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화 완결(完)
노벨 평화상을 받은 지, 채 열흘도 지나지 않았건만, 또다시 아홉 시 뉴스 첫 꼭지에 걸린 내 얼굴.
어디 고대 왕국의 황제가 사용했던 장신구에 비견될 만큼, 화려한 보석과 정교하게 세공된 황금으로 만들어진 신(新) 건국 훈장.
언론에서는 연일 내 얼굴과 그 화려한 훈장을 번갈아 가며 화면에 비춰 주었다.
바로 지금, 이곳 광화문 광장에서 통일한국 정부 수립 행사가 열리는 날까지도.
“여기저기서 참 많이도 왔구먼. 이게 다 한 회장, 자네를 보러 온 손님들 아니겠는가.”
경복궁 해치가 있는 곳부터 시작해 세종대왕 동상과 이순신 장군 동상을 지나, 저 멀리 숭례문까지를 가득 메운 인파.
새로운 세상이 열린 만큼, 사람들 또한 가슴 속에 기대가 넘치는 모양이었다.
1월 1일. 신년 초하루에 맞추어 진행되는 통일 대한민국 신(新) 건국 행사.
구름처럼 몰린 인파 가운데, 외국 귀빈들이 모인 곳을 바라보며, 내 옆에 선 성북동 상왕이 입을 열었다.
“예루살렘 선언 멤버들이야 노벨 평화상 수여식에도 갔었고, 태국의 잉탁 총리, 일본의 총리대신, 중국의 상하이방 출신 신임 주석.”
노벨 평화상 수여 당시에는 참석하지 못했던, 다른 수많은 국가 원수들.
특히나, 나와 인연을 맺은 이들은 자기들끼리 한데 모여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뭔가 전부 다 한 성깔씩 하는 사람들인데도 말이지.
“사우디의 빈 살만 왕세자와 러시아의 뿌틴 대통령까지. 이거 숫제 국가 원수들을 부르는 사나이 아니냐 이 말이지.”
“…어쩌다 보니, 팔자가 그리 바뀌었나 봅니다. 아니, 정확히는.”
만족스럽게 웃는 성북동 상왕이 뭔가 얄미웠기에, 나는 툭 하고 말 한마디를 던졌다.
“제 팔자, 이렇게 바꾸는 데에 단단히 한몫하시지 않았습니까.”
“음?”
“신(新) 건국 훈장 아이디어, 직접 내셨다면서요.”
피식거리던 웃음이 박장대소로 바뀌는 데에 걸린 시간은 불과 눈을 한번 깜빡하는 정도면 충분했다.
한참 동안 이어진 웃음을 간신히 멈추고서야 내 핀잔 아닌 핀잔에 대답하는 성북동 상왕.
“아아, 저 멀리 코쟁이들도 한 회장 위신 세워 준다고 상을 주는데,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될 일이지.”
“그런 겁니까?”
“경제적 보상은 충분히 한 것 같으니, 내 명예까지 돈독히 챙겨 주어야 하지 않겠나.”
물론 성북동 상왕이 내 지난 노고를 이런 명예로 퉁치거나 하지는 않았다.
서한만 유전 독점권을 비롯한 북한 각 지역의 개발권과 자원 채굴권. 그리고 나열하기에는 여백이 부족할 만큼 지대한 정부 입찰 내용과 각종 세제 혜택까지.
1,000조 원이라는 거액을 단 한 번에 만들어 온 만큼, 그 보상은 확실했다.
“한 회장님, 오셨습니까.”
“아아, 장관님.”
그리고, 때마침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온 외교부 장관.
“수상식 이후 일정입니다. 아무래도 주요 국가원수분들께서 오늘 꼭 회장님을 뵙고 싶다고 하셔서 말입니다.”
A4용지 한 장을 빼곡하게 메운, 내 공식 일정.
여느 국가원수 못지않은 분 단위의 일정을 바라보며, 나는 쓴웃음과 함께 대답을 건네었다.
“…알겠습니다. 오늘 최대한 힘써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 부탁드립니다. 그럼 슬슬 행사가 시작되오니 준비해 주시길 바랍니다.”
외교부 장관이 말을 마침과 동시에, 곧바로 시작되는 행사.
-빰빠라밤!
-펑! 펑!
경쾌한 나팔 소리와 함께 하늘 위를 수놓는 예포 소리.
곧바로, 새로운 세상의 첫해를 알리는 보신각 종소리가 뎅그렁뎅그렁 광화문 광장을 가득 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연단에 올라선, 검은색 두루마기를 입은 최 대통령의 모습.
-지금부터 통일 대한민국의 신(新) 정부 수립식을 시작하겠습니다!
통일 대한민국의 첫 번째 대통령이 된 최 대통령.
비록 바지사장에 지나지 않건만, 그 모습이 퍽 부러웠던 모양이다. 팔짱을 낀 성북동 상왕이 아쉬운 듯 입을 열었다.
“이거야 원, 영예로운 자리는 죄 최 대통령 저 친구가 다 도맡는구먼.”
“많이 아쉬우십니까?”
“자네를 몇 년 더 일찍 만나지 못했던 것은 아쉬울 따름이지. 그랬다면, 저 자리에 내가 있었을 테니까.”
몇 년 더 일찍 만났으면 어땠을까, 하는 말을 연신 중얼거리는 최 대통령.
사람은 다 똑같은 법인가 보다. 지나간 시간, 이루지 못한 일들, 얻지 못한 것들에 대해서는 항상 아쉬워하니.
-오늘 이 자리에서 저는 선언합니다! 새로운 통일 대한민국의 미래는 눈부시게 빛날 것이라고!
-와아아아아아!
후끈, 겨울철임에도 열기로 달아오르는 광화문 광장.
그 모습을 바라보며, 성북동 상왕이 무언가 묘한 말을 내게 던졌다.
“뭐,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려 과거로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할 수 없지.”
“…그러게 말입니다. 과거로 갈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무슨 공상 과학 소설 속 이야기도 아니고.”
미래에서 과거로 갈 수 없는 것은 당연하지만, 어쨌거나 나는 그렇게 돌아와 현실을 바꾸었다.
그것도 내가 바라 왔던 것을 아득히 뛰어넘어 세상의 인과율(因果律) 자체를 비틀었을 만큼.
-이상으로 최 대통령님의 대국민 연설이 있었습니다. 그럼, 다음 식순으로 신(新) 건국 훈장 수여식이 있겠습니다!
나를 부르는 사회자의 목소리.
잘 다녀오라는 격려를 담아 내 어깨를 두들기는 성북동 상왕. 그렇게 연단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그가 내게 다시금 뜻 모를 말을 던졌다.
“물론, 한 회장은 좀 다르긴 하지.”
“네…?”
-통일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에 가장 큰 공헌을 한 분께 주어지는 신(新) 건국 훈장. 오늘 이 훈장을 받을 위인(偉人)은 단 한 사람뿐이라는데요.
-얼마 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시고 돌아오신 분이시지요. 서른이 갓 넘은 젊은 나이에도 세상을 크게 바꾼 남자!
“이제까지 해낸 일들을 보면, 뭐랄까… 가끔 이런 생각도 들기도 했거든.”
묘하게 촉이 좋은 티를 팍팍 내면서.
“이 친구, 어쩌면 정말 미래에서 온 게 아닌가 하고 말이지. 하하하.”
“하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가끔 제가 미래에서 온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니까요.”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겨울의 낮.
유독 찬 기운도 덜한 새해 첫날을 맞이하며, 나는 연단으로 한 걸음씩 걸어 나갔다.
만인(萬人)이 내게 보내는, 칭송을 온몸으로 받으면서.
-국가 통일 자문 위원회 위원장이자 탄약그룹의 최고 경영자, 한서준 회장님을 이 자리에 모십니다! 모두 큰 박수로 환영해 주시길 바랍니다!
* * * *
노벨 평화상과 신(新) 건국 훈장.
그 두 개의 상패는 지금까지도 내 서재의 가장 잘 보이는 곳에서 자랑스러운 장식품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때 이후로 몇 년의 시간이 더 흐른 지금까지도.
“벌써 이렇게 시간이 지났다니, 세월 참 빠르네.”
팔락, 달력을 넘겨 D-day가 표시된 날짜에 빨간색 동그라미 하나를 그려 넣는 나.
연, 월, 일 모두 그때 그날이다.
내가 과거로 돌아오기 전, 감옥에서 의식을 잃었던, 바로 그날.
“20XX년 10월 14일….”
이날을 위해서 일부러 시간까지 비워 둔 나.
최대한 단정한 정장 차림을 한 채, 나는 본가 뒤편 북한산 자락에서 내려오는 새벽 공기를 들이켰다.
“서준아, 새벽부터 나가는 거니? 어제부터 오늘까지는 아예 쉰다고 하지 않았어?”
내가 채비하는 소리에 잠에서 일찍 깨신 모양이었다. 졸린 눈을 비비며 1층 거실로 내려온 엄마.
구두끈을 질끈 동여매며, 내가 대답했다.
“아아, 잠깐 선산에 좀 다녀올까 해서요.”
“선산? 기일도 아닌데?”
“그냥… 아버지하고 할머니한테 다녀올까 해서요. 따로 들를 곳도 있고.”
* * * *
탄약그룹 문중 소유의 선산은 구미 탄약공장 근처에 있었다.
나는 향로에 청록색 향을 꼽고, 무덤 위에 준비해 둔 청주를 흩뿌리며 말했다.
“저 왔습니다. 오래간만에 찾아뵙는 것 같네요.”
아버지와 할머니.
두 분의 무덤가에 노벨 평화상과 신(新) 건국 훈장을 올려둔 나.
벌써 퍽 많이 자란 잔디.
나는 아직 푸르름을 잃지 않은 그 잔디를 손으로 쓸어내리며, 아무도 듣지 못할 목소리로 속삭이듯 읊조렸다.
“믿으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오늘은 편하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이제야 시간대가 맞았다고 해야 할까요.”
휘잉, 뺨을 스치는 한 줄기 바람.
마치 내게 대답하듯 불어온 북풍에, 나는 다시 청주를 잔에 채우며 하던 말을 이어나갔다.
“운 좋게 얻은 새로운 삶이었습니다. 덤으로 살았다고 생각하고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이루고픈 것은 다 이룬 듯합니다.”
툭, 툭.
무르팍에 묻은 흙먼지를 털고 일어선 나.
“지위도 부(富)도 명예도 전부.”
흰 장갑 낀 손바닥으로 비석을 매만진 나는, 고해성사하듯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모든 일이 시작된 곳, 그리고 이제껏 감히 가 볼 엄두도 내지 못했던 그곳으로 발걸음을 돌리며.
“오늘은 그간 망설여 가 보지 못했던 곳으로 가려고 합니다. 모든 것의 시작이 있었던… 그 불가사의한 곳으로요.”
* * * *
구미 탄약공장 인근의 모 교도소.
“아이고! 오셨습니까! 이거, 회장님이라 불러드려야 할지, 위원장님이라고 불러드려야 할지… 헤헤헤.”
이곳 교도소는 나에게 있어서 특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삶에서 무려 10년 이상을 지내온… 집 같은 곳이었으니까.
“편한 대로 불러 주십시오. 제 숙부님과 사촌분들은 잘 계시는지요?”
그리고, 참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이곳에 집어넣었던 숙부 또한 여기로 이감(移監)된 상황.
“다들 건강하십니다. 출소를 앞두고 생기가 돌았다고 해야 할까요.”
“잘 되었네요. 아무쪼록 계속 신경 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날, 모든 것이 끝난 이후, 숙부는 조용히 감옥으로 들어갔다.
아무런 저항도 없이, 그저 자신의 업보를 씻는 수행자의 모습으로.
“그럼요, 그럼요. 아! 바로 면회부터 하시겠습니까? 바로 소장실을 비워드리겠습니다!”
“아, 그건 좀 이따 했으면 하고요. 일단 좀 거닐고 싶은 곳이 있습니다.”
“네…?”
그리고, 지금.
나는 교도소장에게 약간의 엉뚱한 부탁 하나를 했다.
평소라면 그 어떤 빈객도 요청하지 않을, 교도소 내 운동장을 산책하고 싶다는 부탁을.
“철봉이라.”
그때 내 기억 속과 전혀 다를 것이 없는 철봉.
회색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진 그 철봉을 만지자, 과거 일이 머릿속에 새록새록 떠오르는 듯하다.
그래, 한동안 잊고 지냈던, 나를 과거로 되돌려보낸 대식이 녀석의 존재까지도.
“그러고 보니, 대식이 그놈은 여기 없나 보네. 도대체 무슨 운명의 장난인 건지.”
고개를 들자 보이는 높고 푸른 하늘.
교도소 담장으로 가려진 가을 하늘은, 이제는 더는 갑갑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뭐, 아무렴 어떤가 싶기도 하고.”
다소 싱겁게 느껴지는, 모든 일을 마무리 짓고 돌아서려는 바로 그때.
“행님. 잘 지내셨능교?”
내 귓가에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
“대식이…?”
“하이고, 신수가 훤하네. 본래 누렸어야 하는 삶이니 훤한 거이 당연하지만서도.”
사람인지 귀신인지, 아니면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미지의 존재인지.
모든 것을 아는 듯, 제 할 말만을 쏟아내던 대식이는 특유의 해맑은 얼굴을 하고 내게 손인사를 건네었다.
“인과율(因果律) 틀어진 건 내 잘 맞춰 두었으니, 쭉 그래 살면 되는 겁니데이.”
흐릿해지는 모습과 함께.
“행복하게, 다시 얻은 인생 속에서.”
[작가의 말]
가장 먼저, ≪회장님의 핵몽둥이≫를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완결편까지 작성한 모든 원고를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좀 더 잘했으면 어땠을까 싶은 마음도 들기도 하고, 다음에는 이 마음을 자산으로 삼아 더 좋은 작품으로 다시 독자분들께 돌아가야겠다는 생각도 들곤 합니다.
작가라는 업은 계속 이어나가고자 합니다. 좀 더 스스로를 갈고 닦아 좀 더 재미있고 만족스러운 차기작을 선보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조만간 다시 뵙게 될 그날까지 독자분들 모두 강녕하시길 바랍니다.
마무리 인사는 독자분들에 대한 감사로 갈음토록 하겠습니다.
본 작품을 읽어주신 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청학윤 배상(拜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