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회귀 실패?![2]
“뭐야! 꼬맹이! 스마트 워치 다룰 수 없는 건가?”
가람이 스마트 워치를 이리저리 작동하다가 멘탈이 나간 것으로 오해한 듯 약간 무뚝뚝한 인상을 가진 짧은 머리의 30대 중반의 백인 남성이 다가왔다.
그리고는 백인 남성은 가람의 손목을 보더니 스마트 위치를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걸 확인했고 웃으며 말했다.
“뭐야? 제대로 작동 시켰잖아.”
“저기.. 오늘이 2019년 1월 15일이 맞나요?”
“맞지. 왜? 무슨 일이라도 있어? 완전 넋이 나간 사람처럼.”
남성의 말에 가람은 더욱 맨탈이 나간 듯 고개를 숙였다. 그때 다시금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한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삐이익!!
“자아~ 가까운 사람이랑 마무리 스트레칭 들어간다. 그리고 리 캐터몰 주장!”
한스의 호명에 가람의 옆에 있던 백인 남성이 손을 들며 대답했다.
“네엡! 유소년 총괄님.”
“네 옆에 있는 꼬맹이 잘 부탁한다. 1군 콜업이야.”
“알겠습니다. 제가 옆에서 돕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대답한 리 캐터몰은 가람을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축하한다. 꼬맹이!”
투우욱!
리 캐터몰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가람의 등을 가볍게 치자 가람은 꼭 바람에 휘날리는 연처럼 휘청거리더니 자리에 주저 앉았다.
“뭐야! 기분이 좋아서 주저 앉은 거냐?”
리 캐터몰의 말에 가람은 여러가지 믿기지 않는 현실에 약간 멍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믿기지 않는 현실이라서요.”
“크하하하. 처음에는 다 그렇지. 그래도 내가 보기에는 축구 센스가 있으니 충분히 잘할 수 있을 거다. 적응은 걱정하지 말고 이 몸이 도와줄 테니 말이야.”
리 캐터몰은 주변을 보더니 크게 소리를 질렀다.
“자아! 오늘부터 1군에서 뛰게 될 슈퍼루키 가람이다! 다들 친하게 지내고! 뭐 그를 괴롭히다가 걸리면 경비 총괄님한테 혼나거나 점심밥에 독극물이 들어갈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가람의 외할버지가 경비총괄, 어머니가 주방 보조라는 걸 알려주듯 재미있게 경고하는 리 캐터몰의 말에 선수들은 웃음으로 화답하며 둘씩 짝지어 몸을 풀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들 화기애애하게 몸을 풀고 있을 때 승연은 약간 넋이 나간듯 눈 앞에서 자신을 리드하고 있는 리 캐터몰을 따라 몸을 움직였다.
삐리링
[회복 스트레칭 프로그램을 시작합니다.]
그와 동시에 눈 앞에 스트레칭을 하는 승연의 몸을 스캔한 듯한 푸른색의 3D 모델이 그의 움직임을 따라했다.
3D 모델이 몸 이곳 저곳에는 붉은색 구간들이 보였는데 스트레칭을 하면 할수록 파란색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승연은 멘탈이 나간 상태였지만, 스트레칭을 통해 3D 모델이 몸에 있는 붉은 색을 전부 푸른색으로 바꾸었다.
그러자
띠리링
[부상 방지 스트레칭 튜토리얼이 완료했습니다.]
[1포인트를 지급합니다.]
[미분배 포인트 : 4]
‘이건 뭐야.. 도대체 선더랜드 승격 시키라면서!! 내 몸도 아니고 내가 태어나기 전으로 보내면 어쩌라는 거야!!’
승연은 튀어나오는 메시지에 답답해 대답을 기대하지 않고 울분을 터뜨렸다. 그때 자신을 이 상황에 빠뜨린 원흉인 신성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태어나지 않은 시간 속에서 너의 능력을 증명해라. 그래야 윤회가 가능할 것이다. 넌 이제부터 가람이다.”
[가람의 기억과 자의식을 동기화 합니다.]
생각지도 않은 메시지 창의 등장과 함께 승연은 순간 머리에 찌릿한 충격을 받았다.
그와 함께 승연의 머릿속에는 18년 동안 살아온 가람의 인생에 대한 함축적인 기억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이 승연이라는 자의식은 조금 희석되며 가람이라는 인격과 합쳐져, 승연은 스스로 자신이 가람이라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말은 길었지만 짧은 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옆에서 같이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던 리 캐터몰은 가람의 떨림을 목격할 수밖에 없었다.
“어이 꼬맹이. 어디 몸이라도 안 좋은 거야?”
“아.. 아닙니다.”
“그래. 그거 아니라면 이제 스트레칭은 끝났으니 네 짐 챙기러 가보도록 할까?”
“짐이요?”
“그래. 아까 못 들었어? 이제 1군 콜업이라고.. 그 망할 도널드 녀석이 술에 취해서 전봇대를 발로 차는 바람에 부상을 입었으니 말이야.”
“전봇대요?”
“그래 망할 놈. 귀신은 뭐 하는 건지... 그런 놈 안 잡아가고.. 어이! 윌 그릭 몸은 다 푼 거야?”
대화를 하다가 누군가 눈을 마주친 리 캐터몰이 갑자기 화제를 바꾸었고, 그에 따라 가람도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아까 자신에게 슈퍼 루키라고 칭찬을 했던 스트라이커가 가람의 시선에 느끼한 웃음으로 화답해주었다.
“화제를 바꿔서 미안. 자아 우선 앞으로는 1군 주전을 따내는 것을 목표로 하자고!”
리 캐터몰은 그 후 가람을 데리고 1군 훈련장 옆에 있는 유소년 시설로 갔다.
가람은 아까 동기화를 통해 얻은 정보로 능숙히 자신의 자리를 찾아 간소히 짐을 꾸리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리 캐터몰은 입을 열었다.
“뭐야? 짐을 너무 간소하게 싸는 거 아니야?”
“1군 콜업이니 만약 도널드씨가 회복되면 다시 돌아오지 않겠어요?”
가람이 말을 마치려는 순간 등에 화끈한 느낌이 들었다.
짜아악!!
“어이! 꼬맹이! 너 임마! 엄마랑 외할아버지 생각해서 이를 악물고 1군에서 자리를 잡아야지. 그리고 아까 내가 했던 말 못 들었어?! 1군 주전을 따내겠다는 마음가짐! 그게 중요한 거야! 여기 있는 짐 다 싸도록 해.”
생각지 않은 리 캐터몰의 불호령에 가람은 서둘러 짐을 싸기 시작했다.
‘뭐야.. 이 주장은 너무 선 넘는 거 아니야?;
가람은 지난 생에서도 이렇게 오지랖을 부리는 백인은 본 적이 없었다.
좋은 오지랖이기는 했지만 이런 캐릭터는 회귀를 통해 여러 삶을 살면서도 느껴본 적 없었기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가람이 짐을 다 싸고 짐은 두 명이어서는 들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그걸 본 리 캐터몰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래 나야! 여기 슈퍼루키 짐 옮겨야 하는데 손이 부족해.”
리 캐터몰의 말에 상대편은 무언가 거절하는 듯한 대답을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부주장은 주장이 없을 때 팀을 이끌어야 하는 법! 반박은 용서하지 않는다. 10분 준다. 튀어와! 사진 찍어서 보낼 테니 남은 짐은 네가 가지고 와!”
그 말과 함께 전화가 끊겼다.
“좀 있으면 일손이 올 테니 우리는 먼저 가도록 하자. 꼬맹아!”
“기다리지 않아도 되나요?”
“녀석이 잘못 찾을까봐 걱정인 건가?”
“아. 아니요.”
그렇게 둘은 짐을 들기 시작했고, 딱 봐도 무거워 보이는 짐을 리 캐터몰이 들고, 가람은 그 다음 무거운 짐을 들려고 했다. 그러자 리 캐터몰이 저지했다.
“어이.. 그건 부주장이 들 꺼니깐, 슈퍼 루키는 저기 있는 짐 들어.”
제일 작은 짐을 가리키는 리 캐터몰을 보며, 가람은 순간 당황했다.
“어서!”
굳어진 그의 표정에는 단호함이 묻어 있었고, 반박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렇게 가람은 제일 가벼운 짐을 들고 1군 훈련시설로 발걸음을 옮겨갔다.
그렇게 가람은 리 캐터몰의 도움으로 1군 훈련 시설에 위치한 개인 라커룸에 짐을 풀었다. 짐을 푼 다음에는 리 캐터몰이 직접 1군 시설에 대해서 설명해주었다.
‘생각보다 좋은 시설인데..’
동기화를 통해 알게 된 정보는 지금 선더랜드는 2048년의 선더랜드와 다르게 리그2가 아닌 잉글랜드 리그1에 소속된 팀이었다.
지난 시즌에는 챔피언쉽, 그리고 재작년 시즌에는 프리미어리그에 속한 팀이었지만, 역사상 유례가 없는 백투백 강등을 당하면서 3부리그 격인 리그1에 떨어진 것이었다.
팀 재정 악화가 되어도 승격의 꿈을 꾸고 있어서 그런지 시설은 프리미어 리그 당시의 시설을 유지하고 있는 듯 했다.
그렇게 리캐터몰과 시설을 투어를 마치고 마사지실로 가려고 했다. 그때 가람의 시야에 아까 1군과의 경기에서 만났던 조지 허니먼이 카메라 앞에서 인터뷰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리 캐터몰은 그들이 보이자마자 귀신이라도 본 듯 화들짝 놀래더니 빠르게 뒤돌아 걸음을 옮겼다.
“돌아서 가자.”
황급히 돌아서 나가는 리 캐터몰을 따라 가람도 발 걸음을 돌렸고, 그 모습을 보던 조지 허니먼의 목소리가 등뒤로 들려왔다.
“주장! 오늘도 인터뷰 안 할 거에요?”
조지 허니먼의 말에 리 캐터몰은 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조지! 인터뷰는 내 체질 아닌 거 알잖아. 네가 내 몫까지 열심히 해. 나는 꼬맹이 안내 해줘야 하거든.”
말이 끝나기 무섭게 리 캐터몰의 걸음은 빨라졌고 가람도 그의 호흡에 맞춰 빨리 걸었다. 그렇게 인터뷰하는 무리들과 거리가 떨어지자 리 캐터몰은 입을 열었다.
“미안.. 방송쟁이들하고는 사이가 좋지 않아서 말이야.”
“방송쟁이요?”
“그래. 망할 구단주가 맥플릭스 다큐멘터리에 우리 승격하는 거 보여주겠다고 다큐 찍기 시작했는데 승격은 무슨! 백투백 강등만 보여주었지. 전세계적으로 망신이라고! 뭐 이번 시즌은 가능성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모르는 일이지.”
“그렇군요.”
“뭐야? 꼬맹이! 혹시 인터뷰라도 하고 싶던 거였어? 아직은 이르다고!!”
“그럴리가요.”
그렇게 약간 돌아서 마사지실에 도착한 가람과 리 캐터몰은 훈련으로 피곤한 근육을 풀어주었다.
“가람이라고 했나?”
“네.”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것 같네. 난 1군 마사지사인 존이야. 어머니하고 외할아버지한테 네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이미 동기화를 통해 얻은 가람의 기억에 어머니와 외할아버지가 선더랜드의 광팬이며, 자신이 유소년에서 뛰고 있다는 걸 엄청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는 걸 알고 있기에 어색하게 웃었다.
“어라? 그런데 너는 많이 뭉치지 않았구나. 아까 기록으로 봤을 때 상당힌 많은 거리를 뛴 걸로 알고 있는데 어쩌면 외할아버지 닮아서 좋은 몸을 가지고 있는 걸 수도 있겠네. 아프지 않지?”
존이 몸 이곳 저곳을 누르고 자극했지만 가람은 특별히 고통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때
“으아아아!! 필립! 너무 아프다고.”
애처롭게 들려오는 리 캐터몰의 비명에 존은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저게 정상인데 말이야. 많이 뭉친 건 아닌 것 같다. 먼저 가도록 해. 저 노인네는 나까지 둘러붙어야 하거든.”
“그래도 될까요?”
“꼬맹이 끝났으면.. 먼저 가아아아아아!!! 으아아 거기는 너무 아파!! 필립!”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존도 리 캐터몰이 누워 있는 자리로 갔고, 다시금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가람은 리 캐터몰의 비명을 뒤로하고 훈련장을 나섰다.
어느새 날은 저물었고, 잉글랜드 북동부 특유의 싸늘한 날씨와 함께 차가운 바람에 약간의 바닷가 냄새가 콧등을 스쳤다.
‘제길..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자신의 클럽팀 감독이자, 국가대표팀 수석코치인 가람의 몸으로 회귀했고, 시간도 자신이 태어나기 전인 2019년 이라는 것도 이제 알았다.
남은 건 이 몸으로 선더랜드를 유럽 정상에 올려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알기로는 가람 감독은 선수로서 좋은 경력을 가지지 못했었다.
그렇게 생각에 잠겨 훈련장 앞에 있는 작은 2차선 옆을 따라 길을 걷고 있을 때 자신을 향해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려드는 버스 한 대가 보였다.
설마 속도를 안 줄이지 않겠지 하는 생각을 했지만 버스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고, 점점 빨라졌다. 그때 머릿속에 지난 삶에서 국가대표팀 수석코치였던 가람이 월드컵 결승전 전에 자신의 방을 찾아와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그때 그 사고만 아니었어도 나도 월드컵에 나설 수 있었을 텐데..’
“설마!! 이게 뭐야!! 젠장!!”
버스는 멈출 생각도 없이 가람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