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바쁜 휴가[2]
집 앞에 도착해 내리려는 가람을 보며 샤오루가 입을 열었다.
“내일은 언제부터 촬영이 가능할까?”
샤오루 지금까지의 스타일로 봐서는 막무가내로 촬영을 강행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자신의 의견을 물어보는 모습에 가람은 선뜻 대답했다.
“오전에는 개인훈련을 해야 할 것 같은데요.”
“그래. 그럼 점심 먹고 연락해.”
“알겠습니다. 그런데 촬영은 언제까지 하는 거죠?”
“네가 협조적으로 나온다면 금세 끝날 거야.”
“알겠습니다.”
그렇게 샤오루의 차에서 내려 지친 몸을 이끌고 가방을 든 채 집으로 향하려는 순간 핸드폰이 울렸다.
지이잉!!
“여보세요?”
“가람이니? 언제 집에 오니?”
들려오는 캐서린의 목소리에 적지 않은 흥분감을 느낀 가람은 살짝 놀라 대답했다.
“지금 문 밖이에요. 그런데 무슨 일이..”
그 말과 동시 문이 열리고는 낯선 노인이 자신을 위아래로 보더니 독일 억양이 묻어 있는 영어로 물었다.
“네가 가람이냐?”
“네 그런데요. 누구시죠?”
그때 등 뒤에서 독일어가 들려왔다.
“야! 이 녀석아!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해!!”
그리고는 문을 연 노인을 밀쳐냈더니 온화한 인상의 노인이 가람의 손을 덥석 잡으며 능숙한 영어로 가람에게 인사를 건넸다.
“자네가 가람군인가? 나는 프란츠 베켄바워라고 하네.”
“아. 네.. 안녕하세요.”
순간 가람은 풀 네임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프란츠 베켄바워를 보며 너무 놀라 자신도 모르게 딱딱하게 굳어 인사할 수밖에 없었다.
프란츠 베켄바워가 남긴 업적은 펠레, 마라도나처럼 선수로써 명성만 있는 것이 아닌 감독과 축구 행정가로도 뛰어난 업적을 남겼고 그건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았고, 승연의 삶에서도 그의 이름은 회자되곤 했다.
말 그대로 전설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 자신의 앞에 있는 것이었다.
그런 사람이 왜 자신의 집에 와있는 것일까? 생각에 잠기기도 전에 옆에 있던 노인이 독일어로 프란츠 베켄바워에게 말했다.
“아니 방금 한국에서 돌아온 선수를 집안에 들여놓지도 않고 영입 이야기를 할 셈이야?”
“아.. 이 노인네야.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너는 간섭하지 마.”
둘은 가람이 독일어를 못하는 거라고 생각했는지 독일어로 대화를 나누었고, 그 이야기를 들은 가람은 독일어로 입을 열었다.
“영입이요?”
그 말에 프란츠 베켄바워는 기쁜 듯 답했다.
“아니 자네 독일어를 할 수 있나?”
“네. 그런데 영입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아. 그건 우선 안에서 이야기 하도록 하지.”
가람이 안으로 들어가자, 식탁에는 이미 알렉스가 바이에른 뮌헨에 관련된 서류를 읽고 있었고, 캐서린은 가람을 보고는 가볍게 포옹을 하며 입을 열었다.
“너를 보고 싶다고 오신 분들이야. 언제나 말했듯이 우리는 너의 선택을 존중한단다.”
지난번 야마구치 켄이 왔을 때와 같은 말에 가람은 프란츠 베켄바워가 어떤 말을 할지 대충 짐작이 갔다. 하지만 옆에 있는 노인은 누구인지 궁금할 때 식탁에 있는 리사가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 저희는 방에 들어가요.”
“그래. 괜히 여기 있다가 나 때문에 실패했다는 소리는 듣기 싫구나.”
프란츠 베켄바워와 투닥거리던 노인은 그렇게 리사와 함께 방으로 들어갔고, 식탁에는 프란츠 베켄바워와 캐서린, 알렉스 그리고 가람이 앉게 되었다.
가람은 집에 들어오기면 방에서 누워 쉬면서 그동안 정신없던 스케줄로 미쳐 배분하지 못한 포인트를 배분할 생각이었는데 생각지 않은 프란츠 베켄바워의 등장에 그건 뒤로 미뤄야 했다.
“가람 선수. 자네의 이번 월드컵 활약은 정말 인상적으로 지켜봤네. 사실 지난번 수석코치인 야마구치 켄이 다녀간 건 알고 있지만, 특히 결승전을 지켜보니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서 이렇게 왔네.”
“그렇군요.”
단순히 현장직 스카우터가 아닌 바이에른 뮌헨에 전설적인 선수가 아니 세계 축구사에 남을 만한 인물이 직접 자신을 영입하기 위해서 찾아왔다는 점에서 가람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런 대우는 사실 승연의 삶에서도 느껴본 적 없었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솔직히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렇게 가람이 고민에 빠지려고 할 때 프란츠 베켄바워가 입을 열었다.
“자네라면 호날두나 메시 그리고 차세대 재능이라고 불리는 홀란드를 뛰어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리고 이런 말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선더랜드가 감당하기에는 자네의 그릇이 크다고 생각하네.”
“칭찬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1군 출장이 필요합니다.”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말게나. 야마구치 켄 수석코치는 이번 시즌 1군 데뷔가 힘들 거라고 말했다고 들었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네. 자네는 바로 1군에서 뛸 수 있어. 만약 자네가 원한다면 계약서에 1군 출장을 못 했을 때 방출 조건이라던가 추가 계약금을 걸 수도 있네. 어떤가?”
너무나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프란츠 베켄바워에 가람은 순간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당황했고, 그 순간 누군가 자신의 손을 잡는 게 느껴졌다.
손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에 마음이 진정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의 손을 잡아준 캐서린을 보자, 캐서린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람의 선택을 믿어준다는 말 그건 야마구치 켄과의 대화에서도 한결같이 자신을 지지해주었던 캐서린의 모습이었다.
이에 가람은 빙긋이 웃더니 입을 열었다.
“우선 칭찬은 너무 감사드립니다. 세계 축구사의 한 획을 그으신 영웅분께서 저를 그렇게 높게 칭찬해주시니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렇지만 저는 선더랜드를 떠날 마음이 없습니다.”
“그런가?”
사실 프란츠 베켄바워는 가람이 집에 돌아오기 전에 가람의 보호자인 캐서린과 알렉스를 상대로 이야기를 나눴을 때도 영입이 쉽지 않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거기서 포기할 수 없었기에 프란츠 베켄바워는 대화를 이어 나간 것이었다. 그리고 결국 자신의 생각대로 거절이라는 결과가 나오자 실망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듣기로는 선더랜드를 사랑한다고 하더니 정말인 것 같군.”
“죄송합니다.”
“아니. 자네가 죄송할 게 뭐 있나? 오히려 자신을 키워준 구단에 충성한다는 모습이 보기 좋아. 오늘은 내가 물러나야겠군. 대신 만약 선더랜드를 나온다면 최우선으로 우리와 계약을 생각해 봐줄 수 없겠나?”
“이렇게 저를 좋게 봐주시는데 감사합니다. 만약 선더랜드에서 나오는 일이 있다면 바이에른 뮌헨을 제일 먼저 생각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알겠네.”
그렇게 프란츠 베켄바워의 구애를 어렵게 물리친 가람은 가볍게 프란츠 베켄바워와 이야기를 나눴다. 시간이 늦어지자 프란츠 베켄바워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저는 이만 일어나야 할 것 같네. 다음에는 바이에른 뮌헨에서 보는 걸 기대하지.”
“네. 알겠습니다.”
프란츠 베켄바워가 그렇게 자리를 떠나려고 할 때 리사의 방을 보더니 큰 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봐. 이제 가자고!”
그때 방문이 열리더니 아까 봤던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이번 휴가 여기서 보낼 생각이니 잘 들어가~”
“뭐야? 너 설마..”
“설마는 무슨! 그냥 휴가니깐 신경 쓰지 말고 가기나 해.”
그렇게 다시 문이 닫히고, 프란츠 베켄바워는 짓궂은 표정으로 가람을 보며 말했다.
“저 방에 있는 괴팍한 노인네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네에? 그게 무슨?..”
가람이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프란츠 베켄바워는 가람의 어깨를 한번 툭 치고는 집을 떠났다.
그렇게 정신 없던 하루를 보낸 가람은 캐서린과 알렉스와 함께 월드컵에 있었던 일과 한국에서 받았던 환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후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휴우. 정신 없네.”
샤워를 마친 가람은 드디어 온전히 자신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상태창을 불러냈다.
김가람 / 나이: 만 18세 / 키 : 180 / 몸무게 : 74 / 주발 : 오른발
|개인기 70|, |슈팅 85|, |킥정확도 85|, |드리블 90|, |헤딩 70|, |패스 85|, |태클 90|, |민첩 75|, |체력 85|, |속도 85|, |몸싸움 85|, |위치선정 75|
미분배 포인트 : 80
결승전에서 퍼팩트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받은 10포인트와 골든 부츠, 골든 볼을 개인 시상을 받으며 얻은 각각 35 포인트. 총 80포인트를 얻은 가람은 기분 좋게 어떻게 포인트를 분배할까 생각에 잠겼다.
‘챔피언쉽이라. 분명 지금 능력으로도 충분히 경쟁은 가능하겠지만.. 그래도..’
신체 능력은 어느 정도 조화를 이루고 있는 상태였기에 개인기와 슈팅 능력치에 투자를 할 생각을 할 때 박지석의 말이 떠올랐다.
‘이번에 올리비에 지루 선수가 영입되면서 원톱 자원은 확보되었다고 생각한다. 너를 스트라이커로 키워야 한다는 생각은 있지만, 지금은 아직 육체가 완성되지 않은 시점에서 무리했다가는 오히려 독이 될 거야. 이번 시즌은 오른쪽 윙어로 시작해서 천천히 스트라이커 포지션으로 변경을 하자.’
승연의 삶에서 박지석의 가르침은 혹독했고, 스트라이커가 갖춰야 하는 신체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 수많은 노력을 했던 것이 기억났다.
만약 가람이 신체적으로 준비가 안 된다면 스트라이커 포지션에서 나서는 건 어려운 일이 될 것이었다.
‘그래. 우선 신체 능력부터 키우자.’
가람은 다짐을 했다는 듯 민첩, 체력, 속도, 몸싸움, 위치 선정 능력에 포인트를 투자했다.
|민첩 75 -> 90|, |체력 85 -> 90|, |속도 85 -> 90|, |몸싸움 85 -> 90|, |위치선정 75 -> 90|
85에서 90으로 스탯을 분배할 때 2포인트가 들기는 했었고, 모든 신체적인 능력을 올리자, 순식간에 70포인트가 사라진 상태였다.
그리고 남은 10포인트를 보며 가람은 슈팅에 투자하려다가 팀전담 키커가 된다면 더 많은 골을 넣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킥정확도에 포인트를 투자했다.
|킥정확도 85 -> 90|
그렇게 모든 포인트 분배를 마친 가람은 만족스럽게 자신의 상태창을 봤다.
김가람 / 나이: 만 18세 / 키 : 180 / 몸무게 : 74 / 주발 : 오른발
|개인기 70|, |슈팅 85|, |킥정확도 90|, |드리블 90|, |헤딩 70|, |패스 85|, |태클 90|, |민첩 90|, |체력 90|, |속도 90|, |몸싸움 90|, |위치선정 90|
미분배 포인트 : 0
가람은 90이라는 스탯이 되면 느낄 수 있는 만족스러운 움직임을 이제 항시 느낄 수 있다는 생각에 순간 황홀해졌다. 이제는 이 신체 능력 때문에 더 이상 굴욕적인 골은 넣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만족감에 가람은 잠에 들었고, 새벽에 생각지 않은 알림과 함께 메시지 창에 눈을 뜨게 했다.
뾰로옹!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 훈련을 진행해야 합니다.]
체력 훈련
웨이트 훈련
볼 트래핑 훈련
···..
원래 아침 기상과 동시에 개인훈련 메시지창이 뜨기는 했지만, 평소보다 일찍 나타난 메시지창이었다.
그리고 아직 시차 적응 때문에 몽롱한 정신에 가람은 메시지 창을 치우고 다시 침대에 누우려고 했다. 그때
[훈련을 하지 않으면 패널티로 모든 능력치가 20프로 하락하게 됩니다.]
경고를 하듯 메시지창이 다시금 출력되었고, 이전 10프로보다 더 강해진 패널티에 가람은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뭐야?!”
결국 가람은 일어나 핸드폰을 봤고, 평소보다 1시간이나 일찍 상태창이 자신을 깨운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확인해봤더니 개인 훈련 프로그램은 지금까지와 다르게 상당히 난이도가 올라간 걸 알 수 있었다. 이걸 평소 스케줄대로 끝내려면 지금 이 시간에 일어나는 게 맞을 것 같았다.
“제길..”
가람은 그렇게 대충 씻고 미리 마련해둔 훈련장비를 챙겨 집 앞에 있는 로커 공원으로 향했다.
휴가 기간이라 선더랜드의 1군 훈련장도 정비에 들어갔기 때문에 이용하기가 쉽지는 않아 가람은 차선책으로 근처 축구 공원을 가야만 했다.
다행히 잉글랜드에는 수많은 축구 동호인들이 있었고, 그들을 위해 생각보다 좋은 인조 잔디가 깔린 축구 공원은 쉽게 찾아 볼 수 있었고, 로커 공원도 그런 장소 중 하나였다.
그렇게 가람이 상태창의 훈련 프로그램에 맞춰 훈련에 들어가자, 그 모습을 누군가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