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U20 월드컵 합류[2]
2019년 4월 20일 인천 국제 공항
비행기에서 내려 짐을 찾은 가람은 바로 핸드폰을 들어 가족에게 전화를 건 후 김하늘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늘이형 잘 도착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협회측 사람한테 마중 나와달라고 이야기 했으니깐 아마 네 이름 들고 있는 분한테 가면 될 거야.”
“아니 그래도 에이전트가 같이 와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러고 싶은데 말이야. 누구씨께서 자신의 미래를 선더랜드에 걸겠다고 협박을 하시는 덕분에 머리가 아프다. 지난번에도 말했듯이 구단 인수가 편의점에서 라면 사는 것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이거야.”
“그런가요? 그래도 형은 능력 있으니깐 믿을게요.”
“믿지 않아도 되는데 생각보다 아랍의 부자들이 선더랜드 많이 노리더라. 여튼 한국에서 훈련 잘하고 여기 일 정리되는 거 보면 아마도 본선이 열리는 폴란드에서 만날 수 있을 거야.”
“알겠어요. 그럼 구단주님 잘 부탁드립니다.”
“안 될 수도 있으니깐 너무 헛물 켜지 마라.”
지난번 차에서 대화 이후 가람은 김하늘을 계속 설득했고, 점점 흔들리기 시작했다. 결국 김하늘은 알 수 없는 이끌림과 가람의 설득에 구단 인수를 결심하게 되었다.
어쩌면 그건 승연의 삶에서 항상 구단주의 삶을 살았던 김하늘의 운명의 이끌림으로 볼 수 있는 것이었다.
물론 지금은 스스로 자금 마련이 어려워 아내의 도움을 받는다고 들었는데 김하늘이 구단을 사기만 한다면 그 과정은 가람이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거지?’
가람은 입국을 할 때부터 무언가 소란스러운 C게이트에 호기심이 들었지만 연예인이라도 왔을 거라고 생각한 가람은 다른 게이트를 통해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밖으로 나간 가람은 C게이트쪽을 보며 추억에 잠겼다.
‘그래. 내가 한국에 입국할 때마다 기자들에게 둘러 쌓였었지.’
그렇게 잠시 추억에 잠길 때
찰칵 찰칵 찰칵!!
수많은 카메라의 셔터음이 들리며 C게이트쪽에 빛의 폭발이 일어났다. 그리고 꼭 신부의 부케처럼 엮어진 거대한 마이크가 어려 보이는 청년에게 건네졌다.
“이강운 선수. 이번 U20월드컵에 참여하게 되었는데요. 소감은 어떠신가요?”
“정전용 감독님께서 저를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고, 형들과 함께 생활하는 데 문제 없고 막내로서 열심히 하겠습니다.”
간단한 소감부터 각오까지 한국 축구의 미래라고 불리는 이강운 선수에 대한 인터뷰가 이어지고 가람은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봤다.
‘이강운이라..’
가람이 승연으로 살았을 때도 이름이 알려진 선수였다.
여러 번 회귀의 삶을 살면서 이강운은 명성이 드높은 경우도 있었고 아니면 그냥 한 때 유망주라는 이야기로 끝나는 시절도 있었지만, 평균을 내보면 손홍민 선수를 이어 해외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기대를 주었던 인물로 성장했다.
하지만 그것도 가람이란 인물이 교통사고로 이 시기에는 등장하지 않을 때의 이야기였다. 지금은 그 가람의 몸에 자신이 들어왔으니 앞으로 이강운의 인생에도 적지 않게 영향을 줄 것이었다.
그렇게 잠시 이강운의 인터뷰에 집중하고 있을 때
톡톡!
“저기 혹시 김가람 선수이신가요?”
약간 어색한 영어에 가람은 뒤돌아봤다.
거기에는 20대 후반 정도 되어 보이는 단정한 인상의 남자가 긴장을 했는지 연심 땀을 흘리며 서 있었다.
“네. 맞습니다.”
“어라.. 한국말 하실 수 있으세요? 한국에서는 살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아. 아버지가 한국 사람은 한국말은 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하셔서 가르쳐 주셨거든요.”
사실 이 말은 뻥이었다.
추억에 잠겨 여기가 한국이라는 것에 빠져버려 들려오는 어설픈 영어에 자신도 모르게 한국말이 툭 튀어나온 것이었다.
“휴우.. 그렇다면 정말 다행이에요. 제가 사실 영어 울렁증이 있어서 말이죠.”
“그래요? 제가 듣기로는 통역사 분이 오신다고 들었는데..”
“그 친구가 갑자기 배가 아파서 제가 왔습니다. 저는 김철수입니다.”
그 이름을 듣는 순간 가람은 눈 앞에 승연의 삶에서 나이를 먹고 지금과 달리 상당히 뚱뚱한 몸매를 자랑하는 한국 축구 협회 사무국장인 김철수가 떠올랐다.
‘분명히 젊었을 때는 날렵했다고 하셨는데 설마..’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람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
“혹시 단팥빵 좋아하세요?”
“오오!! 혹시 가람 선수도 좋아하시나요? ”
김철수는 바로 자신이 메고 있는 백팩에서 단팥빵과 우유를 꺼냈다. 가람은 이사람이 자신이 알고 있는 사무국장인 김철수인 걸 확신했다.
승연이 수많은 회귀의 삶을 살아도, 변하지 않는 김철수의 단호한 취향인 단팥빵과 우유. 단순히 좋아할 뿐 아니라 가방에 여분을 싸서 다른 사람에게 전파하기도 했다.
물론 그 단밭빵이 자신의 어머님이 했던 집이었고, 그거 나중에 아내가 이어받으면서 한국에서 내놓라하는 빵집이 되었지만 그건 좀 먼 미래의 일이었다.
그리고
“좋아해요.”
“오우! 이런 안 그래도 제가 가람 선수에게 주려고 많이 가지고 왔거든요. 마음껏 드셔도 됩니다. 아하하”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웃음소리.
약간 경박해 보일지는 몰라도 저 웃음소리는 왠지 모르게 사람의 기분을 좋게 했다.
가람이 승연으로 회귀의 삶을 살 때 힘든 일이 있거나 지쳤을 때 마법처럼 나타나 조언과 함께 그의 웃음 소리로 자신에게 힘이 되고는 했었다.
힘든 일이 있으면 의지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를 만나 기분 좋게 그의 차에 올라 훈련장으로 향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정말 한국에는 아는 사람이 전혀 없나요?”
약간은 실례가 될 수도 있는 질문이지만 김철수는 아랑곳 하지 않고 물어봤다. 하지만 그게 그의 매력이라 가람은 웃으며 대답했다.
“아버지가 고아라고 들었어요. 그래서 한국에는 전혀 아는 사람이 없죠. 아버지가 해병대에서 직업 군인하시다가 전역하신 후 선더랜드의 전설 나이얼 퀸 선수의 경기를 직접 보고 싶다는 그 생각 하나로 잉글랜드로 가셨다고 들었거든요.”
“그 당시 해외 축구 그것도 선더랜드 경기를 보셨다면 상당히 축구를 좋아하셨나 보네요. 게다가 해병대를 나오셨다니 가람 선수도 아버지의 애국심에 영향을 받아 한국 국가대표로 오신 건가요? 아! 물론 아직 정식 A대표팀은 아니니 한국 국적을 선택하라고 압박 하는 건 아닙니다.”
“하하하. 괜찮아요. 그리고 지금 연령별 대표에서 노력하면 국가대표에도 뽑히겠죠. 저는 한국 사람이에요. 어머니도 제 뿌리는 언제나 한국이라고 말씀하셨고요. 어머니랑 외할아버지도 그건 인정하셨어요.”
“가람 선수의 선택이 틀리지 않을 겁니다. 다른 연령대는 몰라도, 이번 U20 월드컵은 확실히 우승할 수 있거든요.”
승연의 반복되는 회귀의 삶에서 2019 U20 월드컵에 한국팀은 매번 아쉽게 준우승을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내가 우승 시키게 되겠지만.’
그렇게 자신감을 가지고 파주 NFC 센터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입구에는 아까 인천공항과 마찬가지로 장사진을 치고 있는 수많은 기자들이 보였고 김철수는 난처한 듯 입을 열었다.
“이런.. 조금 일찍 온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이강운 선수랑 겹쳤나본데요. 어떻게.. 가람 선수 지금 들어가실래요? 아니면 조금 있다가 들어갈까요? 어차피 훈련은 오후에 시작되거든요.”
“상관없어요. 그냥 지금 가시죠.”
가람의 쿨한 대답에 오히려 김철수가 불안했다.
아무리 쿨한 척을 해도 수많은 기자가 자신이 아니라 다른 선수를 찍으러 왔다면 상대적으로 위축이 되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거기다가 그런 언론의 관심에 제일 민감하다고 할 수 있는 어린 시절이었기에 김철수는 가람이 상처를 받지 않을까 걱정했다.
덜컥!
차 문이 열리고 가람과 김철수가 내리자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기자들이 한 마디씩 거들었다.
“뭐야.. 벌써 온 거야?”
“어라.. 저건 협회 직원 차인데.. 오늘 입소하는 건 이강운 선수 한 명만 있는 거 아니였어?”
그때 옆에 있던 베테랑 기자가 바로 핸드폰을 들더니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의 핸드폰이 울리더니 베테랑 기자는 자신의 카메라를 들고 뛰어갔고, 뒤늦게 그의 모습을 본 다른 기자들도 가람을 향해 뛰어갔다.
“뭐야! 왜 뛰는 거야?”
“몰라! 우선 뛰기나 해! 괜히 늦었다가 콩고물도 못 얻을 수도 있잖아.”
그렇게 베테랑 기자를 필두로 생각보다 많은 기자들이 가람을 향해 뛰어왔다. 김철수는 생각지 않은 기자들을 보며 그나마 가람이 실망하지 않겠다는 듯 안심했다.
하지만 뛰어온 기자의 선두에 서 있던 베테랑 기자가 가람의 얼굴이 보이는 곳까지 오더니 자리에 멈춰섰고, 나머지 기자들도 그가 걸음을 멈춰서자 같이 걸음을 멈췄다.
“어라? 정운영 선수가 아니잖아.”
베테랑 기자가 실망했다는 듯 멈추더니 자리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김철수는 꼭 자신의 일처럼 실망했다.
물론 오늘 바이에른 뮌헨에 극적으로 차출 허가를 받은 정운영 선수가 오는 건 맞았고, 가람과 마찬가지로 협회 직원이 태워오는 것도 맞았다.
아무리 정운영과 가람이 헷갈렸다고 해도 이렇게 아무런 관심을 주지 않자, 김철수는 갑자기 단전 밑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분노에 크게 소리쳤다.
“선더랜드 기적의 승격을 이끌고 체커트레이드 트로피 우승을 시킨 오른쪽 윙백! 그 경기 MOM을 자랑하는 한국의 보물!! 이중 국적이지만 잉글랜드가 아닌 한국 대표팀을 선택한 선수가 바로 여기 있는 김가람 선수라고요!!”
가람은 선수를 사랑하는 에이전트인 김하늘보다도 강렬한 가람의 소개를 방금 만난 협회직원인 김철수에게 듣는 순간 이건 꿈이였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반대로 이렇게까지 소개를 한다면 기자들이 달려들겠구나 하는 마음도 마음 한켠에 들기도 했다.
하지만 기자들의 반응은 매우 현실적이었다.
“뭐라는 거야? 실력이 없어서 한국팀을 선택한 거겠지.”
“그래서 이강운은 언제 오는 거예요?”
“오늘 정운영은 오는 겁니까?”
기자들의 냉담한 반응은 당연했다.
잉글랜드 리그1의 경기는 한국에서 중계를 해주지 않았다. 그나마 챔피언쉽 경기도 간혹 스포츠 도박을 하는 사설 사이트에서 중계를 해주는 시절이었기에 가람에 대한 인식은 제로에 가깝다고 봐도 되었다.
그렇게 철수의 말과 냉담한 현실에 아무리 산전수전을 겪은 가람이라고 해도 얼굴이 붉어지려고 했다. 그 때
“야!! 저기 온다!!”
딱 봐도 스포츠 스타나 연예인이 타는 벤 차량이 들어오는 입구에서 나타나자, 벤의 번호판을 확인한 기자들이 꿀을 쫓아 달려드는 꿀벌들처럼 엄청나게 몰려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기자들의 카메라 세례를 받으며 이강운이 나타나 여유롭게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며 훈련 센터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중간에 멀뚱이 서 있는 가람을 보며 이강운이 말을 걸었다.
“네가 혹시 이번에 나 말고 월반한다는 가람이니?”
그렇게 생각지 않게 이강운의 한마디로 가람은 기자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