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친선대회 독일전[2]
촤르르르르~~
“골입니다. 전반 7분에 토마스 뮐러 선수의 헤딩 골이 대한민국의 골망을 가릅니다.”
“아. 이건 아쉽다고 할 수밖에 없네요. 티모 베르너 선수에게 너무 시선을 빼앗겼습니다. 그렇다고 티모 베르너 선수를 막기 위해 발빠른 수비를 보여준 김가람 선수를 책망하는 건 아니지만, 김가람 선수가 티모 베르너 선수를 막았을 때 남은 공간은 다른 선수들이 막아줄 필요가 있는데요. 토마스 뮐러 선수에게 너무 쉽게 공간을 내어주었습니다.”
골을 넣은 토마스 뮐러는 보라는 듯 가람과 똑같이 만세 세레머니를 한 후 동료들과 어울려 골을 축하했다.
그렇게 골 세레머니를 마친 토마스 뭘러는 가람 근처를 지나가며 입을 열었다.
“어때? 괜찮은 움직임이지?”
그 말에 가람은 어깨를 한번 으쓱할 뿐이었다.
‘제길.. 저 녀석이 스승님이 말했던 귀찮은 움직임을 가진 녀석인가?’
가람은 게르트 뭘러와 훈련을 했던 때를 떠올렸다.
아침 특별 훈련에 가람은 잘 적응했는데 게르트 뮐러는 반대로 가람이 적응할 수록 체력적으로 힘들어 종종 쉬면서 말로만 지시를 내리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데 그런 지시에도 가람은 게르트 뮐러가 만족할 만한 움직임을 보여주며 훈련을 진행했다.
“여기까지 훈련을 쫓아오는 녀석은 네가 2번째야! 다 잘하고 있어.”
“2번째요? 리사씨한테 이야기 듣기로는 많은 선수들이 포기했다고 들었는데 이 훈련을 마친 사람이 있네요.”
“뭐. 정확히 말하면 그 녀석도 네가 하는 훈련은 중간에 포기하고 다른 훈련을 했지. 녀석은 내가 가지고 있는 기술을 배우기에는 좀 부족해서 말이야. 하지만 그래도 그 녀석 좀 근성이 있어서 포기하지 않고 다른 기술을 배워갔어.”
“다른 기술이요? 그게 뭐죠?”
“뭐.. 그걸 기술이라고 말하는 건 무리인가? 쉽게 말하면 움직임이다.”
“움직임이요?”
“그래. 움직임. 정확히 말하면 공이 없을 때의 움직임을 말하는 거다. 요즘에는 이걸 '오프 더 볼'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냥 움직임이라고 말하지. 그 이유는 너라면 알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거야 스승님께서는 당연하다고 생각하시는 거잖아요. 공을 유인하는 기술로 공이 있는 곳을 쫓아 가는 게 아니라 공을 오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역시 너라면 알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런 움직임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스트라이커는 너무 많이 움직이면 힘들어서 정작 필요할 때 힘을 낼 수 없어서 골 결정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 스트라이커는 골로 마무리를 지어야 하거든. 하지만 그 녀석은 스트라이커의 재능은 없었어. 대신 엄청난 활동량과 귀찮은 움직임을 보일 수 있지. 만약 상대편에서 그 녀석의 움직임을 가려줄 정도로 화려한 플레이를 하는 녀석이 있다면 상당히 상대하기 귀찮을 거다.”
게르트 뭘러과의 대화를 회상한 가람은 다시금 생각했다.
‘결국 티모 베르너나 마르코 로이스 선수처럼 빠른 선수에게 시선을 빼앗겨서 토마스 뭘러를 놓치지만 않으면 큰 문제는 없을 거야.’
그렇게 생각을 마친 가람은 주변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토마스 뭘러의 움직임을 계속 쫓아주세요. 시야에 없으면 크게 외쳐서 알려주시고요.”
가람의 말에 주변에 있는 동료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듣지 못한 동료들에게는 따로 가서 전해주기까지 했다.
대표팀 막내의 말이 아니라 흡사 베테랑 주전 선수가 한 말을 전하는 것 같은 대표팀 동료들을 보며 그들이 얼마나 자신을 신뢰하고 인정하는 지 알게 되어 가람은 안심이 되고 튼튼했다.
삐이익!
주심의 신호와 함께 경기는 다시 시작되었다. 대한민국 팀은 가람의 말을 집중하며 토마스 뮐러의 움직임을 끝까지 쫓으며 서로 대화를 통해 알려주기 시작하자, 토마스 뭘러는 큰 파괴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하지만 토마스 뭘러의 움직임을 경계하게 되면서 가람도 중앙 피드필더 라인에서 수비 라인으로 수비에 집중하게 되자, 대한민국도 이렇다 할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경기는 소강상태에 빠져 들어갔다.
뻐어엉!!
“황의준 선수의 슈팅이 하늘을 향해 날아갑니다. 경기 전반 초반에 양팀 골을 넣으면서 화력전이 예상되었지만, 전반 32분까지 현재 소강상태에 고착되었습니다. 이 부분은 어떻게 보시나요?”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한 선수가 키워드를 잡고 있습니다.”
“한 선수라고 하시면 누구를 말하시는 건가요?”
“그건 바로 김가람 선수입니다. 지금 김가람 선수의 움직임을 보시면 중앙 미드필더 라인 보다 오히려 수비 라인쪽에 가까운 위치에서 플레이를 하고 있는데요. 심지어 공격으로 나갈 때도 백승훈 선수는 앞으로 나가지만 김가람 선수는 그 아래서 플레이를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움직임은 토마스 뮐러 선수를 견제하기 위해서라는 건 알겠지만, 너무 지나치게 경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김가람 선수가 공격적으로 나선다면 골이 나올 수도 있다는 뜻으로 들리는데요.”
“그렇습니다. 김가람 선수가 라인을 올려 공격적으로 나선다면 한국은 확실히 이전보다 더 좋은 기회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문제는 토마스 뮐러 선수도 마찬가지로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거죠.”
“그럼 이대로 경기는 무승부가 되는 걸까요?”
“글쎄요. 그건 시간이 좀 지난 뒤에 결과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김가람 선수의 판단으로 두 팀의 상황이 결정될 시기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두 팀 중 한 팀이 집중력이 무너지기 시작한다면 그때는 다른 결과가 나올 것입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가람은 여전히 중앙 미드필더 라인 밑에서 수비적으로 경기를 진행했다.
간혹 마르코 로이스나 티모 베르너가 빠른 발로 대한민국의 진영을 어지럽히는 경우가 있었지만 가람은 토마스 뮐러의 움직임을 견제하며 토마스 뮐러를 직접 수비하기 보다는 패스 길목의 공간을 선점해 막았다.
‘귀찮아!!! 겁나 귀찮아!!’
토마스 뭘러의 움직임을 본 가람의 평가는 너무나 솔직했다.
지금 사실 가람이 실점을 방지하기 위해 토마스 뮐러를 견제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반대로 말하면 토마스 뭘러가 가람을 붙잡고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만약 가람이 자신을 견제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간다면, 오프 더 볼 움직임으로 좋은 자리를 차지 할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할 것이고 골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었다. 그건 가람도 알고 있기 때문에 붙잡힌 것이었다.
꼭 '네가 날 견제하지 않으면 나 골 넣을 거야' 이렇게 협박하는 것과 같았다.
그렇게 시간은 어느새 전반 43분이 되었다.
토오옹
공은 토니 크루스에게 전해졌고, 토니 크루스는 전방에 있는 티모 베르너와 각각 왼쪽과 오른쪽 터치 라인 쪽에 위치한 마르코 로이스와 레온 고레츠카를 봤다.
‘제길.. 공을 줄 곳이 없어.’
토니 크루스는 의외로 튼튼한 수비력을 보여주고 있는 대한민국의 수비 라인을 보며 입맛을 다시며 고민에 빠졌고, 그런 고민을 그만 하라는 듯 백승훈이 다가와 압박을 펼치기 시작했다.
토니 크루스는 백승훈이 오는 것을 보며 오히려 기회라는 듯 백승훈의 가랑이 사이로 공을 빼낸 후 백승훈을 손쉽게 제쳤다.
하지만 그 순간
쿠우웅!!
이미 백승훈이 제쳐질 것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가람이 강한 어깨싸움으로 토니 크루스와 충돌했다.
이렇게 가람이 토니 크루스에게 접근하면 그 빈 공간으로 토마스 뮐러가 다가와 찬스를 만들 수도 있겠지만, 가람은 뒤통수에도 눈이 달렸는지 절묘한 위치 선정으로 토니 크루스와 토마스 뮐러를 일직선상에 두며 토니 크루스의 패스 시야를 없앴다.
“제길!”
토니 크루스가 진심으로 짜증 나는 목소리로 크게 외쳤고, 그 외침과 다르게 가람은 뛰어난 수비 실력과 몸싸움으로 토니 크루스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공을 여유 있게 가로챌 수 있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공을 몰고 앞으로 나왔고, 토니 크루스의 뒤를 받치고 있던 일카이 귄도안이 가람을 막기 위해 앞으로 달려들었다.
“김가람 선수!! 공을 가로채서 하프라인을 넘어서는 순간 일카이 권도안 선수가 막아섭니다.”
일카이 권도안이 가람의 드리블을 막기 위해 나서는 순간 가람은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속도를 올렸고, 생각지 않은 가람의 고속 드리블에 일카이 귄도안은 수비를 하는 어정쩡한 자세로 그대로 제쳐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토마스 뮐러가 어느새 나타나 가람의 앞공간을 자르며 슬라이딩 태클을 걸어왔다.
촤르르르~~
“여기서 토마스 뭘러 선수의 태클!!”
“이건 정말 정교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가람 선수가 속도를 내는 그 순간을 정확하게 포착해서 나오는 태클! 이건 피할 수 없습니다.”
장재현이 흥분하게 말하는 순간 가람은 이 상황을 예측이라도 했다는 듯 공을 오른쪽으로 툭 쳐서 토마스 뮐러의 태클 범위에서 벗어난 후 일부러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딛어 토마스 뮐러의 태클 범위로 들어갔다.
이렇게 본다면 꼭 태클에 걸리기 위해 달려드는 것 같았지만, 토마스 뮐러의 발이 가람의 다리에 닿기 전에 가람은 가볍게 점프를 뛰었다.
그렇게 토마스 뮐러는 슬라이딩 태클로 미끄러져 나갔고, 고개를 돌려 멀어지는 가람이 공을 향해 뛰어가더니 바로 슈팅 자세를 취하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때 토마스 뮐러는 어린 시절에 자신을 가르쳤던 게르트 뮐러의 모습이 떠올랐다.
“너는 내 기술을 배울 수 없어.”
“네?”
“정확히 말하면 너는 골에 대한 사랑 아니 골에 대한 욕심이 없어.”
“아니에요. 저도 골을 넣고 싶어요.”
“하아. 이걸 말로 설명하기 힘드네. 그냥 골을 넣고 싶은 걸로 끝나면 안되거든. 언제든 어느 상황에 있든 골을 그릴 수 있는 선수여야 내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거야.”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했지만, 지금 자신의 태클을 예측이라도 한 듯 피한 후 바로 슈팅을 가지고 가는 가람을 보며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토마스 뮐러의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뻐어어어엉!!
가람이 찬 공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그대로 왼쪽 골대 상단을 향해 날아갔다. 그대로 날아간다면 왼쪽 골대를 맞고 튕겨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터어엉!!
촤르르르르~
“고오오오오올! 전반 45분! 주심이 휘슬을 불어도 뭐라고 할 수 없는 시간!! 김가람 선수가 역전골을 만들어 냅니다. 캐논 슈터!! 아니 레이져 슈터 김가람 선수입니다. 오늘 정말 올해의 골 장면을 만들어 내려는 걸까요? 전반 5분에 환상적인 프리킥 골에 이어 말도 안되는 중거리 슈팅을 성공 시킵니다.”
“대단합니다. 놀랍습니다. 경이적입니다. 도대체 어떤 수식어로 이 선수를 표현해야 할까요? 게다가 나이는 이제 만 19세입니다. 앞으로 어떤 플레이를 보여줄지 미래가 기대되는 선수입니다.”
가람은 골을 넣는 순간 양 손을 활짝 펴서 하늘을 봤고, 어느새 나타난 손홍민이 가람을 번쩍 들어올렸다.
그 것을 본 토마스 뮐러는 가람의 모습에서 자신의 스승인 게르트 뮐러를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