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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실패 축구 황제의 상태창-80화 (81/319)

80화 끈질긴 인연[2]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건 등번호 32번 자신의 유니폼이었고, 식당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건 자신의 사진들이었다.

심지어 한쪽에는 U20 월드컵때 가람이 입었던 유니폼과 월드컵 결승까지 각 경기에 가람이 골을 넣는 장면으로 채워져 있었다.

“이건 도대체 뭐야? 설마..”

가람은 온통 자신의 사진으로 인테리어 되어 있는 식당을 보고 얼마 전 재계약을 하면서 별도로 받은 재계약금을 엄마에게 드렸던 일이 생각났다.

그리고 시선으로 식당을 둘러봤더니 카운터에서 너무나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어.. 엄마?”

“가람이 왔구나. 하늘씨 말씀하신 손님은 방금 도착하셔서 기다리고 있어요. 방에 계시니 올라가시면 돼요.”

캐서린은 그 말을 하고는 주방으로 향했고, 가람은 이 상황에 대해서 설명을 듣고 싶은 표정으로 캐서린을 불렀다.

“엄마.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하지만 캐서린은 가람의 말을 대답하지 못하고 그대로 주방으로 뛰어갔고, 김하늘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너 아주머니가 식당 연 거 모르고 있었어? 네가 준 계약금으로 여기 여신지 두 달정도 되었어.”

12월에 재계약을 했고 지금이 3월이니 재계약금을 받자마자 식당을 알아보고 차렸다는 이야기였다. 생각해보면 그 시기에 캐서린을 만나보기 힘들었는데 가람도 축구에 집중하다 보니 그런 것까지 신경 쓰지 못했다.

“아.. 그렇군요. 그래도 말이라도 해주셨으면 좋았을텐데요.”

“말이라도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게 아니라 너 매일 새벽같이 나가서 개인훈련 하고 팀훈련 하고, 팀훈련 없으면 김만재와 권윤성 선수를 데리고 1군 훈련장 나와서 훈련했잖아. 매일 같이 훈련하는 너한테 말할 시간이라도 있었겠니? 그리고 네가 처음으로 받은 계약금인데 식당 운영이 잘 안되면 너한테 할 말도 없으시다고 하셨어. 그래서 정말 열심히 알아보고 노력을 많이 하셨어.”

“제가 보기에는 장사가 잘되는 것 같은데요.”

“잘 되는 수준이냐? 식당 개업한다고 했을 때부터 샤오루가 패키지 관광 코스에 넣었어. 저기 월드컵 사진 밑의 테이블에 반찬 차려지는 거 보이지. 거기는 패키지 관광객들의 자리야. 손님이 곧 오실 모양이네.”

가람이 고개를 돌려 U20 월드컵 사진으로 꾸며진 곳에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한식 반찬들이 차려지는 게 보였다.

캐서린의 음식 솜씨는 이미 구단에서도 인정을 받고 자신이 먹어봤을 때도 외국인이 만든 거라고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 맛있는 한식이었다.

그렇게 잠시 차려지고 있는 식탁을 보고 있으니 가람의 배에서 신호를 보냈다.

꼬르륵

그리고 그 소리를 옆에서 제대로 들은 김하늘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여기 1층은 단체홀이고 2층에는 개별 공간도 있거든. 거기에 우리의 식사는 차려져 있으니 올라가자.”

그 말에 2층 식당으로 걸음을 옮기려고 하자, 계단 입구에 식당과 어울리지 않는 검은 정장에 검은 썬글라스를 쓴 민머리에 한 덩치를 자랑하는 사내가 김하늘 보고는 손을 들어 제지를 했다.

사내는 이런 식당이 아니라 아이돌 콘서트나 나이트 클럽 입구를 지켜야 할 것 같았고, 그런 외형과 딱 맞는 험악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여기는 예약하시는 손님만 올라가실 수 있습니다.”

그때 주방에서 캐서린이 나와 소리쳤다.

“한스씨!! 그 분이 오늘 2층을 통째로 예약하신 VVIP예요. 눈치 좀 챙기세요.”

“아.. 알겠습니다. 사장님.”

한스는 바로 허리를 숙여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고, 그렇게 위로 올라가려는 찰나에 가람을 보며 순진한 미소를 보이며 입을 열었다.

“저기 실례가 안 된다면 나중에 싸인 한 장 부탁 드려도 될까요? 아들이 열광적인 팬이어서 말이죠.”

험악한 인상과 다르게 가정적인 한스를 보며 가람은 웃으며 대답했고, 그렇게 둘은 2층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2층은 밝은 1층의 분위기와 다르게 약간 어두운 조명에 복도와 개별 방들로 만들어져 있었다.

“이건..”

“뭐 스타들을 위한 특별 공간이라고 생각하면 돼. 파파라치들을 신경 쓰지 않고 온전히 식사에만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 이 주변에 없거든. 그런 점에서 선더랜드 선수들은 여기를 선호하는 거지. 물론 사업을 하는 사람에게도 좋은 자리이기도 하고..”

“어머니가 그 정도로 사업 수완이 좋으신지는 몰랐네요.”

“아! 샤오루의 아이디어야.”

“그래요? 생각보다 어머니랑 샤오루 구단주님이 사이가 좋으신 것 같네요.”

“그래. 나도 그게 걱정일 정도야. 캐서린씨의 음식을 맛보고는 전속 요리사가 되어달라고 며칠이나 매달리기도 했어. 물론 거절하셨지만, 그 후로 캐서린씨가 요리 똥손인 샤오루에게 요리를 가르쳐주면서 가까워 진 것 같아.”

“그렇군요. 그런데 이런 공간을 전체로 빌리셨다면 만나야 할 사람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겠네요.”

“아.. 중요하기 보다는 뭐랄까? 알려지면 껄끄러워서 그런 거지.”

김하늘과 가람을 대화를 하면서 걸어갔고, 2층 매니져가 나타나 둘을 모시고 방으로 안내한 후 방 앞에서 문을 열면서 입을 열었다.

“좋은 식사 시간 되십시오. 필요하신 게 있으시면 안에 있는 전화기로 시키시면 됩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자, 거기에 앉아 있는 사람보다 아까 봤던 한식보다 더 풍성한 음식이 식탁 가득 채워져 있는 게 먼저 눈에 보였고, 그 음식의 향긋한 냄새가 가람의 코를 강타했다.

그때

“어. 오셨군요.”

그제야 식탁에 앉아 있다가 일어서는 사람을 봤고, 그 사람은 다름 아닌 방금 전 자신이 퇴장을 보낸 해리 네쳐였다.

가람은 살짝 놀란 표정으로 김하늘을 봤고, 김하늘은 어깨를 한번 으쓱거리더니 해리 네쳐 앞에 앉아 가람에게 앉으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가람은 이에 따라 앉았다.

그리고 앉자마자, 해리 네쳐는 허리 숙여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모어컴에서 뛰고 있는 해리 네쳐라고 합니다. 오늘 경기에서 주신 가르침을 잊지 않겠습니다.”

“어.. 그래..”

씩씩한 해리 네쳐의 인사에 가람은 순간 배알도 없는 사람인가 잠시 머리가 멍해졌다.

강승연의 삶을 살 때도 해리 네쳐가 경기장 안에서는 거친 말과 몸싸움을 행사했지만, 경기장 밖에서는 신사처럼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곤 했는데 지금의 해리 네쳐에게도 그런 모습이 보였다.

“오늘 이 자리는 해리 네쳐가 너랑 만나고 싶다고 해서 만든 거야. 원래는 나중에 만나게 하려고 했는데 오늘 꼭 만나고 싶다고 해서 말이지.”

“아. 그래요?”

가람이 해리 네쳐를 쳐다보자, 해리 네쳐는 쑥스럽다는 듯 웃으며 입을 열었다.

“사실 퇴장 당했을 때는 화가 나기는 했어요. 그런데 저를 자극하셨던 말을 생각해보면 저에 대해 많이 조사를 하신 것 같더라구요. 그게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그래도 이 경기를 위해 저에 대해 조사까지 하신 걸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오늘 퇴장을 당하면서 앞으로 저는 곁에서 열심히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람은 따로 공부를 하지 않았지만, 그걸 말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그냥 스스로 오해하게 두는 게 편할 것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마지막에 이상한 말을 들은 것 같아 다시금 되물었다.

“방금 '곁에서'라고 하지 않았어?”

“아! 네 물론이에요. '곁에서'입니다.”

그 말에 가람이 김하늘을 보자, 김하늘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 우선 먹으면서 이야기 하자, 먹으면서..”

“아니. 형 그전에 저 말은 지금 해리 네쳐 선수를 영입하신 거예요?”

“아직 정식 오퍼는 넣지 않았는데 해리 네쳐 선수가 박지석 감독님 팬이기도 하고, 선더랜드로 오고 싶다고 해서 에이전트 입장에서는 연결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뭐 그런 거지.”

무언가 얼버무리고 있지만, 김하늘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를 보면 아마도 다음 시즌에 해리 네쳐가 영입되는 건 확실한 것 같아 보였다.

‘하긴.. 해리 네쳐는 지난번에도 김하늘이 에이전트였지.’

김하늘이 설립한 아시아 최대 규모의 에이전트 회사인 골든 스카이는 대부분 아시아 선수들을 관리하지만, 김하늘의 뛰어난 안목으로 인성이 뒷받침 된 유럽 선수들도 몇몇 계약을 했었다.

그리고 그 중에 제일 먼저 계약한 것은 바로 눈 앞에 있는 해리 네쳐였다.

그렇게 셋은 식사하기 시작했고, 해리 네쳐는 승연의 삶에서도 한식을 좋아했었는데 이번 삶에서도 그 기호는 변하지 않은 듯 먹는 내내 맛있다고 칭찬하면서 식사를 했다.

식사가 끝난 후 디저트를 기다리는 시간에 김하늘이 갑자기 전화가 와서 핸드폰을 들고 자리를 비우자, 해리 네쳐가 입을 열었다.

“저..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그래. 물어봐.”

“정말 게르트 뮐러씨의 특별 훈련을 전부 소화하셨어요?”

푸우웃!!

생각지 않은 해리 네쳐의 질문에 가람은 먹고 있던 물을 입과 코로 뿜었고, 그 모습을 본 해리 네쳐는 다급히 티슈를 꺼내 가람에게 건넸다.

“크어험. 미안.. 생각지도 않은 질문이라. 그건 하늘이형한테 들은 거야?”

게르트 뮐러와의 특훈은 게르트 뮐러의 요청으로 비밀로 붙여졌는데 그 것을 김하늘이 해리 네쳐에게 알려준 것으로 오해한 가람이 되묻자, 해리 네쳐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니요. 할아버지한테 들었어요.”

“할아버지라면.. 귄터 네쳐씨?”

“네에. 프란츠 할아버지, 게르트 할아버지랑은 할아버지가 계속 연락을 하시고 계시거든요. 사실 저도 게르트 할아버지에게 그 특훈을 받아봤는데 잘 안 돼서..”

“아.. 나는 몸이 좀 튼튼하거든.”

“그게 단순히 몸이 문제가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힘들잖아요. 게르트 할아버지가 친절하게 설명하시는 것도 아니고 한번 시범 보여주시고 따라하지 못하면 호통을 치시니..”

“아.. 그런가?”

생각해보면 가람은 이미 강승연의 삶에서 수많은 회귀를 통해 축구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을 많이 쌓았기에 게르트 뮐러의 시범을 단번에 따라갈 수 있었지만, 다른 이들은 그게 쉽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가람은 잘난 척을 하기 보다는 그냥 공감해주며 이야기를 전환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고생 좀 했지. 스승님이 좀 괴팍하시니깐.”

“그렇죠. 고생하셨죠. 그래도 대단해요. 그거 아시는 지 모르겠지만, 게르트 할아버지가 은근히 가람씨를 자랑하시는 것 같더라구요.”

“나한테는 비밀로 하라고 하셨으면서 그걸 이야기 하시고 계시구나.”

“워낙 성격이 오락가락 하시니 말이에요.”

“그런데 너는 계속 잉글랜드에서 축구 생활 할 거니?”

“뭐. 저에 대해 조사를 하셨으니 아시겠지만, 할아버지 말을 거역해서 택한 잉글랜드행이잖아요. 여기서 좀 제대로 된 성과를 남기지 않으면 면목이 없으니까 말이에요. 원래는 갈 곳 없는 저를 받아준 모어컴에서 뛰면서 그 팀을 프리미어 리그로 승격 시키려고 했는데요. 지금은 박지석 감독님과 형이 있는 선더랜드에서 뛰고 싶어요.”

그렇게 가람은 생각지도 않게 강승연의 삶에서 인연을 맺은 사람과 또다시 인연을 맺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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