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지켜보는 시선[1]
2019년 2월 6일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 (선더랜드 홈구장)
체커트레이드 트로피 북부 8강전 / 레스터 시티U23과의 경기
후반 2분
“오늘 경기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코너 맥러플린이 들어가고 가람 선수가 교체로 들어옵니다.”
“선더랜드는 윌 그릭 선수의 멀티골로 2대0으로 앞서고 있지만 후반전 마찬가지로 교체 투입되는 하비 반츠 선수를 생각해보면 지친 코너 맥러플린 선수 대신해 교체를 하는 게 맞습니다.”
“체커트레이드 트로피가 리그2, 리그1 그리고 프리미어 리그 U23팀중 16팀을 추첨해서 겨루는 대회이다보니 사실 주력 선수들이 임대로 떠나거나 이적을 하는 프리미어 리그 U23팀보다는 꾸준히 팀을 유지하는 리그1 팀의 강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U23팀에서는 종종 크랙이라고 불릴 정도로 놀라운 실력을 보이는 선수들이 경기를 지배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하비 반츠가 그런 선수라고 할 수 있겠죠.”
“그렇습니다. 하비 반츠 선수는 레스터 시티에서도 종종 1군 출장을 시키는 자원일 뿐아니라 프리미어리그 다른 팀들이 눈여겨보는 자원이라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하비 반츠 선수를 상대로 가람 선수가 어떤 경기를 보여줄 지 기대가 됩니다.”
-와아아아!!
-가람선수!! 날 가져요!! 강철의 귀공자~
-강철의 귀공자는 무슨!! 강철 고추! 강철 고추!!
-강철 고추! 오늘도 한골 부탁한다.
여성 팬들의 환호와 함께 짓궃은 남성팬들의 환호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가람 선수가 입장하는 순간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의 관중석을 가득 메운 홈팬들이 열광합니다.”
“그렇죠. 아무래도 지난 포츠머스와의 경기에서 놀라운 골을 보여준 가람선수이기 때문에 관심이 많은 듯 합니다.”
“그뿐만 아니죠. 해설자님은 오늘 경기에서 관중석에 여성의 비중이 많아졌다는 게 느껴지시지 않으십니까?”
“그걸 왜 모르겠습니까? 지금도 들리는 환호성에 여성관중들의 소리가 섞여서 들려오고 있어요. 아무래도 선더랜드가 잉글랜드의 차기 슈퍼스타를 품었다고 봐야겠죠.”
가람이 경기장에 들어오자, 리 캐터몰은 가람에게 다가왔다.
“어이 꼬맹이. 관중들에게 잡아먹히지 말라고!”
“걱정하지 마세요.”
리 캐터몰과의 대화를 마친 가람은 베테랑 중앙 수비수인 글렌 로번스에게 다가가 감독의 지시 사항을 전달했다.
“글렌씨! 감독님이 라인을 내리고 상대 공격 자원의 힘을 빼라고 하셨어요.”
“오케이!”
“그리고 역습에서도 후반에 교체된 저만 나가고 나머지 분들은 수비에 집중하라고 했어요.”
그 말을 들은 글렌 로번스는 감독의 지시를 주변 동료들에게 전했다. 그렇게 교체 이후 자신의 자리를 잡은 가람은 몸을 풀기도 전에 하비 반츠가 공을 몰고 다가오는 게 보였다.
하비 반츠는 가람의 등장이 그리 달갑지는 않았다.
아직 18세밖에 되지 않았다고 했지만, 두 경기에서 보여준 가람의 능력은 정말 18세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의 높은 수준이었다.
‘제길. 하필 여기서 이 녀석이 나올 줄이야.’
자신을 제외하고는 팀에 뛰어난 선수들이 없었기에 어떻게 해서든 자신이 이 경기의 돌파구를 만들어야 했다.
투욱 툭!
하비 반츠는 자신의 특기인 속도를 살려 그대로 뚫고 들어가는 드리블을 선보였고, 가람은 그의 움직임에 맞춰 뒷걸음질을 치다가 바로 방향을 바꿔서 하비 반츠를 골대가 아닌 터치 라인으로 공을 드리블 하도록 유도했다.
‘치잇!’
가람의 능숙한 위치 선정에 하비 반츠는 윙어들이 좋아하는 터치 라인에서 하프 스페이스 공간으로 치고 들어가는 공격을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이대로 계속 드리블을 하게 되면 결국 골라인까지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아군의 스트라이커가 포스트 플레이에 능해 중앙 수비수와 경합을 통해서 헤딩을 잘 따내는 선수도 아니었기에 크로스도 올릴 수 없었고, 하비 반츠는 어쩔 수 없이 드리블을 치고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비 반츠는 패널티 에어리어 근처까지 올라갔지만, 이제는 선택을 해야 할 시간이었다.
‘돌파하기에는 공간이 나오지 않아. 그렇다면..’
하비 반츠는 드리블을 멈추고, 공격을 지원하기 위해 들어오는 아군의 중앙 미드필더에게 공을 건네려고 했다.
그때
촤르르륵!!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가람은 하비 반츠의 패스를 중간에서 정확한 태클로 가로챘다. 그리고 가로챔과 동시에 민첩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며 크게 외쳤다.
“역습!”
가람의 말을 기점으로 선더랜드의 선수들은 바로 공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중앙 수비수 바로 앞에 있던 윌 그릭과 수비에 가담했던 리 캐터몰, 던컨 왓모어는 가람의 외침에 바로 방향을 돌려 상대 진영으로 침투해 들어갔다.
“제길..”
하비 반츠는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바로 뒤돌아 가람을 쫓기 시작했다.
원래 속도에는 자신이 있었기에 금세 가람을 따라잡을 수 있었고, 경합을 하기 위해서 어깨를 집어 넣었다.
하지만
‘이런.. 정말 18살이 맞는 거야? 이런 망할!’
어깨 싸움을 하기 위해 어깨를 집어 넣었지만, 맞닿은 어깨에서 느껴지는 힘은 상당했다.
아무리 자신이 몸싸움을 즐기지 않는다고 해도 속도를 낼 때 옆에서 어깨로 밀어 붙인다면 방향이 틀어지거나 쏠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가람에게서는 그런 움직임은 전혀 보이지 않았고, 심지어 레스터 시티 U23의 왼쪽 수비수는 하비 반츠가 가람을 막는다고 생각해 던컨 왓모어를 마크 하기 위해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하비 반츠 선수의 방해에도 가람 선수 흔들림 없이 드리블을 이어갑니다.”
솔직히 겉으로 보기에는 가람이 아무런 문제 없이 드리블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하비 반츠의 투지 넘치는 수비에 가람은 원하는 플레이를 할 수 없었다.
‘이 녀석.. 제법인데..’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역습 기회를 놓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가람의 눈에는 윌 그릭이 자신을 보며 환하게 웃는 게 보였다.
가람은 결심했다는 듯 좀 더 힘을 줘서 하비 반츠의 어깨를 밀어내고는 더욱 가속했다. 순간 가람의 힘에 밀린 하비 반츠는 휘청거렸고, 그 틈을 타서 가람은 골라인쪽으로 공을 툭 차고는 뛰어갔다.
“가람 선수! 여기서 다소 긴 드리블입니다. 이대로라면 골아웃이 될 것 같은데요.”
“아쉽네요. 판단 미스예요. 이렇게 되면 하비 반츠 선수의 수비가 유효했다고 해야 하나요?”
중계진에서는 아쉬운 소리가 나왔고, 레스터 시티 U23의 수비들도 순간 가람이 찬 공이 골라인을 넘어갈 거라고 예상하며 안심했다.
하지만 가람은 그런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골라인에 도달하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공을 따라잡아 그대로 먼 골대를 보며 높게 공을 올렸다.
뻐어엉!!
가람이 찬 공은 큰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고, 생각지 않은 크로스에 레스터 시티U23 선수들이 놀라고 있을 때 이 공은 처음부터 올 거라고 생각한 윌 그릭은 그 공을 머리에 맞출 수 있었다.
톼아아앙
촤르르르~
“윌 그릭!!! 고오오오오올~ 가람 선수의 크로스를 윌 그릭이 멋지게 마무리 합니다. 윌 그릭 선수 이 골로 해트트릭을 달성합니다. 또한 김가람 선수 두 경기 연속 공격 포인트를 기록합니다. 오른쪽 윙백으로 아주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그렇습니다. 김가람 선수 우승 후보인 선더랜드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는 공격적인 윙백들의 계보를 이어주고 있습니다. 이걸로 경기는 3대 0 완전히 선더랜드의 흐름으로 넘어갔습니다.”
골을 넣은 후 윌 그릭은 바로 가람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고, 잠시 후 흥분한 리 캐터몰과 다른 선수들이 가람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렇게 가람은 선수들과 골을 축하하면서 기쁨의 시간을 보냈다. 특히 기쁜 건 역시 기분 좋은 알림음이었다.
띠리링
[오른쪽 수비수로 두 경기 연속 공격 포인트를 기록했습니다.]
[5 포인트를 지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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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좋은 움직임이네요.”
“그렇죠. 파머씨. 저 친구가 저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가 힘들게 독일에서 잉글랜드 북부까지 오지도 않았겠죠.”
“그럼 역시 야마구치씨는 저 친구를..”
“아직 속단하기는 일러요. 하지만 확실히 재능이 있네요. 정확한 타이밍에 태클과 태클 이후 선수들의 움직임을 살펴서 바로 역습으로 이어나가는 움직임과 날카로운 크로스는 필립 람선수를 떠오르게 하는데요.”
“오우~ 너무 띄우시는 거 같다고 말하고 싶지만 확실히 저희가 가지고 있는 하비 반츠 선수의 데이터로 봤을 때는 좀 더 상위 리그의 선수과 겨루는 것도 가능해 보이네요. 특히 상대팀 크랙을 지워버리는 정확한 태클에 역습은 좋네요. 좋아.”
“그렇지만 윗선에 계신 분들께 보고서를 올릴 때는 그런 소리를 해서는 안 되겠죠. 최대한 객관적인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감상이 아닌 객관적인 데이터가 말이죠. 오늘의 영상 편집 부탁드릴게요. 파머씨.”
“그렇게 하겠습니다. 야마구치씨.”
그렇게 야마구치는 파머와 함께 경기를 집중해서 봤다. 하지만 경기가 3대 0으로 몰리자, 레스터 시티 U23은 선수들을 교체하며 기회를 잡지 못한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기 시작했다.
하비 반츠는 그런 상황에 좌절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도 끊임없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서 가람에게 도전했지만, 그럴수록 파머에게 좋은 자료만 제공할 뿐이었다.
경기는 그렇게 마치게 되었고, 야마구치는 만족스럽다는 듯한 표정으로 경기장을 보고 있었다.
그때
“빠꼼이씨가 보기에는 어떤가요?”
“리사양. 그렇게 부르는 건 예의에 어긋나지 않나요?”
“우리 사이에 예의 차릴 게 있나요? 솔직히 할아버지만 아니면 바이에른 뮌헨에 이 정보를 넘길 생각은 없었다고.”
“이런. 저는 제 청혼에 마음이 바뀌어서 연락을 주신줄 알았는데..”
야마구치의 능청스러운 말에 리사는 헛구역질을 하는 것 같은 시늉을 보이며 입을 열었다.
“우웩! 또다시 쓰레기 같은 말을 하면 저는 이 정보랑 리포트를 도르트문트에도 팔 거라는 거만 알아두셨으면 좋겠어요. 거기도 오른쪽 수비수가 상당히 급하게 찾는다고 하던데..”
“이런.. 이런! 알겠습니다. 리사양 그럼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죠.”
“아니요. 그 이야기는 안 하고, 비즈니스 일만 했으면 하는데요.”
“그런가요? 알겠습니다.”
야마구치는 바로 자신의 핸드폰을 열어 무언가 조작했다. 그리고 이내 리사 뮐러의 핸드폰에서 작은 진동이 느껴졌다.
“입금했습니다. 이 정보와 리포트 저희쪽에서 단독으로 구매하도록 하죠. 그리고..”
“물론 다른 구단에는 아무런 소리를 하지 않도록 하죠. 그게 상도덕이니 말이죠.”
“감사합니다. 앞으로 이런 정보는 계속 제공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현대 축구에서 스카우트는 누가 먼저 계약을 오퍼를 넣는냐가 중요했다. 그래서 전세계적으로 네트워크를 통해 발 빠르게 선수의 정보를 얻는 게 중요했고, 수많은 유럽의 구단은 자신의 정규 스카우트 인력 이외에 믿을 수 있는 정보원에게 영상과 리포트를 받으며 정보전에서 우위를 점하려고 했다.
그리고 리사 뮐러는 가람의 정보를 바이에른 뮌헨에 누구보다 빨리 정리해서 넘긴 것이었다.
물론 바이에른 뮌헨에서도 보통은 정보원의 보고서 하나에 수석 코치와 전력 분석관 한 명이 움직이지는 않았겠지만, 이렇게 직접 나왔다는 건 가람의 능력만큼이나 리사 뮐러를 신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럼 어떻게 보셨어요?”
“그 질문을 역으로 하고 싶군요. 물론 정보원의 입장에서 말이죠.”
“바이에른 뮌헨에서 제대로 키운다면 필립 람 선수가 될 거에요. 단순히 축구적인 모습뿐 아니라 경기 외적 모습에서도 상당히 모범적인 친구예요. 자기 관리도 확실하고요.”
“경기 외적으로 알고 있다는 말투로 들리는데요.”
야마구치의 다소 질투가 섞인 말에 리사 뮐러는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요. 저희는 한 지붕에서 살거든요.”
푸우우우!!!
그 말에 옆에 있는 파머가 야마구치의 심정을 대신하듯 먹고 있던 맥주를 입에서 뿜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