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선더랜드의 변화[1]
2019년 6월 7일 티히 시립 경기장
8강전 폴란드
“허억.. 허억..”
세바스티안 왈루키에비치는 있는 힘을 다해 멀어져 가는 붉은 유니폼의 등번호 32번 선수를 따라 잡으려고 했지만,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다.
결국 최종 수비인 자신을 가볍게 벗겨낸 32번 선수는 골키퍼까지 제껴낸 채 골망을 갈랐다.
촤르르르~
그렇게 같은 선수에게 3번째 골을 내어준 세바스티안 왈루키에비치가 지쳐서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후반 82분 경기 스코어 3대 0
경기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꽉 차 있던 경기장의 홈팬들은 이미 돌아가기 시작했고, 듬성듬성 빈자리가 보일 정도였다.
그리고 몇백 명 안 되는 붉은 옷을 입은 관중들은 32번 선수의 이름을 연신 외쳤다.
“김가람!! 김가람!! 김가람!!”
꿈에 나올 것 같은 네임콜에 세바스티안 왈루키에비치는 귀를 막고 싶은 심정이었고 이 경기는 자신의 인생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끔찍한 악몽이었다.
3골이나 몰아 넣은 32번 선수는 후반 종료 직전에 네 번째 골을 넣었고 그제야 폭주를 멈췄다. 세바스티안 왈루키에비치는 그제야 악몽 같은 경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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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폴란드와의 경기 어떻게 보셨습니까?”
“폴란드가 여기까지 올라온 건 세바스티안 왈루키에비치를 중심으로 한 튼튼한 수비와 역습 그리고 세트피스에서 득점 때문이었는데, 오늘 경기에 폴란드는 그런 강점을 전혀 보여줄 수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전반 10분에 이강운 선수와 김가람 선수의 2대 1 패스를 통한 공간 침투에 이은 김가람 선수의 중거리 슈팅이 골로 이어지면서 폴란드는 경기가 꼬였다고 할 수 있겠죠?”
“솔직히 그때 김가람 선수가 골을 넣지 못했다면 오늘 경기도 쉽게 풀어나가지 못했을 텐데요. 그 골이 상당히 주요했다고 말씀 드릴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경기에 놀라운 건 김가람 선수가 다른 경기와 다르게 패스로 경기를 많이 풀어나갔다는 점이죠.”
“오늘 경기에 대한민국은 패스 위주로 경기를 풀어나갔는데 골의 시발점이 된 패스는 모두 김가람 선수에서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여태까지는 자신의 능력으로 스스로 찬스를 만들어 마무리하는 모습이었는데요. 오늘은 놀라운 패스 능력으로 상대 수비진을 농락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꼭 드리블, 크로스 슈팅 뿐 아니라 패스도 잘한다 이런 걸 보여주는 것 같은 경기였습니다. 오늘 MOM으로 뽑힌 김가람 선수의 인터뷰가 준비된 것 같습니다. 안녕하세요. 김가람 선수”
그 말에 화면에 이어폰을 꽂고 있는 가람의 모습이 나왔고, 적당히 땀에 젖은 모습은 역시나 여심을 흔들 만했다.
“안녕하세요.”
“오늘 경기 4골을 넣으며 MOM에 뽑히셨습니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오늘 수비가 강한 폴란드를 상대로 승리를 거둘 수 있어서 기쁩니다.”
“그런 것 치고는 4골이나 넣으셨는데요. 그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 부탁드립니다.”
“오늘 경기를 앞두고 감독님이나 수석코치님께서 패스를 위주로 폴란드의 수비를 흔들라고 하셨는데 그게 유효했고, 동료들이 만들어준 찬스를 잘 마무리 할 수 있어서 좋은 결과를 만든 것 같습니다.”
“패스 위주라고 하셨는데요. 오늘 경기는 이전과 다르게 패스를 많이 하셨어요.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지만, 일본 감독인 야마구치 켄씨는 김가람 선수를 평가할 때 패스가 부족하다고 했는데요. 단번에 이런 평가를 뒤집으셨거든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중계진의 질문에 여태까지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던 가람은 살며시 미소를 띄우며 입을 열었다.
“야마구치 켄 감독님께서 저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셨는지 들었습니다. 그런 관심에 대해서는 언제나 감사드리고요. 하지만 아직 저는 어려서 평가보다 더 빨리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하하하. 그렇군요. 평가보다 빠른 성장을 한다는 말씀이시군요. 재미 있는 답변 감사드립니다. 이제 몇 시간 뒤에 있을 우크라이나와 콜롬비아 경기의 승자와 4강에 붙게 될 것인데요. 어떤 팀이 올라왔으면 좋겠나요?”
“어느 팀이 올라오건 한국의 경기를 밤늦은 시간까지 응원해주시는 국민 여러분께 좋은 소식 들려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가람의 자신감 넘치는 답변에 중계진은 인터뷰를 마쳤고, 가람은 라커룸으로 돌아가 땀에 젖은 몸을 씻을 수 있었다.
그때 꼭 고생했다는 듯 메시지창의 알림 소리가 들려왔다.
띠리링
[U20 월드컵 한 경기에서 4골을 기록했습니다.]
[10포인트를 지급합니다.]
‘좀.. 짜네..’
말리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했을 때 15포인트를 받았기에 솔직히 4골을 기록하면 더 많은 포인트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상태창의 기준은 생각보다 인색했다.
그렇게 잠시 포인트 부여 기준에 대해 생각하는 사이 상태창은 포인트를 분배하라는 듯 가람은 눈 앞에 메시지 창을 띄었다.
김가람 / 나이: 만 18세 / 키 : 180 / 몸무게 : 74 / 주발 : 오른발
|개인기 60|, |슈팅 85|, |킥정확도 82|, |드리블 80|, |헤딩 70|, |패스 80|, |태클 90|, |민첩 75|, |체력 85|, |속도 85|, |몸싸움 85|, |위치선정 75|
미분배 포인트 : 10
그리고 가람은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개인기에 포인트를 부여했다.
|개인기 60 -> 70|
‘앞으로는 탈압박 능력도 필요한 경기가 나오겠지.’
오늘 경기에 패스 능력치를 80으로 올려서 폴란드를 수비를 농락시킬 수 있었지만, 사실 개인기 능력이 좀 더 좋았다면 더 좋은 찬스를 더 만들 수 있었을 것이었다.
그리고 승연의 회귀를 통해 알고 있는 미래에 이번 대회의 우승은 우크라이나가 거둔 것이었다.
아마도 큰 이변이 없다면 4강전에는 우크라이나가 올라올 것이고, 우크라이나와의 경기가 제일 힘든 경기가 될 것이었다.
‘솔직히 이 정도 능력이면 씹어 먹겠지만..’
이제 올린 개인기까지 포함에 모든 능력치가 70이상이 되었다. 그러면서 이제 가람의 몸은 승연이 회귀의 삶에서 얻었던 기술을 어느 정도 구사할 수 있을 정도였다.
퍼센트로 따지면 100퍼센트 발휘하는 건 아니지만 70프로는 구사할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 70프로만 발휘해도 이번 대회에서 자신이 목표로 한 것은 충분히 따낼 수 있을 것이었다.
골든 부츠와 골든 볼 공동 수상 그리고 U20 월드컵 한국팀 우승
처음에는 힘들 것 같은 목표였지만, 경기에서 이기면서 얻은 포인트를 통해 충분히 이제 가능성이 있는 목표였다.
거기다가 같이 경기를 뛰면서 느껴봤지만 이번 U20 월드컵의 한국 선수들의 능력이나 투지는 가람이 승연으로 살던 시절의 당시 연령 대표 선수들보다 뛰어났다.
특히 이강운, 정운영은 그들이 왜 유럽에서 뛰고 있는지 증명했고, 뒤늦게 합류 했지만 권윤성은 가람의 기대 이상의 실력을 보여주었다.
‘아.. 윤성선배는 결국 선더랜드로 이적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어떻게 되었지?’
지난번 김하늘은 권윤성을 만나 에이전트 계약을 하면서 바로 선더랜드 계약을 진행했었다. 물론 잉글랜드는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리그처럼 EU 국가 이외에 외국인 선수 제한이 있는 건 아니지만 대신 비자 발급 조건이 까다로웠다.
원래는 A매치에서 뛴 경험이 많아야 했고, 그게 아니면 잉글랜드 축구 협회 혹은 유명 축구 인사의 추천장이 있으면 가능했다.
하지만 승연의 삶에서 알고 있는 김하늘의 능력이라면 비자 문제는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었다.
게다가 잉글랜드 취업 비자의 특별 조항에 잉글랜드 축구 성장에 기여한 이의 특별 추천 가산점이 있는데 승격한 선더랜드를 인수한 구단주의 투자로 권윤성을 영입한다면 취업비자를 얻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었다.
그리고 만약 취업비자를 받을 자신이 없다면 김하늘이 권윤성에게 선더랜드 계약에 대해 말을 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이번 월드컵에서 우승한다면 그 문턱은 더 쉬워질 것이었다.
그렇게 샤워를 마친 가람은 옷을 갈아입었고, 잠시 후 버스에 올라 호텔에 돌아갈 수 있었다. 호텔에 돌아온 선수들은 각각 마음이 맞는 선수들끼리 시간을 보내며 승리를 축하했고, 가람은 선더랜드 이적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권윤성에게 물어보려고 했지만,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흐음.. 그럼 어쩔 수 없지.”
그렇게 나중에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잠시 로비에서 시간을 보내던 가람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고, 동시에 가람을 발견한 이강운이 강아지처럼 달려왔다.
“앗! 저기 가람이다!!”
가람은 자신을 향해 웃으며 달려오는 이강운에게 손을 들어 제지한 후 핸드폰을 들고 통화를 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오늘 승리 축하한다.”
“고마워요. 형. 딱 좋을 때 전화를 하셨네요.”
“딱 좋을 때?”
“네. 지난번 윤성 선배 영입 문제는 어떻게 되셨어요?”
“아. 그건 이제 곧 해결될 거야. 잉글랜드 취업 비자 관련되어서 아는 사람도 있고 축구 협회 추천장이랑 유명인사 추천장도 준비한 상태거든. 그리고 만약 이번에 월드컵 우승까지 한다면 더 쉬울 것 같고 말이야. 잉글랜드 취업 비자가 발급 받기는 어렵지만 결국에는 신용문제거든. 믿을 수 있는! 우리 잉글랜드 축구에서 뛸 수 있는 인재가 맞냐! 이걸 심사하는 거지. 물론 돈을 많이 써서 영입하면 더 쉽게 비자는 나오겠지만 말이야. 지금은 그 문제보다 다른 문제를 생각하느냐고 여력이 없어.”
“다른 문제라고요?”
“아.. 그건 다른 문제니깐 네가 굳이 상관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평소 자신이 묻지 않는 말도 주절주절 이야기 하던 김하늘이 선을 긋자, 가람은 놀라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굳이 캐내서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겠어요.”
“그래. 오늘은 4골이나 넣고 너의 활약상에 내가 더 자랑스럽다. 괜히 더 통화하면 피곤할 테니 그만 쉬도록 해.”
“아. 네.”
그렇게 평소보다 빠르게 김하늘과의 대화가 끝나다. 가람은 이강운과 대화를 나누며 승리를 같이 기뻐했다.
그리고 가람과의 통화를 마친 김하늘은 방금 전 웃고 있던 표정에서 굳은 표정으로 바꿔 자신의 호텔 방으로 들어갔고, 노트북을 켜서 화상 채팅 프로그램으로 연결하더니 이내 화면에는 잭 로스 감독의 얼굴이 나왔다.
“안녕하세요. 잭 로스 감독님.”
“안녕하세요. 구단주님.”
서로 굳은 표정으로 형식적인 인사를 나눈 후 김하늘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래서 한번 고민해 보셨습니까?”
“솔직히 오랫동안 고민을 해봤습니다. 뉴캐슬에서 제의는 쉽게 오는 게 아니라서 말이죠.”
“충분히 이해는 합니다. 하지만 감독님 지난번 말씀드렸다시피 이번에 구단을 인수하면서 저희는 전폭적인 지지를 약속드립니다. 선더랜드에 남으신다면 그 선택은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거기다가 감독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동양인 구단주가 들어왔다면서 선수들도 이탈하고 있는 이 상황을요.”
김하늘의 말에 잭 로스 감독은 순간 움찔했다.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고 해도 동양인들을 보는 백인들의 인종차별적인 시선과 좁은 생각은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선더랜드가 동양인 구단주에게 인수되었다는 소식에 선수단에서 그런 인식을 가지고 있는 몇몇 인물들은 계약을 파기하고 방출을 요청했다는 건 자신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물론 팬들도 동요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김하늘이 한번에 부채를 갚고 부채 없이 구단을 인수하며 전폭적인 지원을 하겠다는 말에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지난 시즌 승격을 이끈 감독이 나간다면 선수들의 이탈은 물론이고 팬들의 동요도 막지 못할 것이다.
김하늘의 절박함과 어려운 상황을 이해한 잭 로스 감독은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