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FA컵 준결승 맨시티전[3]
하프 타임 선더랜드 라커룸
“모두 잘하고 있다. 후반전까지 집중력을 잃지 말도록 해라. 지금은 몸을 회복하는 데 집중하고.”
박지석은 라커룸에 들어와 선수들의 상태를 살펴봤다.
지난번 리그컵 4라운드 토트넘전처럼 수준이 높은 팀과의 경기였고, 경기는 상대의 압도적인 우위 속에 선더랜드의 하프 코트만을 사용하는 경기였기에 수비에 집중했다.
단순히 수비만 했다면 체력적으로 문제는 없었겠지만, 상대팀인 맨시티는 수비적으로 나오는 팀을 어떻게 요리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고, 좌우로 크게 벌리는 패스로 인해 선더랜드의 선수들은 상당히 많이 뛴 전반이었다.
하지만 지난 리그컵 4라운드와 다르게 글랜 로번스이나 리 캐터몰에게 지친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리그컵 4라운드 토트넘전 이후 베테랑 선수들이 따로 체력 훈련을 더했다는 건 제임스 플라워 코치에게 들어 알고 있기는 했지만, 이렇게 리그를 우승한 후에도 훈련을 계속 유지한 줄을 몰랐다. 자신을 관리하는 게 얼마나 힘든 건지 알고 있었기에 박지석은 두 베테랑을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걸음을 옮겨 물로 적신 수건으로 열기를 식히고 있는 기성룡에게 다가갔다.
“몸 상태는 어떠냐? 성룡아?”
“괜찮습니다. 감독님.”
말은 그렇게 하지만, 기성룡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시즌의 후반기에 꾸준히 경기를 하면서 체력을 끌어올리기는 했지만, 전반기는 뉴캐슬에서 경기를 뛰지 못하면서 완벽한 몸 컨디션을 만들지 못했던 것이 영향을 주는 듯 했다.
“이번 경기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부상을 당할 만큼은 무리하는 건 아니다. 후반전 보다가 문제가 생길 것 같으면 바로 조지 허니먼과 교체를 하겠다.”
박지석의 말에 기성룡은 아니라고 끝까지 경기를 뛰겠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갔지만, 박지석의 단호한 표정에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감독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렇게 기성룡과 대화를 마친 박지석은 조지 허니먼을 불러 몸을 풀도록 시켰다. 그때 유독 조용한 김가람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 같으면 라커룸의 분위기를 끌어올리고, 높은 텐션을 유지해야 할 가람이었지만, 오늘은 무언가에 집중한 듯 주변 사람들도 가람에게 말을 걸기 힘들 정도였다.
‘완전 경기에 몰입했군.’
박지석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선수 생활을 했을 때 가끔이지만, 높은 수준의 선수들이 경기에 몰입해 라커룸에서도 혼자 중얼거리거나 멍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런 날이면 헤어 드라이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퍼거슨 감독도 그 선수에게 말을 걸지 않고 그가 경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런 경험을 가지고 있는 박지석은 가람에게 따로 조언을 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해두었다.
그렇게 박지석이 가람을 방치하는 동안 가람은 눈 앞에 상태창을 띄워두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FA컵 준결승 맨시티를 이기고 결승에 진출하라.]
[보상 30포인트]
2대 1로 앞서고 있는 경기였지만, 강승연의 삶에서도 명장이라고 불렸던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라면 후반전 어떻게든 경기를 풀어내기 위해서 변수를 만들 것이었다.
‘후반 시작하자마자 결판을 내야 해. 그 늙은 여우의 젊은 시절이라면 더 적극적으로 전술을 변경할 거고, 그건 후반 끝날 때 쯤이겠지.’
지금 선더랜드 선수들이 잘 버티고 있지만, 추가 득점이 나오지 않는다면 후반 막판에 체력 저하로 선더랜드의 선수들이 집중력을 잃어갈 때쯤 맨시티의 공격으로 골을 허용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었다.
강승연의 삶에서도 펩 과르디올라 감독은 잠시 맨시티를 떠났다가 맨시티의 적극적인 구애로 70의 나이에 맨시티에 다시 돌아와 그가 비운 동안 무너진 맨시티를 다시 재건 시켰었다.
그렇기에 강승연이 모어컴 소속으로 프리미어 리그에서 뛸 때 펩 과르디올라가 이끄는 맨시티와는 수없이 싸워왔고, 그의 전술은 눈에 선할 정도였다.
그렇게 마음 먹은 가람은 어떻게 골을 넣을까 고민을 하다가 잠시 자신의 플레이 스타일에 대해서 생각에 빠졌다.
‘지금까지는 장기인 슈팅과 속도로 골을 만들었지.’
95라는 수치의 슈팅 스탯과 속도는 가람이 효율적으로 골을 만들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리고 그런 움직임을 가지고 갈 수 있도록 해준 신체 능력 90도 한 몫 했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가람은 눈 앞에 있는 공을 가지고 가볍게 트래핑을 해봤다.
가람은 강승연 시절의 몸만큼 자신이 원하는 대로 공이 화려하게 트래핑을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준수한 정도의 개인기는 가능해 보였다.
그렇게 잠시 생각에 잠긴 가람은 결심했다는 듯 리 캐터몰에게 가서 무언가 말했고, 그 순간 제임스 플라워가 와서 후반전 시작을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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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시티 대 선더랜드, 선더랜드 대 맨시티의 경기 2대 1로 선더랜드가 앞서고 있는 가운데 경기 후반전에 들어갑니다. 맨시티 측에서는 경기 시작과 동시에 세르히오 아게로 선수가 들어가고 가브리엘 제수스 선수가 나가는군요.”
“그렇죠. 펨 과르디올라 감독이 결국 결단을 내린 것 같습니다. 세르히오 아게로 선수는 리그 우승 경쟁을 위해서 아껴두고 싶었던 카드였을 텐데요. FA컵도 포기할 수 없다는 듯 교체 투입을 하는군요.”
“세르히오 아게로 선수가 들어가면 맨시티의 전방에 강한 무게감이 실리게 될 것인데요. 이 부분은 어떻게 보시나요?”
“사실 전반에 가브리엘 제수스 선수가 제대로 마무리만 해줬어도 경기는 역으로 2대 1로 맨시티가 앞설 수 있었거든요. 하지만 그런 기회를 놓친 후 김가람 선수의 역습에 당해 골을 먹힌 겁니다. 하지만 이제는 세르히오 아게로 선수가 들어왔으니 맨시티의 공격을 마무리를 지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삐이익!
“말씀드리는 순간 주심의 휘슬이 울리고 선더랜드의 공으로 후반전이 시작됩니다. 리 캐터몰 선수에게 공을 이어 받는 김가람 선수 전방으로 치고 들어갑니다.”
김가람은 공을 잡는 순간 자신에게 다가오는 세르히오 아게로의 느슨한 압박을 방향 전환으로 가볍게 제친 후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그 뒤를 커버하고 있던 케빈 데브라이너가 앞공간을 자르며 다가왔다.
그 순간 가람은 공을 툭 차서 앞으로 보낸 뒤 발 빠르게 공을 발바닥으로 터치헤 몸쪽으로 끌어당겼고 뒷발로 방향을 바꾸는 마르세유 턴으로 케빈 데브라이너를 벗겨냈다.
“여기서 김가람 선수의 깔끔한 마르세유 턴이 나옵니다.”
평소 가람의 플레이 스타일이 속도 위주로 간결한 플레이를 해왔기에 갑자기 걸어온 개인기에 케빈 데브라이너는 순간 당황했고, 그렇게 가람의 등을 보며 쫓아갈 수밖에 없었다.
가람은 케빈 데브라이너를 제친 후 바로 공격적으로 안쪽으로 치고 들어갔다. 패널티 에어리어 인근에서 전반 전담 마크를 하던 페르난지뉴가 가람의 속도를 줄이기 위해 거칠게 몸싸움을 걸어왔다.
쿠우웅!
하지만 페르난지뉴의 거친 몸싸움도 가람의 저돌적인 공격은 막을 수 없었다. 가람은 점점 페널티 에어리어 인근으로 접근해 나갔다.
“막아!! 에워싸!!”
후반 시작과 동시에 가람의 생각지 않은 놀라운 움직임에 펩 과르디올라 감독은 벤치에서 일어나 크게 소리쳤고, 그 말에 반응하듯 맨시티의 수비진은 가람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그때
탓.. 타탁 탓!!
가람은 공을 몰고 안쪽으로 들어가는 척하다가 무릎에 무리가 갈 정도로 과격하게 방향을 꺾었고, 그 단 한번의 방향 전환에 페르난지뉴는 균형을 잃고 페널티 에어리어 앞에서 쓰러지게 되었다.
그리고 페르난지뉴가 쓰러지자, 자신에게 다가오는 맨시티 수비진들을 보며 반 박자 빠른 슈팅을 가져갔다.
뻐어엉!!
패널티 에어리어 앞 패널티 아크에서 찬 공은 오른쪽 골대를 향해 날아갔고, 생각지 않은 빠른 슈팅에 맨시티의 수비진들은 물론이고 골키퍼인 클라우디오 브라보도 반응조차 하지 못한 채 공이 날아가는 궤적만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공을 바라보며 골라인 아웃이기를 바랬지만, 공은 그들의 생각을 외면한 채 골대를 스치며 옆쪽 골망으로 들어갔다.
촤르르르~~
“고오오오올!! 후반전 2분! 경기 시작하는 동시에 김가람 선수는 맨시티 선수들이 아직 경기에 집중하지 못한 이 시간에 비수를 꽂아 놓습니다. 이번 골로 해트트릭을 달성하게 됩니다.”
“와.. 어떻게.. 이럴 수가.”
개리 리네커가 자신의 신분을 잊은 듯 감탄을 내뱉자 옆에 있는 마틴 테일러가 그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제야 그는 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다시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순간 정신을 놓고 감탄했습니다. 솔직히 오늘 경기에 김가람 선수는 자신의 한계가 없다고 항의를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사실 저를 포함한 많은 전문가들이 김가람 선수를 뛰어난 슈팅 능력과 빠른 발 그리고 거친 몸싸움 능력을 지닌 선수로 평가하고 있었거든요. 한마디로 육체적인 능력이 뛰어난 슈터라고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보여준 두 차례의 개인기로 완벽하게 자신을 마크하는 선수들을 제치고 골을 만들었습니다.”
“개인기는 다른 선수들도 쓰는데요. 평가가 너무 과하신 거 아닌가요?”
“아니죠. 지금 김가람 선수는 자신의 스피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개인기를 보여주었습니다. 개인기라는 게 아무도 없을 때 쓰는 건 어렵지 않지만, 경기 그것도 FA컵 준결승이라는 큰 무대에서 한번도 아니라 두 번을 보여주고, 그걸 성공시킬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자신의 기술에 자신감이 있는 것이죠. 지금 허를 찔리기는 했지만 맨시티 선수들은 충분히 프리미어 리그를 대표할 수 있는 뛰어난 선수들입니다. 그런 선수들에게 통할 정도의 개인기라면 대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군요.”
상당히 흥분한 듯 개리 리네커는 말을 이어갔고, 보다 못한 담당PD는 양손을 연신 밑으로 내리면서 흥분을 가라앉히라는 지시를 내렸다.
골을 넣은 가람은 이전에 골을 넣었을 때와 다르게 골 세레머니를 하지 않고 골이 들어가는 순간 바로 경기를 준비하겠다는 듯 뒤돌아 센터 서클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왠지 모르게 차분한 가람의 모습을 보며 선더랜드 선수들도 살짝 무서운 감이 들었고, 분명 기뻐해야 하는 순간이었지만, 가람의 차분한 모습에 선더랜드 선수들도 쉽게 가람에게 접근하지 않았다.
삐이익!!
그렇게 다시 주심의 휘슬 소리와 함께 다시 맨시티의 공으로 경기가 시작되었고, 세르히오 아게로는 공을 받는 순간 옆에 있는 베르나르두 실바에게 향하 길게 패스했다.
하지만 들어오자마자, 가람의 생각지 않은 골이 먹히면서 몸을 완벽하게 풀지 못한 세르히오 아게로는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패스에 힘이 덜 들어갔고, 공은 센터 라인을 따라 움직이다가 중간에 멈출 것처럼 보였다.
순간 놀란 베르나르두 실바가 다급히 움직였지만, 지금 이 순간을 노렸다는 듯 김가람은 공을 낚아 챌 수 있었다.
“세르히오 아게로 선수의 패스 미스! 김가람 선수가 공을 바로 가로채갑니다.”
경기의 재개와 동시에 공이 빼앗길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 맨시티 선수들은 크게 당황했고, 제대로 수비 진형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가람은 공을 몰고 그대로 하프라인에서 패널티 에어리어로 빠르게 접근해 들어갔다.
“김가람 선수!! 이번에도 혼자서 맨시티 선수들을 상대합니다.”
“맨시티 선수들 정신 차려야죠. 아까와 같은 실수가 반복되어서는 안 됩니다.”
중계진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패널티 에어리어보다 하프라인의 중간 정도 되는 지점에서 가람은 그대로 슈팅 자세를 가지고 갔다.
뻐어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