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체커트레이드 트로피 결승전[2]
“휴우우..”
가람은 코너킥 에어리어에 서서 잠시 눈을 감았다.
지난번 프리킥 훈련 후 잭 로스 감독은 조지 허니먼뿐 아니라 가람도 특훈에 포함시켰다. 그리고 프리킥 만큼이나 코너킥에서도 날카로운 모습을 보이는 가람을 보며 이번 경기에서 신호를 보내면 언제든 코너킥을 차라는 지시를 받았다.
가람은 양손을 들고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를 보내고 가볍게 뛰다가 힘껏 발돋음 한 후 강하게 발등과 인사이드 중간 지점에서 임팩트를 맞히면서 약간 감아 찬다는 느낌으로 발 스윙을 길게 가지고 갔다.
방법은 프리킥과 거의 마찬가지였지만 프리킥과 다르게 골대를 직접 노리는 게 아니라 공격수에게 공을 배달하는 게 목적인 코너킥이었기에 가람은 발에 힘을 주는 것에 집중하기 보다는 좀 더 원하는 방향에 도달할 수 있도록 발의 각도를 조절했다.
뻐어엉!!
공은 높지도 낮지도 않은 각도로 빠르게 날아갔고, 가람은 자신이 원하는 코스로 완벽하게 공이 뻗어나가는 걸 보고는 흡족한 마음이 들었다.
가람이 원했던 곳은 바로 중앙 수비수 뒤에서 런닝 점프를 준비를 하고 있는 윌 그릭이 런닝점프를 했을 때 딱 헤딩에 걸리기 좋은 위치였다.
윌 그릭도 자신이 원하는 위치로 날아오는 공을 보고는 낙하 지점을 포착해 포츠머스의 거친 수비수들을 뚫고 뛰어 올랐고, 공이 날아오는 궤적을 보며 이건 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휘리리릭~~
갑자기 공이 흔들리더니 윌 그릭의 앞통수가 아닌 옆통수에 직격으로 맞았다.
공의 방향이 꺾인다고 해도 공격수는 공을 끝까지 보며 어떻게든 공의 방향을 바꿔야하겠지만 공중에서 갑자기 방향을 바뀌는 공에 대응하는 건 힘든 일이었다.
그리고
커어억!!
비명과 함께 윌 그릭은 그대로 공에 맞아 떨어졌고, 공이 골 라인을 넘어 아웃이 되었다.
“가람 선수의 날카로운 코너킥을 윌 그릭 선수가 마무리하지 못하면서 선더랜드의 공격 기회는 무산됩니다.”
“세트피스에서 무서운 집중력을 보이는 윌 그릭 선수 답지 않는 모습이었네요. 아쉽습니다.”
그렇게 중계진이 마무리를 하려는 순간 방금 코너킥의 리플레이 장면이 나왔다.
그 속에는 가람이 찬 공이 갑자기 휘어져 윌 그릭의 옆통수를 가격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오우.. 이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호흡이 안 맞았다고 하기에는 가람 선수의 공에 윌 그릭 선수가 정확한 타이밍에 뛰어올랐습니다. 가람 선수의 공이 너무 강했던 것 같네요. 윌 그릭 선수가 괜찮은지 걱정됩니다.”
“다행히 윌 그릭 선수는 일어나고 있습니다.”
윌 그릭이 누워 있다가 골라인 바깥으로 나가서 치료를 받는 장면이 나오더니 다시 가람이 코너킥을 차는 모습이 나왔다.
그리고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개리 리네커가 눈을 크게 뜨더니 입을 열었다.
“이거 대단하군요. 가람 선수 코너킥에서 무회전 감아차기를 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만약 이게 프리킥이었다면 대단했을 것 같네요. 정말 재미있는 선수입니다. 평범하게 차도 될 것을 하나 하나에 전력을 다 한다는 느낌이 드네요.”
가람의 코너킥은 약간의 해프닝을 남기고 무위로 돌아갔고, 포츠머스의 공으로 경기는 다시 시작되었다.
4-4-2로 나온 포츠머스는 빠르게 공격을 전개하기 보다는 공을 돌리면서 천천히 지공으로 나섰다.
“포츠머스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그래도 라인을 올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죠. 선더랜드의 날카로운 역습은 리그1에서도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었으니 포츠머스 입장에서는 굳이 선더랜드가 좋아하는 상황을 만들어줄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도 보세요. 포츠머스 선수들의 간격이 오밀조밀하죠.”
포츠머스의 2선 라인은 상대 공간을 침투하기 보다는 동료의 패스를 받기 좋은 위치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렇습니다. 포츠머스 선수들 짧은 간격을 유지하면서 선더랜드 진형에서 공을 돌리고 있습니다.”
“지공을 펼치는 팀들은 대부분 공을 돌리면서 상대의 허점을 찾거나, 포스트 플레이에 능한 공격수를 이용해서 공격 찬스를 만들지만 지금 포츠머스를 보면 최전방 공격수조차 2선 라인까지 내려서 패스를 받아주고 있습니다. 굳이 무리한 패스를 해서 중간에 선더랜드에게 잘려 역습을 내어주지 않겠다는 거겠죠.”
포츠머스의 다소 지루한 공 돌리기는 지속되었고, 경기장 스코어를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포츠머스가 이기고 있는 경기라고 착각을 할 정도로 집요하게 시간을 보내며 공을 돌렸다.
“우우우!!”
그렇게 시간은 흘러 갔다.
물론 종종 선더랜드는 공을 탈취해서 역습 기회를 만들었지만, 포츠머스의 골키퍼 루크 맥기의 선방에 막혔고, 그게 아니라면 선더랜드의 역습을 대비하고 있던 포츠머스의 수비 라인에게 막히게 되었다.
후반 40분
관중석에 있는 선더랜드의 팬뿐 아니라 포츠머스의 팬들까지 포츠머스 선수들이 공을 잡는 순간 야유를 퍼붓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던 개리 리네커가 입을 열었다.
“오늘 경기 전반, 후반 포츠머스는 다소 어려운 과정이었지만,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만들었습니다. 아마 포츠머스는 오늘 경기 연장전을 넘어 승부차기까지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솔직히 오늘 루키 맥기 선수의 뛰어난 선방 능력을 본다면 승산이 없는 게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지만 그런 경기는 관중들이 좋아하지는 않죠. 골이 들어간 것도 아니라 0대 0 무승부 승부차기는 좀 아쉬울 것 같습니다. 선더랜드도 이렇게 작정하고 나온 팀을 상대로 특별한 파훼법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 아쉽네요.”
그렇게 다들 지루한 이 경기가 연장전에 들어갈 거라고 생각할 때 포츠머스 선수들은 관중들의 야유에도 꿋꿋히 공을 돌리는 데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그 상황을 지켜보던 잭 로스 감독은 이제는 시간이 되었다는 듯 자신의 손목 시계를 보더니 맥스 파워를 보며 크게 소리쳤다.
“맥스!!! 밀어붙여!!”
그 말이 신호탄이 되어 맥스 파워는 남아 있는 모든 체력을 모두 소진하겠다는 듯이 지공을 펼치는 포츠머스의 선수들을 향해 미친 듯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공을 가지고 있는 포츠머스 선수에게 저돌적으로 돌진하는 맥스 파워는 아마추어 선수처럼 공을 따라 이리저리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누군가 본다면 반복적인 똥개 훈련 혹은 맥스 파워를 괴롭히는 것처럼 보였다.
“맥스 파워 선수 공을 향해 저돌적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저런 움직임은 비효율적으로 보이는데요. 어떻게 보십니까?”
“물론 쓸데없이 많이 움직이면서 체력이 떨어지면 큰 문제가 되겠지만, 오히려 포츠머스가 작정하는 지공에서 시간을 보낸다면 맥스 파워 선수처럼 활동량이 왕성한 선수가 압박감을 주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개리 리네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공을 돌리던 포츠머스의 중앙 미드필더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맥스 파워만 신경 쓰다가 옆에서 접근하고 있던 리 캐터몰의 움직임을 견제하지 못했고, 노련한 리 캐터몰은 어렵지 않게 공을 뺏을 수 있었다.
“역습!”
공을 얻은 후 리 캐터몰은 오른쪽 윙어인 던컨 왓모어에게 공을 건넸고, 던컨 왓모어는 공을 받는 순간 뒤에 있는 가람에게 바로 패스를 건넨 후 중앙 수비수와 왼쪽 윙어 사이 공간을 파고 들었다.
“여기서 선더랜드의 역습 찬스! 포츠머스가 두려워하는 시간이 왔습니다.”
“왼쪽 윙어인 린든 구지, 공격수 윌 그릭, 던컨 왓모어까지 포츠머스의 수비 라인을 압박하며 밀고 들어갑니다. 그리고 공은 오늘 경기 날카로운 크로스를 선보였던 김가람 선수 가지고 있습니다.”
가람은 던컨 왓모어가 내준 오른쪽 터치라인 공간을 타고 스피드를 살려 올라가기 시작했다. 포츠머스의 수비진들은 이미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는 선더랜드의 다른 선수들을 막기 급급해 가람을 마크하지 못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공간이 많이 있어.’
선더랜드의 공격수들이 포츠머스의 골대로 접근하면 할수록, 포츠머스의 수비 라인은 그들을 막기 위해 뒤로 밀려났고, 그렇게 되면 될수록 가람의 공간은 더 많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라면..’
가람은 오른쪽 터치라인에서 방향을 틀어 패널티 에이리어쪽을 향해 방향을 꺾으며 가속했다.
그제야 가람이 크로스가 아니라 직접 공격을 할 수도 있다고 판단한 포츠머스의 왼쪽 수비는 던컨 왓모어를 마크하다가 가람에게 접근했다.
“가람 선수! 안으로 파고듭니다.”
하지만 속도가 붙어버린 가람을 막기에는 왼쪽 수비의 움직임은 둔했고 가람은 그렇게 왼쪽 수비를 손쉽게 제쳐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내 패널티 에어리어 근처까지 도달한 가람 앞에는 포츠머스의 수비진들과 선더랜드의 공격자원들이 보였다.
이제는 패스 혹은 슈팅을 선택해야 할 때였다.
이렇게까지 탈력을 받아 가속도가 붙은 상태에 그 속도로 수비수 한 명까지 제치면서 얻은 자신감이 더해졌다면 이 기분을 담아 슈팅을 가지고 가는 게 정답이었다.
하지만 이때 가람의 머리를 스치는 것은 자신의 슈팅 능력 60이었다. 물론 능력치가 모든 것을 말하는 건 아니지만, 신경을 쓰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나마 킥 정확도가 82가 되면서 슈팅도 좋아지기는 했지만, 지금은 가속도가 붙은 상태에서 이 속도를 유지한 채 밸런스가 무너지지 않게 슈팅을 가져가야 했다.
달리는 속도를 유지한 채 그 속도를 담은 슈팅!
흔히 유럽 축구 중계에서 볼 수 있는 축구 선수들이 하는 달리다 슈팅이지만, 이 슈팅이 골로 이어지려면 상당히 많은 스킬이 필요했다.
그리고 가람은 지금 자신의 능력으로는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여기서는.’
그때 왼쪽 윙어인 린든 구지가 중앙 수비수와 오른쪽 수비수 사이 공간으로 뛰어 들어가는 게 보였고, 가람은 여기서 약하게 크로스를 띄운다면 그에게 좋은 헤딩찬스를 만들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기 위해 오른발을 뒤로 빼는 순간
촤르르르~~
웸블리 스타디움의 훌륭한 천연 잔디를 가르는 소리가 가람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 그리고
갸우뚱
가람은 디딤발인 왼발에 묵직한 고통이 느껴지면서 시야가 흔들렸다. 게다가
콰지직!!
무언가 부서지는 듯한 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그 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이건 좋지 않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고 그렇게 가람은 잔디밭에 구를 수밖에 없었다.
삐이이익!!!
주심의 신경질적인 휘슬소리가 경기장에 울려퍼졌다.
“아! 의욕이 너무 앞서 나갔나요. 톰 네일러 선수 교체로 들어온 딜 화이트 선수가 뒤에서부터 들어온 거친 태클! 이건 좋지 않습니다.”
딜 화이트는 자신이 저지른 거친 태클에 가람에게 사과도 하지 않고 심판의 휘슬에 거부반응을 보였다.
그와 반면 가람은 고통스러운 발목을 잡고 잔디 밭에서 구르기 시작했다.
심판은 단호하게 레드 카드를 들어올렸고, 딜 와이트는 억울하다는 듯 소리쳤지만, 주변에서 보고 있던 포츠머스의 선수들도 이건 아니라는 듯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딜 와이트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중계 카메라에 잡힌 느린 장면이 나왔을 때 중계진과 관중석에 있는 관중들은 모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