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교통 사고[2]
리사의 물음에 캐서린은 알렉스에게 눈빛을 보냈고, 단번에 그 눈빛을 읽은 알렉스는 근육질 몸매에 어울리는 빠른 몸놀림으로 흩어져 있던 종이 꽃가루와 플랜카드를 단숨에 치어버렸다.
그리고는 캐서린은 푸근한 업소용 미소를 보이며 리사에게 다가갔다.
“물론입니다. 여기가 스미스 패밀리 가든입니다. 오늘부터 장기 투숙하기로 하신 리사 뮐러씨이신가요?”
“네. 맞습니다.”
리사는 식당에 덩그러니 남아 있는 가람을 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다시 만나게 되네.”
“그렇네요.”
둘의 대화를 들은 캐서린은 빙긋이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아는 사이?”
“그게..”
리사는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 가감없이 말을 이어갔다.
엄연히 따지면 교통사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이지만, 리사는 주눅드는 것 없이 모든 것을 말하더니 명함을 꺼내며 말했다.
“가람군이 오늘은 몸이 괜찮다고 했는데 솔직히 저는 걱정이 되네요. 여기 제 명함입니다. 향후 치료비나 위자료에 대해서 청구하신다면 바로 지급하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리사는 말과 함께 허리를 90도 숙여하는 깍듯한 사과까지 교통사고 가해자가 보여줘야 할 모범적인 태도를 보여주었다.
사실 처음에 사고를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캐서린과 알렉스는 하늘이 노랗게 변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 감정을 눈치챈 가람은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열었다.
“엄마, 외할아버지, 걱정하지 마세요. 아까 저 분이 말했듯이 몸에 아무런 이상도 없어요.”
“얘야 교통사고는 그날 괜찮아도 다음날이 되면 아픈 법이란다. 내일 나랑 함께 구단 의무실로 가서 정밀 검사를 받자구나.”
“외할아버지.. 정말 괜찮아요.”
그 말을 들은 캐서린은 화가 버럭 나는 듯 크게 소리 쳤다.
“안돼! 무조건 검사 받아! 그러다가 너희 아빠도!”
순간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교통사고 가해자이기는 했지만, 손님인 리사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는 건 서비스 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보여야 할 모습은 아니었다.
“죄.. 죄송합니다. 손님. 우선 내일 아들 녀석 검진을 끝내고, 연락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솔직히 말해주신 그 용기에 감사해요. 아빠 뒤 좀 부탁드릴게요.”
그 말과 함께 캐서린은 안으로 들어갔다. 약간의 적막이 흐르고, 알렉스는 입을 열었다.
“손님. 죄송합니다. 사실 딸아이의 남편이자, 이 아이의 아빠가 뺑소니 사고로 목숨을 잃어서 그렇습니다. 사위 녀석은 가족 걱정한다고 뺑소니 당한 걸 숨기다가 결국 뇌출혈로 죽어서.. 저렇게 반응하는 겁니다. 손님에게 악감정은 없습니다.”
“아.. 그렇군요.”
어수선 분위기 속에 축하 파티는 종료 되었고, 알렉스는 리사를 손님방으로 안내했다. 물론 가람도 알렉스의 반협박으로 강제로 방에 들어가 쉬게 되었으며 내일 같이 검사를 받으러 가게로 했다.
그렇게 리사는 단순히 장기 투숙객이라는 평범한 관계에서 좀 더 복잡한 관계로 가람의 가족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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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어제 있었던 일들이 모두 꿈이라고 생각해도 될 정도로 놀라운 일의 연속이었기에, 모든 게 꿈이길 바랬지만, 눈을 떴을 때는 역시나 가람의 몸이었다.
'제길..‘
어제 있었던 일들이 전부 현실이라는 걸 다시금 느낀 후 가람은 일어나 샤워를 마쳤다. 그리고 샤워한 후 유리창에 서린 자신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젠장. 솔직히 잘생겼네.‘
전생에 자신의 얼굴도 잘생긴 편이었지만, 가람의 얼굴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지난 승연의 삶에서 세계에서 제일 섹시한 감독 1위에 뽑히기도 하며 중후한 멋을 가지고 있던 김가람의 얼굴은 18세 때는 얼굴 천재라고 불릴 정도 잘생긴 얼굴이었다. 게다가 혼혈이라 검은 동양인의 머리에 푸른 눈동자는 매력적이었다.
그래도 하늘은 공평한 법이기에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시선을 아랫도리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패배감을 맛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현실을 받아드린 가람은 엄마의 독촉과 외할아버지의 협박에 선더랜드 1군 훈련장 의무실로 가야만 했다.
선더랜드 의무실
“정말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어쩌다가?”
“훈련마치고 돌아가다가 차에 약간 치였어요.”
“그래?”
구단 수석 주치의인 60대의 독일인인 이쉬 레만은 몸 이곳 저곳을 살펴보더니 입을 열었다.
“우선 육안상에는 특별히 상처가 없고 관절 가동 범위에도 문제는 없어 보이는데 딱히 검사를..”
이쉬 레만은 안 해도 되겠다는 말을 하려고 했지만, 가람의 등 뒤에서 걱정스럽게 그를 쳐다보고 있는 알렉스를 보고는 마음을 바꾸었다.
알렉스의 사위이자, 캐서린의 남편이 뺑소니로 죽은 걸 모르는 구단사람은 없었고, 이쉬 레만도 그중 하나였다.
“그럼 감독님께 보고를 올려서 오늘 오전 훈련을 제외하도록 하겠네.”
“그.. 그건..”
“그렇게 해주게나. 이쉬 부탁하네.:”
가람이 거절하기보다 더 빠르게 알렉스가 대답을 이어갔고, 18세라는 나이는 자신의 의사결정보다 보호자의 의사 결정이 중요한 시기였다.
게다가 평소 티격태격하는 알렉스가 그렇게까지 간곡히 부탁하자, 이쉬 레만도 별수가 없었고, 그렇게 가람은 검사는 진행되었다.
검사를 하면서도 가람은 스스로 부상이 없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차에 치여도 바로 회복되는 몸이라 앞으로 부상은 걱정 없겠네.’
깜빡 깜빡
그때 눈 앞에 깜빡이는 메시지창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 훈련을 진행해야 합니다.]
체력 훈련
웨이트 훈련
볼 트래핑 훈련
.....
꼭 해야 한다는 듯 깜빡이며 자신을 위협했다. 아침에도 시도해봤는데 저 창을 누르면 눈 앞에 홀로그램과 함께 세부 훈련들이 나왔고, 그 훈련을 전부 마치지 않고, 중간에 그만둔다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악독한 훈련 프로그램이었다.
물론 잠깐 살펴본 내용으로 봤을 때 자신이 알고 있는 축구 훈련 프로그램 중 유소년에게 적합한 훈련이었다.
솔직히 당장 뛰어나가 훈련에 참여하고 싶었지만, 검사를 진행할 때마다 옆에서 걱정스러운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알렉스의 눈빛에 참을 수밖에 없었다.
‘불편하군.. 불편해.’
승연으로 살았던 삶에서 가장 멀었던 단어는 가족의 사랑이었다.
고아원에서 자라서, 사랑을 갈구했던 삶은 몇 번의 회귀를 통해도 바뀌지 않았고, 그런 불우한 환경에서 성공한 자신에게 다가오는 여인들은 하나 같이 자신이 아닌 돈을 원했다.
지금은 가람이 되어 어머니와 외할아버지의 관심과 사랑을 받아온 성장 배경을 정보를 받았지만, 자신을 누가 조건 없이 사랑하고 걱정해주는 건 어색한 일이었다.
그렇게 길게 느껴진 2시간의 정밀 검사가 끝나고, 이쉬 레만은 역시나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는 듯 웃으며 결과를 들고는 입을 열었다.
“역시.. 알렉스! 정밀 CT랑 MRI까지 전부 동원해 촬영해봤지만, 그 어디에도 문제는 없어. 가람이는 튼튼하니 걱정하지마”
“정말인가?”
“정말이야!! 내가 아까도 일일이 설명해주었잖아! 정말! 나 못 믿는 거야? 저 녀석 네놈을 닮아서 그런지 강골이라고. 완전 튼튼해. 이 노인네야 네 손자 걱정하지 말고 네놈 근손실이나 걱정해!”
평소처럼 이쉬가 알렉스를 보며 버럭 화를 내자 그제야 알렉스는 눈가에 눈물이 고이며 이쉬 레만의 손을 잡았다.
“고맙네. 고마워.”
“에이~ 고맙기는 덩치에 안 어울리게. 여하튼 가람이 너는 바로 훈련에 복귀해.”
“알겠습니다.”
가람은 이쉬 레만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로 훈련장으로 뛰어나갔다. 아까부터 깜빡거리는 메세지창이 곧 터질 것 같이 급격하게 깜빡거렸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가람은 훈련장에 도착했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자신이 훈련장을 잘못 찾아왔나 싶어 주변을 둘러봤지만, 그곳에 널부러진 공과 장비들을 보니 훈련장을 제대로 찾은 건 맞는 듯 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손목을 들어 스마트 워치를 보니 점심 시간이었다. 아무리 빨리 검사를 한다고 해도 오전 시간은 날아간 상황이었다.
오후 훈련까지 1시간만 남은 상황이었지만, 지금 깜빡이는 창은 곧 터질 것 같았다.
[훈련을 하지 않으면 패널티로 모든 능력치가 10프로 하락하게 됩니다.]
안 그래도 성에 차지 않는 몹쓸 몸뚱이가 더 나빠진다는 말에 가람은 바로 메시지창을 클릭했다.
그러자 눈 앞에 홀로그램이 나타났고, 가람이 해야 할 훈련 동작들이 보여줬다.
기본적인 몸풀기 스트레칭을 시작으로 공을 가지고 해야 하는 훈련들도 있었고, 이미 놓여진 기구들을 기준으로 AR화면으로 시범을 보여줘 기구를 활용한 훈련까지 다양한 훈련들이 나왔다.
그렇게 가람은 메시지창이 부여한 훈련을 진행했다.
가람이 훈련에 집중하고 있을 때 식사를 마친 잭 로스와 수석코치인 제임스 플라워가 다음 경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훈련장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엔 1월 20일 옥스포드와의 경기에서는 결국 오른쪽 수비가 문제라는 건가?”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옥스포드의 빠른 역습과 윙어 전술을 막으려면 저희 좌우 윙백들이 이번 경기에 핵심이 될 것 같습니다.”
“이번 경기는 중요해. 2위인 옥스포드와 경기에서 이기면 당분간 1위를 지킬 수 있겠지. 물론 포츠머스가 이기면 다시 1위 경쟁에 걱정은 하겠지만 말이야. 코너 맥러플린은 어때?”
“그게 아직 몸 상태가 완벽하게 올라오지는 못했습니다. 많이 뛰어야 60분정도 뛸 수 있겠죠.”
“흐음.. 그럼 결국 1군에서 콜업한 애송이를 써야 한다는 건가?”
“그게.. 수석 주치의에게 듣기로는 가람이가 어제 교통..”
제임스 플라워가 말을 이어가려고 할 때
퍼어엉~
훈련장을 울리는 경쾌한 슈팅 소리가 들려왔고, 잭 로스와 제임스 플라워는 무언가에 홀린 듯 점심 시간에 훈련을 하고 있는 선수에게 눈길이 갈 수밖에 없었다.
“저 친구 가람이 아닌가?”
“네 맞습니다.”
구단에 유일하게 있는 동양인 선수였기에 멀리서도 누군지 단번에 파악되는 장점이 있었다. 잭 로스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한 동안 말을 하지 않고는 가람의 훈련을 지켜봤다.
그리고 제임스 플라워는 가람이 뛰는 모습을 보더니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고, 잠시 후 스마트워치로 전송된 수석 주치의 이쉬 레만의 이상 없다는 보고를 보게 되었다.
“그래. 1군에 뛰고 싶다면 저런 열의는 보여야지. 오후 시간에 저 친구 전술훈련에 포함시키고, 포지션 임무 숙지 시키도록 해.”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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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20일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 (선더랜드 홈구장)
후반 60분
경기는 윌 그릭의 골로 1대 0으로 앞서나가고 있었지만, 후반에 들어 옥스포드 선수들도 기세를 올리며 적극적으로 공세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때 옥스포드의 왼쪽 윙어의 공격을 막기 위해서 몸싸움을 하던 코너 맥러플린이 균형을 잃고 쓰러졌고, 그 틈을 타서 윈쪽 윙어는 왼쪽 터치 라인에서 기세를 올려 골대에 근접했다.
그리고 중앙으로 침투해 들어오던 공격수를 향해 크로스를 올렸지만, 다행히 리 캐터몰의 커버 플레이로 공은 밖으로 나갔다.
쓰러진 코너 맥러플린은 쉽게 일어나지 못했고, 의료진이 손을 들어 X표시를 만들자, 후반 초반부터 몸을 풀고 있던 가람에게 잭 로스 감독은 다가왔다.
“가람! 떨지 말고, 훈련장에서 했던 것처럼 해. 알았어?”
“알겠습니다.”
가람의 기백 넘치는 대답에 잭 로스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유소년 답지 않게 전술 훈련에서도 빠르게 자신의 역할을 이해하고 뛰어난 전술 움직임을 보여주었던 가람이었기에 걱정은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어린 선수였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말해봐.”
“최대한 윙어를 기다리고 먼저 발을 뻗지 않는다. 크로스를 저지하고 최대한 괴롭힌다. 몸싸움은 과격하게 하지만 파울을 받지 않는다. 공을 얻었을 때는 무리하지 않고 윌 그릭을 보고 길게 찬다.”
“그래 좋았어. 그럼 들어가봐.”
그렇게 가람이 생애 처음으로 1군 데뷔전을 가지게 되었고, 부심의 신호와 함께 경기장에 투입되었다. 그러자
띠리링
[선더랜드 최연소 외국인 선수 기록을 갱신했습니다.]
[10 포인트를 지급합니다.]
가람의 눈 앞에 메시지 창이 출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