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U20 월드컵 조별 예선 아르헨티나전
2019년 5월 31일 티히 시립 경기장
조별예선 3경기 아르헨티나전
“오늘 경기의 양 팀은 이미 앞선 경기에서 두 경기를 승리로 이끈 팀이라서 주전 선수들에게 대거 휴식을 부여하며 대부분 기존에 뛰지 못했던 선수들이 경기에 나섰습니다.”
“그렇죠. 3일 간격으로 치루어지는 경기에 어린 선수다보니아직 페이스 조절이 쉬운 건 아닙니다. 그러니 코칭 스탭들은 이런 점을 잘 유념해서 선수들을 투입 시키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2경기에 많은 활동량을 보여주었던 김가람 선수가 벤치에서 시작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양 팀 오늘 경기는 좀 지루한 감이 있습니다.”
“그렇죠. 아르헨티나도 그렇고 대한민국도 그렇고 전반에는 서로 급할 것 없다는 경기 양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대한민국 3-5-2 전술을 들고 나와 수비에 집중하고 있고 아르헨티나가 쉽게 경기를 풀어나가고 있지 못하네요.”
그렇게 경기는 주심의 휘슬소리에 전반전이 끝났고, 선수들은 라커룸으로 들어갔다. 벤치에 있던 선수들은 수석코치인 김요셉의 지시로 라커룸에 들어가지 않고 운동장에서 몸을 풀고 있었는데 가람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아.. 경기 나가야 하는데..’
다른 선수들은 어떻지 몰라도, 가람의 컨디션과 체력은 문제 없었다.
체력 수치 85가 되면서 단순히 경기장에서 뛰는 체력 뿐 아니라 경기 후 회복도 빨라져서 하루만 지나면 다음 날에도 풀타임을 뛸 수 있는 체력으로 회복 되었다.
그렇다고 지금 감독의 배려를 무시하며 강하게 출전을 어필할 수는 없는 입장이었다. 그렇게 몸을 풀고 있을 때 옆에서 이강운의 곡소리가 들려왔다.
“아고고고.. 쑤셔라.”
“많이 아프냐?”
“이곳 저곳 쑤시지. 오늘 경기까지 선발로 뛰었으면 죽었을 거야.”
주변을 둘러보니 이강운처럼 곡소리를 내지는 않지만 지난 두 경기에 선발로 출전한 정운영, 권윤성, 우세훈의 표정도 좋지 않은 걸 봐서 아마도 저들도 몸 상태가 완벽한 건 아닌 듯 했다.
‘이런.. 이렇게 되면 도매급으로 취급 받을 텐데..’
다른 선수들은 휴식을 부여하는데 경기가 막힌다고 멀쩡해 보인다는 이유로 가람만 출전 시킨다면 선수 입장에서 불만을 품을 수도 있었다.
그런 경우는 종종 있었고, 실제로 선수 성향이 경기를 뛰는 걸 좋아한다면 상관없지만 그 반대가 된다면 선수의 사기는 떨어질 것이었다.
정전용 감독이 선수를 배려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고, 이번 경기를 지거나 비긴다고 해도 목표로 삼은 16강 진출은 확정 지은 상태였기에 굳이 선수 사기까지 떨어뜨릴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가람은 지금 경기 출전이 간절한 상황이었다.
지난 남아공과의 경기에서는 골을 기록하고 MOM에 뽑힌다고 해도 아무런 포인트를 얻지 못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는 전통의 강호인데 그런 팀을 상대로 국제 무대에서 골을 기록하고 MOM에 뽑힌다면 분명 포인트를 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답답한 마음이 차오르고 있을 때 약이라도 올리는 것처럼 알림 소리가 들려왔다.
삐리링
[U20 월드컵에서 전통의 강호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골을 기록해라.]
[보상 : 5포인트]
평소 같으면 좋아했을 메시지 창이었지만 지금은 경기에 나가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답답한 마음은 점점 조급해졌고, 때마침 김요셉이 선수들을 보며 말했다.
“경기 시작한다. 다들 들어와.”
모든 선수들이 천천히 들어오고 있을 때 가람은 빠르게 뛰어 김요셉에게 다가갔다.
“수석 코치님 저 몸 컨디션 좋습니다.”
“어.. 그래? 그런데 너는 이미 두 경기 뛰었잖아. 오늘은 좀 쉬어가도록 하자.”
역시나 예상한 대로 이야기가 흘러가자, 가람은 힘을 주어 말했다.
“저는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제가 얼마나 통할 지 시험해보고 싶어요. 혹시나 감독님께서 선수들 상태 물어봐 주시면 저는 괜찮다고 꼭 이야기 해주세요.”
가람의 열의가 느껴지는 대답에 김요셉은 살짝 당황하며 입을 열었다.
“그.. 그래 알겠어.”
“그럼 저는 몸을 좀 더 풀어도 될까요?”
“그.. 그래..”
그렇게 가람은 터치라인 인근에서 홀로 몸을 풀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보던 우세훈이 다가왔다.
“가람아. 같이 풀자.”
“선배. 괜찮으세요?”
“뭐.. 나야 괜찮지 않아도 열의를 보여야지.”
U20 대표팀의 스트라이커 자리는 우세훈이 확실히 잡았다고는 말하지 못했다.
그나마 가람이나 정운영이 올리는 크로스를 정확하게 받을 수 있는 선수가 우세훈이라 기용을 했기는 했지만 오히려 역습찬스에서는 발빠른 진세진이나 조영운이 더 매력적인 카드였다.
조별 예선에서는 나름 좋은 활약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감독의 원픽이라고 확답은 할 수 없었고, 가람이 몸을 푸는 걸 보자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듯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모르지 않은 가람이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괜히 저 때문에 무리하시는 건 아니에요?”
“이럴 때 무리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어? 그리고 아르헨티나랑 경기인데 한 번 뛰어봐야 하지 않겠어?”
“그래도..”
“전반전에 쉬어서 괜찮아. 몸이나 풀자.”
그렇게 몸을 풀기 시작했지만 경기는 역시나 큰 변화 없이 아르헨티나의 주도 속에 답답하게 진행되었다.
경기는 후반 30분에 가까워지기 시작했고, 그러자 아르헨티나 벤치에서 분주하게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정전용 감독이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풀고 있는 가람을 향해 외쳤다.
“김가람! 우세훈!!”
이때다 싶은 두 사람은 바로 감독에게 뛰어갔고, 둘을 본 정전용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
“교체다. 전술 변화는 없을 거야. 그대로 3-5-2로 진행할 거다. 평소 3-5-2 전술에서 부여 받은 임무를 진행하면 된다.”
“알겠습니다.”
“둘 다 체력이 남아돌 테니 아르헨티나 녀석들을 압박하고 기회가 나오면 언제든 공격적으로 나서라.”
“알겠습니다.”
그렇게 후반 33분에 가람과 우세훈은 교체로 경기에 투입되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아르헨티나도 두 명의 선수를 교체 투입하며 경기의 방향을 바꾸려는 듯 했다.
“후반 33분 양 팀 동시에 교체를 진행합니다. 대한민국에서는 김가람 선수와 우세훈 선수가 아르헨티나에서는 크리스티안 페레이라 선수와 곤살로 마로니 선수가 들어옵니다.”
“양 팀의 선수 기용으로 봤을 때 남은 시간에 공격적으로 나서려는 생각인 것 같습니다. 특히 곤살로 마로니 선수는 이번 대회 3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고 있는 선수입니다. 조심할 필요가 있죠.”
하지만 교체 선수가 들어온다고 해도 경기 양상은 바로 바뀌지는 않았고 그렇게 10분이라는 시간이 흘러 갔다.
모두가 경기는 이대로 무승부로 끝나는 건 아닌가 라는 생각에 몸이 무거워지고 집중력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때 아르헨티나 벤치에서 감독이 일어나 큰 소리로 선수들을 보며 외쳤다.
“끝까지 집중해라!!”
그리고 이에 질세라 정전용 감독도 자리에서 일어나 선수들을 독려했다.
“집중해!! 아직 경기 끝나지 않았어!!”
그렇게 경기는 또다시 아무런 소득 없이 5분이 흘러갔고 이제는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게 되었다.
“이제 88분입니다. 이렇게 경기가 끝나면 다득점으로 아르헨티나가 조 1위로 올라갈 것으로 보이네요.”
“그렇죠. 남아공에게 5골을 넣은 아르헨티나가 다득점으로 조 1위로 올라갈 것 같습니다. 오늘 경기 이기면 더 좋겠지만 전통의 강호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대한민국 실점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 것도 좋은 수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중계진들도 경기 마무리 멘트를 진행하고 있을 때 아르헨티나에서 지금과는 다른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르헨티나! 경기 막판에 몰아치기 시작했습니다. 이대로 끝나도 조 1위지만 성에 차지 않는 것처럼 마지막 불씨를 불태웁니다.”
“한국 위기예요.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아르헨티나는 라인을 높이 올려 거의 반코트 경기를 하듯 한국을 몰아두고 경기하기 시작했고, 한국은 수비 집중력을 보이며 막아내고 있었지만 골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경기 흐름이었다.
“크리스티안 페레이라 선수! 공을 곤살로 마로니 선수에게 보냅니다. 곤살로 마로니 선수 하프라인에서 공을 이어받아 그대로 몰고 들어옵니다. 한국 선수들 공간을 쉽게 내어주는데요.”
“곤살로 마로니 선수의 스피드를 한국의 중앙 미드필더 선수들이 따라잡지 못하고 있어요. 이대로 두다가는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때
촤르르르~~
곤살로 마로니가 하프 라인에서 패널티 에어리어까지 접근하려고 할 때 갑자기 한 선수가 오른쪽 터치라인에서 저돌적으로 나타나 정확한 태클로 그를 저지했다.
“여기서 김가람 선수의 공만 건드리는 정확한 태클! 아르헨티나의 기회를 무산 시킵니다.”
“가람 선수가 막아내기는 했지만 곤살로 마로니 선수가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긴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가람 선수가 따낸 공을 왼쪽 윙백인 최준희 선수에게 주고 위로 올라갑니다. 최준희 선수 공을 우세훈에게 연결합니다.”
우세훈에게 공이 연결되자 라인을 끌어올리고 있던 아르헨티나의 중앙 수비수가 달려들어 몸싸움을 걸었지만, 우세훈은 자신의 장점인 피지컬을 이용해 버텼다.
그리고 그 사이에 가람은 우세훈의 오른쪽으로 빠르게 지나치며 외쳤다.
“패스!!”
가람이 빠르게 뛰어가자, 우세훈은 이게 연결되면 완벽한 역습 찬스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반대로 아르헨티나의 중앙 수비수는 이걸 막지 못하면 역습을 당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둘의 몸싸움은 심해졌고, 결국
토오옹~~
“우세훈 선수 등을 지고 아르헨티나의 수비를 견뎌내서 김가람 선수에게 공을 연결합니다. 김가람 선수 앞에 아무런 선수가 없습니다. 더욱 가속합니다. 김가람 선수!!”
우세훈의 패스를 받은 가람은 중앙 하프라인 인근에서부터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가람을 막기 위해 아르헨티나의 왼쪽 윙백과 우세훈을 마크하지 않은 중앙 수비수가 달려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탄력을 받은 가람의 속도를 따라잡는 건 무리였고,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패널티 에어리어 인근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상황을 지켜본 아르헨티나 골키퍼는 빠른 판단력으로 각도를 좁히며 나왔다.
뒤에서는 수비수들이 뛰어오고 있고, 앞에서는 골키퍼가 각도를 좁히며 다가오며 압박을 받는 상황에 가람의 빠른 판단을 요구했다.
하지만
토오옹!!
가람은 한 번 더 공을 차서 골키퍼가 좁혀 놓은 각도가 아닌 옆의 공간으로 벗어나도록 짧게 드리블을 치고 나갔고, 각도를 좁히기 위해 달려든 골키퍼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드리블을 치고 나간 만큼 슈팅 각도도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가람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투우욱!!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은 정확한 슈팅.
골을 넣겠다고 몸을 억지로 슈팅 각도를 세우는 바람에 넘어지기는 했지만, 넘어지는 순간 가람은 골을 확신했다.
그리고 그런 확신을 증명하는 듯 기분 좋은 알림 소리와 메시지 창이 보여졌다.
띠리링
[U20 월드컵에서 전통의 강호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골을 기록했습니다.]
[5포인트를 지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