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화 FA컵 준결승 맨시티전[5]
후반전 45분
선더랜드 선수들은 다시 집중력을 발휘하면서 수비했고, 경기는 그대로 끝날 것 같았다.
‘이대로 끝난다면 좋겠지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가람은 여느 때보다 더 집중하기 시작했다. 경기가 끝날 때까지 끝난 건 아니었고, 세르히오 아게로 선수는 마지막까지 방심할 수 없는 선수였다.
강승연의 삶에서도 세르히오 아게로는 EPL 레전드라고 불릴 만한 선수였고, 21세기 EPL 최고의 외국인 공격수 명단을 뽑을 때 다섯 손가락에는 뽑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지금 방심하다가는 동점골을 먹힐 수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가람은 자신의 위치보다 더 내려와서 세르히오 아게로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그리고
토오옹~~
경기 종료 2분을 남겨두고 케빈 데브라이너가 조지 허니먼과의 몸싸움에서 이긴 후 넣은 패스는 정확하게 세르히오 아게로의 앞 공간으로 떨어졌다.
그 순간 가람은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세르히오 아게로를 따라잡아 뒤에서 공을 노리고 슬라이딩 태클을 걸었다.
만약 세르히오 아게로가 조금만 더 젊었다면, 아니면 케빈 데브라이너의 패스가 조금 더 짧았다면 세르히오 아게로는 그대로 슈팅을 가지고 갈 수 있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가람의 긴 다리가 먼저 공을 건드릴 수 있었다.
촤르르르~~
“결정적인 순간에 김가람 선수가 공만 건드리는 깔끔한 슬라이딩 태클로 맨시티의 찬스를 무산 시킵니다.”
“이건 완벽한 찬스였는데요. 김가람 선수의 뛰어난 집중력은 칭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장면을 보고 있던 펩 과르디올라 감독은 또다시 자신의 이마에 손을 짚더니 옆에 있는 수석 코치를 불러 입을 열었다.
“오늘 경기가 끝나면 스카우트 팀이랑 전력분석팀을 파견해서 김가람 선수를 조사하도록 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지금의 공격이 막히면서 경기의 결과를 이미 알게 되었다는 듯 펩 과르디올라 감독은 지시를 내렸고, 이어진 코너킥 공격에서도 맨시티의 공격은 딘 핸더슨 골키퍼에게 잡히면서 허무하게 무산되었다.
그리고
삐이익 삑!!
“주심의 휘슬이 울립니다. 선대랜드 대 맨시티의 경기는 선더랜드의 슈퍼 에이스 김가람 선수의 활약으로 4대 3으로 마치게 되면서 선더랜드는 1972/73 시즌 이후 48년 만에 FA컵 결승에 오르게 됩니다.”
“만약 우승을 하게 되면 48년 만에 FA컵을 차지하게 됩니다. 오늘 놀라운 저력은 과연 결승전까지 이어질지 기대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죠. 결승전 상대는 내일 있을 토트넘 대 리버풀의 승자입니다. 이 경기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미 토트넘은 남은 경기와 상관없이 리그 7위를 확정했지만, 리버풀은 그렇지 않거든요.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리버풀은 2위 맨시티와 2점차이입니다. 내일 경기를 치룬 이틀 뒤에는 맨시티와 경기를 해야 합니다. 아무래도 클롭 감독은 취사선택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오늘 경기에서도 펩 과르디올라 감독도 주전 선수들을 대거 투입하며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는데요. 클롭 감독도 그렇지 않을까요?”
“글쎄요. 맨시티와 다르게 리버풀은 1989/90 시즌 이후 30년 만에 리그 우승에 도전하게 되는 건데요. 즉 1992년 프리미어 리그 출범 이후 첫 우승에 도전하는 겁니다. 그만큼 팬들의 기대도 큰 상황에서 클롭 감독은 더 많은 압박을 받을 거라는 생각이 들고, 오히려 맨시티가 오늘 경기에 주전 선수를 기용한 걸 보고 기회로 생각하여 더 주전 선수를 아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심의 휘슬이 울리는 순간 선더랜드 선수들은 제자리에 주저 앉았다.
이긴 기쁨도 있었지만, 이겼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긴장이 풀려버린 것이었다. 그나마 자리에 서 있는 선수는 리 캐터몰 같은 베테랑 선수들과 김가람 정도였다.
김가람은 쓰러진 권윤성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선배. 아직 쓰러질 때가 아니라고요. 한 경기만 더 이기면 FA컵 우승은 우리가 하는 거라고요.”
“정말.. 너는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그렇게 권윤성이 말을 이어가려고 할 때 가람의 등 뒤에서 서 있는 선수를 보고는 말을 멈추었다.
가람은 권윤성이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자, 무슨 일인가 하면서 뒤돌아 봤고, 그것에는 세르히오 아게로가 가람을 보고 있었다.
세르히오 아게로는 남미 선수 특유의 약간 가벼운 억양이 섞여 있는 영어로 가람을 보며 말했다.
“오늘 재미있는 경기 했다. 혹시 괜찮으면 유니폼 교환할래?”
“유니폼이요?”
생각지 않은 세르히오 아게로의 유니폼 교환 요청에 가람은 웃으며 유니폼을 벗어서 건넸고, 그 순간 관중석에서 여성들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그동안 가람이 경기가 끝난 후 유니폼 교환을 하거나 훈련 도중에도 윗옷을 벗는 장면은 없었는데 가람이 유니폼을 벗자, 조각 같은 몸매가 그대로 드러났고, 그 장면이 중계 카메라를 통해 전광판에 나온 것이었다.
생각지 않은 환호성에 당황한 가람은 서둘러 받은 세르히오 아게로의 유니폼을 입었지만, 키가 173cm밖에 되지 않는 세르히오 아게로의 옷을 입자, 배꼽티처럼 보이게 되었다.
그 모습에 세르히오 아게로는 웃으며 입을을 열었다.
“하늘색이 잘 어울리는 걸. 그럼 유니폼은 잘 받을게. 요즘 방송에서 너 인기가 좋거든. ”
“방송이요?”
“아. 내가 개인 방송을 시작해서 말이야. 혹시나 시간 되면 방송에 나와주면 좋겠어.”
생각지도 않은 방송섭외에 가람은 순간 난색을 표하자, 옆에 있는 케빈 데브라이너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아게로. 방송 출연은 에이전트하고 이야기 해야 한다고 했잖아.”
“하지만 너희들은 내 방송에 나오잖아.”
“그건 우리가 같은 팀이니까 나오는 거고, 다른 팀의 선수한테 방송 이야기 하는 건 실례라고.”
“아. 그런 거야? 아쉽네.”
그렇게 해프닝이 끝난 후 가람은 응원해준 팬들에게 인사를 하려고 할 때 리 캐터몰이 다가와 가람만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말했다.
“슈퍼 에이스. 너 지금 맨시티 유니폼 입고 있는 거 다른 사람들한테 이야기 거리만 제공하는 거야. 벗든지 아니면 라커룸에 가서 갈아입도록 해.”
순간 자신의 생각이 짧았다는 것을 깨달은 가람은 유니폼을 서둘러 벗었는데 그러자 또다시 여성 관중들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주장 안 되겠네요. 저 그냥 라커룸으로 돌아갈게요.”
“녀석.. 쑥스러워하기는..”
그렇게 가람은 서둘러 라커룸으로 뛰어갔고, 뛰어가는 도중에 라커룸 복도에 서 있는 세르히오 아게로를 만나게 되었다.
세르히오 아게로는 가람을 보며 잘 되었다는 듯 무언가 적힌 쪽지를 건네주더니 입을 열었다.
“내 휴대폰 번호랑 방송 주소야. 방송 출연은 에이전트랑 이야기해서 생각해주면 좋겠어.”
생각보다 방송에 진심인 듯 자신을 영입하는 세르히오 아게로를 보며 가람은 웃으면서 답했다.
“알겠어요. 에이전트와 상의해서 연락 드리도록 할게요.”
“그래. 좋은 답변 기다릴게.”
생각보다 활발한 세르히오 아게로와의 만남을 뒤로 하고 가람은 라커룸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때 기분 좋은 알림 소리와 상태창이 출력되었다.
띠리링
[FA컵 준결승 맨시티를 이기고 결승에 진출했습니다.]
[보상 30포인트를 지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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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트넘 감독실
“오늘 경기에 제가 골을 넣을 수 있었던 건 실력보다는 운이 많이 따라준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운보다는 실력으로 골을 넣고 증명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건 상당히 겸손한 말씀인 것 같은데요. 특히 오늘 경기에 세 번째 골을 만들 때는 평소 사용하지 않았던 개인기까지 사용하셨..”
삐리링
스마트 TV의 요란한 전원 OFF 소리와 함께 FA컵 준결승 이후 MOM으로 뽑힌 가람의 인터뷰 장면이 사라졌다.
스마트 TV가 꺼지자, 회색 머리와 지적인 외모가 조화롭게 어울린 중년의 한 사내가 고민에 빠졌다는 듯 자신의 책상을 손가락으로 툭툭 치고 있었다.
그때
똑똑
“들어와요.”
그 사내의 말에 토트넘 트레이닝 복을 입고 있는 동양인 선수 바로 손홍민이 들어왔다.
“부르셨나요? 무리뉴 감독님.”
“우선 자리에 앉도록 하지.”
무리뉴는 자신의 책상 앞에 있는 쇼파를 가리켰고, 무리뉴는 그런 손홍민을 보며 입을 열었다.
“커피 아니면 홍차?”
“저는 그냥 물을 주시면 됩니다.”
“오케이.”
무리뉴는 고급스러운 찻잔에서 물을 두 잔 따르고 한 잔은 손홍민의 앞에 두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마시면서 입을 열었다.
“내가 이렇게 부른 이유는 알고 있겠지?”
“네.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빠르겠군. 솔직히 말하면 나는 자네가 남아주었으면 좋겠네.”
무리뉴의 말에 손홍민은 쉽게 대답을 하지 못했고, 그 모습을 본 무리뉴가 입을 열었다.
“물론 축구 선수로서 레알 마드리드라는 구단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나도 한때 그곳의 감독으로 그 이름을 등에 업고 많은 선수들을 영입해봤으니 말이야. 하지만 레알 마드리드 아니 스페인은 이곳 잉글랜드보다 동양인이 뛰기에는 힘든 환경일 거야. 그곳에서 적응하는 게 쉽지는 않을 거라는 거지.”
“그건 알고 있습니다.”
“그런가? 그렇다면 한 가지 더 말해주도록 하지. 내년 시즌은 나는 자네를 스코어러로 확실히 자리 매김하고 해리 케인 선수가 자네의 골을 도울 수 있도록 할 걸세. 또 내가 추구하는 전술에 발빠른 역습을 얼마나 중시하는지는 이미 팀 미팅 때 말해주었고, 그 역할에는 자네만큼 저격인 사람이 없다는 게 내 생각이야.”
“그 부분은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무리뉴의 말에 손홍민의 약간은 딱딱하게 반응하는 걸 보고는 더 이상 설득이 힘들다는 걸 간파했다.
“그렇군. 내가 자네랑 오래 시간을 지냈다면 어떻게든 말리겠지만, 지금 그렇기에는 자네와 내가 쌓은 신뢰가 부족한 것 같군.”
“죄송합니다.”
“죄송할 게 뭐 있나? 축구 선수라면 한 번쯤은 꿈꾸는 구단이니 충분히 이해하네. 하지만 이번 시즌까지는 팀을 위해 뛰어주면 좋겠네.”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지금까지 자네를 지켜본 결과 다른 선수들보다 자기 관리도 확실하고 프로로서 모범적인 자세를 보여주니 그 부분은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군. 그런데 혹시 자네 김가람 선수라고 알고 있나?”
“김가람이라고 하면 선더랜드에서 뛰고 있는..”
“맞네. 내가 알기로는 김가람 선수가 한국과 잉글랜드 이중 국적이라고 해서 혹시나 자네가 알고 있나 해서 말이야. 자네도 알겠지만 자네가 떠난 자리는 누군가 채워야 하지 않겠나?”
“그럼 그 자리를..”
“내 생각에는 FA컵 결승전에 우리를 상당히 골치 아프게 할 것 같지만, 나중에 같은 팀에 있다면 그만큼 좋은 선수가 없지.”
“저는 솔직히 친분이 없지만, 국가대표 선배인 기성룡 선배가 그 팀에서 뛰고 있어서 연락하면 연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 그런가? 그럼 시즌이 끝난 후 자네가 이적하기 전에 한번 부탁하지. 미리 접촉했다가는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으니 말이야.”
“알겠습니다. 감독님.”
그렇게 손홍민은 아직 리버풀과 준결승을 남겨둔 시점에 결승을 생각하는 무리뉴가 살짝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며칠 뒤에 치뤄진 FA컵 준결승에 만난 리버풀이 대부분 비주전 선수를 출전 시킨 것을 보면서 무리뉴의 혜안을 이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