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이에는 이[2]
경기 시작전 선더랜드의 라커룸
박지석은 선수들을 모아두고 정신을 집중할 수 있도록 조언을 한 후 돌아다니면서 선수들 개인에게 격려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박지석이 가람에게 다가오자, 박지석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가람이 먼저 입을 열었다.
"감독님. 팀에서 해리 네쳐 선수를 두고 대응책을 열심히 준비했는데 제가 오늘 해리 네쳐 퇴장시켜도 될까요?"
"뭐어? 퇴장?"
생각지도 않은 가람의 말에 박지석은 가람이 호기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허세를 부린 거라고 생각해 웃으며 답했다.
“그래. 할 수 있으면 해봐라. 모어컴에 해리 네쳐가 빠진다면 이번 경기 쉽게 가지고 갈 수 있겠지. 그런데 자신 있는 거야?”
“물론이죠. 감독님. 제가 그동안 해리 네쳐 전담 마크를 하게 되면서 공부를 많이 했거든요.”
사실 이 말은 거짓말이었다.
강승연의 삶에서 해리 네쳐와 함께 지냈던 시간만 생각하면 따로 공부할 필요는 없었다. 해리 네쳐는 술만 먹으면 어린 강승연을 붙잡고 외로웠던 세월과 개인사를 털어놨기 때문에 강승연은 그 누구보다 해리 네쳐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다.
“그래. 알았다. 그럼 할 수 있으면 해봐라. 하지만, 너무 과격한 방법을 쓰지 말고 네가 부상이 당하지 않을 정도로 해. 알았지?”
“알겠습니다. 감독님.”
박지석의 대답을 듣는 순간 가람의 마음 속에서 삐딱한 마음을 먹으면 바른 마음을 막으라고 옥죄던 긴고아 같은 제한이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가람은 해리 네쳐의 전담 마크가 되어 오늘 경기를 준비하면서 해리 네쳐가 경기를 오래 뛰게 두는 것보다는 단시간 내에 해리 네쳐를 강하게 압박하여 퇴장 시키는 것은 팀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감독님에게 그 허락을 받은 것이었다.
그렇게 가람은 강승연의 삶에서 해리 네쳐에게 배운 더티 플레이를 당사자인 어린 해리 네쳐에게 돌려줄 생각으로 경기가 빨리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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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경기로 돌아와 해리 네쳐는 자신이 잘못 들었는지 멍한 얼굴로 가람을 보며 물었다.
“뭐라고?”
“아니. 어린 나이에 귓구멍이 막혔냐? 너희 아버지 술 안 떨어졌냐고 멍청아!”
해리 네쳐는 가람의 말에 순간 멘탈이 흔들렸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가람은 발을 뻗어 쉽게 공을 가로챈 뒤에 전방에서 뛰고 있는 올리비에 지루에게 길게 패스를 연결했다.
올리비에 지루는 모어컴의 수비수들 사이에서 뛰어 올라 자신의 특기인 포스트 플레이를 이용해 공을 소유한 후 버티다가 뛰어오는 던컨 왓모어에게 연결했고, 던컨 왓모어는 공을 받아 무너진 모어컴의 중앙 수비수들을 제치고 순식간에 패널티 에어리어로 들어와 바로 슈팅을 가져갔다.
뻐어엉!!!
터어엉!!
“던컨 왓모어 선수의 슈팅! 골대를 맞고 나갑니다. 경기 시작과 동시에 좋은 기회를 맞이합니다.”
“이건 올리비에 지루 선수의 패스도 칭찬해야 하지만, 이 공격의 시작을 알린 가람 선수의 롱패스가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오른쪽 윙백으로 경기에 나설 때 크로스에서 큰 강점을 보였는데요. 그런 정확한 킥력이 좋은 패스를 만든 게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슈팅 자리에 던컨 왓모어 선수가 아니라 김가람 선수가 있었다면 골이 되었을 것 같은데요. 선더랜드로서는 아쉬운 장면입니다.”
그렇게 중계진들이 골장면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때 해리 네쳐는 가람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너 방금 뭐라고 했어?”
“글세. 기억이 나지 않는데..”
가람이 능청스럽게 잡아떼자, 해리 네쳐는 흥분해 가람의 유니폼을 잡았다.
그걸 옆에서 지켜보던 해리 네처의 팀 동료인 마이클 로즈가 다가와 말리기 시작했다.
“해리. 그만둬. 너답지 않게 왜 흥분하고 있어.”
마이클 로즈가 말리자, 그제야 거친 숨을 쉬면서 해리 네쳐는 가람의 곁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가람은 모어컴의 골키퍼가 골킥을 차는 순간 공의 낙하지점을 찾아가며 해리 네쳐 근처를 지날 때 해리 네쳐만 들릴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진짜 더티 플레이가 뭔지 알려줄게.”
순간 해리 네쳐는 가람의 목소리에 소름이 돋았다.
단순히 경고가 아니라 진짜 무언가를 보여줄 것 같은 말에 해리 네쳐는 흠칫했고, 그사이 가람은 수비수를 향해 가는 공을 보며 뛰었다.
그리고 김만재가 공을 잡아 가람에게 패스를 건넸고, 가람은 공을 몰고 천천히 모어컴의 진형으로 들어갔다.
“해리!! 뭐해!! 마크해!”
해리 네쳐는 마이클 로즈의 말에 순간 정신을 차리고 오늘 경기 에이스인 가람을 무너뜨리기 위해 다시 접근했다.
그러자 가람은 해리 네쳐가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또 온 거냐? 반푼이 애송이아. 여기 있지 말고 독일에 가서 요양병원에 있는 알콜중독자 아빠를 간병해야 하는 거 아니야?”
“뭐?!!”
가람이 또다시 할아버지 귄터 네쳐의 과도한 가르침에 망가져 알콜 중독자가 되어버린 아버지에 대해 말하자, 해리 네쳐는 가람이 자신에 대해 알고 있다고 확신했다.
계획 대로면 해리 네쳐가 미리 가람에 대해 알아낸 정보로 동양인 인종차별적인 욕설과 미모의 어머니이자 과부인 캐서린을 성적으로 비하할 말을 준비했지만 오히려 역공을 당하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여태까지 리그를 뛰면서 해리 네쳐는 자신의 트래쉬 토크에 맞서 상대가 주로 자신의 실눈, 노안 같이 외형에 대해 공격을 했다. 그런 것을 익숙해서 충격을 받지 않았지만, 지금처럼 자신의 가족에 대해 조사하고 내뱉는 욕설은 처음이라 상당히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못 알아 듣는 거냐? 그렇게 말을 못 알아 들으니 할아버지 말도 안 따르고 가출해서 잉글랜드에서 축구 하는 거 아니겠어? 그냥 할아버지 말 들었으면 모어컴 같은 시골 구단이 아니라 독일 뮌헨그라드바흐에서 레전드 손자로 뛰고 있었을 텐데 말이야.”
“닥쳐!!!”
자신이 숨기고 있던 과거까지 어떻게 알아 냈는지 해리 네쳐는 말을 하는 가람을 보며 거칠게 몸을 써가면서 막기 시작했고, 가람은 공을 패스하지 않고 해리 네쳐를 조롱하듯 개인기로 공을 지켜냈다.
그리고는 가람은 우월한 몸싸움과 개인기로 해리 네쳐를 벗겨내면서 마지막 비수를 꽂았다.
“이거 실망인데... 아버지까지 버리고 잉글랜드에 왔으면서 그것 밖에 못하는 거냐? 너한테는 하위 리그가 딱 맞는 것 같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해리 네쳐는 여태까지 농락당했던 것과 함께 자신이 리그2부터 리그1까지 모어컴을 승격시킨 모든 것들이 부정당하는 느낌을 받아 이성을 잃어버렸다.
“이야야야!!”
거친 기합과 함께 해리 네쳐는 가람을 다치게 할 생각으로 강하게 태클을 걸었고, 그 순간 가람은 기다렸다는 듯 일부러 속도를 내지 않고 해리 네쳐의 들어오는 발을 보며 일부러 다리에 걸려 크게 넘어졌다.
삐이익!!
“해리 네쳐 선수! 비신사적인 태클입니다.”
“그렇습니다. 해리 네쳐 선수의 평소 플레이 스타일을 생각해보면 그런 태클을 당하는 역할을 했지만, 이번에는 자신이 태클을 거는 선수가 되었군요. 놀랍네요.”
이어진 리플레이 화면에서 가람이 일부러 다리에 걸리는 장면은 찍히지 않았고, 오히려 가람이 해리 네쳐의 태클에 걸리는 장면만을 확실히 확인할 수 있었다.
주심의 휘슬이 울리는 순간 해리 네쳐는 정신을 차렸다.
그나마 다행인 건 자신이 뒤에서 태클을 건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상대 선수인 가람의 신체를 직접 가격하지는 않았기에 구두 경고를 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
“아아앗!!”
가람은 발목을 잡고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자신이 아무리 이성을 잃고 태클을 했다고 해도 발목을 가격한 적은 없었기에 해리 네쳐는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가람을 보며 말했다.
“어디서 엄살이야. 너 발목은 채이지도 않았잖아.”
“아앗!!”
하지만 가람의 표정은 심각하게 꾸겨졌고, 진짜 부상이라도 당한 표정을 짓고 있자, 해리 네쳐도 흥분한 상태에서 태클을 했기에 정말 발목을 가격 했는지 안 했는지 순간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걸 옆에서 지켜보던 주심은 바로 거기서 판정을 내리지 않고 VAR을 보겠다는 표시를 했더니 이내 경기는 잠시 멈추게 되었다.
“제길..”
원래 자신이 했어야 하는 플레이에 완벽하게 말린 해리 네쳐는 긴장한 듯 엄지 손톱을 뜯어먹기 시작했고, 잠시 VAR을 확인한 주심은 다가와 옐로우 카드를 꺼냈다.
“오.. 여기서 옐로우 카드가 나옵니다. 경기 시작부터 어렵게 경기를 풀어나가는 모어컴입니다.”
“사실 VAR 장면도 아까 보내드린 리플레이 장면과 크게 다를 건 없을 거라고 생각이 들거든요. 아마 주심은 태클에 걸린 그 부분을 두고 옐로우 카드를 부여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바로 옐로우 카드는 심한 거 아닐까요?”
“글쎄요. 오늘 주심의 성향이 몸싸움에 관대하지 않은 걸로 보이는군요. 그리고 중계 화면에 잡히지는 않았지만, 해리 네쳐 선수가 계속 가람 선수에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거든요. 그런 걸 전부 감안해서 주는 카드인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가람 선수도 큰 부상은 아닌지 터치 라인에서 치료를 받은 후 다시 투입됩니다.”
그렇게 다시 가람이 투입된 후 바로 프리킥을 준비했고, 하프라인 바로 앞에서 진행되는 먼거리 프리킥에 모어컴은 두 명의 단출한 수비벽을 세웠고, 마이클 로즈와 해리 네쳐가 수비벽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리고
뻐어엉!!!
가람이 공을 차는 순간에 맞춰 해리 네쳐는 점프를 했고, 그는 순간 눈 앞에 별이 보였다.
터어어엉!!
“아.. 김가람 선수의 프리킥.. 해리 네쳐 선수의 머리에 맞고 높게 치솟았습니다. 해리 네쳐 선수 괜찮을까요?”
해리 네쳐는 공에 맞아 정신을 잃은 듯 쓰러졌고, 마이클 로즈는 헤리 네쳐를 살펴보더니 벤치를 향해 들 것을 요청했다.
그렇게 잠시 해리 네쳐가 정신을 못 차리자, 가람이 다가와 고개를 숙여 사과를 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며 해리 네쳐의 상태를 살펴봤다.
그리고 마이클 로즈가 잠시 떨어진 확인한 가람은 해리 네쳐에게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런.. 아버지가 술주정뱅이라 그런지 너도 뛰는 것보다 누워 있는 게 더 편한 것 같아 보이는데 그냥 계속 누워 있어. 알콜중독자의 아들 녀석아.”
그 말을 듣는 순간 해리 네쳐는 프리킥도 일부로 자신을 맞혔다는 생각에 머리가 어질 어질 거리는 상태에서도 일어나 그대로 가람을 향해 박치기를 날렸다.
“아! 해리 네쳐 선수! 가람 선수가 사과를 하는데 그걸 감정적으로 받아드린 모양입니다. 공이 아닌 가람 선수의 얼굴에 헤딩을 하는 해리 네쳐 선수!! 마이클 로즈 선수가 뛰어와서 말리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가람은 해리 네쳐의 박치기에 코피를 흘리며 그대로 잔디밭에 굴렀고, 그 모습을 본 주심은 해리 네쳐에게 다가와 재차 옐로우 카드를 꺼내고는 레드 카드를 꺼내 보였다.
“이거 좋지 않아요. 해리 네쳐 선수 어린 나이에 노련한 경기 운영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 받아왔는데요. 오늘 그 어린 나이 17살이라는 한계를 보여주면서 감정적으로 대처합니다.”
“그렇죠. 가람 선수가 사과하는데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건 정말 좋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리 네쳐는 전반 이른 시간에 퇴장으로 빠지게 되었다. 가람은 벤치에서 응급치료를 받으면서 나가는 해리 네쳐를 보며 잘 가라는 듯 손을 흔들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