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참교육[3]
“크윽!”
가람은 순간 자신의 뒷발목에 느껴지는 화끈한 고통에 짧은 비명과 함께 앞으로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발목에서 느껴지는 고통보다 놀라운 건 쓰러져서 더 크게 비명을 지르고 있는 우레이였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태클을 건 사람이 쓰러져서 비명을 지르는 상황에 가람은 순간 당황했고, 방금 걸린 태클로 입은 부상은 가벼운 부상이 아니라는 듯 눈 앞에 상태창이 나타났다.
[몸의 부상을 감지했습니다. 회복이 진행됩니다.]
그리고 발목 주변에서 느껴지는 시원한 감각은 확실히 우레이가 해서는 안되는 태클을 했다는 걸 증명했다.
게다가 그런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서 태클을 한 후 자신이 부상이 당했다는 듯 비명을 지르는 우레이의 모습에 더 화가 났다.
최소한 한 마디는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람이 일어났지만, 우레이는 쉽게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연신 인상을 쓰며 말을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
“뭐야? 정말 아픈 거야?”
가람이 능숙한 중국말로 물어보자, 우레이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이게 장난으로 보이냐?”
되려 화를 내는 우레이를 보며 짜증이 솓구쳤지만, 그의 표정에서 느껴지는 진심에 가람은 벤치를 보며 손으로 엑스자를 들어 보였고, 그러자 대기 하고 있던 의료팀이 다급히 뛰어갔다.
의료진은 우레이의 상태를 확인해보더니 심각한 표정을 짓고 들 것을 부탁했다. 우레이는 그렇게 들 것에 실려 나갈 수밖에 없었다.
박지석은 선수 한 명이 부상으로 실려가자, 수석코치와 이야기를 나눈 후 연습경기를 종료시켰다.
“오늘 연습 경기는 여기서 마치겠다. 아까도 말했듯이 부상이 발생하면 안되니 모두 마무리 훈련을 하고. 김가람!”
“네. 감독님.”
“너도 태클에 당했으니 의무실에 가보도록 해라.”
“저는 괜찮습니다. 감독님.”
“아니. 원래 태클에 당하고 나면 그 당시에는 괜찮을지 몰라도 나중에 아플 수도 있어.혹시 모르니깐 진료를 받아보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그렇게 가람은 의무실로 걸음을 옮겼고, 박지석은 오늘 연습 경기 영상을 전력 분석팀에게 받아서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갔다.
박지석은 영상을 보면서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대한 윤곽을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문제의 장면인 우레이의 태클 장면이 나오자 이를 자세히 살펴봤다.
“우레이 이 녀석..”
몇 번을 돌려봐도, 우레이가 해서는 안되는 태클을 한 장면이었다. 이 정도 태클이면 그 순간은 괜찮겠지만, 가람이에게 적지 않는 부상이 생겼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들어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오는 건 선더랜드의 주치의 이쉬 레만이었다.
단순한 부상일 경우 팀 탁터인 이안이 오는데 이쉬 레만이 들어왔다는 건 부상이 심각하다는 걸 의미하는 거였다.
그 것을 알고 있는 박지석의 표정이 변하자, 이쉬 레만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감독님들은 제가 집무실에 들어오는 걸 두려워하시죠. 특히 지금처럼 시즌 준비 중이라면 더욱 그렇죠.”
“아. 죄송합니다. 솔직히 선수가 장기 부상을 당한 걸 좋아하는 감독은 없으니 말이죠. 그래서 가람이는 얼마나 경기를 뛸 수 없는 건가요?”
“네에? 김가람 선수요? 저는 우레이 선수의 부상을 말하려고 온 건데요.”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태클을 당한 건 가람인데..”
“네에?”
이쉬 레만은 자신이 가지고 온 차트를 다시 한번 살펴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람이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오히려 우레이 선수가 무리하게 움직이다가 햄스트링 부상을 입어서 최소 2개월 길면 3개월은 나올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네에?”
생각지 않은 이쉬 레만의 보고에 박지석은 황당했지만 그래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우레이는 박지석의 이번 시즌 구상에 없는 인물이었다.
솔직히 레스터 시티 U23팀에서 뛰고 있는 하비 반츠 선수를 영입하고 싶었지만, 갑작스러운 우레이의 영입에 그를 포기 해야 했다.
그래도 자신의 선수 한 명이 부상으로 이탈했다는 소식은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가 구단주님께 공유하도록 하죠. 우레이 선수가 경기에 나서지 못하면 구단주님 입장에서는 좋지 않을 수도 있으니 말이죠.”
“알겠습니다. 차트는 여기 두고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화를 마친 이쉬 레만은 밖으로 나갔고, 박지석은 이쉬 레만이 두고간 차트를 보며 정말 가람의 몸에 이상이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튼튼한 몸이라고 하더니 정말인가?”
박지석은 의아한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종종 그런 선수들이 있었다.
누가 봐도 정말 심각한 부상을 당한 상황인데 선천적으로 튼튼한 몸을 타고나서 부상을 쉽게 당하지 않는 선수.
박지석은 가람을 이번 일을 계기로 그런 선수로 분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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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10일
라이트 오브 스타디움 기자회견장
수많은 기자들이 자리를 채우고, 경비 총괄인 알렉스도 눈에 빛을 내며 삼엄한 경비를 체크하고 있었다.
단순히 시즌 전 기자회견이 아닌 듯 스포츠 기자 뿐 아니라 사회부 기자들의 모습도 보였다. 잠시 후 김하늘, 샤오루 공동 구단주 그리고 박지석 감독이 나타났다.
그리고 셋은 준비된 포토존에 서서 사진을 찍은 후 단상 위로 올라갔다. 잠시 셋이 준비를 하더니 샤오루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선더랜드 공동 구단주 샤오루입니다. 선더랜드의 미래 비전을 발표하는 자리에 오신 모든 기자분들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역시나 중국에서 큰 기업을 이끄는 인물답게 샤오루는 좌중을 좌우하는 목소리 톤과 발음으로 모두를 집중시켰다.
“오늘은 제가 먼저 선더랜드의 비전에 대해 발표를 한 후 질의응답의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그 후에는 박지석 감독님께서 챔피언쉽 시즌에 관한 기자회견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샤오루의 신호와 함께 기자회견장의 불이 꺼지고, 프로젝트 빔에서는 한 영상이 나왔다.
영상에서는 선더랜드 주변에 노후된 숙박시설을 개선하고 선더랜드 구장으로 오는 도로 등 교통시설 확장에 대한 내용이 보여졌다.
그와 함께 샤오루는 설명을 이어갔다.
“저희는 단순히 선더랜드 구단에 대한 투자만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선더랜드 구장을 중심으로 교통 여건을 개선해 나갈 것이며, 원정팬분들이 묵을 수 있는 숙박 시설을 확대하고 지원사업을 펼쳐서 선더랜드 지역의 경제발전에 기여할 계획입니다.”
샤오루의 말이 끝나는 순간 영상에서는 선더랜드 주변에 관광시설이 나오고, 중국 관광객들의 모습 그리고 중국, 한국, 일본 등에서 직항으로 연결되는 장면이 나왔다.
“또한 동양인 구단주인 저희는 선더랜드를 단순히 잉글랜드의 팬 뿐만 아니라 동북아 세계에 있는 팬들에게 어필할 만한 구단으로 성장시키고, 선더랜드에 수많은 관광객을 유치할 예정입니다. 직항을 개설하기 위해 이미 뉴캐슬 공항과 협상 중이며, 패키지 관광 상품도 빠르면 8월 말부터 판매할 예정입니다.”
이번에는 선더랜드 구장 증축 설계도와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있는 캐서린의 모습 그리고 가수들이 공연하는 모습과 영화관 모습이 나왔다.
“선더랜드 구장의 증축을 통해 더 많은 팬들과 만날 것이며, 선더랜드만의 특별 구단 음식을 개발하고, 그리고 증축된 구장에 가수들의 공연도 유치할 것입니다. 또한 오늘 개장하는 영화관을 비롯하여 단순히 축구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시설들은 지역 주민과 관광객에게 단계적으로 개방할 것입니다.”
그렇게 샤오루의 설명과 영상이 끝나자 그래프와 차트가 나왔고, 그걸 보며 샤오루는 웃음기를 띈 채 말을 이어갔다.
“지금까지 보신 영상은 지역 경제의 잠재력, 지역사회와의 협력 그리고 구단의 예상 성적을 바탕으로 구축된 선더랜드의 전망입니다. 그리고 이런 인프라를 바탕으로 선더랜드는 추후 유럽 그것도 정상에 선 클럽들과 경쟁할 것입니다.”
그렇게 샤오루의 발표가 끝난 후 기자들은 표와 차트를 보기 시작했고, 이번 시즌 예상 성적이 다이렉트 승격을 할 수 있는 2위로 표기되어 있는 것을 보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미 이런 상황을 예측했다는 듯 박지석 감독이 입을 열었다.
“지금 여기 계신 모든 기자분들이 당황할 만한 내용을 접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말씀 드리면 저희 선더랜드의 이번 시즌 목표는 저기 적혀 있는 것처럼 다이렉트 승격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축구를 모르는 구단주도 아닌 선더랜드의 감독인 박지석이 그렇게 말하자, 기자들은 먹잇감을 발견했다는 듯 손을 들기 시작했다.
원래 순서는 샤오루가 질문을 받는 시간이었지만, 샤오루는 먼저 하라는 듯 양보하는 제스쳐를 취했고, 박지석은 흑인 기자를 지목했다.
“안녕하세요. 스포츠라이트 기자 브라이언입니다. 지금 감독님의 발언은 승격팀인 선더랜드가 이번 시즌에도 또 승격을 노린다는 말씀이신대요. 그런 발언은 솔직히 경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문가들의 분석에 의하면 이번 시즌의 승격은 프리미어 리그에서 강등한 아스톤 빌라나 지난 시즌에 아쉽게 3위를 기록한 리즈 유나이티드를 뽑고 있는 상황인데요. 그런 발언을 하신 이유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그 분석이라면 저도 봤습니다. 강등 팀은 승격한 저희와 포츠머스 그리고 플레이 오프를 통해 올라온 옥스퍼드가 다시 그대로 강등될 거라는 분석이었죠. 전문가분들께서 어떤 기준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전문가분들의 말이 무조건 맞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승격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지금 꾸리고 있는 선수단의 스쿼드와 구단주님의 지원, 그리고 열정적인 팬분들이 있어 생긴 것이고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박지석의 말이 끝나는 동시에 기자들이 손을 들기 시작했고, 이번에는 동양인 기자가 기회를 얻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스포츠 코리아의 이청일기자입니다.”
“한국분이시군요. 가능하시면 다른 기자분들도 이해할 수 있게 영어로 질문해주시겠습니까?”
박지석의 요청에 이청일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영어로 대화를 이어갔다.
“지금 박지석 감독님의 발언은 이번에 영입하신 선수들의 일면만 봐도 이해 가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번 시즌 강등해 챔피언쉽에 합류한 아스톤 빌라 같은 경우는 대부분 선수들을 잔류시키며 전력을 유지했는데요. 그래도 승격을 확신하실 수 있는 건가요?”
“물론입니다. 이번 시즌에 구단주님의 지원으로 뛰어난 선수들을 영입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선수들을 하나로 뭉칠 수 있도록 조련을 하고 결과를 만들어낼 자신이 있습니다. 게다가 승격에 중요한 건 승격을 하겠다는 선수들의 의지입니다. 백투백 강등으로 지옥을 맛본 저희는 그런 면에서 다른 팀과 견주었을 때 선수들의 의지와 동기 부여는 뛰어납니다.”
평소와 다른 자신감 넘치는 박지석 감독의 답변이 끝나자, 이번에도 수많은 기자들이 손을 들었고, 이번에는 박지석은 백인 기자를 지목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스포츠문의 폴 스미스 기자입니다. 아까 이청일 기자분께서는 선수들의 일면을 봐도 이해한다고 했지만, 솔직히 저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지금 스쿼드에 동양인 선수가 많은데요. 이 스쿼드가 과연 경쟁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약간의 인종차별적인 질문이기는 했지만, 어쩌면 그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할 수도 있는 질문에 순간 기자회견장의 분위기가 조용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