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참교육[2]
가람은 공을 차는 순간 들어갔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공은 자신이 생각한 대로 김만재와 권윤성의 사이 공간을 넘어갔고 궤적이 약간 휘어지며 딘 핸더슨 옆으로 지나갔을 때 스스로도 소름이 돋았다.
‘바로 이거다.’
가람의 몸으로 들어와 생활한 지 6개월 동안 히든 스킬로 슈팅 능력이 급상승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마음에 내켰던 슈팅은 없었다.
그런데 방금 전 골망을 가르는 슈팅은 자신이 원하는 코스로 완벽하게 들어갔다.
“와 대박!! 방금 어떻게 된 거야?”
가람도 만족하며 놀라운 슈팅에 오늘 아침까지도 이런 슈팅을 보지 못했던 김만재와 권윤성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하하. 이게 들어가네요.”
가람은 사실 대놓고 자랑을 하고 싶었지만, 그 마음을 꾹 눌렀다. 자신의 마음대로 공을 차서 골을 넣기는 했지만, 아직 한 번 뿐이었다.
다시금 똑같이 원하는 대로 차지 않는다면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알아챈 상태창이 믿어달라는 듯 깜빡거렸다.
김가람 / 나이: 만 18세 / 키 : 180 / 몸무게 : 74 / 주발 : 양발
|개인기 70|, |슈팅 95|, |킥정확도 90|, |드리블 90|, |헤딩 70|, |패스 85|, |태클 90|, |민첩 90|, |체력 90|, |속도 90|, |몸싸움 90|, |위치선정 90|
미분배 포인트 : 0
가람은 게르트 뮐러와의 특별 훈련을 통해 얻은 슈팅 스탯 +10과 이제 양 발을 능숙하게 찰 수 있게 된 것을 표시한 상태창을 흡족하게 봤다.
‘이 능력이면 챔피언쉽이 아니라 프리미어리그에서도 통하겠는데.’
가람은 흡족한 마음으로 상태창을 치우자, 상대팀인 오비 에자리아 선수가 다가와 입을 열었다.
“이야. 이거 정말 U20 월드컵 스타라고 하더니 대단하다. 너.”
“아닙니다. 우연히 들어간 거예요.”
“그런 것 치고는 완벽한 타이밍이었는데..”
오비 에자리아가 말을 이어가려는 찰나에 우레이가 불쑥 끼어들었다.
“경기 안 할거야? 운으로 들어간 골로 너무 호들갑 떨지 말라고!”
우레이의 말에 순간 분위기는 싸해졌고, 다들 자기 자리를 찾아 들어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경기는 골을 먹힌 빨간 팀의 공으로 시작되었고, 오른쪽 윙어인 가람과 왼쪽 윙어인 우레이는 자연스럽게 위치를 찾아가며 만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우레이가 가람을 보며 말을 꺼냈다.
“우연히 넣은 골로 기고만장하지 말라고 애송아.”
“우레이씨는 제가 싫은 것 같네요.”
“그래. 너무 싫다.”
“왜 그렇게 싫어하시는지 모르겠지만, 다행이네요. 저도 싫거든요.”
“뭐어?!”
가람의 말에 우레이가 욱하려는 순간 중앙 하프라인 인근에서 올리비에 지루가 우레이에게 공을 패스했고, 순간 가람의 말에 정신을 놓고 있던 우레이는 패스를 받을 타이밍을 놓칠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우레이가 타이밍을 놓친 기회를 살려 가람은 쉽게 패스를 중간에 가로챌 수 있었다.
토오옹!
“젠장!!”
아까 전과 달리 말싸움에 말려 공을 놓친 우레이는 있는 힘을 다해 가람을 뒤쫓았지만, 가람은 아까보다 더 빠른 속도로 공을 치고 나갔고 우레이는 점점 멀어지는 가람의 등을 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가람이 순식간에 왼쪽 하프라인에서 중앙으로 뚫고 들어갔다.
김만재와 권윤성은 괜히 앞으로 달려들다가 아까처럼 말도 안되는 슈팅을 허용하지 않으려고 수비 라인을 지키며 가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나온다면..’
권윤성과 김만재은 수비 지원을 기다리며 패널티 에어리어 안쪽에서 수비라인을 구축했고, 가람은 그 모습을 보더니 싱긋이 웃었다.
그리고는
뻐어엉!!
패널티 에어리어에 도착하기도 전에 가람은 강하게 슈팅을 때렸다.
하지만 공은 하늘을 향해 치솟았고, 그걸 본 딘 핸더슨은 아까의 슈팅이 운이었고, 이번에는 하늘로 넘어가는 슈팅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모두가 골아웃을 생각할 때 권윤성이 외쳤다.
“골키퍼!! 오른쪽 골대 상단!!”
권윤성이 그동안 영어를 배운 게 헛되지 않았는지 딘 핸더슨은 권윤성의 말을 정확히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자신이 보기에는 공은 나갈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휘리릭
하염없이 높이 올라갈 것 같은 공은 급격히 꺾이기 시작했고, 권윤성이 말한 대로 오른쪽 골대 상단으로 휘어져 들어갔다.
딘 핸더슨은 높이 올라간 공을 쳐다보니 햇빛 때문에 정확히 공의 위치를 파악할 수 없었다. 그리고
촤르르르르~~
하늘의 매가 떨어지는 듯한 슈팅이 골대에 그대로 박혀버렸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가람의 서커스같은 슈팅에 모두가 의욕을 잃은 듯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그건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박지석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U20 월드컵 결승에서 가람이 일본을 상대로 넣었던 골과 같은 슈팅이었다.
그때는 우연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걸 다시금 보여주는 가람을 보며 이제는 확실히 그때보다 더 성장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지금 왼발 맞지?”
박지석의 물음에 옆에 있는 제임스 플라워가 대답했다.
“네. 맞아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왼발은 전혀 사용하지 못했던 선수인데.. 놀랍네요.”
모두가 놀라고 있을 때 제일 놀란 건 다름 아닌 가람이었다.
두 번의 슈팅으로 가람은 확신할 수 있었다. 양 발을 능숙하게 찰 수 있다는 것과 더불어 슈팅 능력 95과 신체 능력 평균 90은 가람이 원하는 슈팅 자세를 충분히 가져갈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었다.
삐이익!
뒤늦게 심판의 골 선언이 이어지고, 빨간 팀 선수들은 의욕을 잃었다. 그때 올리비에 지루가 가람에게 다가와 입을 열었다.
“어이! 에이스. 연습경기인데 살살 하자. 너무 잘하는 거 아니야? 이러면 우리는 새로운 감독님께 눈도장 찍을 수 없다고.”
올리비에 지루가 가람을 보며 에이스라고 인정하는 모습에 가람은 살짝 놀라며 대답했다.
“아. 죄송해요.”
오늘 연습 경기는 선수들의 기량을 체크하는 게 중요했다. 그런데 가람이 이렇게 혼자서 찍어내버리면 다른 선수들의 기량은 볼 수 없을 것이었다.
그리고 올리비에 지루의 조언이 맞다는 듯 벤치에서 박지석 감독의 외침이 들려왔다.
“가람아!! 템포를 늦춰. 천천히 뛰어. 네 기량은 충분히 봤다.”
박지석 감독의 외침에 가람은 슬며시 웃으며 알겠다는 듯 답했고, 다시 빨간 팀의 공으로 경기를 시작되었다.
가람은 아까와 다르게 공격적으로 나서지 않고 수비적으로 진행하기 시작했고, 그러자 빨간 팀도 점점 경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역시나 괜히 프리미어 리거가 아니라는 듯 아니 정확히 말하면 프리미어 리그에서도 탑랭크에 속했다고 할 수 있는 포스트 플레이어인 올리비에 지루는 확실히 파란팀의 수비진을 초토화 시켜버렸다.
또한 올리비에 지루가 위치를 잡는 순간을 이용해 적재적소로 뿌려지는 오비 에자리아의 패스와 탈압박 능력 그리고 크로스는 김하늘이 왜 그 선수를 영입하려고 했는지 알 법했다.
게다가 가람이 공격적으로 나서지 않자, 김만재와 권윤성은 브라이언 오비에도와 호흡을 맞춰 파란팀의 공격을 막아내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특히 지난 시즌 리그1에서 많은 기회를 만들었던 던컨 왓모어의 돌파를 권윤성이 몇 차례 저지하는 모습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물론 파란 팀도 공격의 마무리는 부족하기는 했지만 리 캐터몰과 맥스 파워 그리고 조지 허니먼의 조직력과 기량을 바탕으로 빨간팀의 공세를 막아내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상황이었다.
‘이 정도 전력이면 다른 건 몰라도, 챔피언쉽에서 막아낼 팀은 없겠지.’
거기다가 자신이 가세하면 선더랜드는 막강해질 것이었다. 그때 벤치에서 박지석 감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레이!! 공격적으로 나가봐!!”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오비 에자리아는 우레이와 가람의 앞공간에 길게 공간 패스를 뿌렸다. 그 패스의 의미는 가람과 함께 경합을 벌여 따보라는 의도였다.
공의 낙하 지점을 포착한 가람과 우레이는 공을 따내기 위해서 뛰기 시작했다.
솔직히 가람이 조금만 더 뛰면 확실히 빠른 속도를 이용해 먼저 공을 따낼 수 있겠지만, 아까도 박지석 감독이 천천히 하라는 지시가 있었기에 티 나지 않을 정도로 속도를 늦추었다.
하지만 그것도 빨랐는지 우레이는 공을 따내지 못했고, 결국 공은 가람이 소유하게 되었다.
‘이걸 그냥 줄 수도 없고. 차암..’
상대편에게 공을 줄 수도 없는 상황에 가람은 살짝 난처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아까처럼 가볍게 제쳐버리면 우레이의 기량을 체크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기에 가람은 공을 가진 채 공격적으로 나서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자 자연스럽게 둘은 서로를 보며 대치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냥 공을 줄까요?”
“뭐어?”
“아니. 아까 감독님 말씀도 있고 제가 공을 드릴 테니 한번 공격을 해보세요. 감독님께 기량을 보이셔야 할 거 아니에요?”
가람은 고민을 하다 뱉은 말이었지만, 우레이의 자존심은 그 순간 와장창 무너졌고, 이성을 잃었다.
“이 자식이 누굴 놀리나!!”
자신도 모르게 중국말이 튀어나오며 발을 거칠게 내밀었고, 가람은 발바닥으로 공을 컨트롤하며 쉽게 빼앗기지 않았다.
원래는 여기서 공을 주고 우레이의 기량을 체크해야 했지만, 왠지 그냥 주는 건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그렇게 둘은 꼭 1대 1 경기를 하듯 공을 가지고 다툼을 했다.
우레이는 전력을 다했지만, 멀리서 볼 때는 어른이 어린아이를 가지고 장난치는 것처럼 보였다.
역시나 우레이에 비해 월등한 피지컬을 가지고 있는 가람은 가볍게 우레이를 농락할 수 있었다.
이렇게 되면 우레이와 같은 팀인 빨간 팀의 다른 선수가 우레이를 도와 가람의 공을 빼앗는 게 맞지만, 잠깐 뛰면서 빨간팀의 다른 선수들이 우레이에게 무언가를 느꼈는지 도와주기는커녕 그 광경을 지켜봤다.
그리고 우레이도 그 상황을 모르는 건 아니었기에 어떻게든 공을 빼앗기 위해 과격하게 몸을 쓰고 심지어 손을 써서 가람을 밀기도 했지만, 가람은 밀리기는커녕 자신의 손만 아파왔다.
“가람아!! 그만해라!!”
박지석이 벤치에서 소리를 치자, 가람은 그제야 공을 몰고 천천히 나오기 시작했고, 이미 가람과의 1대 1 대결에서 체력이 소진된 우레이는 가람이 빠져나가는 걸 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우레이는 순간 이미 두 차례의 경합에서 패배를 하며 이번에는 자신을 가지고 놀았다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분노했다.
그리고
촤르르르~~
우레이는 가람의 발목을 향해 축구화 스터드를 들어 거칠게 태클을 했다.
아무리 몸이 튼튼하다고 해도 사람의 급소라고 할 수 있는 아킬레스 건을 향한 정확한 태클이었다.
만약 우레이가 스스로 지금의 자신의 모습을 목격했다면 쥐구멍이라도 들어가 숨고 싶을 정도로 동업자 정신은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그런 태클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훈련장에 한 선수의 비명이 울릴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