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친선대회 이집트전[5]
하지만 공은 이승운의 고민과 상관 없이 날아왔고
퍼어억!!
이승운이 피하기도 전에 가람은 소름 끼치는 킥 정확도로 임무를 완수할 수 있었다. 그리고
토르르르~
이승운의 눈가에 눈물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공은 이승운의 하복부에 맞고 튕겨져 나가 골라인을 넘어갔다.
“골?! 후반전 27분에 김가람 선수의 프리킥을 이승운 선수가 마무리하면서 골을 만들어냅니다. 아니 이건 마무리했다고 해야 하나요? 아니면 프리킥에 맞았다고 해야 하나요? 좀 이상한 상황입니다.”
“그래도 이건 이승운 선수가 김가람 선수 찬 공이 어디로 떨어질지 정확하게 판단해서 만든 골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승운이 가람의 신호에 맞춰 뛰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중계진들은 이승운의 움직임에 대해 칭찬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승운은 남자만이 느낄 수 있는 고통에 한동안 경기장 바닥에서 일어나지 못했고, 결국 주심은 들 것을 요청했다.
“이승운 선수 아무래도 들 것에 실려 나갈 것 같습니다.”
“그렇죠. 이제 경기는 3대 1로 앞서나가기 시작할 것으로 보이지만, 대한민국 선수들은 이승운 선수를 걱정하며 쉽게 기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이승운이 들 것에 실려 나가고, 이번 친선 대회에 7명까지 교체가 가능한 벤투 감독은 이승운의 의사를 물어보지 않고 보호 차원에서 바로 백승훈을 투입했고, 백승훈이 중앙 미드필더 자리로 가면서 대한민국은 4-3-3 포메이션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승운 선수는 임팩트 있는 한 골을 기록하면서 교체 아웃이 됩니다.”
“그렇죠. 오늘 경기 친선전인 만큼 선수 보호 차원에서 교체하는 건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백승훈 선수가 들어가면서 대한민국은 중원에 새로운 활력소가 생기게 되는데요. 백승훈, 권창우, 황인보 이렇게 중앙 미드필더 자리에 위치하게 되겠지만, 권창우 선수가 좀 더 공격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이며, 그 뒤를 백승훈 선수와 황인보 선수가 뒷받침 해줄 것으로 보입니다.”
장재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황의준의 백패스를 받은 권창우는 공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고, 전에 이강운과 이승운이 패스를 유기적으로 집중했던 것과 다르게 권창우는 원터치 패스를 통해서 경기 속도를 올렸다.
“권창우 선수는 중앙 미드필더지만, 공격형 미드필더처럼 공격적으로 올라와서 손홍민, 황의준, 황희천 선수와 호흡을 맞추고 있습니다. 간결한 연결이 돋보이고 있습니다.”
권창우의 패스와 세 선수들의 호흡으로 순식간에 대한민국은 이집트 패널티 에어리어까지 접근할 수 있었고, 공을 잡은 황희천은 상대 왼쪽 공간에서 저돌적으로 치고 들어가며 기회를 만들었다.
뻐어엉~
“황희천 선수의 저돌적인 돌파 이후 크로스, 반대편에 있는 손홍민 선수에게로 날아갑니다.”
손홍민은 날아오는 공을 가슴으로 트래핑한 후 무릎으로 다시 공을 잡아 자신의 앞으로 가져왔다.
말은 쉬웠지만 강하게 날아오는 공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건 쉬운 일은 아닌데, 손홍민은 자신이 왜 레알 마드리드에 입단하는지 클래스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집트도 손홍민이 공을 잡는 순간 왼쪽 윙백과 중앙 수비 그리고 중앙 미드필더 무함마드 엘네니까지 달려들어 압박했다.
손홍민은 패널티 에어리어로 접근하는 척 달려들었고, 그 순간 손홍민을 막기 위해 압박을 가하던 선수들의 이목은 집중될 수 밖에 없었다.
그때
토오옹!!
손홍민은 무함마드 엘네이가 지차치게 넓게 벌린 다리 사이로 공을 보냈다.
하지만 그 공간에는 아무도 없었고, 이집트 선수들은 모두 손홍민이 실수를 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 공을 향해 두 명의 선수가 달려들었다.
타타타탓!!!
정확히 말하면 조금 앞서 있는 건 가람이고, 간발의 차이로 가람의 뒤에서 쫓고 있는 선수는 모하메드 살라였다.
그리고 둘은 꼭 먹이를 두고 싸우는 두 마리의 맹수처럼 공을 향해 달려들었다.
“손홍민 선수의 공간 패스를 향해 어느새 후방에 있던 김가람 선수와 그런 김가람 선수를 막기 위한 모하메드 살라가 경합을 벌이고 있습니다.”
공은 간발의 차이로 가람이 잡았고, 모하메드 살라는 그 순간 가람을 향해 발을 길게 뻗었다.
모하메드 살라가 악의가 있는 건 아니지만, 이기고 싶다는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뻗은 발이었다.
둘은 이미 패널티 에어리어 안쪽으로 들어온 상태였고, 자신이 뻗은 발에 걸린다면 그건 꼼짝없이 패널티 킥을 내어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모하메드 살라가 아차 싶은 심정에 빠졌을 때 가람은 마법같은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스르륵
공을 발끝으로 가볍게 차서 모하메드 살라의 발 범위에서 벗어나게 한 후 자신의 긴 다리를 이용해 모하메드 살라의 다리를 넘어갔다.
말로 설명하는 건 굉장히 쉽게 보이지만, 모하메드 살라가 뻗은 발은 가람이 나아가는 발에 정확히 맞춰서 뻗은 상태였고, 그걸 피하기 위해서는 민첩한 동작으로 스탭을 바뀌 보폭을 달리해야 했다.
모하메드 살라에게 시킨다고 해도 어려운 일이었고, 그런 동작을 이 어린 선수가 해낸다는 게 모하메드 살라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자신의 발에서 벗어난 가람은 한 두 걸음 앞서 나가더니 그대로 골대를 보고는 강한 슈팅을 가져갔다.
뻐어엉!!!
촤르르르르~~~
“후반전 37분에 김가람 선수의 멀티골이 작렬합니다. 오늘 경기에 4개의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는 김가람 선수!! 이 선수에게 수비 포지션을 맡겨도 골을 넣는 무서움을 보여줍니다. 이 선수가 만약 오늘 경기에 공격수로 나왔다면 얼마나 더 많은 골을 넣었을지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요즘 이런 말이 있죠. 지렸다! 지금 플레이는 단순히 손홍민 선수의 패스를 센스 있게 받아서 골로 연결한 것이 아니라, 후방에서 공격 작업을 읽어내는 넓은 시야, 손홍민 선수와의 호흡, 그리고 자신을 마크하고 있는 모하메드 살라의 수비를 뚫어내고 단번에 골대를 박살내 듯 강한 슈팅, 이 모든 것은 훌륭하고 대단합니다! 정말 보물 같은 선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게 다시 흥분 모드에 들어간 장재현이 가람에 대해 칭찬을 이어갈 때 가람은 골을 넣은 후 모하메드 살라 옆을 지나가면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음 시즌에는 이런 모습을 계속 볼 수 있을 거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모하메드 살라는 허탈한 웃음을 지어 보였고, 가람은 세레머니를 하기 위해 대한민국 팬들이 있는 좌측에 있는 코너킥 에어리어쪽으로 가며 국가대표 유니폼 가슴 부분에 박혀 있는 태극기를 손으로 치더니 카메라 앞에서 뒤돌아 자신의 등번호와 이름을 엄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김가람 선수의 세레머니 꼭 대한민국에는 자신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여태까지 국가대표팀에서 왼쪽 윙백으로 출전해 2골 2도움을 기록한 선수가 있었나요?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는 김가람 선수입니다.”
그렇게 가람이 세레머니를 마치기 무섭게 대한민국의 선수들은 가람을 덮쳤고, 함께 어울려 골을 축하했다.
그리고 경기는 이집트의 공으로 다시 시작되었지만, 이미 4골을 먹힌 이집트는 의욕을 잃어버렸다는 듯 천천히 공을 돌리기 시작했고, 대한민국도 벤투 감독이 압박의 강도를 더 높일 필요는 없고 경기를 유지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물론 두, 세 차례 가람과 모하메드 살라가 부딪히기는 했지만, 가람의 민첩한 중심이동과 빠른 속도에 모하메드 살라는 크게 활약을 하지 못했고, 경기는 이승운이 나가면서 발생한 추가 시간 3분까지 모두 지나갔다.
삐익 삑!!
“주심의 휘슬 소리에 경기 종료됩니다. 오늘 경기 어떻게 보셨습니까?”
“사실 오늘 경기 양 팀의 공방전으로 봤을 때 거의 비등한 경기를 했습니다. 전반에만 해도 1대 1로 팽팽한 경기를 했죠. 하지만 차이를 만든 건 역시 김가람 선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후반전에 각성이라도 한 듯 김가람 선수는 모하메드 살라 선수를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막아냈습니다.”
“단순히 막아낸 정도가 아니라 월드 클래스라고 불리는 모하메드 살라 선수와의 경합에서 이겨내며 후반전 공격 포인트도 만들어냈습니다. 솔직히 김가람선수가 이정도까지 선전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는데요. 제 생각이지만 이런 모습을 남은 친선 대회 기간 동안 보여준다면 유럽 각지에 있는 강팀들이 백지수표를 들고 김가람 선수를 영입하려고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장재현은 다시 흥분 모드로 되어 가람의 이적 예상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갔고, 그것과 상관없이 가람은 응원해준 팬들을 보며 인사를 했다.
그리고 이번 대회는 다른 대회와 다르게 경기 끝난 후에 양 팀의 선수가 한 명씩 상대팀 선수와 어깨동무를 하며 관중들과 인사를 나누는 절차가 있었다. 가람에게는 모하메드 살라가 다가와 자신의 유니폼을 벗어서 건넸고, 손짓으로 가람의 유니폼을 달라고 했다.
사실 오늘 경기가 시작 전에 모하메드 살라의 유니폼을 누가 받을지 나름 치열한 경쟁이 있었는데 결국은 모하메드 살라가 정하는 걸 따르기로 했다. 그렇게 많은 선수의 부러움 속에 가람은 모하메드 살라와 유니폼을 교환했고 대한민국, 이집트 상관 없이 응원해준 모든 팬들을 보며 인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인사를 돌리던 중 우측 중앙에 김가람 팬클럽들이 차지하고 있는 섹션에 도착하자
꺄야야야!!
가람 오빠아!!!
외국인들이 뿜어내는 한국어로 '가람 오빠'라는 말이 경기장 전체를 지배했고, 생각지 않은 환호성에 옆에 있는 모하메드 살라까지 움찔할 정도였다.
가람은 팬들에게 웃음으로 화답하고 양손을 위로 올려 박수를 치며 감사를 전했다. 그렇게 한 차례 해프닝이 끝난 뒤에 모하메드 살라는 가람을 보며 입을 열었다.
“다음 시즌에 리버풀에서 뛰는 건 어때?”
“뭐야? 네가 리버풀 구단주라도 되는 거야?”
가람의 말에 모하메드 살라가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열었다.
“그건 아니지만 우리 구단에서도 너를 주시하고 있거든. 사실 이 경기를 뛰기 전까지는 약간 오버하는 거 아닌가 생각했지만, 너는 진짜라는 생각이 들어.”
“고맙지만 사양할 게. 나는 선더랜드의 용사거든. 저기 보이지.”
가람은 관중석에서 선더랜드 유니폼 그것도 자신의 32번 유니폼을 입고, 빅이어를 들어올리는 자신의 합성 사진을 흔들고 있고 있는 팬을 가리켰다.
“그런 건가? 하지만 쉽지 않을 텐데..”
“너는 했잖아. 그런데 나한테는 쉽지 않다고 말하다니 너무한 거 아니야?”
생각지 않은 가람의 호기로운 말에 모하메드 살라는 크게 웃더니 가람의 가슴을 툭 치며 입을 열었다.
“그래, 그럼 한번 해봐라. 그때는 내가 리버풀에서 확실히 막아줄 테니 말이야.”
“기대할게.”
그렇게 둘은 떨어졌고, 가람은 오늘 경기의 MOM으로 뽑혀 별도의 인터뷰 자리로 가게 되었고, 거기에서 가람에게 전달할 작은 트로피를 들고 있는 잉글랜드의 축구 협회장을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