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친선 대회 합숙[2]
“메시는 TV에서 봤습니다.”
“에이~ 그게 아니지. 내가 묻는 건 말이야. 직접 본 적 있냐 이거야?”
“그건..”
“내가 좋은 거 보여줄테니깐 컵라면 좀 치워봐라.”
가람은 어차피 저런 핑계를 붙이지 않아도, 자신에게 뒤치다꺼리를 시킬 것을 예상하고 있었기에 군말 없이 노랑 머리 사내가 먹은 컵라면을 치웠다.
사실 컵라면을 치운다고 말했지만, 노랑 머리 사내는 컵라면의 국물까지 다 먹었기에 그냥 물로 한번 행궈서 쓰레기통에 버리고 김치통 뚜껑을 닫아서 냉장고에 넣을 뿐이었다.
그렇게 가람이 치우고 나오자, 노랑 머리의 사내는 자신의 침대에 반쯤 누워 한 손으로 핸드폰으로 만지면 다른 한 손으로 가람에게 오라는 듯 손짓을 했다.
그리고 노랑 머리의 사내는 핸드폰 사진에서 검은 머리에 수수한 자신의 어린 시절에 메시와 같이 찍은 사진을 가람에게 보여주면 입을 열었다.
“어떠냐? 쩔지?”
딱 봐도 같은 팀 유소년에게 팬서비스로 찍어준 것으로 보이는 사진을 당당하게 자랑하는 노랑 머리 사내를 보며 가람은 짜증보다 안쓰러움이 생겼다.
간혹 자신의 어린 시절의 재능과 언론의 집중에 갇혀서 성장을 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눈 앞에 있는 이 사내도 그런 듯 보였다.
그렇게 노랑 머리의 사내가 바르셀로나 설을 본격적으로 풀려고 할 때
띵동~
방의 벨소리가 들려왔고, 가람은 막내답게 재빠르게 문을 열었다.
그러자 문 앞에 이번 친선대회에서 가장 최고참이자 팀의 주장인 기성룡이 보였다. 기성룡은 가람을 보며 싱긋이 웃더니 방 안으로 들어왔다.
“킁킁! 뭐야? 승운아 너 컵라면 먹은 거냐?”
“아! 성룡이형. 제가 먹었겠어요? 막내가 먹은 거죠."
생각지 않은 이승운의 말에 가람은 순간 고구마 백 개를 먹은 듯한 답답함과 함께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그때 기성룡이 이승운의 머리를 주먹으로 가볍게 쥐어 박았다.
코옹!!
“이 녀석아! 속일 걸 속여라! 저기 보이는 우리팀 슈퍼 에이스는 매일 같이 닭가슴만 먹어서 마음까지 퍽퍽해진 애늙은이란 말이야. 컵라면 따위로 자기 관리를 망치는 녀석이 아니라고!”
“아야!! 성룡이형 머리 때리지 마세요. 키 작아진다고요.”
“야! 이제 너도 클 만큼 컸어.”
“형! 전 아직 22살이라고요. 한창 클 나이예요.”
“그래. 그래. 알았다. 감독님이 자기관리 안 하고 놀고 있는 녀석들 확인해 보라고 시키셔서 왔는데 넌 지금 먹은 만큼 내일 더 뛰도록 해라.”
“아. 성룡이형 봐주세요. 컵라면 밖에 안 먹었다고요.”
가람은 자신이 가지고 온 김치도 먹었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기성룡의 코는 개코라도 되는지 바로 입을 열었다.
“김치도 먹었겠지. 그것도 가람이 어머니가 만드신 김치 아니냐? 선더랜드 총괄 셰프이신 가람 어머니 김치의 맛과 냄새는 라면과 섞여도 바로 구분할 수 있다고.”
“아니. 성룡 선배 그걸 어떻게 아시는 거예요?”
방금 기성룡의 말에 가람이 더 놀라자, 기성룡이 윙크를 하며 입을 열었다.
“사실 우리 집에서 너희 어머니 식당에서 김치를 시켜 먹거든. 아내도 그렇고 나도 너희 집 김치 맛에 푹 빠져서 말이야. 그러니 바로 맞춘 거지.”
“아...”
기성룡은 핸드폰에 무엇을 기록하고 이승운을 보더니 입을 열었다.
“내일 너는 오늘 야식 먹은 것까지 운동해야 할 거다.”
“아. 성룡이형~~”
이승운이 아양을 떨자, 기성룡이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입을 열었다.
“으응. 그런 아양은 남자한테 떨지 말고, 내일 9시부터 오전 훈련 시작할 테니까 준비해라. 가람아 네가 물어본 개인 훈련은 감독님이 허락하셨어. 대신에 무리해서 팀 훈련에 지장을 주면 안 된다.”
“알겠습니다. 선배님.”
“아. 그리고 내일 윤성이 좀 굴려라. 아까 보니까 엄청 먹었더라.”
“네에? 윤성선배가 또...”
선더랜드는 모든 시즌을 마치는 날 FA컵 우승컵과 챔피언쉽 우승컵을 들고 선더랜드 도시를 돌아다니며 우승 퍼레이드를 진행했었다.
그리고 레이드가 끝난 후 샤오루 구단주는 선더랜드 선수단 뿐만 아니라 구단 직원 및 스탭까지 모두를 포함해서 즐길 수 있는 회식 자리를 마련했고, 거기서 권윤성은 그 동안 봉인해두었던 식욕을 폭발시켰다.
거의 푸드 파이터라도 되는 듯 주변 사람들이 핸드폰을 들고 찍을 정도로 엄청 많이 먹었고, 그 날 저녁에 인생 최고 몸무게를 찍었다.
게다가 그날 뿐 아니라 휴가라는 멋진 핑계로 권윤성은 시즌 동안 금욕했던 것을 풀기 시작했고,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친선 대회 엔트리에 포함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급하게 운동을 시작하기는 했지만, 아직도 폭식은 이어지는 듯했다.
폭식
그건 휴가 기간 운동선수에게 어쩌면 당연한 스트레스 해소 창구라고 할 수 있었다. 매주 경기를 준비하면서 절제된 식단을 해야 하는 그들이었기에 휴가 기간에는 그동안 억눌렀던 욕망을 분출시켜야 했다.
그렇지만 그걸 제대로 조절하지 못한다면, 자기 관리를 하지 못하는 프로 선수로 낙인 찍히게 되고 만약 그 몸매와 체중이 시즌에도 이어진다면 선수의 커리어에도 좋지 못한 영향을 줄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선수들의 심리를 알고 있는 벤투 감독은 대회를 위해 기성룡을 통해 감시를 시킨 것이었다.
사실 이 시기에 생각지 않은 친선 대회로 선수들이 풀어야 하는 여러 가지 욕구를 풀지 못하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자신이 아니라 기성룡을 통해 가벼운 관리 정도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기성룡이 나간 후 이승운은 방에 방향제를 뿌리며 입을 열었다.
“막내야! 너는 센스가 부족해. 내가 컵라면 딱 먹고 나면 치운 다음에 방향제를 뿌렸어야지.”
“죄송합니다.”
“죄송하기는. 재미 없는 녀석 같으니.. 그만 자자.”
“알겠습니다.”
그렇게 불을 끄려고 하자, 이승운이 입을 열었다.
“불을 끌 때는 '소등해도 되겠습니까?' 물어보고 공손하게 '소등하겠습니다.' 하고 꺼야지.”
분명 군대도 다녀오지 않았을 이승운이 어떻게 저런 말을 알고 있는지 가람은 진심으로 궁금했지만, 어린 꼰대에게 꼰대 대접을 해주는 것이 신상에 좋을 거라고 생각한 가람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소등해도 되겠습니까?”
“그래. 막내야. 잘 자라.”
“그럼 소등하겠습니다.”
그렇게 가람은 불을 끈 후 잠을 청했고, 빨리 이 친선 대회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팀의 막내로서 선배 선수의 심부름을 하며 팀에 적응해라.]
[보상 5포인트]
[패널티: 실패 시 6개월간 스탯이 40% 저하됩니다.]
그때 상태창은 자신을 놀리는 듯 다시 한번 나왔고, 사람은 상태창을 치우며 잠에 들었다.
이승운의 심부름 때문인지 가람은 그날 정신없이 잠들었고, 다음날 일찍 일어날 수 있었다.
평소처럼 아침 개인 훈련을 하기 위해서 일어났고, 가람이 개인 훈련의 장비를 챙겨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그 소리에 이승운은 잠에서 깼다.
“뭐야? 막내야. 벌써 훈련 시간이냐?”
“아닙니다. 저 개인 훈련을 하려고 일어난 겁니다. 깨워서 죄송합니다.”
“그래. 그러니까 조용히 나가야지.”
“오전 훈련까지 3시간은 남았으니 더 주무세요.”
“그래.”
그렇게 이승운이 다시 잠 들었고 가람은 방에서 나갔다. 가람이 복도에서 나오자, 눈을 비비며 나오는 김만재와 하품을 하며 나오는 권윤성이 보였다.
셋은 자연스럽게 모여서 토트넘 1군 훈련장인 핫스퍼웨이의 미리 제공된 장소에서 훈련을 시작했다.
“하아아~ 여기 훈련장 정말 크네요. 8개는 되는 것 같아요.”
“홍민이형한테 듣기로는 잔디 상태도 최고고 팀 경기 뿐 아니라 전술 훈련 구장도 따로 있는 거 같아.”
김만재의 설명에 권윤성은 하품을 하면서 천천히 몸을 풀기 시작했고, 가람은 그걸 보며 안쓰럽다는 듯 말했다.
“윤성 선배. 어제 야식 하다가 성룡 선배에게 걸렸다면서요.”
“성룡 선배가 말했냐? 어제는 좀 참기 힘들어서 말이야.”
“오늘 아침에 많이 뛰세요. 그래야 오전 훈련 때 몸이 가벼워져요. 안 그러면 친선 대회까지 나왔는데 벤치만 달구다가 가게 될 거예요.”
“알았다. 잔소리꾼아.”
그 말에 가람이 흠칫하자, 매번 가람의 편을 들던 김만재도 오늘은 웬일인지 가람의 편을 들지 않고, 말없이 뛰기 시작했다.
그러자 가람이 권윤성을 봤고, 권윤성이 슬며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어제는 만재형도 나랑 같이 먹었거든. 사실 만재형이 나보다 더 많이 먹었어.”
“어라? 그런데 성룡 선배는 그런 이야기 안 하셨는데요.”
“만재 선배가 발뺌해서 나만 걸렸어. 제길! 그래서 성룡 선배가 너한테 뭐라고 한 거겠지. 안 그래? 네가 우리 아침 훈련 코치나 마찬가지잖아.”
“에휴. 만재 선배!! 선배도 먹은 거예요?”
그 말에 만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가람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렇게 아침 훈련이 시작되고, 가람은 평소보다 더 힘을 쏟았다. 덕분에 김만재와 권윤성은 바닥에 더 많이 뒹굴며 칼로리를 소모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언제 나왔는지 이승운은 셋이 훈련하는 모습을 보더니 입을 열었다.
“멍청이. 진짜 필요할 때 운동을 해야지.”
그렇게 말을 하는 순간 이승운 뒤에 손홍민과 이강운이 나타났고, 손홍민을 보는 순간 이승운은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홍민이형 잘 주무셨어요?”
“어. 그래.”
그렇게 이승운이 손홍민에게 다가가자 이강운은 손홍민에게 인사를 하며 밖으로 나갔고, 그 모습을 본 이승운이 입을 열었다.
“아니 저 녀석은 선배를 보면 인사를 해야지. 어딜 저렇게 가는 거야?”
“승운아. 좀 봐줘라. 원래 저기 보이는 훈련 트리오랑 같이 개인 훈련 하려고 하는 걸 내가 붙잡아 이야기 좀 해서 아마 똥줄이 탈 거야.”
“네에? 그래요?”
이승운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이강운은 밖으로 뛰어나가 가람 일행과 어울려 훈련에 참여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이승운은 어리석다는 듯 입을 열었다.
“팀 훈련에 힘을 쏟아야지. 아직 애송이들은 뭐가 중요한지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안 그래요? 홍민이형?”
“뭐. 그 말도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저렇게 아침에 따로 개인 훈련하면서 자기 관리를 하는 모습은 보기 좋지 않아?”
“아. 그런가요?”
이승운의 입은 살짝 튀어나오며 부정하는 것 같았지만, 손홍민은 그걸 눈치 채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그래 승운아. 너 바르셀로나에 있었지? 그럼 스페인 생활은 어떠냐?”
“스페인 생활이요? 선배 설마? 들리는 소문이 사실인 거예요?”
“이번 친선 대회 끝나고 나면 계약하러 갈 거야.”
“와!! 대박. 완전 축하 드려요. 그럼 제가 스페인 생활의 꿀팁 알려드릴게요.”
“그래. 팀훈련까지 아직 시간은 남았으니 말이다. 네 팁 덕분에 잘 적응하면 내가 나중에 한턱 쏠게.”
“그렇게 나오신다면 제 바르셀로나 생활의 진수까지 모두 전해드려야겠네요.”
그렇게 이승운은 손홍민과 함께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고, 이강운은 어느새 가람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잉글랜드 생활에 대해서 나한테 조언 좀 해줘라.”
“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