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친선 대회 합숙[5]
이승운이 찬 공은 생각보다 빠르게 기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고, 하필이면 리사 뮐러가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그대로 둔다면 리사 뮐러가 맞을 수밖에 없는 상항이었다.
“어어어!”
카메라 맨은 카메라를 보며 말을 이어가고 있는 리사 뮐러에게 피하라는 말이 제대로 나오지 못했다. 놀랐 듯 소리내는 카메라맨의 반응에 이상함을 느낀 리사 뮐러가 뒤돌아 봤을 때는 공이 거의 지척에 다가온 상황이었다.
“꺄야약!”
그렇게 흡사 공포 영화의 무서운 장면을 볼 때 낼만한 비명소리가 나왔고, 모든 이목이 집중되었을 때
타타탓!!
토오옹!!
어느새 나타난 가람이 잽싸게 리사 뮐러의 앞에서 점프를 해서 가슴으로 공을 받아냈다.
“리사씨 괜찮으세요?”
생각지 않은 상황에 가람이 나타나 자신을 구해주자, 지난번에 머리 속에서 가람의 아이를 낳았던 리사 뮐러는 아이를 같이 키우고, 어느새 황혼을 배경으로 나이든 자신과 가람의 모습까지 상상해버렸다.
그때
“이승운 선수!! 힘이 너무 강해요!!”
훈련을 지켜보고 있는 세르지오 코스타 수석코치의 외침을 김철수가 바로 통역했고, 그 소리를 들은 이승우는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 소리에 정신을 차린 리사 뮐러는 입을 열었다.
“고.. 고마워.”
“고맙긴요. 선배가 언론 취재 때문에 힘이 좀 들어간 것 같아요. 혹시 모르니까 뒤통수 조심하시고요.”
“그래.”
그렇게 가람은 공을 드리블하면서 나갔고, 언론 매체들은 대한민국의 훈련 과정을 영상으로 담았다.
이승운은 아까의 실수를 잊어버린 듯 기합 소리까지 지르면서 상당히 오버하는 것으로 보였는데 그 모습을 본 가람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저렇게까지 하고 싶을까?’
가람의 생각과 다르게 의외로 이승운의 파이팅 넘치는 모습을 벤투 감독은 좋게 봤는지 포지션별 훈련을 마치고 이어지는 청백전에서 선발팀을 나타내는 청팀의 조끼를 이승운에게 주었다.
물론 청백팀 중 어느팀이 선발팀인지는 언론매체에게는 전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게 청백전까지 끝난 후 언론 매체들은 공통적으로 감독 인터뷰를 받은 후 선수 몇 명을 호출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한국 매체에서는 손홍민, 이강운, 기성룡, 김가람 등을 호출해서 인터뷰를 진행했고, 해외 매체에서는 자국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을 불러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렇게 다들 언론 매체들과 인터뷰를 마쳤고, 중복으로 불린 선수들은 좀 더 시간을 할애해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특히 손홍민, 이강운, 김가람은 이적 이슈에 대해 많은 질문들이 나왔다. 손홍민과 이강운은 짠 것처럼 지금은 국가대표 소속이라 나중에 이야기를 하겠다고 했고, 가람은 이적은 없을 거라는 말을 못 박으며 인터뷰를 마쳤다.
그렇게 인터뷰가 거의 끝나가고 있을 때 가람은 리사 뮐러와 이승운이 대화를 나누는 걸 볼 수 있었다.
둘의 대화는 생각보다 괜찮았는지 리사 뮐러는 웃으면서 대화를 이어 나갔고, 이승운은 그런 리사 뮐러의 반응에 기분이 좋은 듯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멀리서 그 모습을 보는데 가람은 순간 왠지 모르게 가슴에 먹먹함이 느껴졌다.
‘뭐야. 이 느낌은.. 신경 쓰지 말자. 중요한 건 선더랜드야. ’
그렇게 마음 먹으며 애써 돌아서려는 순간 등 뒤에서 리사 뮐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람아!”
리사 뮐러의 부름에 모른 척하려고 했지만, 친선 대회가 끝난 후에도 계속 자신의 집에서 묵을 리사 뮐러이기에 가람은 괜히 불편한 감정을 만들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 뒤돌아봤다.
“네? 무슨 일이세요?”
가람의 말에 리사 뮐러는 손짓으로 가람을 불렀고, 리사 뮐러 뒤에서 이승운은 인상을 쓰며 저리 가라는 제스쳐를 했지만, 오히려 리사 뭘러가 가람에게 뛰어왔다.
그리고 리사 뮐러가 가람에게 다가오자마자, 독일어로 그것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람아. 너 저 사람이랑 친해?”
리사 뮐러는 프란츠 베켄바워를 통해 가람이 독일어를 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는지, 독일어로 말을 걸었다. 가람은 뒤에서 따라오는 이승운을 보며 독일어로 답했다.
“아니요. 친하지는 않아요. 이번 국가대표팀에 뽑히면서 처음 만난 건데 지금 룸메이트예요.”
“룸메이트? 그 룸메이트가 너의 비밀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정보를 넘기는 대가로 따로 만나자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웃으며 다가오는 이승운을 보며, 자신을 팔아 리사 뮐러와 만나려고 하는 그의 노력이 가상했다. 그렇지만 결과는 그런 사실을 자신에게 말하는 리사 뮐러였고, 그런 상황을 보며 한편으로 이승운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람은 가볍게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저기 뒤에 오는 선배보다 아마 리사 뮐러씨가 저에 대해 더 많이 알고 계실 것 같은데요.”
그때 이승운이 웃으며 리사 뮐러 보며 영어로 말을 걸었다.
“리사. 말하는 도중에 뛰어가면 어떻게 해요?”
그리고 꾸욱!
티나지 않게 이승운은 가람의 발끝을 가볍게 밟았고, 그게 무엇을 뜻하는 지 가람은 눈치 채 자리를 피하며 입을 열었다.
“저는 감독님이 부르신다고 해서 이만 가볼게요. 리사씨 그럼 나중에 뵐게요. 승운 선배님도 늦지 않게 오세요.”
“그래. 막내야. 알겠어.”
가람이 자신의 신호를 읽고 빠져주자, 이승운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렸고, 가람은 그런 미소를 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그렇게 가람이 훈련장 안으로 들어서자, 김철수가 그런 가람의 모습을 보며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네요. 김가람 선수.”
“분석관님. 안녕하셨어요?”
“여기서는 분석관이 아니라 통역관 역할로 왔으니 통역관이라고 불러주면 돼요.”
그 말과 함께 보는 사람마저도 기분 좋아지는 미소에 가람은 순간 방금 이승운으로 인해 느꼈던 부정적인 마음마저 씻겨 내리는 것 같았다.
“그럼 통역관님. 혹시 저한테 할 말이 있으세요?”
“뭐. 약간은 있다고 해야겠죠. 제가 가람 선수의 소중한 시간을 약간 빼앗아도 될까요?”
“얼마든지요.”
김철수는 가람을 데리고 훈련장 한켠에 마련된 응접실로 향해고, 김철수는 가람을 앉게 한 후 쟁반에 단팥빵과 우유를 가지고 나왔다..
단팥빵을 본 순간 가람은 U20 월드컵 결승전 날 단팥빵을 먹고 설사를 했던 것이 떠올라 흠칫했고, 그걸 본 김철수는 먼저 한입 크게 베어물며 입을 열었다.
“이건 상한 거 아니에요. 그리고 지난번 그 일이 있고 나서 어머니께 말씀 드려서 진공 포장 기술을 도입했고 오랫동안 상하지 않도록 레시피도 개량했고요.”
“아. 그런가요.”
그렇게까지 스스로 시범을 보이면서 호언장담을 하자, 가람은 김철수의 호의를 무시할 수 없었고, 그의 얼굴을 보며 단팥빵을 먹었다.
빵의 푹신한 촉감과 달콤한 단팥속의 조화는 한 입 깨무는 순간 입안에 황홀경을 느낄 정도 매력적인 맛이 퍼졌다.
가람이 평소에 철저한 식단을 유지하지만 가끔은 융통성을 보이곤 했는데 이번이 그런 경우였다.
그렇게 가람은 아직 단팥빵이 입에 있는 상태에서 우유를 마셔 빵이 우유에 적셔지며 약간의 축축한 식감까지 느끼고는 만족스럽다는 듯 입을 열었다.
“언제 먹어도, 정말 맛있네요.”
강승연의 삶에서도 그랬지만, 김철수네 어머니가 만드신 이 단팥빵은 언제나 가람을 만족시켜주는 음식이었다.
그리고 단순히 맛 뿐만 아니라 그 단팥빵을 먹으면 왠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맛있게 먹어주니 내가 더 고맙네요.”
“빈말이 아니라, 정말 맛있어요.”
“하하하. 고마워요. 가람 선수라면 제가 한국에서 가져온 단팥빵은 언제든 줄 수 있으니 말만하세요.”
“네. 알겠어요. 그런데 저를 부르신 게 이렇게 상하지 않고 업그레이드 된 단팥빵을 먹여주려고 한 게 아니겠죠?”
“역시 가람 선수는 눈치가 빠르군요. 다름이 아니라 약간의 양해를 구할 일이 있어서요.”
“양해요?”
“아. 그게.. 제가 듣기로 이번 친선 대회에서 벤투 감독님은 대회의 결과보다는 시험을 많이 하실려고 한대요.”
“시험이요?”
잉글랜드와 독일은 안 그래도 강호라는 건 인지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첫 상대인 이집트도 역시 쉬운 팀은 아니었다.
아무리 친선 대회라고 하지만, 많은 이들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기겠다는 것보다 시험을 한다는 말은 가람으로서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런 마음이 표정으로 들어났는지, 김철수가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벤투 감독님은 친선 대회에서 강팀과의 시합 경험과 함께 전술의 유연함을 시험하려는 건가봐요. 그래서 벤투 감독님은 가람 선수의 장점인 멀티 포지션 능력을 활용하고 싶어하시는 것 같아요.”
김철수가 이미 대화의 자리를 미리 알고 멀티 포지션 능력을 말하는 순간 가람은 속으로 아차 싶은 심정이 들었다.
만약 그것이 공격 자원의 위치라면 이렇게 빙빙 돌려 말할 필요도 없고 이런 자리를 마련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었다.
“다음 경기에 제가 수비로 뛰는 건가요?”
가람의 눈치 빠른 대답에 김철수는 당황하며 입을 열었다.
“그.. 그렇죠. 하지만 이번 경기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가람 선수의 멀티 포지션 능력을 높이 사서 벤투 감독님이 지시하신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네에?”
가람이 순수하게 이 상황을 받아들이자, 김철수가 놀란 눈으로 가람을 봤고, 가람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국가대표로 뛰는 것 자체가 좋은 기회인데요. 수비면 어때요? 열심히 뛰는 거죠.”
“그렇죠. 역시 제가 사람을 보는 눈이 틀리지 않았어요. 벤투 감독님은 선수들이 포지션 변경에 민감할 거라고, 저한테 이 것을 부탁하셨거든요. 친한 사람이 말하면 좀 더 괜찮을 거라고 말이죠.”
“아. 그러셨군요.”
가람은 표정으로 웃고 있었지만,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일을 해결하는 여우 같은 벤투 감독이 얄미웠다.
솔직히 자신의 활약에도 정식 A매치에 부르지 않은 것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이렇게 나오자 솔직히 반감이 들었다.
그때
솨아아아
또 몸속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기운에 그런 반감이 가라앉았다. 그리고 반감과 다르게 한 가지 욕구가 샘솟기 시작했다.
‘그래. 네가 나를 수비수로 쓴다는 거지.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하는지 보여주겠어!’
반감이나 반항심이 아닌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보겠다는 순수한 마음이 표출되었다. 그리고 오전 훈련 이후 이집트 전을 대비한 전술 훈련에서 가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수비수 역할에 대해 집중하기 시작했다.
2020년 6월 8일 웸블리 스타디움
친선 대회 1차전 이집트전
경기를 뛰기 위해 몸을 풀고 있는 가람은 다를 때보다 집중하며 실력을 보여주겠다는 각오를 다지기 시작했고, 그런 각오를 부축이는 듯 상태창의 메시지가 나타났다.
삐리링
[이집트와의 친선 대회에서 3개의 공격 포인트를 기록해라!]
[보상 15포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