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특별 훈련[2]
“저는 괜찮아요. 다른 선수들처럼 다칠 일도 없을 거고요. 기억 못하세요? 저 교통사고 당했어도 아무런 문제 없을 정도로 튼튼했잖아요.”
“아니. 그거랑 이거랑은 달라. 우리 할아버지는 정말 못 말리시는 분이야!”
그렇게 리사 뭘러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 말하고는 게르크 뮐러를 잡으러 가려고 하자, 가람은 리사 뮐러가 가지 못 하게 양 어깨를 잡고 그녀의 눈을 보며 말했다.
“리사씨. 솔직히 말하면 게르트 뭘러씨는 저에게 우상 같은 분이세요. 이렇게 지도를 받을 수 있는 건 정말 영광이라고요. 다른 유망주들이 어떻게 되었건 저랑은 상관 없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렇게 걱정이 되신다면 제가 훈련을 받아보고 안 되겠다 싶으면 그때 그만 두라고 말하면 안 될까요?”
“어.. 그.. 그게..”
흥분한 가람의 얼굴에, 훈련으로 땀이 흘려 머리까지 살짝 젖은 상태였다.
그냥 봐도 잘 생긴 얼굴이었는데 이렇게 가까이서 거기다가 자신의 어깨를 잡고 강하게 부탁하는 가람의 모습에 순간 리사 뮐러는 얼굴이 붉어졌다.
솔직히 자주 보기는 했지만, 가람의 얼굴에는 면역력 따위는 없었다. 리사 뮐러가 아닌 다른 여자라고 해도 이렇게 가까이서 보게 된다면 심장이 요동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리사 뮐러는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지만, 부탁하는 가람을 매몰차게 거절할 수 없었다.
가람의 잘 생긴 얼굴을 보는 순간 만약 그가 부탁하면 보증이라도 서줄 것 같은 마음이 절로 들었다.
“으음.. 알겠어. 대신 수업을 할 때 혹시 모르니깐 내가 동참하도록 할게.”
“정말요?! 고마워요.”
가람은 순간 너무 기뻐 리사 뮐러를 와락 안았고, 리사 뮐러는 이게 꿈인가 할 정도 아찔한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이렇게 쉽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다는 생각에 정신의 끝을 잡으며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저.. 저..기.. 땀 냄새 나.. 떨어져..”
“아! 죄송해요.”
가람은 서둘러 떨어졌고, 리사는 급한 마음에 모진 말을 했지만,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가람은 훈련 장비를 하나씩 치우기 시작했고, 옆에 있는 리사 뮐러도 괜히 손이 노는 것 같아서 같이 치웠다.
그리고 도망간 줄 알았던 게르트 뮐러는 이 모든 장면을 지켜봤고, 리사 뮐러에게 배운 핸드폰 카메라 줌 기능으로 둘이 포옹하는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그렇게 아침 훈련이 끝난 후 리사 뮐러와 함께 집으로 들어온 가람은 이미 돌아와 있는 게르트 뭘러를 만날 수 있었다.
게르트 뭘러를 보는 순간 리사 뮐러는 바로 소리를 질렀다.
“할아버지! 정말!! 저 좀 봐요!”
“그래. 나도 마침 너랑 이야기할 게 있다.”
리사 뮐러의 말에 게르트 뭘러는 아까 도망갔던 것과 다르게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리사 뮐러를 뒤따라 갔고, 가람에게는 가볍게 윙크까지 하며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리사 뮐러는 방에 들어가 방의 문을 닫자마자, 한 소리를 하려고 하는 순간 게르트 뭘러가 먼저 핸드폰을 보여주었다.
핸드폰에는 가람과 리사 뮐러가 포옹을 하는 모습이 찍혀 있었고, 무엇보다 리사는 가람과의 포옹에서 느낀 감정을 숨길 수 없었는지 황홀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걸 본 리사 뮐러는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져서 다급하게 외쳤다.
“언제 이런 사진을 찍은 거예요?!”
“그게 중요한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야마구치 켄 수석 코치의 프로포즈를 거절하고 독신을 선언한 리사 뮐러의 숨길 수 없는 감정이 중요한 게 아닐까? 역시 우리 손녀야 사람 볼 줄 알아. 나도 그 느끼한 녀석보다 가람이가 더 좋다고 생각한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어서 지워요!”
낯 부끄러운 자신의 사진에 리사 뮐러는 필사적으로 게르트 뭘러에게서 핸드폰을 뺏으려고 했지만 게르트 뭘러는 나이에 맞지 않는 날렵한 움직임으로 리사 뮐러를 피했다.
축구장에서 빛났던 그의 위치선정 능력과 민첩한 움직임은 이 상황에서도 녹 슬지 않았다. 그렇게 약간의 몸다툼이 있었지만 결국 게르트 뭘러는 핸드폰을 지켜낼 수 있었고, 리사 뮐러는 씩씩거리며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 당장 지워주세요!”
“내 부탁을 들어준다면 지워주지.”
“만약 가람이랑 훈련하는 거라면 이미 이야기가 끝났어요. 가람이가 완전히 할아버지 팬이더라구요. 직접 할아버지께 수업 듣는다고 했어요. 대신에 저도 참관할 거예요. 만약 문제가 발생하거나 무리라고 판단하면 바로 끼어들 거라고요.”
“어. 그래?”
생각지 않게 문제가 쉽게 풀리자, 게르트 뮐러는 순간 방심했고, 리사 뮐러는 바로 게르트 뮐러의 핸드폰을 가로채서 사진을 황급히 지웠다.
그때 게르트 뮐러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거 클라우드에 백업되어 있다.”
“할아버지!!”
“뭐 이번 일은 다행이지만, 나중을 위해서 가지고 있는 것은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정말~~ 할머니한테 전부 일러바칠 거예요!!”
“네 할머니는 저 사진을 보면 바로 짐 싸서 가람이랑 너를 결혼시키려고 일로 올 걸. 그러게 어디서 독신이라는 말을 해서..”
“아.. 정말 제가 저렇게 어린 아이를 좋아하겠어요? 그리고 독신이라고요!”
“좋아하지도 않는데..독신인데 저런 표정이 나오니? 여튼 이제부터 수업을 방해할 생각은 하지 말아라. 그리고 만약 방해한다고 생각이 들면 바로~ 이 사진은 가람이에게 보낼 거야”
“으아앗! 그건 안 돼요.”
“그럼 수업에 참관할 때 방해하지 말도록!”
그렇게 게르트 뮐러는 의기양양하게 리사 뮐러의 방에서 나와 가람이에게 수업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기 위해 방금 전까지 만났던 식탁으로 걸음을 옮겼지만, 그곳에는 가람 대신 따뜻한 조식이 준비하고 있는 캐서린이 있었다.
“일어나셨군요. 게르트씨. 잠은 푹 주무셨나요?”
“아. 네. 침대가 딱 저에게 맞는 것 같았습니다. 좋았어요. 그런데 가람이는?”
“가람이는 점심에 잡혀있던 광고 촬영이 앞당겨졌다고 방금 아침도 흡입하듯 먹고 나갔어요. 대신 오늘은 일찍 들어온다고 했고요. 여기 앉으세요.”
“아.. 그래요.”
게르트 뮐러는 순간 가람이 새벽 일찍 일어나 훈련을 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일찍 운동한 게 다음 스케줄 때문에 그런 거군요.”
“어머 게르트씨도 가람이가 운동하는 거 보셨나요? 녀석이 새벽에 나갈 때 조용히 나갔어야 했는데 괜히 잠을 깨워드린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아닙니다. 축구 선수가 프리 시즌에도 열심히 개인 훈련을 하는 건 바람직한 행동이죠. 내일부터는 제가 살짝 가르쳐 주기로 했습니다.”
이미 알렉스에게 어제 온 프란츠 베켄바워와 게르트 뮐러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은 캐서린은 크게 놀라 기뻐하며 입을 열었다.
“어머! 정말요! 게르트씨에게 가르침을 받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가 해드릴 게 없는데 여기서 지내시는 동안 숙식은 책임질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아. 그러면 제가 곤란합니다. 돈은 받으셔야죠.”
“아니에요. 저희 형편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라 이 정도밖에 해드릴 수 없는 게 더 송구스러울 뿐이에요.”
“그래도. 그게..”
그렇게 캐서린과 게르트 뮐러의 실랑이가 이어졌고, 알렉스가 이 장면을 목격하자 결국 그의 강권에 의해 게르크 뮐러는 휴가를 지내는 동안 무료로 숙식을 해결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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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이 슛! 나이스~ 컷!”
샤오루 사업의 전반을 차지하고 있는 건 뷰티 화장품 상품이었지만, 그와 더불어 의류 사업도 만만치 않게 성장하고 있었고, 그런 의류 사업에 메인 모델 자리를 두고 많은 의견들이 나왔었다.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의류 브랜드에 메인 모델을 누굴 쓸까 의견이 많았지만, 대다수 의견은 누구나 알고 있는 할리우드 스타보다는 떠오르는 신예 배우나 새로운 얼굴을 발탁해 기업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인물을 원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의 추천도 아니라 샤오루 자신이 데리고 온 가람을 보자, 모든 이들이 자신들이 원했던 모델이 바로 가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동양인과 서양인의 좋은 점만 뽑아 절묘하게 섞은 외모는 신비로우면서 아름다웠고, 거기다가 축구 선수라는 거친 운동을 하는 반전 포인트도 좋았다.
몸매도 이미 웬만한 모델보다 좋고, 비율은 더 좋기 때문에 광고 사진을 찍는 작가나 영상 감독은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해 더욱 좋은 광고 아니 작품을 만들려는 노력까지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현장의 분위기를 단 번에 읽은 샤오루는 웃으며 대기하고 있던 가람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꼬마야. 축구 하지 말고 그냥 연예인 할 생각 없니? 그게 더 쉽게 돈 벌 것 같은데 말이야.”
“그게 선더랜드 구단주로서 할 말인가요?”
“오호호. 선더랜드 인수에 들어간 돈은 나한테 푼 돈 밖에 안 되거든. 뭐 하긴 너를 꼬셨다가 나중에 자기한테 혼 날 수도 있겠네. 그건 넘어가야겠다. 하지만 나중에 은퇴하고 나면 진지하게 고민해봐. 내가 보기에는 너는 나이 먹으면 먹을수록 외모가 더 빛날 얼굴이거든.”
샤오루의 칭찬에 가람은 별 느낌이 없었다.
이미 승연의 삶에서 만난 중년의 가람은 영화배우라고 해도 될 정도로 뛰어난 인물이었고, 매해 열리는 세계 섹시한 감독 1위를 놓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점심을 지나 늦은 오후에 접어들자, 광고 촬영도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
지이잉 지이잉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고, 핸드폰을 들어 액정을 보자, 김하늘 이름을 볼 수 있었다.
“네에? 형? 무슨 일이세요?”
“우리 가람이가 광고 모델로 힘내고 있다고 해서 응원차 전화했어. 괜찮아?”
“죽겠어요. 광고보다 차라리 풀타임 경기 두 개 뛰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알기로는 용건 없이 응원만으로 전화하실 분이 아닌 걸로 알고 있는데요. 우리 하늘이 형은?”
“녀석.. 나를 너무 잘 알고 있구나. 내가 사람 보낼 테니 구단에 잠깐 들어와라. 할 이야기가 있어.”
“전화로는 안 되나요?”
“응. 그건 좀 그렇네.”
“알겠어요.”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나서 몇 가지 컨셉의 광고 촬영을 마치자 샤오루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자기가 보낸 사람이 도착했다고 하네. 내일은 저녁 촬영할 테니깐 준비하고 그때까지 푹 쉬도록 해.”
“알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어차피 선더랜드 인근에서 광고 촬영을 하고 있어서 김하늘이 보낸 차를 타고 선더랜드 구단에 도착하는 건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휴가 중에는 주방 보조인 어머니이나 경비 총괄을 맡고 있는 외할아버지도 자주 출근은 할 필요가 없었고, 시즌보다는 좀 한산한 구단 사무실을 거쳐 가람은 아직 들어가기 어색한 선더랜드 최고 경영자 집무실 문에 노크를 했다.
똑똑!
“들어오세요.”
안에서 들려오는 말에 가람은 문을 열고 들어갔고, 그곳에서 생각지도 않은 익숙한 인물이 김하늘과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다가 가람을 보며 반갑게 달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