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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실패 축구 황제의 상태창-100화 (101/319)

100화 친선 대회 합숙[4]

“무슨 일로 오셨어요? 리사씨?”

가람의 말에 깔끔한 오피스룩을 입은 리사 뮐러는 살짝 당황하며 입을 열었다.

“아직 훈련 시간이 아닐 텐데? 너는 왜 지금 여기서 뛰고 있는 거야?”

“아. 오전 팀 훈련 전에 개인 훈련을 하고 있었어요.”

그렇게 둘이 좀 더 대화를 나누려고 할 때 뒤에 김만재와 권윤성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뒤이어 도착한 이강운은 거친 숨을 수습하며 입을 열었다.

“가람아 너 뭐야? 나한테는 여자친구 사귀지 말라면서 너는 이렇게 예쁜 여자 친구가 있는 거야?”

리사 뭘러는 훅 들어온 가람의 여자친구 말에, 순간에 가람과 데이트 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상상까지 했다.

그때

“강운아. 리사 뮐러씨는 BCD 스포츠국 기자라고. 그런 말하면 실례야.”

그 말에 리사 뮐러의 상상은 산산조각이 나며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약간 씁쓸한 표정으로 자신의 품에서 명함을 꺼내 이강운에게 건네며 입을 열었다.

“BCD 스포츠국 기자 리사 뮐러라고 해요. 만약 재미 있는 기사거리가 있다면 언제든지 거기 적혀있는 핸드폰 번호나 메일로 연락주세요.”

“아..”

기자라는 말에 이강운의 표정은 어두워졌고, 어느새 형 뒤에 숨는 소극적인 동생처럼 가람의 등 뒤로 숨었다.

이미 토트넘과 계약을 비밀로 하고 있는 이강운의 상황을 알고 있는 가람이기에, 리사 뮐러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여기는 무슨 일로 오신 거예요?”

“축구 기자가 축구 대표팀 훈련장에 오는 게 무슨 이유겠어? 바로 취재지. 오늘 오전에 있는 팀 훈련은 언론 개방 훈련이라는 걸 못 들었니?”

“네. 아직 이야기는 듣지 못했어요.”

그 말에 리사 뮐러는 자신의 스마트 워치로 시간을 보더니 입을 열었다.

“음. 내가 좀 일찍 오기는 했네. 혹시 시간 있으면 간단하게 인터뷰 가능할까?”

“평소라면 오케이라고 하겠지만, 지금의 저는 국가대표팀의 막내란 말이죠. 나중에 오전 팀 훈련이 끝나고, 개인 인터뷰 시간 있을 때 하죠.”

역시 쉽게 넘어오지 않는 가람을 보며, 리사 뮐러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더니 입을 열었다.

“오케이. 역시 쉽게 넘어오지 않네.”

“죄송해요. 그럼 나중에 봬요.”

그렇게 가람은 리사 뮐러와 가볍게 인사를 한 후 훈련장으로 돌아갔고, 그 모습을 밖에 나와 산책을 하는 이승운이 유심히 지켜봤다.

그리고 이어진 식사 시간에 선수들은 평소처럼 친한 사람끼리 삼삼오오 모여 식사하기를 시작했다.

“막내야. 나랑 먹자.”

가람은 선더랜들 출신 선수들과 식사를 같이 할 생각이라 이승운의 생각지 않은 요청을 거절하려고 했다. 그때

[팀의 막내로서 선배 선수의 심부름과 부탁을 들어주며 팀에 적응해라.]

[보상 5포인트]

[패널티: 실패 시 6개월간 스탯이 40% 저하됩니다.]

상태창이 그러면 안된다는 듯 눈 앞에 나타났다.

‘으윽!’

다른 건 몰라도 패널티 6개월이면 프리미어 리그의 최대 순위 변수 지점인 박싱데이까지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능력이 떨어지는 건 단순히 한 선수의 능력이 떨어지는 게 아니라 선더랜드 전반에 문제가 된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가람은 입가에 억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네. 알겠습니다.”

“뭐냐. 표정은 왜 안 좋은 거냐?”

“아니요. 그럴리가요? 그냥 저보다는 다른 선배님들하고 드시는 게 좋지 않을 까 생각을 했는데 말이죠.”

“그래. 사실 나도 이렇게 인맥을 넓힐 수 있는 황금 같은 시간에 너에게 시간을 할애하는 게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중요하게 할 말이 있으니 말이다. 그래. 저기로 가자.”

이승운은 아무도 앉지 않은 구석자리로 가람을 데리고 갔고, 둘만이 앉아 식사를 하게 되었다.

식사는 자율식으로 진행되는데 휴가 기간인 걸 감안해, 나름 기름진 음식도 있지만, 가람의 식판에는 다양한 풀과 두부, 현미밥 그리고 마지막에는 보는 사람이 다 목이 막힐 것 같은 닭가슴살이 올라와 있었다.

그리고 그걸 본 이승운이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성룡이 형의 말처럼 인간미 없는 식판이구나. 어떻게 내 불고기 먹을래?”

“아니요. 괜찮습니다.”

“쓰음. 이 녀석아. 몸관리도 좋지만 기름진 음식도 먹어야 힘이 나고, 기름진 멘트도 나오는 거야.”

“네에?”

이상한 이승운의 말에 가람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이승운은 다 알고 있다는 듯 킥킥 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녀석.. 나도 입은 무거운 편이니까 걱정하지 말고. 그나저나.. 그것보다.. 네 애인 말이야. 네 애인의 친구들도 당연히 예쁘겠지?”

무언가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이승운을 보며 가람은 모르겠다는 듯 입을 열었다.

“선배. 그게 무슨 소리세요? 애인은 뭐고? 친구들이라니요?”

“에이.. 녀석. 내가 다 안다고. 그렇게 정색할 필요 없어. 아침에 나도 봤다니까.”

이승운은 무슨 할리우드 배우처럼 눈썹을 자유자재로 컨트롤하며 자신의 감정을 완벽하게 표현했고, 그 모습은 꼭 나쁜 짓을 하는 비행 청소년 같았다.

“너무 빡빡하게 굴지 말고, 새끼 좀 쳐봐. 아까 네 애인 보니까 애인 친구들도 예쁠 것 같은데..”

그 말에 이제야 이승운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히 알아챈 가람이 입을 열었다.

“선배. 뭔가 오해한 것 같아요. 리사씨는 제 애인 아니에요. 그 분은 BCD 스포츠국의 기자예요.”

“뭐야? 정말이야? 그런 미인이 기자라고?”

“정말이죠. 선배 생각해보세요. 국가대표팀은 합숙 훈련을 하는데 어떻게 여자친구가 찾아와요?”

사실 강승연의 삶에서 국가대표 합숙 훈련 때 여자친구를 불러 몰래 나가서 만났던 경험이 있기 했지만, 그것을 딱 잡아떼며 말하자, 이승운이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하아.. 그래..”

가람은 오해를 풀었다고 생각해 밥을 먹으려고 했다. 그렇게 아무런 양념도 되어 있지 않은 야채 덩어리를 입에 넣고, 그리고 퍽퍽한 닭가슴살을 한 입 베어 먹었다.

그때

“그럼 그 여자를 나한테 소개 시켜줘.”

쿨럭! 쿨럭!!

생각지 않은 이승운의 말에 가람은 먹고 있는 것을 그대로 뱉어내다가 크게 사레걸려서 한참 동안 기침을 했다.

한바탕 소동에 식사를 하고 있는 선수들이 이승운과 가람이 앉은 식탁 쪽을 쳐다봤고, 그걸 느낀 이승운은 손을 들어 괜찮다는 제스쳐와 함께 가람에게 물을 건넸다.

“뭐냐 너? 왜 갑자기 그래?”

“아니요. 갑자기 생각지도 않은 말을 하셔서..”

“뭐가 생각지도 않은 말이야? 글래머형 스타일에 청순한 얼굴, 완전히 내 스타일이야.”

“선배. 기자라고요. 다른 직업도 아니라 기자요.”

“뭐냐? 너는 꼰대처럼! 기자는 여자 아니냐?”

“그건.. 아니지만..”

“됐고! 너는 그냥 그 기자분 연락처나 나한테 넘겨.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말이지.”

가람은 리사 뮐러의 연락처를 건네주기만 하면 해결되는 일이지만, 왠지 모르게 거부감이 들었다. 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소개하면 안 된다는 마음이 강했다. 그리고 몇 일 동안 지켜본 이승운이라는 사내에게 리사 뮐러를 소개 시켜준다는 건 죄를 짓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상태창도 이런 부탁을 거절하는 게 상관없는 듯 따로 경고 메시지 창을 띄우지 않았다.

그렇게 상황이 돌아가자, 가람은 용기를 내서 입을 열었다.

“지금은 연락처는 가지고 있지 않아요.”

“뭐야? 개인적으로 아는 기자 아니었어? 기자랑 선수가 아는 사이라는 건 연락처도 알고 있어야지. 그래야 자신이 구단에서 부당한 처사를 당하면 기자를 통해서 언론 매체에 알리는 거고.”

그 말을 듣는 순간 가람은 소름이 돋았다.

강승연의 삶에서 자신이 자주 저질렀던 일.

박지석 감독이 국가대표로 가고, 김가람 감독이 모어컴을 맡은 초반에 팀의 장악력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김가람 감독에 대한 불만을 언론매체를 통해 흘렸던 일이 떠올랐다.

물론 선수의 의사표현을 자유롭게 언론매체에 흘리는 게 뭐가 문제가 되겠냐만은 감독 입장에서는 언론을 등에 업고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선수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강승연의 삶에서 김가람 감독은 그런 강승연의 언론 플레이에 전혀 넘어가지 않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기보다는 특별하면서도 현명한 방법으로 결국에 강승연을 이겼다. 그리고 그런 방법은 김가람 감독이기에 쓸 수 있었던 것이었다.

설명이 길었지만, 이승운의 말에 가람은 왠지 그가 자신과,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강승연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배에게 심부름을 시키고, 여자를 밝히고 게다가 언론을 이용할 줄도 아는 그런 생 양아.. 아니 훌륭한 인성을 가졌네. 망할 놈.’

순간 거울을 본 듯한 느낌이 든 가람은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그렇다고 면전에 대고 소리를 지를 수는 없었기에 말을 아꼈다.

그 후 이승운은 가람에게 언론과 기자를 이용해 팀에서 자신의 입지를 올리고, 팀원들을 압박하는 방법이나, 팀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가람은 강승연의 삶에서 자신도 저런 식으로 했던 것이 떠올라 낯 뜨거워졌지만, 이승운은 자신의 말에 가람이 흥분한 것으로 착각해 열심히 설명을 이어갔다.

그렇게 식사 시간은 끝나고, 잠시 후 오전 팀 훈련이 시작되었다. 팀 훈련을 하기 전 수석 코치인 세르지우 코스타와 코치 통역관인 김철수가 나왔고, 세르지우 코스타의 포르투갈어를 김철수가 통역해 선수들에게 전해줬다.

‘영어는 못하는데 포르투갈어는 잘 하는 건가?’

지난번 자신과 만났을 때 영어 울렁증이 있었던 김철수였지만, 오늘은 굉장히 프로폐셔널하게 통역을 진행했다.

심지어 포르투갈어를 알고 있는 가람이 듣기에도 거의 100프로에 가까운 통역이었다.

뭐 결국 전하고자 하는 말은 오늘 오전 팀 훈련에는 언론 매체가 올 것이고, 평소처럼 훈련을 하면 될 거라는 말이었다.

그 후 언론 매체의 호출로 몇몇 선수들은 인터뷰를 할 것이니 준비하라는 말이었다.

그렇게 훈련은 시작되었고, 언론 매체들이 오면 괜히 기합을 넣어서 오버를 하는 선수들이 있기 마련인데, 이승운도 그런 분류의 선수였다.

보면 볼수록 강승연이었던 자신과 너무 닮았다는 생각에 가람은 얼굴이 점점 부끄러워지려고 했다.

그렇게 훈련은 이어졌고, 선수들은 파트 별로 나누어 연습에 들어갔다. 그리고 이승운은 누군가에게 보여주려는 듯 그냥 차면 되는 크로스를 괜히 공을 트래핑 하다가 강하게 공을 찼다.

그 크로스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가람은 속으로 저게 뭐 하는 거지라는 생각을 했다.

뻐어엉!!

이승운이 찬 공은 원래 목표로 했던 곳을 넘어, 기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해 날아갔다. 가람은 그 순간 총에서 쏘아진 총알처럼 이승운이 찬 공의 낙하 지점을 포착해 그 곳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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