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체커트레이드 트로피 결승전[1]
하프 타임 포츠머스의 라커룸
“저.. 감독님. 톰 네일러가 더 이상 뛰지 못할 것 같습니다.”
“아니.. 어떻게 태클을 걸린 것도 아니라 태클을 한 녀석이 부상을 당한 거야! 태클 당한 녀석은 멀쩡하잖아!”
“그건 저도 잘...”
포츠머스의 작전은 단순했다. 일명 선더랜드 부수기
수비적인 위치에서 협력수비와 강한 몸싸움으로 선더랜드 선수들의 기를 죽이고 공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게 핵심이었다.
물론 파울로 인핸 프리킥은 위험했지만, 리그1에서 프리킥 및 코너킥을 포함한 세트피스에서 방어율 1위를 자랑하는 루크 맥기가 있기에 가능한 작전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경기는 포츠머스의 흐름대로 진행되었고, 결과적으로 봤을 때는 전반 선더랜드에서 이렇다 할 공격을 하지 못했고 0 대 0으로 경기를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생각보다 심한 출혈을 겪어야 했다.
처음에는 공격수인 조나단이었다.
전반 초반 가람을 압박하라는 지시에 가람이 공격적으로 나올 때마다 왼쪽 중앙 미드필더와 함께 호흡을 맞춰 가람이 공을 반대편으로 보내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몸싸움을 했다.
몸싸움 했다기 보다는 일방적으로 태클을 걸었다. 그렇게 해서 가람의 기를 죽이려고 했다. 덕분에 전반 15분 동안 가람은 수없이 쓰러졌다.
그렇게 넘어진다면 다른 선수라면 포기를 했어도 진작 포기를 했어야 했다. 하지만 가람은 오늘 자신을 보기 위해 찾아온 팬들을 위해서인지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서 도전했다.
결국 조나단은 좀 더 가람에게 과격하게 태클을 걸다가 오히려 자신의 다리가 뒤엉켜 넘어졌고, 결국에는 햄스트링 부상으로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나름 가람을 막았기에 캐니 재킷은 계속 거친 경기를 선수에게 주문했다. 그래서 조나단이 부상으로 빠진 후 그 자리에 수비형 미드필더인 톰 네일러를 투입했다.
위치는 최전방이었지만 톰 네일러가 맡은 임무는 특기인 더티 플레이를 이용해 가람의 흥분시키고 가능하다면 부상으로 그를 경기에서 제외시키는 것이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많은 파울과 프리킥이 나왔지만 어차피 먼 거리에서 가람의 프리킥은 그리 위력적이지 않았다.
그렇게 다시 가람을 향해 흉계를 꾸밀 수 있었지만 문제는 전반전 종료 직전에 발생했다.
포츠머스의 골키퍼 루크 맥기가 찬 공이 가람과 톰 네일러 사이로 날아왔고, 두 선수는 공을 얻기 위해 어깨 싸움을 하며 공을 향해 속도를 높여나갔다.
하지만 역시 속도 경쟁에서는 가람이 우위에 있었고, 결국 공을 따낸 건 가람이었다. 가람이 공을 따내는 순간 톰 네일러는 기회다 싶어 강하게 태클을 걸었다.
각도에 따라 흡사 뒤에서 들어가는 듯 레드 카드까지 나올 만한 태클이었지만, 이번 경기 몸싸움에 관대한 주심은 톰 네일러의 태클에 옐로우 카드를 주며 상황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문제는 다음에 터졌다. 태클에 걸린 가람은 약간 절뚝거리다가 다시 정상적으로 뛰기 시작했지만, 톰 네일러는 일어나 카드를 받은 후 다시 자리에서 앉더니 못 뛰겠다는 신호를 벤치로 보내는 것이었다.
“제길...”
가람을 막기 위해 준비했던 선수들이 역으로 부상으로 나가면서 캐니 재킷은 어쩔 수 없이 교체 카드를 쓰게 되었다.
원래 계획 대로면 후반전에도 계속 수비적으로 나서면서 선더랜드 선수들을 괴롭힐 생각이었지만, 그 방법을 계속 고집한다면 선수들의 피로도나 부상을 생각 안 할 수 없었다.
그나마 지금은 자동 승격인 2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남은 경기의 결과에 따라 2위의 자리를 내줄 수도 있었고 그렇게 되면 지옥과 같은 플레이 오프를 치러야만 했다.
“다들 모여봐라.”
그렇게 캐니 재킷은 좀 더 먼 일정을 생각하면서 전술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선더랜드의 라커룸
“정말 괜찮은 거냐?”
선더랜드의 팀닥터 이안은 가람을 보며 걱정어린 시선과 함께 몇 번이나 되물었다. 그 말에 가람은 웃으면서 아프지 않다고 말했지만, 벤치에서 봤을 때 포츠머스 녀석들이 얼마나 이 어린 선수를 괴롭혔는지 봤기에 걱정이 안 될 수 없었다.
그렇게 이안은 가람의 상태를 확인한 후 잭 로스 감독에게 전하자, 잭 로스 감독은 가람에게 다가와 입을 열었다.
“오늘 경기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너 앞으로의 긴 축구 인생과 비교할 수는 없다. 지금 당장은 괜찮은지 몰라도 그 정도 몸싸움이라면 분명 무리가 되었을 거다. 만약 한번 더 위험한 장면이 나오다면....”
잭 로스 감독이 빼겠다는 말을 하기도 전에 가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제자리 점프를 하며 입을 열었다.
“감독님. 저는 정말 괜찮아요. 그리고 오늘 트로피는 모두와 함께 따고 싶어요.”
솔직히 잭 로스 감독의 입장에서도 가람을 빼고 싶지는 않았다.
이미 기량적으로 봤을 때 원래 오른쪽 수비였던 코너 맥러플린을 훌쩍 뛰어 넘었고, 지난 훈련에서 나온 날카로운 프리킥과 코너킥은 분명 이번 경기에서 큰 무기가 될 것이었다.
그렇지만 가람이라는 어린 선수를 보호한다는 차원에서는 고민이 필요했다.
그때
“이제 곧 시작합니다. 감독님.”
수석 코치인 제임스 플라워의 말이 들리는 순간까지 고민을 해결하지 못했고, 이미 가람은 자신의 눈 앞에서 멀어져 경기장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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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경기 생각보다 거친 양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위원님은 어떻게 보시나요?”
“아무래도 포츠머스는 세트피스 방어율이 높은 루크 맥기 골키퍼를 내세워서 수비적으로 나오면서 거친 몸싸움으로 선더랜드를 밀어부칠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요. 나름 전반전 그 전술이 유효해서 선더랜드 선수들이 자신의 경기력을 제대로 보여줄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포츠머스는 선수 2명이 부상으로 나갔는데요. 계속 그런 거친 경기를 보여줄지는 좀 의문입니다. 말씀 드리는 순간 양 팀 선수들 나왔습니다. 어라? 이거 포츠머스 진형에 좀 변화가 있습니다.”
“그렇군요. 전반에 4-1-4-1 전술에서 4-4-2 전술로 변경되었습니다. 전반에 비해 수비보다는 좀 더 공격적으로 나서겠다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렇다고 수비는 포기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여전히 라인을 내리고 경기를 진행하는군요.”
후반전은 선더랜드의 공으로 시작되었고, 윌 그릭에서부터 시작된 공은 조지 허니먼 그리고 리 캐터몰을 걸쳐 가람에게 전달되었다.
공을 잡은 자신에게 포츠머스의 공격수는 전반전처럼 달려들지 않았다.
‘상대 감독도 생각이 전혀 없는 건 아니군.’
전반전처럼 거친 플레이는 사실 강승연의 삶에서 수없이 당했었고, 더티 플레이는 특기이기도 했다. 게다가 지금의 몸은 부상을 당해도 금세 회복했기에 더욱 그 특기를 살릴 수 있었다.
일부러 틈을 보여서 반칙을 유도하고 일어나는 동작에서 자연스럽게 상대에게 피해를 주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그렇게 조금 나쁜 마음을 먹으려고 할 때 무언가 자신을 말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전에도 엄마와 외할아버지의 과분한 관심에 삐딱한 마음을 먹었을 때 이 말림의 기분을 느꼈는데 역시나 이 기분에 저항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자신에게 불순한 의도가 다분히 보이는 이들을 응징 안 할 수는 없었기에 직접 더티 플레이를 하지 않아도 떨어져 나갈 수 있는 방법을 택했다.
자신을 마크한 선수가 신경 쓰이도록 빨리 움직이고, 많이 움직이는 것이었다. 그게 무슨 방법이냐고 하겠지만 실제로 가람이 찬스를 만들려는 움직임을 많이 하면 할수록 조나단과 톰 네일러는 따라 움직여야 했다. 부상을 당하지 않는 가람과는 달리 그들은 무리하게 가람을 막다가 결국 부상으로 빠지게 되었다.
그렇게 전반에 두 명이나 부상으로 나간 게 효과를 발휘했는지 포츠머스의 공격수는 가람을 적극적으로 막기보다는 약간 거리를 두면서 오히려 가람이 패스를 할 것 같은 공간을 미리 선점하는 데 신경을 썼다.
그리고 그렇게 압박해오던 사람이 없어지자, 가람은 왼쪽 미드필더와 중앙 미드필더 사이의 공간으로 빠르게 공을 치고 들어가 순식간에 둘을 제쳐 버렸다.
“막아!”
캐니 재킷은 가람에게 공간을 내어주자 바로 공격적으로 나서는 걸 보면서 미리 언질해주었던 왼쪽 수비수와 중앙 수비에게 공간을 좁히도록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순간 포츠머스의 포백 라인이 상당히 위로 올라오게 되면서 선더랜드의 공격자원들도 오프 사이드 트랩 때문에 따라서 함께 움직이게 되었다.
생각지 않은 라인 컨트롤에 가람은 당황했고, 이렇게 되면 스스로 드리블을 통한 돌파를 하거나 누군가와 2대 1 패스를 통해 이 상황을 타개해야 했다.
상대가 압박해오고 있기에 확실히 패스가 더 좋은 선택이겠지만, 60밖에 안 되는 패스 능력치가 과연 가람이 원하는 곳에 제대로 된 패스를 이어줄지는 모를 일이었다.
설명은 길었지만 상대 포백 라인이 접근하는 시간은 짧았고, 가람은 패스보다는 그나마 자신 있는 드리블을 통해 활로를 열어보기로 했다.
토토통 토토통!!
“가람 선수 오른쪽 터치 라인에서 중앙으로 치고 들어옵니다. 이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라인을 끌어오린 포츠머스의 수비진들입니다.”
“여기서는 패스를 통해서 빠져나가는 게 좋아 보이는데요. 가람 선수 그대로 돌진합니다.”
“빠른 스피드를 살려서 빠져나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점점 좁아져 오는 포츠머스의 선수들을 피해 가람은 어떻게든 전진하려고 했지만, 더 이상 전진 시킬 수 없다는 듯 어느새 뒤에서 따라 붙은 포츠머스의 중앙 미드필더는 가람이 나갈 방향을 예측해 슬라이딩 태클을 걸었다.
만약 강승연의 삶에서 미리 저런 태클을 걸었다면 공을 띄워 올리고 아빠 다리로 공을 감싸 가볍게 넘어갈 테지만, 지금은 그런 개인기를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몸이 따라주지 않는 게 현실이었다.
‘젠장..’
이미 속도가 붙은 상태에서 방향을 급선회 한다면 분명 공은 길게 뻗어나갈 것이고 그럼 이번 공격은 허무하게 끝날 것이었다.
그 때 가람의 눈 앞에 왼쪽에서 돌아뛰는 선더랜드의 왼쪽 수비수 브라이언 오비에도가 보였다.
꼭 이 상황을 예측한 듯 오프 사이드 트랩을 뚫고 달리는 그의 모습에 가람은 주저 없이 그대로 크로스를 올렸다.
뻐어엉!!!
공은 경기장을 종으로 가로 지르며 상대편 오른쪽 공간으로 쇄도해 들어가는 브라이언 오비에도를 향해 날아갔다.
“여기서 김가람 선수의 뛰어난 시야!! 반대편에서 뛰고 있는 브라이언 오비에도 선수를 보고 크로스를 올립니다. 선더랜드 기회입니다.”
투우웅!!
“브라이언 선수! 앞에 아무도 없어요. 이거 포츠머스에서 가람 선수를 막으려고 라인을 올린 게 이렇게 실점으로 연결되나요.”
브라이언 오비에도는 공을 드리블해 왼쪽 터치 라인에서 바로 골 에이리어로 접근해갔고, 라인을 올렸던 포츠머스의 수비진들은 브라이언 오비에도의 뒤통수를 보며 루크 맥기의 선방이 나오길 기도할 뿐이었다.
뻐어엉!!
파아앙!!!
“브라이언 선수 슈팅!!! 먼 쪽 골대 밑으로 깔아 찬 아주 좋은 슈팅을 루크 맥기 선수가 몸을 날려서 막아냅니다. 이건 잘 찼고 잘 막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아! 아쉽네요. 전반 후반 통틀어 제일 좋은 기회였는데 정말 아쉽습니다. 하지만 선더랜드는 이런 모습이 자주 나와야 합니다. 포츠머스는 반대로 어떻게든 가람 선수를 묶어둘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가람 선수에게 공간이 나오자마자 이렇게 좋은 찬스가 나왔거든요. 그렇다고 전반처럼 계속 파울로 가람 선수를 막는 것은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대책이 서지 않는 순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후반 시작과 동시에 포츠머스의 위기! 다시 경기는 선더랜드의 코너킥으로 이어집니다.”
“루크 맥기 선수가 잘 막아주기는 했지만 선더랜드의 코너킥은 언제나 날카롭거든요. 조심해야 합니다.”
그때 선더랜드의 벤치에서 잭 로스 감독이 일어나더니 필드를 향해 크게 소리쳤고, 원래 코너킥을 차던 조지 허니먼이 아니라 가람이 코너킥을 차기 위해서 위치하게 되었다.
“어.. 여기서 코너키커를 가람 선수로 바꾸는 잭 로스 감독입니다.”
“그렇습니다. 여태까지는 조지 허니먼 선수가 전담해서 찼는데요. 하긴 정확한 킥을 구사하는 가람 선수라면 분명히 코너킥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일 것인데요. 지켜봐야겠습니다.”
그렇게 중계진의 기대 속에 가람은 코너킥을 준비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