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U20 월드컵 결승전 일본전[2]
촤르르르~~
“골입니다. 쿠보 타케후사 선수. 전반 20분 일본에게 선취점을 가져다 줍니다.”
“솔직히 이건 쿠보 타케후사 선수의 개인 능력을 칭찬할 수밖에 없네요. 모두가 나갈 거라고 생각했던 공을 뛰어난 집중력으로 끝까지 쫓았던 게 골이 되었습니다.”
“그 전에 야마구치 츠바사 선수의 슈팅도 놀라웠습니다. 에콰도르전에서는 그게 골로 이어졌는데요. 오늘은 골대 상단을 맞췄습니다.”
골을 넣은 일본선수들은 쿠보 타케후사에게 다가가 골을 축하했고, 야마구치 츠바사만이 따로 떨어져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넣을 수 있는 건데..”
그때 야마구치 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츠바사!!!”
당연히 그 후 적당히 하라는 잔소리를 들을 거라고 생각한 야마구치 츠바사는 움찔했지만 야마구치 켄은 엄지 손가락을 들어올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모습을 본 야마구치 츠바사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고, 그렇게 다시 경기는 한국의 공으로 시작되었다.
한국은 골을 먹힌 후 적극적으로 공격 나섰지만, 그럴 때마다 일본도 라인을 올린 채 강한 압박을 통해서 공을 탈취해 오히려 역습의 기회를 가져갔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이제 전반 42분입니다. 오늘 경기 일본이 압도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쿠보 타케후사 선수 정말 잘하네요.”
“그렇죠. 아마 가람 선수가 아니었다면 세계의 주목을 받을 만한 선수가 바로 쿠보 타케후사 선수입니다. 지금 경기도 한국이 공격적으로 나서자, 공을 배급하면서 공격 전개를 늦춰서 한국의 기세를 죽이려고 하는 능숙한 경기 운영 능력을 보여줍니다. 저 어린 선수가 저런 능력을 가졌다는 게 놀라울 뿐이네요.”
“한국이 공격적으로 나서려고 해도 쿠보 타케후사 선수의 발에서부터 시작되는 역습, 그리고 전반 놀라운 슈팅을 보여주었던 야마구치 츠바사 선수의 공간 침투 능력을 보면 쉽게 공격적으로 나설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힘듭니다. 힘들어요. 교체를 통해서 돌파구를 만들지 않는 한 한국 힘듭니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가람 선수의 컨디션이 회복되었다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지금 이 상황을 타계할 수 있는 건 가람 선수밖에 보이지 않는데요.”
중계진의 바람이라도 들었는지 가람은 어느새 터치라인 인근으로 가서 몸을 풀기 시작했고, 그걸 기다렸다는 듯 카메라는 가람의 몸을 푸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모두가 가람에게 시선이 빼앗겼을 때
토오옹!!
쿠보 타케후사는 하프라인 중앙에서 왼쪽으로 돌아뛰는 야마구치 츠바사에게 스루 패스를 넣었고, 그 공은 정확하게 야마구치 츠바사 앞에 떨어졌다.
“어. 이거 위험합니다. 전반 20분 야마구치 츠바사 선수가 놀라운 슈팅을 보여주었던 그곳에서 다시 한 번 공을 잡았습니다.”
“하지만 전반 20분과 달리 일본 선수들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지 않아요. 이대로면 야마구치 츠바사 선수 고립될 뿐입니다. 위기는 아닙니다. 침착하게 대응하면 충분히 막아낼 수 있습니다.”
이전과 다르게 골대로 접근하는 일본의 공격자원이 없었기에 권윤성은 야마구치 츠바사를 막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앞으로 나왔고, 뒤에서는 엄두상도 협력수비에 나섰다.
그렇게 중계진의 예측대로 야마구치 츠바사는 한국의 협력수비에 쌓여서 기회를 만들지 못할 것 같았다.
그때
토오옹~~
가볍게 공을 차서 권윤성의 가랑이로 공을 넣은 야마구치 츠바사는 공의 속도를 그대로 살린 채 앞으로 달려갔고, 순간 오른쪽 페널티 에어리어는 비워버리게 되었다.
“야마구치 츠바사 선수! 그대로 돌진합니다. 한국 위기입니다.”
뒤늦게 권윤성이 자신의 실수를 알아채고 달려들었지만, 이미 야마구치 츠바사와의 거리는 멀리 떨어진 상태였다.
그리고 야마구치 츠바사는 슈팅을 때렸다.
뻐어엉!!
공은 또다시 높이 솟구쳤지만 전반 20분에 찬 공보다 더 높이 올라가면서 한국의 선수들은 물론 관중들까지 골 아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휘리릭!!
말도 안 되는 낙하 폭을 보이며 공은 휘어져 내려갔다.
터엉!!
촤르르르~~
공은 왼쪽 골대 상단을 맞추더니 그대로 골대 안으로 빨려 들어갔고, 야마구치 츠바사는 골이 들어가는 순간 제자리에서 펄쩍 뛰며 좋아했더니 일본 벤치 쪽으로 뛰어갔다.
야마구치 켄은 자신에게 오는 것인 줄 알고 뛰어나왔지만, 야마구치 츠바사는 그런 형을 지나 한국 벤치 인근에서 몸을 풀고 있는 가람에게 뛰어가더니 입을 열었다.
“2 대 0이라고! 언제 나올 거야?”
“내가 나간다면 후회할 텐데.”
가람이 생각지 않은 유창한 일본어 대답에 야마구치 츠바사는 놀랐다.
그리고 말을 이어가려는 찰나에 한국 선수와 일본 선수들이 야마구치 츠바사 에게 동시에 달려들었다.
“야마구치 츠바사 선수 골을 넣은 건 좋지만, 저렇게 상대를 도발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흥분한 한국 선수들 야마구치 츠바사를 둘러싸는데요. 일본 선수들이 다가와서 뒤엉켜 몸싸움이 일어납니다.”
야마구치 츠바사의 비신사적인 행동으로 경기는 순간 과열되었고, 주심은 선수들을 말린 후 야마구치 츠바사에게 옐로우 카드를 주며 사태를 진정시켰다.
그렇게 정리가 되고 있는 사이 중계석에서는 방금 야마구치 츠바사가 골을 넣은 장면을 리플레이 해서 보여주었다.
“저 자리는 솔직히 직접 골을 노릴 수 없는 자리인데요. 전반 20분도 그렇고 방금도 그렇고 야마구치 츠바사 선수는 연달아 유효슈팅을 때리고 있습니다.”
“사실 유효슈팅이 되기는 했지만 조금만 차이가 나도 골대는 맞추기는커녕 그대로 골라인 아웃이 될 것 같은 슈팅이었는데요. 공의 궤적과 낙하 폭을 보면 야마구치 츠바사 선수가 엄청난 발목 힘을 가졌을 것이라는 말씀 외에 설명할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전반전은 야마구치 츠바사의 해프닝으로 잠시 중단되었다가 다시 재개 되었지만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종료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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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 타임 한국의 라커룸
“이게 뭐 하는 거야!! 너희들 싸우러 나온 거야?!”
평소에 화를 잘 내지 않는 정전용 감독이 입에서 불을 뿜자, 선수들은 기가 죽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미라클 골이라고 해도 될 만한 두 골이 터지면서 경기는 일본이 유리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정전용 감독은 팀의 사기를 끌어올리고 기강을 잡아서 다시 후반전을 준비해야 했다. 그때 갑자기 가람이 손을 올리며 입을 열었다.
“감독님 저 후반전에 나가고 싶습니다.”
순간 적막이 흐르고, 가람이 나서고 싶다고 하자, 선수들 사이에서는 알 수 없는 투지가 끌어오르기 시작했다.
정전용 감독이 선수와 감독 생활을 하면서 간혹 그런 선수를 목격한 적이 있다.
자신의 충고나 조언보다 라커룸의 분위기를 단 번에 휘어잡고 바꿀 수 있는 선수, 그런 선수가 리더쉽이 있는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기 했지만 공통점은 하나였다.
팀에 있는 모든 선수들이 인정하는 에이스 선수.
그 선수가 경기를 뛰는 것과 안 뛰는 것에 따라 팀의 경기력이 몇 단계 차이가 날 수 있다.
처음에 가람을 뽑을 때만 해도 단순히 공격적인 재능이 많은 오른쪽 윙백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몇 차례 훈련과 연습 시험을 통해 오른쪽 윙어로 포지션 변경을 하였고, 거기서 공격적인 재능은 꽃을 피우게 되었다.
그리고 치러진 월드컵 경기 하나 하나를 거칠 때 마다 가람은 성장했다. 말도 안 될 정도의 고속 성장은 믿기 힘들었고, 그걸 믿으라는 듯 엄청난 골들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제 단순히 스코어를 벌리는 스코어러가 아닌 팀원들이 의지하는 에이스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몸은 괜찮아?”
“전반전 쉬었더니 한결 좋아졌습니다. 그리고 이제 남은 시간은 45분인데요. 죽어도 경기장에서 뛰고 싶습니다. 그리고 아까 그 일본 친구가 저보고 나오라고 하던데요. 그 마음에 응답해줘야죠.”
그 말에 순간 한국 선수들은 흥분했지만, 감독이 있는 앞이라서 이를 티 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방금 꾸중을 들어 죽었던 기는 단번에 분기탱천되었고, 당장이라도 경기장에 나가서 자신들의 능력을 증명하고 싶은 듯 눈에 빛내고 있었다.
단번에 분위기를 휘어잡고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내는 가람의 말에 정전용은 이번 월드컵이 끝나고 분명 가람은 한층 더 뛰어난 선수가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정전용 감독은 굳이 이런 분위기를 망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전술과 조언은 감독이 하는 것이지만 경기 결과를 만들어내는 건 선수들이었다.
이럴 때는 선수 그것도 에이스 선수를 믿어주는 것이 감독이 할 일이었다.
“후반전 엄두상이 빠지고, 4-2-3-1로 나간다. 남은 시간에 무조건 공격한다. 골을 먹힌다고 해도 골이야 알았어!”
“알겠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우렁찬 대답에 정전용 감독은 웃어보였고, 그렇게 하프 타임은 끝나게 되었다.
“전반전에 일본의 놀라운 두 골이 터지면서 후반전은 2 대 0으로 시작되겠습니다. 후반전 한국은 이 상황을 타계해야 할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제 양 팀 선수들 경기장에 입장합니다. 어! 등번호 32번 김가람선수가 보입니다.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후반 시작과 동시에 엄두상 선수와 교체되어 들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죠. 이제 한국도 물러설 수 없습니다. 전반 2골이라는 건 생각보다 먼 격차거든요. 여기서는 투입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투입해서 이길 필요가 있습니다.”
삐이익!
주심의 휘슬 소리가 경기장에 울리고 경기는 한국의 공으로 시작되었다.
진세진은 공을 이어 받아 이강운에게 건넸고, 이강운은 고민도 할 것 없이 오른쪽 윙어인 가람에게 공을 건넸다.
“막아!!”
가람이 공을 잡는 순간 야마구치 켄은 큰 소리로 외쳤고, 이미 라커룸에서 후반전 가람이 나왔을 때의 상황을 미리 숙지하고 있는 일본 선수들은 덩달아 긴장했다.
그리고 왼쪽 윙어인 야마구치 츠바사가 가람은 일차적으로 막기 위해 다가왔다.
“이제 나와서 뭐 하는 거야?”
“우선 한 골.”
유창한 일본말로 대답하는 가람의 말에 야마구치 츠바사가 무슨 말이냐고 답하기도 전에 가람은 속도를 내어 순식간에 야마구츠 츠바사를 제쳐버렸다.
정지 상태에서 최고 속도를 단 번에 끌어올리며 일본 팀에서도 빠른 주력을 자랑하는 야마구치 츠바사를 제쳐버리자, 그 뒤를 백업하고 있던 쿠보 타케후사는 덩달아 놀라 반응이 더뎠다.
그렇게 두 명을 순식간에 제쳐버린 가람은 하프라인에서 좀 더 올라갈 수 있었지만 촘촘한 일본의 수비 라인이 가람이 앞으로 나갈 공간을 내어주지 않았고, 그물처럼 가람이 앞길을 에워쌌다.
“김가람 선수의 의욕이 앞서는 건 이해하지만 일본의 수비가 한걸음 더 빠릅니다. 더 이상 전진할 수 없도록 에워싸는데요. 뒤에서는 쿠보 타케후사와 야마구치 츠바사가 협력 수비로 뒤쫓아오고 있습니다.”
“이럴 때는 주변의 동료를 이용해서 공격을 풀어나가야 합니다. 혼자 다 해낼 수는 없거든요. 이 정도 수비라면 혼자 뚫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중계진들도 지금 이 상황은 가람이 고립되어가는 상황이라는 걸 판단해서 설명했다. 하지만 가람의 생각은 달랐다.
뻐어엉!!
가람은 일본의 수비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보고는 그대로 공을 강하게 찼다.
공은 높이 솟구치더니 골대를 향해 날아갔고, 순간 먹이를 낚아채는 독수리처럼 급격히 떨어지며 골대 왼쪽 상단을 향해 떨어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