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선수단 인사
평소처럼 오전 훈련을 마친 후 오후에 있는 광고 촬영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일주일 동안 이어진 의류 촬영과 화장품 광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번에는 스포츠 용품 광고였다.
샤오루의 사업이 확장한다고 했지만 스포츠 용품까지는 할 줄은 몰랐다.
가람은 생각보다 많은 광고에 지칠 법 했지만 오늘 촬영을 마지막으로 이번 시즌 광고 촬영은 다 완료되니 그걸로 만족할 셈이었다.
그때
지이잉 지이잉
요란하게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가람아. 혹시 네가 영상을 올린 거 아니지?”
“무슨 영상이요?”
“아니. 너도 모르는 거야? 너랑 우레이 선수가 골대 맞추기 한 영상 말이야. 완전 난리 났어.”
“영상이요?"
그 순간 우레이 옆에 있었던 카메라 맨이 생각난 가람은 말을 이어갔다.
"하늘이형. 영상은 제가 찍은 게 아니라 우레이 쪽에서 찍은 거예요.”
“그게 나도 우레이 선수에게 듣기는 했는데 말이야. 찍힌 영상이 자신들이 찍은 영상이랑 다르다고 하네. 너는 확실히 아니지?”
“네.”
“그래 알겠어. 망할 녀석. 지가 내기에서 지고 나서 왜 네가 올린 것 같다고 난리를 치고 있어? 하아.. 피곤하네.”
“그런데 우레이 선수는 언제 영입된 거예요?”
“아.. 그게..”
김하늘은 우레이 영입 과정에 대한 내용을 설명해주었고, 이야기를 다 들은 가람은 이제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솔직히 중국 피파 랭킹도 낮아서 비자 발급도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에스파뇰에서 1년간 뛰었던 점을 간과했어. 게다가 연봉까지 낮춰서 들어오다니..”
“샤오루 공동 구단주님의 능력을 너무 낮게 보셨네요. 그래도 우레이 선수가 연봉을 스스로 낮춰서 올 생각을 하다니 잉글랜드 무대에서 뛰고 싶은 것 같네요.”
“그래. 이런 말을 하기는 좀 뭐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잘 지내주었으면 좋겠다.”
“알겠어요.”
그렇게 대화를 마친 가람은 생각지 않은 우레이의 영입에 핸드폰을 들어 우레이에 대한 영상과 기사를 찾아봤다.
‘아까 봤을 때는 공은 제법 차는 것 같은데..’
하지만 에스파뇰 스포터즈가 만든 하이라이트 동영상을 보니 이타적인 플레이보다는 자신이 해결하려는 욕심이 많은 플레이를 했었다.
그나마 컨디션이 좋을 때는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발빠른 드리블과 침투 능력이 돋보였지만, 그렇지 않은 날에는 좋은 기회도 날려버리는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종종 자신에게 패스를 하지 않았다고 소리치는 모습은 따로 하이라이트가 있을 정도였다.
‘최전방 공격수에는 지루가 있으니 거기는 아니고.. 그렇다면 윙어 자리인가..’
어쩌면 이번 시즌에 박지석 감독은 가람의 신체적인 능력을 부족하다고 해서 스트라이커 기용은 잠시 보류할 수도 있다고 말했기에 그렇다면 결국 우레이는 자신과 같은 윙어에서 포지션 경쟁을 펼쳐야 하는 것이었다.
그때 촬영 스탭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람 선수! 이제 촬영 들어갈께요.”
그 말과 함께 가람은 어차피 주전 경쟁을 하게 되면 자신보다는 우레이가 걱정을 해야 했기에 거짓말처럼 우레이에 대한 생각을 지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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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도대체 누가 올린 거란 말이야?!”
가람에게 치욕적으로 진 영상은 누군가에 의해 중국의 동영상 사이트와 너튜브에 올라간 상태였다.
“왕전은 아닙니다. 카메라 구도도 그렇고요.”
“그럼 도대체 누구라는 거야!”
“아무래도. 김가람 선수가 유명하다보니.. 파파라치들이 많이 붙어 있던 게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제길!!”
이미 우레이와 가람의 내기 동영상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심지어 영상에서는 자기가 치졸하게 몇 번이나 공을 찼던 모습도 편집 없이 그대로 나간 상태였다.
우레이의 안티팬들은 이걸 기회로 우레이의 능력을 까기 시작했고, 팬들은 그냥 페이크 영상 아니냐며 우레이를 옹호하려고 했다.
차라리 페이크 영상으로 찍혔다면 다행이겠지만, 가람이 왼발로 골대 10번을 맞춘 건 사실이었기에 우레이는 더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매니저가 입을 열었다.
“지난번에 이야기하셨던 샤오루 구단주님의 광고 모델 건은..”
우레이가 이곳에 오게 된 이유 중 잉글랜드 축구를 뛰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선더랜드의 공동 구단주인 샤오루가 가진 기업의 글로벌 모델도 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래서 영입이 되는 순간 그 의사를 매니져를 통해 전달했는데 그 결과가 이제야 온 듯 했다. 이에 살짝 화를 가라앉힌 우레이가 물었다.
“그래. 그래서 촬영은 언제 한다고 해?”
“그게 촬영은 하지만 그게..”
말을 제대로 못하는 매니저를 보며 우레이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되물었다.
“뭐야? 문제라도 있는 거야?”
“네. 글로벌 모델은 김가람 선수로 진행할 거라고 했습니다.”
“뭐어?! 그게 무슨 소리야?”
“그게.. 글로벌 모델은 김가람 선수가 하고 중국에서는 우레이 선수가 하기로 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시간도 많이 뺄 필요 없다고..”
결국 자신은 중국 마케팅용으로 쓴다는 소리라는 걸 알아들은 우레이는 크게 소리쳤다.
“젠장!! 나가!! 망할 새끼! 나한테 이런 치욕을 준다고!! 나 우레이한테!!”
그렇게 우레이가 가람에게 분노하며 치욕을 갚을 것을 다짐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어느 덧 7월 4일이 되었고, 휴가를 마친 선수들과 이번에 영입된 선수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아카데미 오브 라이트 1군 훈련장
평소처럼 트레이닝 복을 입은 선수들은 훈련장에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미 게르트 뮐러와 아침 훈련을 진행한 가람과 김민재, 권윤성이 제일 먼저 도착했다.
권윤성은 주변을 둘러보더니 가람을 보며 입을 열었다.
“완전 긴장된다.”
“긴장하실 필요는 없어요. 이미 영어는 완벽한 수준이에요.”
“그런가?”
권윤성은 월드컵 기간 동안 가람에게 영어를 배웠고, 이곳에 와서 알렉스의 개인지도로 의사소통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 수준이 되었다.
그때 옆에서 몸을 풀고 있는 김만재가 입을 열었다.
“기성룡 선배는 이번에 합류 하지 못하는 것 같아 좀더 뉴캐슬에서 도전하고 싶으신 것 같아.”
“아. 정말요? 아쉽네요. 기성룡 선배의 멋진 롱패스를 같은 경기장에서 느껴보고 싶엇는데..”
김만재의 말에 권윤성은 긴장이 풀렸는지 기성룡에 대한 팬심을 나타내며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그때 리 캐터몰의 큰 목소리가 운동장에 울려퍼졌다.
“어이!! 꼬맹아!”
리 캐터몰의 목소리에 가람은 고개를 들어 운동장 입구를 쳐다봤고, 그곳에서는 지난 시즌 함께한 익숙한 얼굴들이 함께 들어오는 걸 볼 수 있었다.
가람은 반가워서 바로 김만재와 권윤성을 데리고 가서 그들을 일일이 인사 시켜주었다.
“모두 환영한다고! 나는 팀의 주장 리 캐터몰이고, 여기 옆에는 부주장 그런트 리드비터야! 앞으로 잘 부탁한다. 이야기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인종차별 같은 거 없어. 만약 내가 없을 때 그런 모습을 발견하면 나한테 알려주라고!! 내가 바로 응징해줄테니 말이야!! 글랜! 이 친구들은 수비수니깐 자네가 좀 챙겨!”
“알았어.”
리 캐터몰과 동갑이며 베테랑인 글랜 로번스는 권윤성과 김만재를 데리고 가서 따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는데 수비 스타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미 가람도 오른쪽 윙백으로 지난 시즌을 보낼 때 저런 대화를 통해 수비 라인 및 수비 조율을 진행했기에 그들을 적응되도록 두었고 가람은 선수들과 그동안 있었던 일을 나누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자연스럽게 월드컵 이야기가 나왔고, 가람은 겸손하게 있었던 일들을 말해주며 분위기를 이끌기 시작했다.
그때 뒤늦게 나타난 윌 그릭이 합류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주장.”
“뭐 많이 늦지 않아서 다행이네. 그런데 왜 그런 거야?”
“뭐.. 에이전트가 나선 거죠. 제가 그랬겠어요?”
“그래. 나도 네가 인종차별 같은 편견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재계약은 된 거야?”
리 캐터몰의 말에 윌 그릭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 말에 리 캐터몰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리 캐터몰은 박지석이 새로운 감독으로 내정되었을 때 먼저 만나게 되었고, 영입된 선수들이 누군지 알고 있는 상태였다.
특히 윌 그릭이 주전 경쟁을 펼쳐야 하는 인물을 생각해보면 구단에서 굳이 윌 그릭이 말한 재계약 조건을 굳이 들어줄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여튼 이번 시즌도 열심히 하자고, 열심히 하다 보면 될 거야.”
그렇게 리 캐터몰이 선수들을 다독이고 있을 때
삐이익!!
휘슬 소리와 함께 박지석, 김하늘 그리고 새로 영입된 선수들이 훈련장으로 들어왔다.
“자아. 모두 집합. 훈련 시작이다.”
박지석의 말에 리 캐터몰은 주변의 선수들을 독촉해 박지석의 앞으로 뛰어갔고, 박지석은 그 모습을 보며 흡족한 듯 입을 열었다.
“고맙다. 주장.”
“아닙니다. 감독님.”
박지석과 리 캐터몰은 둘은 사실 이미 프리미어 리그에서 상대 선수로 경기를 나눠본 사이였고, 실제로 나이 차이도 얼마 나지 않았지만, 리 캐터몰은 그런 건 신경 쓰지 않고, 박지석을 감독으로 깍듯이 대했다.
그런 모습에 박지석은 흡족했고, 모여 있는 선수들을 보며 김만재와 권윤성을 불러 자신의 옆에 서게 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기존 선더랜드 선수들과 영입된 선수들이 나뉘어졌고, 그렇게 대형이 갖춰지자, 박지석이 입을 열었다.
“오늘부터 선더랜드의 지휘봉을 맡게 된 박지석이라고 한다. 우리의 목표는 다이렉트 승격이다. 승격팀이 바로 승격을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새로운 구단주님도 승격을 위해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하셨고, 나도 선더랜드를 챔피언쉽이 아닌 프리미어 리그로 올릴 생각이다. 혹시 지금 내가 말한 게 무리라고 생각하나?”
박지석의 말에 선수들은 한 목소리로 답했다.
“아닙니다.”
“그래. 그게 내가 원했던 반응이다. 이제부터 한 명씩 인사를 하도록.”
그 말에 올리비에 지루가 제일 먼저 앞으로 나와 입을 열었다.
“올리비에 지루야. 잘 부탁한다고, 우리를 축구 선수니깐 말보다는 몸으로 대화를 나누는 게 좋겠지.”
올리비에 지루의 영입 소식을 이미 기사로 접하기는 했지만, 선더랜드 선수들은 솔직히 믿지는 못했는데 이렇게 직접 만나게 되니 믿을 수 있었다.
그렇게 올리비에 지루를 시작으로 이적한 선수들은 소개를 시작했고, 맨유 소속이었던 딘 핸더슨, 리버풀 소속 이었던 오비 에자리아가 자신의 소개를 마쳤다.
김만재와 권윤성은 이미 준비했던 말로 괜찮은 인상을 남겼고, 기존의 선수들도 이미 가람과 함께 있던 그들을 봤기에 박수로 그를 맞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선수는 우레이였다.
“나는 우레이야. 앞으로 잘 부탁해. 골이 필요하면 언제든 나에게 패스를 하라고.”
다소 자신감이 넘치는 말에 선수들은 살짝 당황했고,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으며 우레이는 가람을 똑바로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