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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실패 축구 황제의 상태창-77화 (78/319)

77화 이에는 이[1]

“그럴 때는 좀 더 힘을 실어서..”

가람의 외할아버지이자, 선더랜드 경비 총괄인 알렉스는 리 캐터몰이 호출한 선수들에게 좀 더 리얼한 트래쉬 토크, 즉 욕설을 맛깔나게 하는 법을 알려주고 있었다.

원래 이런 빌런 역할은 베테랑 선수가 경험을 살려서 하면 될 일이었지만, 해리 네쳐가 어리기 때문에 팀내에 제일 어린 가람도 빌런팀에 참여하게 되었다.

‘해리 네쳐라.. 그 양반이 이시기에 모어컴에 있을 줄은..’

강승연의 삶에서 권윤성이 국가대표 팀에서 자신을 이끌어주었다면, 소속팀인 모어컴에서 해리 네쳐가 그 역할을 해주었다.

당시에도 그의 트래쉬 토크는 36살이라는 경험이 더해져서 말 몇 마디를 하면 상대팀 에이스의 멘탈이 박살낼 정도였다.

당시에는 모어컴이 약팀이라 그런 식의 플레이를 익힌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보니 그의 트래쉬 토크와 경기 방식은 어려서부터 내공을 쌓아온 듯했다.

‘그런데 모어컴이 벌써 리그1에 올라오다니.. 김하늘이 선더랜드를 인수하면 미래가 바뀐 건가 아니면 이렇게 올라왔다가 다시 리그2로 강등되는 건가?’

원래 승연의 삶에서는 김하늘이 좀 더 나중에 모어컴을 인수하고, 리그2에서부터 승격을 이끄는 걸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삶에서는 김하늘이 선더랜드를 인수하면서 영향이 있는 듯 했다. 그렇게 가람이 순간 딴 생각에 빠지자, 알렉스가 가람을 지목하며 말했다.

“가람아. 아니 가람 선수. 지금까지 배운 걸 생각해서 한 번 대본을 읽어 보세요.”

자신에게는 외할아버지였지만, 구단에서 만나면 언제나 선수라고 칭해주는 알렉스를 보며 가람은 대본을 읽었다.

“이런 염병할 노무시끼가 그따위로 공 찰 거면 유치원에가서 차!! 이 씨브럴 놈아!”

생각지 않은 실감나는 가람의 연륜이 묻어나는 욕설과 표정에 순간 방의 분위기는 싸해졌고, 알렉스도 이렇게 욕을 하는 손자를 처음 보는 거라 충격 받은 듯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이에 가람이 살며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 정도면 될까요?”

“아.. 좋습니다. 가람 선수. 가람 선수는 억양이랑 표정이 매우 좋네요. 다음은..”

사실 강승연의 삶을 살았을 때 특기 중 하나였던 더티 플레이는 단순히 행동 뿐 아니라 트래쉬 토크까지 곁들어야지 완성이라고 할 수 있었기에 가람에게는 이 연습은 굳이 할 필요가 없었다.

물론 살짝 어색하게 할 수도 있지만, 그동안 자신의 삐딱함을 억누르던 감정이 지금은 느껴지지 않았고, 그러자 몸에 베어 있던 트래쉬 토크가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었다.

‘뭐 지금은 전술 때문에 풀어주는 건가?’

일 년 가까이 가람의 몸에 들어와 느낀 것 중 하나는 바로 원래 반골의 기질이 나올 것 같으면 자신을 억누르고, 제어하는 감정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 감정은 반골의 감정 즉 삐딱한 생각이나 반항심이 들 때마다 나타나 찬 물로 마음을 샤워를 시켰고, 그 샤워에 반항심은 거짓말처럼 잠잠해지고 사라졌다.

‘뭐.. 서유기의 손오공도 아니고 긴고아로 제어 당하는 것 같네. 하긴 원래 꼰대인 김가람 감독님의 천성 때문은 아닐까?’

강승연의 삶에서 만난 김가람 감독은 정의의 사도처럼 올바르고 정도의 길만 걷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의 몸에 들어왔으니, 아무래도 그의 영향을 받는 격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며 생각에 잠기려고 했다.

그때 알렉스는 미리 준비된 해리 네쳐의 영상을 틀어주었다. 영상은 박지석이 전술 회의실에서 보여준 것보다 좀 더 길고 경기 상황이 포함되어 있었다.

아마도 어떤 상황에서 해리 네쳐가 어떻게 반응하는 지 보여주기 위한 영상인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그 영상에서 해리 네쳐는 뛰어난 패스로 동료들에게 찬스를 만들어주었고, 2대 1 패스를 통한 돌파를 자주 시도했다.

특히 2대 1패스를 통해 나갈 때 이미 흥분 시킨 상대 에이스에게 파울을 당해 좋은 위치에서 프리킥 찬스를 얻고, 프리킥을 골로 만들었다.

그걸 본 선수들은 상당히 놀랐고, 가람은 역시나 하는 생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전설의 손자가 아니지.’

해리 네쳐가 트래쉬 토크와 더티 플레이로 악명을 쌓으며 여러 가지 별명이 생겼고, 그 별명 중 가장 유명한 건 바로 전설의 손자였다.

독일 전설의 미드필더 귄터 네쳐의 손자 즉 전설의 손자였다.

센티미터 패셔라고 불린 할아버지의 실력을 그대로 이어받은 듯 해리 네쳐는 승연의 삶에서 36살의 나이에도 놀라운 패스 실력을 보여주었고, 거의 떠 먹여주다시피 하는 그의 패스에 승연은 어린 나이에도 데뷔 시즌에 득점왕에 오르며 스타덤에 오를 수 있었다.

사실 나이든 해리 네쳐에 비하면 지금의 그는 간혹 모험적인 패스를 보내 가로채기를 당하기도 했지만, 기성룡의 전성기 시절과 비교해도 될 정도로 뛰어난 패스 감각과 정확도를 보여주었다.

단순히 더티 플레이 뿐만 아니라 실력까지 갖춘 선수였기에 해리 네쳐는 상대팀이 마크하기에 까다로운 선수였다.

‘애초에 저런 실력을 가지고 모어컴에서만 선수 생활을 했던 걸 보면 이해가 안 가지만 이번에도 그럴려나?’

가람은 잠시 김하늘의 선택이 모어컴에서 선더랜드로 바꾸었던 것처럼, 해리 네쳐도 이번 삶에는 다른 팀으로 이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할 때 알렉스의 사무실 전화기가 울렸다.

삐리링 삐리링

“예. 여보세요? 네. 괜찮습니다. 감독님. 제가 알려줄 것도 없이 잘하는데요. 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그렇게 전화를 끊은 알렉스는 가람을 보더니 말했다.

“가람 선수. 지금 감독님이 부르십니다. 감독실로 가보세요.”

“네? 저를요?”

“네. 지금 오라고 하시네요.”

이미 알렉스의 수업에서 월등한 실력을 보여준 가람은 감독실로 향했고, 거기에는 박지석 감독과 제임스 플라워 수석코치가 자리하고 있었다.

“저를 부르셨어요?”

“그래. 우선 여기에 앉도록 해라.”

박지석의 말에 가람은 제임스 플라워가 앉은 자리 바로 옆에 앉았고, 그와 동시에 제임스 플라워는 영상을 틀었다.

거기에는 해리 네쳐의 트래쉬 토크나 더티 플레이가 아닌 동료들에게 찬스를 만들어주는 킬패스 장면이 나왔다.

그렇게 한동안 영상을 본 가람은 박지석을 보며 입을 열었다.

“다음 경기에 제가 해리 네쳐 선수의 전담 마크를 하게 되는 것 같네요.”

그 말에 박지석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안다는 걸 이럴 때 쓰는 것 같구나.”

“아까 알렉스 경비 총괄님 방에서 봤던 영상에서 해리 네쳐 선수의 패스를 봤거든요. 그런 선수에게 전담 마크 선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 해리 네쳐 선수의 패스 영상을 보여주시면 그렇게 밖에 생각을 할 수 없죠.”

“아. 그렇군. 그럼 이야기는 빠르겠네. 다음 모어컴 경기에 해리 네쳐 선수를 막는 게 네 임무가 될 거다. 그래서 다음 경기에 맥스 파워 선수 대신에 중앙 미드필더로 선발 출전 시킬 생각이다.”

“중앙 미드필더요?”

“그래. 네 실력이라면 충분히 중앙 미드필더도 뛸 수 있을 거다.”

강승연의 삶에서도 박지석은 모어컴 시절 이나 국가대표 감독 시절에 팀에 따라 여러 포지션을 시켰는데 이번에도 그런 일이 벌어지자, 가람은 살짝 놀라며 혹시나 하는 생각에 박지석을 떠보는 듯 물어봤다.

“제가 중앙 미드필더를 잘해낼 수 있을까요?”

“물론이다. 이미 스트라이커 자리에서 중앙 수비수들과 몸싸움을 견뎌내고 윙어들에게 공간 패스를 넣어주는 걸 보면, 충분히 중앙에서도 활약을 할 수 있을 거다. 사실 다른 중앙 미드필더들에게 이 역할을 맡기려고 했지만, 적임자가 없었다.”

“적임자라고 하시면..”

“해리 네쳐 선수의 장기는 단순히 패스와 트래쉬 토크를 이용한 더티 플레이만 있는 게 아니라 엄청난 활동량과 영리한 오프 더 볼 움직임도 있지. 그리고 그걸 막을 수 있는 건 내 생각에 너밖에 없다.”

박지석이 확실히 자신의 역량을 파악해 역할을 부여하자, 가람은 박지석의 안목과 능력을 인정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감독님이 실망하지 않도록 경기 준비하겠습니다.”

그렇게 FA컵 6라운드 리그1 팀인 모어컴을 상대하는 선더랜드는 그 어떤 강팀을 만날 때보다 맞춤형 전술로 경기를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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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21일 라이트 오브 스타디움(선더랜드 홈구장)

FA컵 6라운드 모어컴전

“안녕하십니까? FA컵 6라운드 중계를 맡게 된 마틴 테일러입니다. 오늘 경기도 역시 개리 리네커씨와 함께 중계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개리 리네커입니다. 오늘의 경기는 언더독 팀끼리 붙는 경기입니다. 리그1에서 1위를 굳히고 있는 모어컴과 이와 마찬가지로 챔피언쉽에서 리그 1위를 굳히는 선더랜드의 대결인데요. 객관적으로 선더랜드의 우세를 점쳐지고 있습니다. 양 팀 전력은 어떻게 보시고 계신가요?”

“모어컴은 4라운드에서 울버햄튼, 5라운드에서는 레스터 시티를 상대로 이기면서 올라왔는데요. 단단한 수비력과 더불어 플레이 메이킹 능력이 뛰어난 해리 네쳐 선수의 활약이 돋보이고 있습니다.”

“해리 네쳐 선수라면 이번 대회를 두고 상당히 안 좋은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네. 선수들 사이에서 SNS를 통해 경기 중에 해리 네쳐 선수가 트레쉬 토크와 거친 몸싸움을 하는 것이 전해져 미움을 받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선수가 보여주는 킬 패스와 프리킥 능력 그리고 활동량은 그런 소문을 덮어버릴 정도 훌륭하죠. 이런 해리 네쳐 선수를 상대로 선더랜드는 경기를 어떻게 준비했을지 의문이 듭니다. 단순히 약팀을 상대하는 생각으로 경기에 임했다가는 큰 코 다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말씀 드리는 순간 선수들 입장합니다.”

마틴 테일러는 특유의 중저음으로 양 팀 선발 라인업 선수들을 호명하기 시작했다.

딘 핸더슨

권윤성 – 김만재 – 글랜 로번스 – 브라이언 오비에도

리 캐터몰 - 김가람 – 기성룡

던컨 왓모어 – 올리비에 지루 – 하비 반츠

호명을 마친 마틴 테일러가 개리 리네커를 보며 입을 열었다.

“오늘 경기에 김가람 선수가 중앙 미드필더에서 시작하게 됩니다. 이 부분은 어떻게 보시나요?”

“사실 저도 선발 명단을 봤을 때 출력이 잘못된 게 아닌가 했는데 정말 중앙 미드필더로 나서게 되었습니다. 김가람 선수가 오른쪽 윙백, 오른쪽 윙어 게다가 원톱 스트라이커의 포지션까지 소화하면서 멀티 포지션 능력을 보여주었는데요. 오늘 경기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가 됩니다.”

그렇게 경기는 모어컴의 공으로 시작되었고, 모어컴의 미드필더인 마이클 로즈가 해리 네쳐에게 공을 돌리자, 가람이 따라 붙었다.

그리고 가람의 압박에 해리 네쳐가 준비한 말을 꺼내기도 전에 가람이 입을 먼저 열었다.

“아버지가 요즘도 술 드시냐? 해리야?”

생각지 않은 가람의 말에 해리 네쳐는 순간 멍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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