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안세대전[1]
“어어어!”
가람은 생각지 않은 메시지 창의 폭풍에 놀라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는데 옆 침대에서 이어폰을 꽂고 노트북을 보고 있는 이강운의 귀에도 그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뭐야 무슨 일이야?”
이강운이 놀래 침대에서 일어나며 묻자, 가람은 순간 머쓱한 표정으로 답했다.
“아.. 아니야. 악몽을 꿔서..”
“뭐야. 벌써 잠들었던 거야? 졸리면 불 꺼줄까?”
“아.. 아니 괜찮아. 어두운 곳에서 노트북 보면 눈 아프잖아.”
“자식. 배려해주는 거냐?”
그렇게 이강운이 다시 자리를 잡고 노트북에 집중하자, 가람은 자신의 상태창을 살폈다.
김가람 / 나이: 만 18세 / 키 : 178 / 몸무게 : 70 / 주발 : 오른발
|개인기 60|, |슈팅 65|, |킥정확도 82|, |드리블 70|, |헤딩 60|, |패스 60|, |태클 90|, |민첩 70|, |체력 75|, |속도 85|, |몸싸움 75|, |위치선정 73|
미분배 포인트 : 30
‘오늘 리그 결산한다고 하더니만...’
생각지 않은 포인트를 받은 가람은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30개의 포인트를 한 번에 얻은 것도 처음이었기에 어떻게 분배할까라는 생각에 빠졌다.
'지금 연령대 윙어로 뛴다면 속도만 압도적이여도 승산이 있지..'
그렇게 가람이 속도에 스탯을 투자하려고 하자, 눈 앞에 메세지 창이 나타났다.
[스탯 85부터는 2개의 포인트로 1 스탯을 추가할 수 있습니다.]
그 메세지창을 보는 순간 지난번 던컨 왓모어와의 미션을 통해 태클 능력을 80에서 90으로 오른 것이 생각났다.
그건 단순히 10포인트가 아닌 15 포인트가 있어야 가능했다는 걸 알 수 있었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스템 메시지에 가람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속도가 빠르면 좋기는 하지만 지금 속도도 충분히 경쟁력은 있었기에 다른 스탯을 올리는 게 좋아보였다.
‘아직 오른쪽 윙어로 확실히 자리를 잡은 게 아니야.’
그때 방금 전 전술회의에서 정전용 감독이 말했던 것이 뇌리를 스쳤다.
‘특히 높은 위치에서 수비로 상대 윙어를 못 살게 해라. 물론 공격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그것도 좋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가람은 고민 없이 드리블, 체력, 몸싸움에 스탯을 분배했다.
|드리블 70 -> 80|, |체력 75 -> 85|, |몸싸움 75 -> 85|
공격적인 능력을 키우는 것도 좋겠지만, 우선은 다른 사람이 봤을 때 자신의 장점이라고 생각 되는 능력을 유망주 이상의 능력으로 올리는 게 먼저였다.
그렇게 기분 좋게 포인트 분배를 마친 가람은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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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5일 파주 NFC센터 연습 경기장
오전부터 진행되는 연습경기에 안세대 선수들은 미리 도착해 몸을 풀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뒤 U20 월드컵 대표팀 팀원들도 나타나 몸을 풀기 시작했고, 두 팀 사이에 알 수 없는 투쟁심이 느껴졌다.
그런 것을 뒤로 하고 정전용 감독은 상대방 벤치쪽으로 황급히 뛰어갔다.
“선배님 오늘 연습경기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야. 정감독 부탁인데 당연히 들어줘야지. 우리 애들 오늘 경기 결과에 따라 월드컵 엔트리에 포함될 수도 있다고 말해주었더니 눈에서 불이 나오는데 괜찮겠어?”
“괜찮습니다. 선배님. 월드컵에 가면 더 거친 팀이랑 붙을 수도 있는데요. 대신 서로 부상만 조심하도록 하시죠.”
“그건 당연하지 정감독. 그럼 나도 잘 부탁하지.”
그렇게 상대 감독과의 대화를 마친 정전용 감독은 어제 했던 전술 훈련처럼 전반에는 4-2-3-1 전술로 나왔다.
이강연
황태형 – 김현웅 – 이재욱 – 최성
정호민 – 김정진
김가람 – 이강운 - 정운영
우세훈
그리고 그 전술을 본 안세대의 감독은 휘바람을 불며 살짝 놀랐듯이 입을 열었다.
“뭐야. 이거 최전방에 우세훈, 왼쪽 윙어에 바이에른 뮌헨 2군에서 뛰고 있는 정운영, 공격형 미드필더에는 발렌시아의 이강운을 썼잖아. 이거 마음 먹고 전반부터 털겠다는 건가? 오른쪽 윙어는 이번에 월반한 녀석으로 보이는데 저 위치에 선발로 나섰다면 능력이 있다는 건가?”
다른 선수에 비해 정보가 부족한 가람을 보며 안세대 감독은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자신들이 누구인가? 끈끈한 수비와 조직력으로 전국 대학교 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쥔 팀이었다.
“윤성아! 전반에는 좀 잠가보자.”
안세대 감독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벤치 쪽 터치라인에 있던 윤성이라고 불린 오른쪽 윙백의 선수가 동료를 보며 크게 외쳤다.
“선배님들! 초반에는 잠그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윤성의 말에 안세대 선수들은 바로 간격을 좁히고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단 한번의 지시였지만, 단번에 팀의 분위기가 바뀌는 걸 본 정전용 감독이 재미있다는 듯 수석코치인 김요셉을 보며 말했다.
“저 친구가 권윤성인가?”
“넵 맞습니다. 감독님. 2학년인데도 안세대 팀의 주장을 맞고 있죠. 탁월한 리더십과 센터백, 게다가 수비라인 맞추는 건 귀신이라고 하더라구요. 원래 프로로 전향했어야 했는데 부모님 반대로 대학교에 갔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군. 나이는?”
“한 학년 일찍 들어가서 저희 대표팀에 들어오는 건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 알았어.”
사실 정전용 감독에게는 훈련 도중 생각지 않은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그건 바로 가람의 뛰어난 공격 능력이었다. 물론 오른쪽 윙백으로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겠지만 좀 더 높은 위치에서 활동을 하면 이번 월드컵에서 분명히 좋은 무기가 될 것이었다.
그래서 가람을 오른쪽 윙어로 기용하고 가람에 밀려 이번에 월드컵에 뽑히지 못한 권윤성을 다시금 시험하기 위해서 이 자리를 마련한 것이었다.
즉 가람의 포지션 변경에 따른 시험대가 오늘 경기의 주 목적이었다.
하지만 가람이 기대 이하로 오른쪽 윙어 역할을 해내지 못한다면 모든 일은 없던 일이 될 것이었다.
“패스!!”
경기는 U20 대표팀이 점유율을 높이고 있었지만, 이렇다할 만한 공격 루트를 찾지 못했다.
촤르르르!!
잔디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권윤성의 깔끔한 태클이 다시 정운영의 공을 걷어냈고, 정운영은 잔디밭에 구를 수밖에 없었다.
경기가 시작된지 얼마 되지 않아 답답한 상황에 정운영은 빠른 발을 이용한 개인의 능력으로 상대 수비를 공략하려고 했지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다시 대표팀의 공으로 경기가 진행될 때 공을 받은 이강운은 반대편에 있는 가람을 보고는 길게 찼다.
뻐어엉!!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김요셉이 웃으며 답했다.
“좋네요. 저 나이에 저렇게 경기장을 넓게 볼 수 있는 걸 보면 역시 재능이 무섭기는 해요. 안 그래요? 감독님?”
김요셉의 물음에도 정전용은 대답 대신 경기장에 집중하며 가람이 어떻게 나올지 두고 봤다.
가람은 이강운의 롱패스가 떨어질 곳을 정확히 포착해서 상대 왼쪽 윙어보다 발빠른 움직임으로 공을 잡았다.
상대 왼쪽 수비수도 허수아비는 아닌지라, 가람이 공을 잡는 순간 어깨를 밀어넣어 몸싸움을 걸었다.
투욱!!
휘처청~
하지만 안세대 왼쪽 수비수는 먼저 어깨를 집어 넣고 좋은 위치를 차지했는데도 생각지 않은 충격과 함께 튕겨나가게 되었다.
더욱 놀라운 거 상대는 자신의 어깨 싸움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고 그대로 공을 몰고 나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너무나 황당한 상황에 정신이 쏙 빠져 어안이 벙벙할 때 반대편에서 권윤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배!! 정신 차려요!!”
그 소리에 안세대의 왼쪽 수비수는 몸의 밸런스를 다시 잡고 가람을 쫓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속도를 내도, 눈 앞에 뛰고 있는 가람과의 격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공을 가지고 있는 선수와 공을 가지고 있지 않는 선수의 달리기에서 당연히 공을 가지고 있지 않는 선수가 빨라야 한다는 상식을 뛰어넘는 엄청난 가람의 드리블 스피드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가람은 왼쪽 수비수를 제쳐낸 후 그대로 골문으로 향했고, 골문에 가까워지자, 안세대의 중앙 수비수가 우세훈을 두고 가람을 마크하기 위해서 달려들었다.
그 순간
타타탁!!
중앙 수비수가 우세훈에게서 멀어지자, 우세훈은 영리하게 열린 공간으로 뛰어 들어갔고, 그때에 맞춰 가람은 그 움직임에 화답했다.
뻐어엉~~
우세훈의 머리가 아닌 발을 보고 찬 짧고 낮은 크로스는 채찍처럼 날카롭게 날아갔고, 가람을 막기 위해 뛰어나온 안세대의 중앙 수비수 옆을 지나 우세훈의 오른발 앞에 정확히 떨어졌다.
투욱!!
촤르르르르!!!
그렇게 골이 터지고 우세훈은 가람에게 다가가 기분 좋게 웃으며 말했다.
“나이스 어시스트!”
“앞으로도 쭉쭉 넣어줄 테니 마무리 잘 부탁합니다.”
“걱정 하지 마라! 머리든 발이든 지금처럼 정확하게 오면 마무리 해줄 테니까”
자신의 예측대로 머리뿐 아니라 정확한 슈팅도 가능한 우세훈을 보며 가람은 경기가 쉽게 풀릴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
“주장! 자리 바꿔라!!”
안세대 감독이 일어나 약간 흥분된 목소리로 외쳤고, 그 말과 동시에 권윤성은 아까 왼쪽 수비를 봤던 선수와 자리를 바꾸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정전용 감독이 재미있다고 보자, 옆에 있는 요셉이 자신의 태블렛PC로 무언가 확인해보더니 입을 열었다.
“권윤성 선수 양발을 다 쓸수 있네요. 그래서 그런지 왼쪽 오른쪽 수비 둘 다 가능한 것 같아요.”
“양발이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축구 지능이 뛰어난 거야. 오늘 보니깐 이전에 비해서 태클도 날카롭고 파이팅도 넘쳐서 좋은데... 영상은 찍고 있는 거지?”
“물론입니다. 감독님 이미 협회 직원분들께 부탁을 드려서 찍고 있어요. 김철수라는 분이 단팥빵만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영상 다루는 데 능력이 좋더라구요.”
“그래. 그래서 이번에 월드컵에서 홍보팀 및 전력분석관 보조로 같이 갈 거야.”
“네에? 그래요? 이거 한 동안 폴란드에서도 단팥빵 먹게 생겼네요.”
“그런 소리 하지 말고 경기에 집중해. 오늘 경기의 하이라이트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야.”
“알겠습니다.”
경기는 한 골을 넣은 U20 대표팀이 기세를 타서 공격적으로 나왔고, 그 중심에는 이강운이 있었다.
이강운은 지공으로 천천히 공간을 쪼개나가면서 안세대를 압박하며 뛰어난 패스 능력과 경기 조율 능력 그리고 팀원들과의 호흡으로 경기를 풀어나갔다.
하지만 안세대도 한 골 먹혔다고 위축되기보다는 더욱 기세를 올려 수비의 압박을 높여갔고 결국 경기는 과열되어 이곳 저곳에서 몸싸움과 파울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그런 압박이 심해지자, 안세대 선수들보다 잃은 것이 많은 U20 대표선수들이 소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선수들은 이강운에게 패스를 받아도 바로 리턴 패스를 돌리고는 황급히 도망가듯 자리에서 벗어났고, 우세훈은 중앙 수비에게 감싸여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특히 정운영은 전반 초반 권윤성에게 당한 태클 때문에 그런지 몸 상태도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제길.. 이러면 공을 뒤로 돌려야 하나?’
결국 이강운은 3선 자리에 있는 중앙 수비인 김현웅에게 공을 건네고 공간을 찾아 나려고 마음 먹었다. 그리고 뒤돌아 패스를 하려고 하자, 벤치에서 정전용 감독의 호통이 들려왔다.
“왜 이기고 있는 팀이 몸을 사리는 거야!! 네 녀석들 월드컵 나가기 싫어?! 제대로 못해?!”
순간 화들짝 놀란 이강운은 오른쪽에서 손을 들고 뛰어 들어가는 가람이 눈에 보였고 그대로 가람이 받기 좋은 위치에 공을 밀어주었다.
타타탁!!
중앙 미드필더 사이로 빠져나가는 공을 잡기 위해 가람과 권윤성은 동시에 스타트를 끊었고, 둘은 비슷했지만 살짝 발이 빠른 건 권윤성이었다.
그리고 권윤성이 공에 발이 닿고 이겼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쿠우웅!!!
교통사고라도 당한 듯 강력한 충격음이 어깨를 타고 느껴졌다. 속도까지 실린 가람의 어깨 싸움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권윤성은 그대로 나가 떨어졌다.
삐이익!!
주심의 휘슬이 울리고, 가람은 손을 뻗어 쓰러진 권윤성을 보고 웃으며 입을 열었다.
“선배님 괜찮으세요? 살살한다고 했는데 제가 힘이 좀 들어갔나 봐요.”
얼굴은 귀공자처럼 생겨서 무식한 어깨 싸움으로 자신을 날려버린 김가람을 보며 윤성은 아까 왼쪽 수비를 봤던 선배가 왜 그런 표정을 지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