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김하늘
쌍꺼풀이 없는 날카로운 눈매에 깔끔한 투블럭으로 멋을 낸 30대 남성은 특유의 여유있는 미소와 함께 리사 앞으로 다가와 자신의 명함을 꺼냈다.
“가람의 에이전트 김하늘이라고 합니다.”
“아.. 에이전트.. 유소년 선수에게 벌써 에이전트가 있는지 몰랐네요.”
“축구 신동은 미리 미리 잡아놔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하늘의 능청스러운 답변에 리사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동기화된 가람의 기억에서 가람과 김하늘의 첫만남은 아버지의 장례식이었다.
김하늘은 가람의 아버지를 은인이라고 말하며 어린 가람이 축구 선수가 되고 싶다고 하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선더랜드의 유소년 아카데미에 들어갈 수 있도록 훈련을 옆에서 도왔던 인물이었다.
‘뭐.. 원래대로면 교통사고를 당한 가람을 축구 지도자의 길로 들어서게 했겠지만 지금은 다르겠지.’
가람이 잠시 김하늘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을 때 김하늘은 가람대신 능청스럽게 리사를 상대하고 있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요? 그리고 아까 인터뷰 내용은 실어주시지 않았으면 합니다. 제가 괜히 오버한 것도 있고요. 괜히 슈퍼 스타병 같은 거 걸려서 삐딱해지면 에이전트로서 정말 난감해집니다. 그러니 기자님! 관심은 조금 자제해주시길~ 오늘은 제가 가람이랑 할 이야기가 있어서 말이죠. 그만 가도 될까요?”
“아. 아.. 네..”
능숙한 김하늘의 대처에 리사는 어안이 벙벙해졌고,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떠났다. 그렇게 리사가 떠나자, 김하늘은 가람을 복도로 이끌며 말을 건넸다.
“한동안 연락 안 하다가 이제 나타났다고 뭐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아.. 그건 아니에요.”
“그런데 왜 교통 사고 당한 건 이야기 하지 않았어? 캐서린씨가 말하지 않았으면 몰랐다고.”
“뭐 크게 다친 것도 아니여서 말이죠.”
그 말에 김하늘은 가람의 등짝을 크게 쳤다.
짜아악!
“아야야!!”
“이녀석!! 그런 게 어디 있어. 어디가 아프든 무슨 일이 터지든 다 나한테 이야기 해. 만약 큰 사고였다면 어떻게 했을 거야.”
“아프다고요!”
“등짝이 아프냐! 다른 일도 아니라 교통사고였어.”
은인인 아버지가 뺑소니로 죽은 것에 대해 아직도 마음의 상처로 남았는지 가람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죄송해요.”
“다음부터는 꼭 형님에게 말하라고 알았지?”
“네에.”
“그래도 가해자가 도망가지 않고 사건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했으니 그건 괜찮은 것 같다. 아까 저 여자 맞지?”
“맞아요.”
“이미 다 알고 계신 것 같네요.”
“내가 말했잖아. 나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해줄 수 있는 힘이 있다고.”
김하늘은 무언가 대단한 비밀을 숨기고 있는 듯 말했다.
물론 지금 시절의 가람이 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의문을 품겠지만, 승연의 기억속에서 김하늘이라는 인물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아시아 최대 축구 에이젼트 골든 스카이의 수장이며, 최고의 에이전트라고 불리운 사나이. 게다가 잉글랜드 4부리그인 리그2에서 허덕이던 모어컴을 인수해 프리미어리그까지 승격시킨 구단주이기도 했다.
물론 그 클럽의 감독으로 가람이 있었고, 승연은 그곳에서 선수로 뛰며 모어컴을 유럽 정상에 올려 놓았었다.
‘물론 그의 배경이 한국 재계 1위 신성그룹의 둘째라는 어마 어마한 재력이 뒷받침 되었으니 가능했지. 그런데 부인도 만만치 않은 부자이지 않았나?’
가람이 잠시 다른 생각을 하려고 할 때 김하늘은 품에서 태블릿 PC를 꺼내 건넸다.
“이건?”
“데뷔전 선물이라고 할까나? 한번 열어봐.”
역시나 부자라 통이 크구나라고 생각하며 잠금 장치가 따로 없는 테블렛 PC를 열자 바로 방금 전 자신이 뛰었던 경기의 모습이 재생되었다.
“경기 끝났으면 복습을 해야지. 오늘 경기 잘하기는 했지만 네가 볼 때 부족한 점은 뭐였지?”
동기화된 가람의 기억속에서도 경기가 끝나면 가람의 모습을 찍어 부족한 모습을 따로 코치해주었던 게 뇌리를 스쳤다.
그리고 가람은 여기서 제대로 답변하지 못한다면 엄청난 잔소리가 쏟아질 것을 알고 있기에 화면을 보며 입을 열었다.
“공격 빌드업에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했어요. 윌 그릭 선수만 보고 공간 패스를 넣어주려고 했지만..”
가람은 화면을 멈춘 후 반대편 사이드의 공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말을 이어갔다.
“반대편에 있는 왼쪽 윙백인 브라이언 오비에도나 그 앞에 있는 18번 윙어 선수에게 연결해주었으면 더 좋은 찬스가 나올 수 있었을 거예요.”
“18번 선수는 던컨 왓모어 선수다. 오늘은 왼쪽 윙어로 나왔지만, 원래는 오른쪽 윙어 포지션이지. 앞으로 경기를 뛰게 되면 자주 겹치게 될 거다. 지난번에도 말했듯이 조지 허니먼, 맥스 파워 선수와 함께 이 팀의 미래를 이끌만한 선수니 이름을 기억하고 같이 어울리는 걸 추천해.”
“알겠어요.”
“그럼 왜 그렇게 하지 못했지?”
“아무래도 킥을 정확하게 거기로 올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랑 제 시야가 좁은 거겠죠.”
“방금 네가 말한 걸 들어보면 시야 문제는 아니야. 지금도 바로 자신의 문제를 말하는 걸 보니 말이다. 그렇다고 킥 정확도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지. 부족한 건 자신감이다 이거야. 너는 너무 신중해. 가끔은 저돌적으로 플레이를 해보라고. 그래야 감독도 좋아할 거야. 감독은 자신이 지시한 플레이도 하면서 번뜩이는 플레이를 하는 선수를 싫어하지는 않지.”
가람은 김하늘의 분석 내용을 들으며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괜히 최고의 에이전트라고 불린 사람이 아니였어.’
솔직히 지난 승연의 삶에서 감독이었던 가람이 자신은 구단주인 김하늘 보다 축구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했던 말은 그 당시에는 구단주 띄워주기 위한 사회생활의 수단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말을 섞어보니 김하늘이 축구를 보고 분석하는 능력은 상당히 뛰어나다는 게 사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렇게 가람이 잠시 생각을 정리할 때 그런 시간도 사치라는 듯 김하늘은 말을 이어갔다.
“훈련장으로 복귀해서 회복 마사지랑 스트레칭 해야지. 내가 태워줄 테니 가자”
“첫 날인데 구단 버스타고 동료들이랑 같이 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기특한 생각이기는 하지만, 오늘은 맥플릭스 인터뷰 때문에 복귀가 늦을 것 같다고 구단 직원이 메시지를 보냈어. 멀지 않은 거리니깐 에이전트나 자기차 이용해서 훈련장으로 복귀하라고 하더라고.”
“아. 그렇군요.”
그렇게 가람은 김하늘의 차에 올라 훈련장으로 향했다.
“혹시 무슨 일 있는 거야?”
“네에?”
“아니. 왠지 나를 대하는 게 어색해서 말이지. 캐서린씨도 교통사고 후 네가 좀 변한 것 같다는 말을 하기도 했고 말이야.”
아무리 가람의 기억과 동기화가 되었다고 하지만 가람을 연기하고 있기에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가람의 변화를 더 잘 알 것이었다.
‘젠장..’
사실 승연은 말이 많은 편도, 사람 관계에서 적극적인 편도 아니었다. 하지만 가람은 그와 반대되는 사람이었다.
유쾌하고 활기차며 적극적인 사람, 꼭 태양과 같은 사람이었다. 아무리 자신이 가람의 기억을 동기화 받았다고 하지만 그런 성격까지 똑같이 따라 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짜식.. 혹시 너 사춘기냐?”
“네에?”
“하긴 여태까지 축구만 하다가 저런 미인이랑 대화를 했으니 마음이 동했을 수도 있지?”
“미인이요?”
“그래. 리사 말이야. 너 그 안경에 가린 미모와 롱패딩속에 숨겨진 핫바디를 모르는 거야?”
“그런 걸 아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닌가요?”
“하하하. 사람 보는 게 일이다보니깐 말이지. 그런 것도 간혹 보이곤 하거든.”
“그러면 에이전트가 아니라 연예기획사를 차리셔야 하는 건 아니에요?”
“네가 연예인이 되고 싶다고 하면 그럴 수도 있지. 네 외모에 재능은 메시급이라고. 차라리 축구말고 연예인 해볼 생각은 없는 거야?”
“하아.. 그게 자기 축구 선수에게 할 소리예요?”
그렇게 가람이 말을 마치자, 김하늘이 웃으며 답했다.
“녀석. 까칠하기는 사춘기 맞나 보네. 다른 사람이 빙의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꼬박 꼬박 말대답 하네. 이거...”
순간 욱해서 말을 받아친 자신이 후회스러운 가람이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래도 나는 이게 더 좋네. 매번 억지로 밝은 척하는 것보다 다크한 맛이 있는 네가 더 좋게 느껴진다. 어차피 너는 나랑 운명 공동체니깐 말이야.”
“그런 말은 누가 들으면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크크크. 오해라 오해하라고 해. 나는 너한테 이번 인생 베팅한 몸이니깐. 여튼 나한테는 그렇게 대해도 캐서린씨나 알렉스씨한테는 친절하게 대하도록 해. 같이 식사도 하고.”
교통사고 사건이후 훈련의 피곤함을 핑계로 어색한 가족들과의 식사를 하지 않은 게 문제가 된 것 같았다.
김하늘은 에이전트이기는 했지만 진짜 큰 형처럼 자신을 걱정하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이런 관심은 지난 오랜 회귀의 삶 속에서도 느껴본 적 없었기에 가람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사랑이나 관심도 받아본 녀석들이나 받는 거지.. 이것 참..’
하지만 이제는 승연이 아니라 가람으로 삶을 살아야 했다.
그렇기에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가람의 모습을 따라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고기만 먹던 사람에게 갑자기 채식을 하라고 하는 것처럼 힘든 일이었다.
‘차라리 아예 삐딱하게 나갈까?’
그렇게 생각이 드는 순간, 무언가 가슴 깊은 곳에서 그러면 안 된다며 말리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말림에 저항하기 보다는 왠지 모르게 수긍이 갔고, 저항해봤자 자신에게 이득이 전혀 없을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의욕이 떨어졌다.
그게 어쩌면 가람과 동기화 때문에 생긴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걸 굳이 추궁하고 싶지는 않았다.
누가 뭐라고 해도 지금은 자신이 김가람이고 김가람으로 생활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약간의 침묵이 지난 후 가람은 입을 열었다.
“알겠어요.”
“그래 그래야지. 사춘기를 잘 보내야지 형처럼 훌륭한 어른이 되는 거야.”
“형이 훌륭한 어른이예요?”
가람의 물음에 하늘은 순간 멈칫하더니 입을 열었다.
“무.. 물론 훌륭한 어른이지. 그건 그렇고.. 지금 상황이 좋으니 조금 더 집중해서 해보자. 이미 네 연령대에서 유럽 리그에 출장하는 건 쉬운 일은 아니야. 몇 번 이야기 했지만 너한테는 재능이 있다고.”
갑자기 화제를 돌리는 하늘이었지만, 가람은 그의 칭찬을 쉽게 넘어갈 수는 없었다.
물론 에이전트가 자기 선수에게 대해 칭찬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지만, 김하늘의 안목을 잘 알고 있는 가람은 그 칭찬이 진심으로 다가왔다.
“알겠어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하다보면 네가 원하는 U20 월드컵 출전도 꿈이 아니라고!”
“월드컵이요?”
그 말에 가람은 승연의 삶 속에 알고 있는 기억이 맞다면 2019년 폴란드에서 열리는 U20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U20 웓드컵 준우승을 하게 되는 것이 생각났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나이를 생각해보면 엔트리에 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은 상당히 높을 것이었다.
“녀석 놀라기는 네가 잘하면 말이야. 그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알고 있지?”
“1군 경기에 계속 나와야겠군요.”
“그래 바로 그거지. 우선 오늘은 회복 마시지랑 스트레칭이 끝나면 다 같이 삼겹살 파티라고!”
“기름진 음식은 회복에 좋지 않은 걸로 알고 있는데요.”
“아유~ 자기 관리는 다음부터! 오늘은 1군 데뷔 축하하는 날이니깐!”
김하늘의 기분에 휩쓸리는 것 같았지만, 가람은 그 기분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U20 월드컵 출전이라는 새로운 목표도 생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