답했다.

“총 모집 금액이 2조 5천억 위안이 조금 넘습니다, 주석 각하.”

“하! 이거, 이 사람들. 아주 호주머니에 든 쌈짓돈은 다 꺼내왔구먼.”

2조 5천억 위안.

환율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원화로 환산했을 때 500조 원 가까이 되는 거액.

“본래 예상했던 수요보다 2배나 많은 자금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하긴, 저번 비트코인 건으로 다들 두둑이 번 것들이 있을 테니.”

태자당이 비트코인으로 번 돈. 그리고, 그 기회의 열차를 타지 못한 이들이 악착같이 만들어 낸 돈.

한번 욕망이 이루어지는 그 짜릿한 맛을 직·간접적으로 맛본 태자당. 그들은 누가 강요하지도 않았건만, 스스로 자신들의 재산을 가져다 바쳤다.

그 모든 것이 사실은 대동강 물을 사는 것에 지나지 않음을 알지 못한 채로.

“당분간 북조선 망명정부 예산은 아무런 걱정도 없겠군. 원래 내가 준 금액도 상당했지만.”

“아아, 그 예산 말입니다. 주석 각하께서 김한소에게 스위스 은행의 ID를 주셨다 들었습니다.”

핑 주석이 보낸 원화 400조 원의 예산. 그리고, 조만간 회계 처리가 끝나고 들어올 채권 매각 금액 500조 원까지.

약 900조 원에 가까운 거액은 스위스 은행 비밀 계좌에 예치되어 있었다.

“조금…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이 사람, 참. 걱정되나 보군.”

구멍 하나 새지 않는, 철통 보안 속에서.

“김한소 그 핏덩이는 그저 살아있는 열쇠에 불과할 뿐이다.”

“……?”

“당장이라도 자물쇠를 열고서 그 안에 든 보물을 보고 싶겠지만, 어림도 없지. 누군가 제 놈 몸뚱이를 잡고 돌려주어야 하니까.”

황금 열쇠 세 개가 그려진, 스위스 은행의 로고.

그 멋들어진 로고를 바라보며, 핑 주석은 확신에 찬 말을 내뱉었다.

“스위스 은행 비밀번호는 오직 나만이 가지고 있다. 핏덩이 따위는 감히 알 수도 없지. 만에 하나라도.”

그 깨질 줄 모르는 확신이… 아주 손쉽게 부러질 것이라는 미래는 일절 생각지도 못한 채로.

“외부의 승냥이 같은 놈에게 조력을 받는다 하더라도 말이지. 따로 빼돌리는 짓거리는 절대로 불가능하다.”

* * * *

“불가능은 없습니다. 나폴레옹 아저씨의 사전에도, 그리고 제 사전에도.”

그렇다. 불가능은 없다.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주황색 망토를 두르고 백마를 탄 채, 강력한 눈빛으로 어딘가를 향해 손가락질하는 나폴레옹 초상화처럼.

“아니, 그건 또 뭔 소리여.”

그리고, 내 감상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머리 위에 큼지막한 물음표 하나를 올려둔 김원철 아저씨.

“갑자기 급하게 유럽 출장 가야 한다고 하더니만, 스위스는 안 가고 웬 루브르 박물관까지 온 건디?”

지금 내가 있는 곳은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언뜻 보기에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이곳까지 내가 발걸음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스위스에 가도 별 의미가 없으니까요. ID만 가지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김한소 측이 전하지 않았습니까.”

북한 망명정부 임시위원장직에 오른 김한소.

그래도 나름 국가원수 타이틀을 달아서인지, 그는 나름 비서관 중 한 사람을 제 심복으로 채울 수 있었다.

나와 상호 연락이 가능한, 일종의 뻐꾸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 뻐꾸기가 며칠 전 물어다 준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긴급] 비밀번호는 핑 주석 혼자만 알고 있음. 해당 계좌에 접근은 가능하나, 자금 인출은 불가능한 상황.

하기야, 무려 900조 원이 조금 안 되는 거액이다. 보안을 허술하게 했다면 그게 더 이상할 터다.

“그러니까, 굳이 피곤하게 알프스 산골까지 갈 필요는 없다는 말입니다. 어차피 가본들 비밀번호도 없어서 뭘 하지도 못하는걸요.”

“아니, 그러면 큰일 아니여? 지금 이렇게 한가롭게 나폴레옹 그림이나 보고 있어도 되는 거냐고.”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입을 떡 벌리고는 뒤에서 나를 볶기 시작하는 김원철 아저씨.

사실 계책이 없어서 내가 이러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딱 적절한 그림이 이곳 루브르에 있어서 생각을 정리할 겸 온 것일 뿐.

나는 나폴레옹의 다른 모습이 그려진 그림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폴레옹이 말입니다. 참 똑똑하고 능력 있는 사람인데, 판단 하나를 잘못했어요.”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아까 전, 말을 탄 채로 군사를 호령하는 모습이 인상적인 그림과 제목만 같은, 우중충하고 패배의 색이 짙은 그림.

그림의 배경은 눈 쌓인 알프스라고 하지만, 사실 이 모습은 아마 스위스보다는 다른 동네에 더 가깝지 않나 싶을 정도였다.

가령, 나폴레옹의 생을 나락으로 이끈 가장 큰 요인인.

“겨울철에 러시아를 침공한다. 모스크바만 점령하면 정복 사업은 다 끝이다.”

찬바람이 불어오는 지금 같은 계절의 러시아라든지.

“엉…?”

“이렇게 진눈깨비가 내리는 겨울에는, 러시아를 적대해서는 안 됩니다. 차라리 잠깐 손을 잡는 편이 낫지요.”

뜻을 알지 못할 내 말에, 알쏭달쏭한 모습의 김원철 아저씨.

“그건 또 무슨 말인지, 원….”

나는 그 푸념에 대답 대신 지그시 작은 미소를 입에 걸었다.

저벅저벅, 뒤편에서 묵직한 발소리를 내며 걸어오는 한 남자의 기척을 느꼈으니까.

“마침 오네요.”

검은색 양복 차림에 짙은 선글라스를 낀, 금발의 다부진 남성.

무뚝뚝한 표정으로 내게 한쪽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하는 그 남자는 바로.

“핑 주석이 가지고 있는 스위스 은행 계좌 비밀번호. 굳이 그걸 알아낼 필요 없이 일을 진행하는 방법.”

모스크바의 왕좌에 앉아 동토를 다스리는, 러시아의 독재자 뿌틴.

그의 최측근이라 할 수 있는, 정보기관 소속의 이름 없는 사내였다.

“Рад встрече. Вы президент, Хан?(반갑습니다. 한 회장님 되십니까?)”

눈 덮인 산야에서 고초를 겪는 나폴레옹. 그 모습을 배경 삼아, 허공에서 마주 잡은 두 손.

마지막 퍼즐 조각을 손에 쥔 나는, 가슴 속 야심을 감추지 않으며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이제부터 겨울철 러시아를 통해 하나씩 만들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뿌틴이라는 남자와 함께.”

* * * *

“칸(Хан) 회장이라고? 그 남자 이름이?”

“예, 그렇습니다. 각하.”

모스크바, 크렘린궁.

빛나는 대리석이 깔린 복도, 그 광활한 회랑을 걸어가며 보고를 받는 러시아의 뿌틴 대통령.

“이름만으로는 세계 정복도 할 자로군.”

하필 한 회장의 러시아식 발음은 칸(Хан) 회장이었다. 칭기즈 칸 할 때의, 제왕의 칭호로 쓰이는 그 칸.

“물론 그만한 배짱이 되는지는 모르지만.”

심지어, 그 칸 회장이라는 자는 서신으로나마 뿌틴 자신에게 그럴듯한 물음을 던졌었다.

러시아 제국. 쌍 독수리의 부활을 위한 발판이 궁금하지 않냐고.

“제의한 내용은 고려할 가치가 있어 보입니다만….”

“말로는 뭔들 못 하겠나. 직접 만나 보고 결정해야겠지.”

그래서인지 퍽 기대가 되는 모양인 뿌틴 대통령.

조금씩 올라오는 기대감을 애써 얼굴에서 감춘 그는, 곧 이곳 크렘린궁에 도착할 이를 맞이하기 위해 연회장으로 이동했다.

발걸음에 깃든 들뜬 감정은 지우지 못한 채로.

“어디 보자고. 과연 칸(Хан)이라는 이름값이 아깝지 않은 사내인지 말이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