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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실패 축구 황제의 상태창-30화 (31/319)

30화 안세대전[2]

삐이익!!

경기는 종료되고 안세대 선수들은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단순한 연습 경기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힘든 경기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리고 경기 스코어는 5대 0 이었다.

“제기랄..”

권윤성은 주저 앉아 애꿎은 잔디를 뜯었다.

오늘 경기는 U20 대표팀이 왜 대표팀으로 뽑혔는지 확실히 알 수 있는 경기였다. 이강운, 정운영 이라는 선수가 괜히 유럽에서 뛰는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 각각 1골씩 기록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오늘 경기를 지배한 건 다섯 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한 김가람이었다. 그리고 그런 가람과의 대결에서 졌던 아니 박살났던 자신이었다.

나이가 정말 18살이 맞는지 묻고 싶을 정도로 엄청난 몸싸움과 노련한 위치 선정였다. 게다가 엄청난 속도와 그 속도를 줄이지 않는 드리블은 놀라울 정도였다.

그리고 그런 선수가 왜 아직도 미디어에서 조명하지 않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오늘 경기도 만약 김가람이 자신을 돌파하지 못했다면 이강운, 정운영도 안세대의 수비에 막혀 제대로 된 실력을 발휘하지 못 했을 것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더욱 김가람을 막지 못해 경기를 망쳤다는 생각이 든 권윤성의 눈가에는 눈물이 살짝 맺혔다.

그때

“고생하셨어요. 오늘 제가 좀 세게 했죠. 오늘 결과에 따라 최종 엔트리가 결정된다고 해서요. 죄송해요. 선배”

가람이 다가와 미소를 머금은 채 말하며 악수를 건네자, 권윤성은 맥이 탁 풀렸다.

잘 생긴 외모에 뛰어난 실력 거기다가 인성까지 갖춘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권윤성은 경기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이렇게 좌절감을 준 선수는 인생에서 한 번도 없었기에 더욱 좌절감이 컸다.

“오늘 경기 재미있었어요. 선배랑은 계속 경기를 하고 싶네요.”

“그래? 나는 별로 하고 싶지 않네.”

그렇게 대화를 이어가려고 할 때 정전용 감독과 대화를 나누던 안세대 감독이 권윤성을 보며 소리쳤다.

“주장! 일로 와봐라.”

그렇게 권윤성은 가람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인 후 안세대 감독에게 다가갔다. 멀어져 가는 권윤성을 보며 가람은 속으로 웃었다.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권윤성.

가람이 승연의 삶에서 16살이라는 말도 안 되는 나이로 처음 월드컵에 출전했을 때 37살이라는 나이에 대한민국을 지키고 있었던 캡틴 권윤성이었다.

승연이 어린 나이에 대표팀에 제대로 적응을 하지 못해 선배들을 상대로 주먹다짐과 실력으로 자리를 잡으려고 했다. 그 때 삐뚫어진 승연을 옆에서 케어하고, 다독여주었던 사람은 권윤성이었다. 가람은 이 자리에서 그의 젊은 모습을 보게 되어 정말 반갑고 새로웠다.

‘분명 해외 진출을 하다가 에이전트가 장난질 치는 바람에 제대로 커리어도 쌓지 못했다고 들었는데.. 흐음..’

가람이 보기에 자신이랑 붙어서 그렇지만 권윤성의 능력은 충분히 지금 연령별 대표팀에도 먹힐 만했고, 그의 투지와 왼쪽 오른쪽을 가리지 않은 멀티 수비 능력은 대단했다.

문제는 그걸 자신이 박살 냈다는 것이었다.

원래 대로면 전반에는 윙어 후반에는 오른쪽 윙백으로 뛰어야 했지만, 왠일인지 정전용 감독은 전반의 포지션을 그대로 유지했고, 선수들만 교체되었다.

그래서 어제 했던 전술훈련과 다른 포지션에서 뛰어야 하는 선수들도 분명 있었지만, 경기력 자체에는 큰 문제는 없었다.

그렇게 가람이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권윤성이 자신에게 다가왔다.

“선배.. 무슨 일이라도 있으세요?”

“아.. 아니 그게.. 오늘부터 너랑 같은 방 쓰라고 하셨거든.”

그 말에 가람은 정전용을 봤고, 정전용은 웃으며 크게 외쳤다.

“가람아! 선배 잘 모셔라.”

“넵 알겠습니다.”

그렇게 최종 연습 훈련이 끝나고 권윤성이 월드컵 대표팀에 마지막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물론 권윤성의 합류와 동시에 오른쪽 윙어 한 명은 짐을 싸야 했고,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가람은 눈치 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권윤성을 안내해준 뒤 정전용 감독이 가람을 호출했다.

똑똑!

“들어와라.”

감독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정전용 감독은 자신의 노트북으로 무언가를 보다가 들어오는 가람을 보며 입을 열었다.

“앉아라.”

“넵.”

가람이 자리에 앉자, 정전용 감독은 미소와 함께 노트북의 화면을 가람이 보이게 돌려주었고, 그 화면에는 가람이 오늘 경기에서 뛴 장면이 편집되어 보여주었다.

“어제 말했던 것처럼 공격을 할 때도 수비적인 움직임이 좋았다. 특히 기회가 될 때마다 우세훈, 이강운, 반대편에 있는 정운영까지 이용하는 넓은 시야와 정확한 크로스는 보기 좋았다.”

“감사합니다.”

“그래. 내가 이렇게 널 부른 이유는 너에게 포지션 변경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알겠습니다.”

“으음? 알겠다고? 이미 예상이라도 했다는 말투구나.”

“윤성이 형을 뽑으실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했어요. 그리고 어제 전술 훈련을 볼 때 저를 시험하신다는 생각이 들었구요.”

가람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깊은 생각에 정전용 감독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 말은 이미 승낙을 했다고 봐도 되겠구나.”

“네.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 나가면 이강운을 불러와라. 너랑 방 같이 못 쓰게 되었다고 우울해 하는 거 같더라.”

“넵 알겠습니다.”

그렇게 가람은 U20 대표팀에서 오른쪽 윙어라는 새로운 포지션으로 대회를 준비하게 되었다.

비공개로 진행된 안세대와의 경기가 끝난 후 안세대 감독은 친분이 있었던 기자와 기사를 쓰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통화를 하게 되었다.

“감독님 U20 대표팀이랑 경기는 어떻게 되셨나요?”

“완전 처참하게 졌어. 5대0이야.”

“네에? 5대 0이요? 윤성이가 대표팀으로 차출 되었다고 들었는데.. 이기거나 비겨서 윤성이가 차출된 게 아니에요?”

“그래.”

기자도 권윤성의 수비 능력과 리더쉽을 알고 있었기에 한 골을 먹혀도 다시 수비 라인을 정비하여 반격을 하는 안세대의 경기 스타일로 봤을 때 1대 0 경기는 몰라도 5골이나 내어주었다는 건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U20 대표팀에 권윤성을 포함한 안세대의 튼튼한 수비력을 무너뜨릴 만한 선수가 있다는 것이었다.

“정운영 선수였나요?”

“운영이라 뭐 나름 괜찮은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아직은 개선할 점이 보이더라구.”

“그럼 우세훈인가요?”

“세훈이.. 하긴 그녀석 좋은 체격으로 포스트 플레이는 잘 하더군.”

“아! 그럼 이강운 선수군요.”

“그 녀석도 나름 괜찮기는 한대 아직은 몸싸움에서 잘 안 되었어.”

기자가 알고 있는 대부분 선수들이 거론되었는데도 안세대 감독이 확실한 대답을 주지 않자, 결국 기자는 폭발했다.

“아니 감독님. 그럼 도대체 누가 있다는 거예요?”

“차암. 자네도 오랫동안 기자 생활 했다면서 감이 없는 거야? 유럽에서 뛰는 선수가 한명 더 있잖아.”

그 말에 이전에 자신이 정운영으로 착각해 뛰어갔다가 만났던 잘 생긴 선수 한 명이 떠올랐다.

“설마? 선더랜드의...”

“그래. 맞아. 그놈은 완전 괴물이야. 이번 월드컵에서 일을 낼 거라구.”

그 말에 기자는 자신의 켜져 있는 노트북에서 가람의 정보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아니. 그 친구는 윤성이랑 같은 오른쪽 수비 보는 친구인데 그 친구한테 경기가 털렸다고요?”

“우리 경기에서는 오른쪽 윙어로 나왔어. 그리고 그 녀석이 윤성이를 박살 내는 바람에 윤성이 멘탈도 털렸고..”

“진짜예요?”

“내가 따뜻한 밥 먹고 쉰 소리 하겠나? 안 그래도 져서 속이 쓰린데..”

순간 이 정보는 대박이라는 생각이 든 기자는 다급히 외쳤다.

“감독님! 제가 오늘 저녁 아니 식사 쏘겠습니다. 경기 이야기 좀 더 해주세요.”

“에이~ 자네는 또 나한테 정보 빼가서 기사 쓸 거잖아. 안 돼~”

“제발~ 저만 알고 있을게요. 절대 기사 쓰지 않을게요.”

“뭐.. 자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저녁 시간 비우도록 하지.”

그렇게 당사자인 가람은 모르게 가람의 유명세는 조금씩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U20 대표팀은 준비를 마치고 폴란드로 건너가 경기 준비에 들어갔다.

5월 24일 비엘스코비아와 야보르와 호텔

이번 월드컵은 이전 월드컵과 다르게 각 국가대표에서 베이스 캠프를 차리고 훈련과 경기를 하는 게 아니라 주최측에서 지정한 장소를 써야 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조별 예선을 치루는 팀과 같은 숙소를 써야 했는데 이번 숙소는 내일 있을 조별 예선 첫 경기인 포르투갈과 같이 써야 했다.

물론 호텔과 스탭진들의 배려로 양 팀 선수들이 부딪히는 경우를 최소화 시키기 위해서 층을 다르게 사용했고, 식사 시간도 차이를 두었지만, 그래도 호텔 로비에서 간혹 만나는 경우는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정해진 시간에 이루어져야 하는 각국의 인터뷰 시간에는 선수들이 겹칠 수밖에 없었다.

인터뷰는 감독을 포함해서 언론사에서 지정한 몇 명 선수만이 진행되었기에 한국에서 무명에 가까운 가람은 인터뷰를 할 일이 없어 혼자 방에서 쉬고 있었다.

그때

삐리릭 삐리릭

침대 머리 맡에 있는 전화기가 울렸고, 옆에 있는 가람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가람이니? 요셉이야.”

“넵 수석 코치님. 무슨 일이세요?”

“다른 게 아니고 두 군데에서 너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해서 말이야.”

“인터뷰요? 저를요?”

“그래. 꼭 인터뷰하고 싶다고 해서 어떻게.. 괜찮니?”

“네. 문제 없어요.”

자신을 인터뷰하고 싶다는 말에 의아하게 생각한 가람은 바로 인터뷰 때 입어야 한다고 들은 후원사 마크가 새겨진 옷을 입고 방을 나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삐잉~

잠시 후 짧은 알림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고, 그 안에는 이미 타고 있던 포르투갈 선수 두 명이 보였다.

순간 가람은 멈칫 했지만, 이내 엘리베이터에 탔다. 가람이 타자마자 포르투갈 선수들은 포르투갈어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저 유니폼 한국 아니야? 트린캉.”

“맞어. 내일 붙을 팀이지.”

“어떻게 생각해?”

“어떻게 생각하기는 그냥 거쳐가는 팀이야. 발렌시아에서 뛰고 있는 선수만 조심하면 큰 문제는 없을 걸? 나머지는 그냥 허수아비지.”

“하긴 네가 착착 드리블 몇 번 하면 다들 넘어가겠지. 너만 믿는다고.”

그렇게 말하며 둘이 킥킥 웃자, 가람은 입을 열었다.

“그럼 내일 그 허수아비한테 한 번 당해봐라.”

동양인이 현지인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유창한 포르투갈어를 구사하자, 포르투갈 선수들은 상당히 놀랐다.

“너.. 포르투칼어를 할 수 있는 거야?”

“뭐 그래서 불만 있나?”

“아니..”

“트린캉이라고 했나? 내일 경기에서 허수아비가 재미있는 거 보여줄 테니깐 기대하라고!”

띠링!

가람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가람이 먼저 밖으로 나갔다. 트린캉과 다른 선수는 서로의 얼굴을 보며 뭐야 쟤는 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서로를 보고는 민망함에 웃었다.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닌데.. 민감하게 받아드리네. 안 그래 트린캉?”

“그래. 하지만 그래도 저렇게 불타는 선수가 있다면 내일 재미있는 경기 할 수 있겠어.”

솔직히 실례가 되는 말이기는 했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도 자신들의 조별 리그인 아르헨티나, 포르투갈, 남아공, 대한민국에서 약체를 뽑는다면 대한민국이나 남아공을 뽑을 거라는 건 축구를 좀 아는 사람이라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게 가람은 트린캉과 다른 선수를 뒤로 하고 인터뷰를 하기 위해 로비로 향했다.

그리고 수석 코치인 김요셉의 안내로 인터뷰 공간으로 이동했고, 그곳에서 오피스룩을 입은 미인과 그 옆에는 이전에 자신을 정운영이라고 오해했던 기자 이렇게 둘이 자신을 기다리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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