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8화 노벨 평화상(2)
-쿠구구구구궁!
터져 나오는 굉음.
그리고, 그와 동시에 너나 할 것 없이 터져 나오는 함성.
“와아아아아아아!”
“석유! 석유다! 석유가 터졌다!”
육중한 기계음이 진동과 함께 지축을 흔들자, 곧바로 매섭게 하늘을 향해 튀어 오르는 검은색 액체.
분수처럼 뿜어지는 석유를 바라보며, 나는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진짜 이런 날이 오긴 오네.”
원화로 1,000조 원짜리 자본이 투입된, 이곳 서한만 유전.
아마 여기서 뽑아 먹을 수 있는 금액은 그 열 배는 되지 않을까 싶다.
국내 수요량을 아득히 넘는 양이기에, 얼마든지 외국에 수출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이니까.
“고생 많았네. 다 한 회장, 자네 덕분이야.”
그리고, 내게 다가와 손을 내미는 성북동 상왕.
참, 이 아저씨와도 여러 가지로 많이 얽히긴 했다.
비록 지극히 계산적인 공생이긴 했지만, 결국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었으니, 그걸로도 충분하다고 해야 하나.
“저야말로요. 옆에서 이래저래 도와주신 부분도 간과할 수 없지요.”
서로가 허공 위에서 맞잡은 두 손. 아마 성북동 상왕 또한 같은 생각을 하는 모양이었다.
이제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가 되었구나 싶은 생각을 하는 그때.
“회장님!”
급히 내게 달려오는 탄약그룹 임원 한 사람.
그의 손에는 유리로 된 플라스크 하나가 들려 있었다.
“막 뽑아낸 석유입니다!”
찐득한 점성의 석유가 그 안에서 찰랑거리는 플라스크 하나가.
“하하… 이 검은 황금을 얻으려고 그토록 고생했나 봅니다.”
“뭐, 얻은 게 그뿐만은 아니지.”
만족스러운 얼굴로 석유를 바라보던 성북동 상왕은 뜻 모를 말 한마디를 내뱉었다.
무슨 일이지 싶어 다시 반문하려는 찰나.
“어르신.”
“아, 그래. 왔는가.”
안전모를 쓴 채, 헬리콥터 착륙장에서 걸어 내려오는 외교부 장관.
“외교부 장관님께서 여긴 왜…?”
“회장님께서는 이제 바쁘신 것 다 지나갔지만, 저희는 이제 시작이라서요.”
새롭게 쓰일 국장(國章)이 그려진 점퍼를 입은 외교부 장관의 모습.
새로이 바뀐 것은 단지 국장의 디자인뿐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통일 대한민국, 이제 곧 정부 수립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네…?”
아예 국체(國體) 자체를 새로 바꾸는, 통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내가 바꾼 세상에는 새로운 흐름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지금 발아래에서 흔들거리는 물살처럼.
“그렇게 되었네. 뭐, 자잘한 절차들이 남은 셈이지.”
외교부 장관과 몇 가지 실무적인 내용을 협의하던 성북동 상왕.
즉석에서 서류를 뒤적거리던 그는 무언가 재미있는 일이라도 떠올린 것인지, 나를 보며 웃음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 물론 통일 대한민국 건국에 지대한 도움을 준 한 회장이 여기에 빠져서는 안 되겠지.”
“그건 또 무슨…?”
“뭐, 조만간 또 보세나. 그때는 아마 또 감투 하나를 쓴 모습을 보게 되겠군.”
팔자에도 없는 감투를 내 머리 위에 제 마음대로 씌워 놓고서.
“국가 통일 자문 위원회 한서준 위원장의 모습을 말이야.”
“저더러 국가 통일 자문 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라고요…?”
국가 통일 자문 위원회.
말 그대로 통일 대한민국이 수립되는 데에 있어 이런저런 훈수를 좀 놓는 기관인 듯하다.
크게 부담 갖지 않아도 된다는 말과 함께, 내게 부득불 감투를 씌우는 성북동 상왕.
뭐, 이제는 이 또한 그러려니 해야지. 어차피 돌아가기엔 너무 깊게 발을 들인 것 같기도 하고.
“명예직 겸 자문 역할 정도 하라는 걸세. 뭐, 한 회장 자네가 실질적으로 북한 지역에 영향력이 지대한 것도 감안했고.”
“이름은 걸어두기는 하겠습니다만. 활동은 드문드문밖에 못 할 것 같네요.”
위원회 관련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나와 성북동 상왕.
대략적인 선에서 합의를 보고, 슬슬 우리 두 사람 모두 자리를 뜨려던 바로 그때.
“회장님아…! 앗차차.”
아래층에서 헐레벌떡 뛰어 올라오는 김원철 아저씨.
무언가 급히 보고해야 할 것이 있는 모양이었다. 공식적인 자리인 만큼, 아저씨는 내게 존댓말로 말을 걸었다.
“크흠, 잠시 보고드릴 것이 있습니다, 회장님.”
찡긋, 사정은 알겠다는 듯, 웃음 지으며 떠나는 성북동 상왕.
갑판 한쪽,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나를 데리고 간 김원철 아저씨에게 내가 물음을 던졌다.
“무슨 일인데 그러십니까. 지금 저 너구리 같은 양반이 또 이상한 감투를 씌워 주려고 하는 순간인데요.”
“감투? 아니, 도대체 우리 회장님은 머리에 쓴 왕관이 몇 개여.”
분명 급하게 보고할 게 있었던 것 같은데. 숫제 손가락으로 내 머리 위에 올라간 감투 개수를 세는 김원철 아저씨.
그리고.
“탄약그룹 회장직에, 무슨 국가 통일 뭐시기 위원장에, 히야… 그래도 하나를 더 써야 하네.”
“하나를 더 써야 한다니,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아아, 그게 말이여.”
나도 모르는 사이, 또 늘어버린 감투 하나.
부담스럽기로는 국가 통일 자문 위원회 위원장직보다 더한 그 감투는 물 건너온 외국의 것이었다.
“그, 노르웨이에서 막 연락이 왔더라고. 노벨 위원회에서 말이여.”
“이건, 설마…?”
“맞어. 코쟁이 양반들이 우리 회장님한테 이렇게 전해 달라네.”
팔락, 손에 든 종잇조각을 펼쳐 읽기 시작하는 김원철 아저씨.
거기에는, 올 연말 내가 어떤 감투를 쓰게 될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에, 따라서, 저희 노벨 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알려드립니다. 금년도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는.”
지명도 하나는 전 세계 끝판왕인 그 감투는 바로.
“서준 한, 탄약그룹 회장께서 지정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노벨 평화상.
무기 팔아 먹고사는 방산 기업 회장 직함과 묘하게 어울리는 감투였다.
* * * *
며칠 전, 노르웨이의 노벨 위원회. 안경을 쓴 두 백인 남성은 산처럼 쌓인 서류 더미 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어디… 물리학상, 화학상, 생리학·의학상 수상자는 다 결정되었군요.”
과학 분야에 있어서, 인류에게 중대한 영향을 끼칠 만한 발견을 한 이에게 주어지는 노벨상.
성과가 눈에 딱 보이는 과학 쪽 분야인 물리학상, 화학상, 생리학·의학상은 그만큼 수상자를 선정하기도 쉬웠다.
“경제학상도 거진 결정이 끝났다고 봐도 좋습니다. 행정 절차만 남았으니까요.”
몇몇 이견이 있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까지 정해진 상황.
노벨 위원회 최종 심사 위원 두 사람은, 마지막으로 남은 방학 숙제를 해치우듯 손에 쥔 펜을 끄적거렸다.
“그럼, 이제 남은 수상자 결정은 두 개로군요.”
“문학상과 평화상. 문학상이야 일단 차치한다 치고.”
예년보다는 훨씬 결정하기 쉬운, 올해 수상자에 대한 인적 사항을 바라보면서.
“평화상은 이 사람으로 할 거라고 봐야겠지요?”
슥슥, 묵직한 검은색 잉크가 닿은 펜촉이 그리는 동그라미 하나.
그 동그라미 안쪽에는 동양인 남성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Seojun Han. CEO of Tanyak Corporation.
한서준, 탄약그룹 회장.
그 이름에 얽힌 서사가 퍽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피식, 웃음 짓는 노벨 위원회 심사 위원.
“사실 어찌 보면 문학상이 더 잘 어울리는 후보자인데 말이죠. 워낙에 다이나믹한 사람 아닙니까, 특히나.”
툭, 툭.
서류 더미를 두들기는 만년필 뒤축. 거기에는 추천서 한 장이 꽂혀 있었다.
추락하기 전의 핑 전(前) 주석이 선심 쓰듯 작성해 보낸, 노벨 평화상 후보자 추천서가.
“자기를 나락으로 떨어트린 사람에게까지 추천서를 받아낼 정도라면 말이지요.”
“하하하, 나도 보았습니다. 인생은 역시 멀리서 보면 희극이에요. 가까이서 자기 삶을 사는 핑 전(前) 주석에게는 비극이겠지만.”
“뭐, 여하간에 서준 한, 이 사람은 평화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합니다. 하나하나 언급해 볼까요?”
드르륵, 화이트보드에 걸린 한 사람의 일대기. 지휘봉을 든 심사 위원은 그 타임라인을 하나하나 가리키며 설명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사우디 쿠데타… 크흠, 이건 일단 빼고.”
다소 민망한 빈 살만 왕세자의 추천서는 접어둔 채, 계속해 가는 진행.
곧바로 태국의 잉탁 총리의 추천서가 탁자 위에 올랐다.
“태국 군부의 반란을 막고, 크라 운하 건설의 물꼬를 텄지요.”
“태국 남부 이슬람 군벌의 준동을 막아냈기에, 흘렸을 뻔했던 수많은 피를 아꼈습니다.”
얼마 전, 성공적으로 개통한 크라 운하.
기존에 비해 훨씬 안전해진 항구는, 통행하는 선박에 있어 해적 위험을 크게 줄여 주었다.
“위구르 인권 문제도 건드렸습니다. 그것도 UN이라는 공식적인 기관을 통해서요.”
“서방 세계에서도 눈치를 보던 문제인데, 쉽지 않을 선택을 한 게지요.”
과거, 장 대인과 제임스 왕 이사를 주저앉혔던, 신장 위구르 재교육 캠프에 대한 폭로.
빈 살만 왕세자에 이어 이슬람 세계에서도 호감을 갖는 이유였다.
“저는 서준 한 회장의 업적 가운데 백미로 일본에서 있었던 일을 꼽겠습니다. 후쿠시마 사태 말이지요.”
“아아!”
그리고, 지구본을 반 바퀴 돌려, 서태평양의 끝자락에 위치한 일본.
“마침 일본 총리도 이번에 추천서를 썼습니다. 서준 한 회장만 한 사람이 세상에 또 어디 있느냐면서요.”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붕괴를 막아낸, 국민 영웅이나 다름없는 위치이기에, 일본 총리는 그 후로 매년 물밑으로 추천서를 써내곤 했다.
“대형 재난을 몸소 막아내었으니, 영웅이라 할 법합니다. 여기에, 국제적으로 파급 효과가 큰 것이라면.”
툭, 탁자 위에 올려진, Y자 포즈로 만세를 하는 사람들의 사진.
이스라엘 총리와 바티칸의 교황이 보낸 추천서가 동봉된 그 사진의 배경은 바로.
“예루살렘 선언.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를 가진 이들에게, 이보다 중요한 게 또 있을까요?”
“실제로 작년에 이 건으로 평화상 후보까지 올랐었지요. 세상에,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세 종교에 화해를 주선하다니!”
“그러니, 올해에는 꼭 상을 수여해야 하는 겁니다. 거기에 더해, 여기 추천서 한 장이 더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핑 전(前) 주석이 보낸 추천서.
비아냥의 뜻으로 작성한 그 추천서에는 표면적으로나마 좋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가령.
“동북아시아 평화 체제 확립. 본래 핑 전(前) 주석이 추천서를 썼을 때의 의미는 조금 달랐겠습니다만.”
“뭐, 결과는 동일하게 나오기야 했잖습니까. 동북아시아 평화 체제 확립.”
졸지에 평화의 사도가 된 운명.
모로 가도 서울만 가도 된다고, 결국 동북아시아에 평화는 찾아왔다. 핑 전(前) 주석이 바란 형식은 아니었지만.
“그럼, 결정합시다. 올해의 영광을 차지할 이를.”
고개를 끄덕이는 두 심사 위원.
마침내 서랍에서 큼지막한 도장 하나가 탁자 위에 올려졌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를 확정 짓는, 그 명예로운 도장이.
“서준 한 노벨 평화상 수상자. 부디 올해 연말에 노르웨이로 꼭 와 주셨으면 좋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