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9화 노벨 평화상(3)
노르웨이로 가는 전용기 안.
가는 길 내내 나는 좀처럼 헛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운명의 장난도 정도껏이어야지, 이렇게 안 어울리는 조합이 또 있을까?
그러니까, 이 상황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어둠의 무기상이 노벨상이라니, 그것도 노벨 평화상이라니, 믿기지가 않네요.”
“원래 세상은 아이러니한 겨.”
평화를 추구하는 무기 상인.
평화를 사랑하는 전쟁광.
후자의 문장이야 조금 어폐가 있지만, 적어도 전자의 문장에 해당하는 것이 지금 상황일 터였다.
그런 내 모습이 퍽 재미있었는지, 씰룩거리는 웃음을 지으며 내게 대답하는 김원철 아저씨.
“흐흐흐. 노벨 그 아저씨도 사실 방산 기업 회장이었어야. 다이너마이트 판 돈으로 만든 게 노벨상이고.”
“뭐… 그렇긴 합니다.”
“그리고, 괜히 엄한 미국 대통령한테 주는 것보다, 우리 회장님이 받는 게 더 맞을걸?”
하기야, 별 의미도 없이 그저 의전용으로 주어지는 상이라는 평도 있다.
지극히 정치적인 계산하에서 수여되는, 노벨 평화상이라는 명예.
김원철 아저씨는 홀릴 듯한 혓바닥으로 ‘왜 내가 올해의 노벨 평화상을 받기 가장 그럴듯한 인물인가.’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실제 성과도 우리 회장님이 이룬 게 더 빼어나고. 봐봐. 노벨 위원회에서도 인정했다니까.”
또다시 내 눈앞에 펼쳐 보이는, 노벨 위원회 측에서 보낸 수상 대상자 안내 서신.
온갖 좋은 미사여구로 수식된 그 서신에는 참 많은 일화가 적혀 있었다.
태국 쿠데타 건부터 시작해서, 신장 위구르 문제, 일본 후쿠시마 사태, 예루살렘 선언까지 전부.
“크흐, 돌이킬 수 없는 재난을 막아 세우고 세계 평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하여, 어쩌고저쩌고.”
그리고 문단의 맨 마지막에 적힌, 결정적인 문장 하나.
“동북아시아 평화 체제 확립이라.”
이건 뭐랄까, 곧 다가올 크리스마스 선물을 미리 받은 느낌이다.
그것도 불룩한 배가 인상적인 게, 꼭 산타할아버지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에게 말이지.
“핑 주석이 의도치 않은 선물을 주고 갔네요.”
“동양인 산타가 주는 선물은 냅다 줍는 게 답이여. 어쨌거나 중앙 정계를 떠난 산타도 산타니까.”
산타가 준 선물을 어서 받으러 가라는 듯, 아래쪽을 향해 머리를 돌리는 비행기.
몸이 살짝 뜨는 느낌과 함께, 비행기는 점점 활주로를 향해 가까워져 갔다.
“자, 그럼. 어디 선물을 수령하러 가 봅시다.”
비행기 창 밖으로 보이는, 겨울철의 오로라.
그 몽환적인 빛줄기를 천천히 눈에 담으며 내가 말했다.
“노벨 평화상. 참 안 어울리지만, 또 막상 받고는 싶은, 그런 선물을요.”
* * * *
노벨상이 수여되는, 노르웨이 오슬로의 노벨 위원회 건물.
예년과 달리, 올해는 유난히도 홀 안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학자나 교수, 기업가들이 과학사(科學史)에 족적을 남긴 석학을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평소였다면 그리 신경조차 쓰지 않을 한 사람, 오직 한 사람을 만나보기 위해, 북극에 가까운 이 먼 곳까지 날아온 각국의 권력자들.
“크흐흐흐, 서준 한 회장이 노벨 평화상을 받는다라!”
그 가운데 가장 영향력이 세다고 할 수 있는 양 웬리 부통령.
그는 이 상황이 퍽 재미있으면서 한편으로는 아쉬웠던 모양이다.
공동 수상의 욕심을 버리지 못한 것을 여과 없이 입 밖으로 드러냈을 정도였으니까.
“이거, 조금 아쉽게 되었군. 나도 같이 받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욕심이 과하면 탈이 나는 법.”
그리고, 그 욕심을 직설적으로 지적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빈 살만 왕세자.
“그냥 부통령 자리에 오른 것만으로도 만족함이 옳을 것 같습니다만.”
“아아, 또 그렇게 촌철살인의 말을 하시면 곤란합니다. 왕세자님.”
말은 사납게 해도, 이제는 서로 친분이 깊어진 두 사람.
자리에 선 채로 황금빛 샴페인 잔을 주고받으며, 양 웬리 부통령이 뒷말을 덧붙였다.
“뭐, 사실 이 부통령 자리 또한 서준 한 회장이 만들어 준 것이나 다름없지만.”
“나와 같군요. 이 왕세자 자리 역시 그가 만든 것이라 할 수 있지요.”
쨍, 허공에서 가볍게 부딪히는 두 개의 유리잔.
잔에 담긴 샴페인이 기울어지려는 그때, 유리잔에 누군가의 얼굴이 거울처럼 비쳤다.
“양 웬리 부통령님, 빈 살만 왕세자님. 이거, 간만에 뵙습니다.”
“아아, 총리님 오셨습니까. 어어…?”
검은색 연미복을 입은 채 자리에 참석한 이스라엘 총리.
그리고, 그 옆에 도드라지는 흰색 옷을 입은 한 사람.
세례명 레오 4세, 바티칸 교회의 지도자, 교황이었다.
“허어, 교황 성하께서 이 자리에 직접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만?”
“예루살렘 선언 원년 멤버들이 전부 오는데, 마땅히 참석해야지요. 더군다나 오늘은 그저 평범한 모임이 아니잖습니까.”
그날, 예루살렘 선언 이후 찾아온 중동 세계의 평화.
물론, 허구한 날 내전이 벌어지는 중동인 만큼, 완전한 평화가 찾아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게 어디인가.
적어도 내전을 하더라도 같은 종교 다른 분파끼리 갈라져 싸울 뿐, 화약고나 다름없는 세 종교가 서로 부딪히는 일은 거의 없었으니까 말이다.
“마침내 성지 예루살렘에 찾아온 평화. 그 기념비적인 사건을 노벨 평화상으로 기리는 날이니 말입니다.”
“서준 한 회장이 상을 받게 되면, 여기 계신 분들께서 지니신 정당성도 같이 올라가기 마련이지요.”
물론, 순수하게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에서만 비롯된 것만은 아닐 터.
네 명의 예루살렘 선언 원년 멤버들은 각기 오늘 얻어갈 정치적 이익을 속으로 계산하고 있었다.
서로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리고, 그 순간.
뎅그렁, 장내를 울리는 황동제 종소리.
“이런, 벌써 시작하나 봅니다.”
“수상 순서가 어떻게 된다고 했었지요?”
-지금부터 올해의 노벨상 수상식을 시작하겠습니다. 모두 자리에 앉아 주시길 바랍니다.
마이크를 쥔 사회자의 목소리.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는 행사인지, 벌써 과학자들 몇몇이 연단 위로 오르고 있었다.
“먼저 과학 분야부터 수상한다고 합니다. 물리학상, 화학상, 생리학·의학상 순으로요.”
“그다음이 경제학상, 문학상이고, 그렇다면 맨 나중이 평화상이라.”
-이 자리에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 주신 내·외 귀빈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는 바입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훌쩍 지나간 시간.
시간은 어느덧 밤 열한 시. 마침내 기다리던 순서가 다가오자, 양 웬리 부통령이 뜻 모를 웃음과 함께 혼잣말을 내뱉었다.
“뭐, 주인공은 맨 나중에 등장하는 법이니까.”
-이상으로, 경제학상, 문학상 수상을 모두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남은 수상식은 오직 하나! 세계 평화에 혁혁한 공로를 세운 분께 드리는 바로 그 상!
연단 위로 한 발자국씩 발걸음을 옮기는, 올해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를 지그시 바라보며.
-노벨 평화상! 올해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신 분이지요. 서준 한 회장님을 큰 박수 소리로 맞이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 * * *
박수갈채는 긴 시간 이어졌다.
이쯤 되면 박수를 치는 사람들의 손바닥 건강까지 생각해야 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축하드립니다, 서준 한 회장님.”
“감사합니다.”
내게 전해진 노벨 평화상.
노벨 아저씨의 얼굴이 조각된, 황금빛 메달이 꽃다발과 함께 내 품에 안겨졌다.
물론, 사회자가 건넨 마이크도 함께.
“소감 한마디 하셔야지요. 역대 최연소 노벨 평화상 수상자이시기도 하니 말입니다.”
연단 아래에서 나를 올려다보는 수많은 사람.
전 세계의 과학계, 재계, 그리고 정계의 거물급들이 모두 나 한 사람이 어떤 말을 하는지 듣기 위해 귀를 쫑긋 기울이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모종의 계기로 눈을 뜬 후부터요.”
미래에서 왔다는 말도, 회귀했다는 말도 꺼낼 수 없기에, 다소 빙 둘러 표현하는 첫 마디.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잘 모르겠기에, 나는 그저 솔직하게 내 마음속 말을 전했다.
“사실, 세상을 위해 무언가를 하겠다 마음먹은 적은 없었습니다. 그저 스스로를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이죠.”
스스로를 위해 최선을 다한 삶.
그것만으로 충분히 족하다고 생각했건만, 세상은 그리 생각지 않은 모양이었다.
“제가 행한 것들이 나비효과가 되어 노벨 평화상이라는 과분한 결과로 돌아오니 다소 부끄럽기까지 합니다만.”
내게 노벨 아저씨가 그려진 황금빛 메달을 건네주었을 만큼.
다시금 메달 속에 새겨진, 평화를 사랑하는 무기 상인을 바라보며, 나는 마지막 말과 함께 소감 발표를 마무리 지었다.
“모두가 자신이 처한 삶에서 최선의 수를 두다 보면, 이런 식의 좋은 결과도 만들어 낼 수 있겠구나, 그런 마음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처음 연단에 섰을 때와 같은 강도의 박수갈채.
인파를 향해 한쪽 팔을 흔들며 연단에서 내려가자, 김원철 아저씨가 웃음 지으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믓진데? 우리 회장님.”
“멋지긴요. 뭔 말을 했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흐흐흐, 벌써 그러면 안 되는디. 아직 하나 더 남았는디 말이여.”
그냥저냥 평소처럼 농담을 던지는 건가 싶었건만, 꽤 진지한 표정의 김원철 아저씨.
“하나가 더 남았다니요?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아무래도 내가 예상치 못한 무언가가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노벨 평화상에 견줄 만한, 어떤 명예로운 무언가가.
“아무래도 상 복은 단단히 터진 모양이여, 우리 회장님이.”
“네…?”
“그 있잖아, 국가 통일 자문 위원회였나? 그 대빵 자리.”
“아아, 위원장 자리요? 그것도 취임식 가기는 가야 합니다만.”
국가 통일 자문 위원회 위원장 취임식.
사실 별것 아니건만, 왜 아저씨가 괜한 소리를 하나 싶었다.
그러나.
“흐흐흐, 그냥 취임식만으로 안 끝나니 말이지.”
짜잔, 소리 없는 효과음과 함께 내 눈앞에 내밀어진 종이 한 장.
통일 대한민국 정부 문장이 박혀 있는 그 종이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신(新) 건국 훈장 수여 대상자: 한서준.
“신(新) 건국 훈장? 그것도 최고 등급의…?”
그래, 저번에 성북동 상왕 그 양반에게 얼핏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예 기존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체(國體)를 합친, 새로운 정부가 수립될 것이라고.
그렇다고 신(新) 건국 훈장을 내게 주겠다고? 내가 무슨 건국의 아버지라도 된다는 말인가?
“어쨌거나 통일 대한민국은 새로운 나라니까 말이여.”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김원철 아저씨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데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을 꼽자면.”
나를 향해 가리키는 검지 손가락의 까딱거림을 보는 것과 더불어서.
“아무래도 우리 회장님 말고는 없다고 봐야지 않겄어? 흐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