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친선대회 잉글랜드전[3]
닐 이안은 가람이 자신을 쳐다보는 순간 미소를 머금었다.
‘그래 꼬맹아. 이제 흥분해서 나에게 주먹이라도 한번 먹여보려고?’
닐 이안은 주심이 바로 보고 있는 가운데 가람이 주먹질이라도 한다면 그는 최소 옐로우 카드를 받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 정도로 시작한다면 딱 좋았다. 전반 초반부터 옐로우 카드를 받은 애송이를 요리할 방법은 무궁무진하게 많으니 말이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한 대로 가람의 눈에는 분노가 가득 차 있고 그의 주먹에 힘이 들어가는 게 보였다.
‘여기서는’
닐 이안은 최대한 재수 없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 표정을 본 선수들은 인내심이 폭발돼 주먹을 날리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가람의 주먹을 기다리고 있을 때
투욱
“멱살 잡은 거 미안하다.”
“응?!”
가람은 닐 이안의 팔을 툭 치고는 자신의 위치로 돌아갔고, 그런 가람의 모습을 보며 닐 이안은 순간 당황했다.
주심마저도 가람이 닐 이안에게 다가갔을 때 휘슬을 불려고 했지만 가람이 떠나가자 휘슬에서 입을 떼었다.
“김가람 선수. 닐 이안 선수와 주먹다짐을 할 것 같은 분위기였는데요. 스스로 화를 삭혔는지 닐 이안 선수에게서 멀어졌습니다.”
“다행입니다. 사실 닐 이안 선수가 잘하는 플레이가 몸싸움과 팀 내 에이스를 화내게 해서 퇴장시키는 건데요. 김가람 선수는 어린 나이에도 스스로 감정을 잘 추스렸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잉글랜드 홈어드밴티지를 생각해도 오늘 경긱 주심의 판정은 상당히 너그럽습니다.”
가람의 파울로 잉글랜드의 프리킥이 시작되었고, 경기는 다시 진행되었다.
경기의 양상은 잉글랜드가 공격할 기회가 생길 때마다 가람이 나타나 적절한 수비 커버를 하면서 공격 기회를 무산 시켰다. 반대로 대한민국이 공격적으로 나설 때는 닐 이안은 거친 몸싸움으로 가람을 쓰러뜨렸다. 가람을 제외한 공격이 진행되었지만, 대한민국의 마무리가 부족했다.
그리고 패널티 에어리어 바깥에서 드리블하면서 잉글랜드의 골대를 살피던 가람이 닐 이안의 거친 몸싸움에 또다시 바닥에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닐 이안 선수의 몸싸움에 이번에도 김가람 선수가 바닥에 쓰러집니다. 이번 경기에 셀 수 없을 정도로 쓰러진 김가람 선수입니다.”
- 주심!! 우리 오빠 쓰러지는데 휘슬 안 불어?! 너 돈 먹은 거 아니야?!
- 주심 미쳤구나! 너 오늘 걸어서 집에 못 갈 줄 알아!!
- 닐 이안 이 새끼!! 죽어버려!!
가람이 전반 내내 쓰러지자, 결국 이를 지켜보던 가람의 팬클럽에서 울분을 터뜨리듯 야유와 함께 주심과 닐 이안에 대한 살인 예고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야유로 시작했지만, 가람이 넘어지면 넘어질수록 그 강도가 심해졌다. 혹시 모르는 상황을 대비하여 경찰들은 가람의 팬클럽이 있는 섹션으로 집중되기 시작했다.
“아.. 오늘 경기에 김가람 선수는 필드에서 뛰는 시간보다 바닥에 쓸어져 있는 시간이 더 길어집니다.”
“지금도 닐 이안 선수의 거친 몸싸움이었는데요. 주심은 구두 경고만 할 뿐입니다.”
“지금까지 닐 이안 선수의 몸싸움을 생각하면 구두 경고가 아니라 옐로운 카드를 줘도 할 말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주심은 닐 이안에게 가볍게 구두로 경고한 후 프리킥을 이어가도록 지시를 내렸고, 권윤성은 먼거리 프리킥을 차기 위해 다가왔다.
그때 가람이 권윤성을 보며 입을 열었다.
“선배 여기서는 제가 찰게요.”
“여기서? 여기는 좀 멀지 않아?”
“아니요. 여기면 딱 좋아요. 그리고 이렇게 정지된 상황이라면 파울을 할 수 없을 테니 말이에요.”
“아. 하긴 그렇겠구나. 그럼 부탁한다.”
그렇게 권윤성이 멀어지자, 가람은 눈을 감았다.
솔직히 전반 초반에 가람은 분노에 몸을 맡길 뻔했다. 그때 매번 자신의 폭주 아니 반골 기질을 잠재웠던 마음 속 찬 물 샤워가 느껴졌고, 덕분에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다.
만약 그게 아니었다면 경기를 진행하면서 몇 번이나 터질 뻔했다. 그래도 고진감래라고 생각하며 꾹 참고 경기를 뛴 것에 대한 보상이라도 된다는 듯 드디어 골 찬스를 잡은 것이었다.
사람들에게는 그저 하프 라인에 가까운 곳에서 차는 단순한 프리킥으로 보였지만, 가람에게는 골 찬스였다.
‘골이다. 무조건 골!’
수 백번도 차봤던 곳에서 하는 프리킥이었다.
심지어 이 지역에서 골을 넣는 괴짜 츠바사라는 녀석과 경쟁하며 드리블을 하면서 골을 넣어봤던 경험도 있었기에 골을 넣을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삐이익!!
짜증 나는 주심의 휘슬 소리에 가람은 공을 있는 힘껏 찼다.
뻐어엉!!!
공은 높게 치솟아 올랐다. 공이 높게 떠오르자, 잉글랜드의 대부분 선수들은 가람이 흥분해 공을 잘못 찼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휘리릭!!
마냥 하늘 높이 날아갈 거라고 생각했던 공은 갑자기 방향을 바꿔 밑으로 떨어져 내려갔고, 선더랜드에서 가람과 함께 뛰고 있는 딘 핸더슨도 이 곡예와 같은 프리킥에 놀라 뒷걸음 치며 공의 방향을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터억!!
공을 보며 뒷걸음질을 치던 딘 핸더슨은 황당하게도 자신의 다리에 걸려 넘어졌고, 그것과 상관 없이 공은 그대로 골대 왼쪽 상단을 향해 날아갔다.
가람은 보지 않아도 자신이 찬 코스에 대한 확신에 골이 터질 거라고 자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들려오는 소리는 자신이 생각했던 소리와 달랐다.
터어엉!!
“여기서 닐 이안 선수의 놀라운 수비!! 골대에 머리를 맞으면서까지 공을 막아냅니다. 엄청난 집중력을 보여주는 닐 이안 선수!!”
닐 이안의 머리에 맞고 나온 공은 그 앞을 지키고 있던 해리 맥과이어가 오른쪽 터치 라인쪽으로 황급하게 걷어냈다.
닐 이안이 한 골 넣은 것과 마찬가지인 좋은 수비 플레이를 했기 때문에 딘 핸더슨은 물론 공을 걷어낸 해리 맥과이어, 마이클 킨등 잉글랜드 선수들이 닐 이안을 칭찬해주었다.
“나이스 플레이 !! 이안!!”
“덕분에 한 골 지켰다. 저 괴물 녀석 저기서 골을 노릴 줄이야!”
‘모두가 내 플레이를 칭찬해주고 있어.’
닐 이안은 동료 국가대표 선수들의 칭찬에 몸에 전율이 돋았다.
닐 이안은 순간 자신의 국가대표 승선에 자신의 일처럼 좋아했던 어린 동생과 병든 어머니가 생각났다.
그리고 윌리엄 협회장의 말이 떠올랐다.
“자네가 잘하는 일만 하면 되는 거야. 그거면 되는 거지. 이번 대회 때 내가 원하는 대로만 해준다면 국가대표에서 뛸 수 있게 해주지. 또 그 경기에서 활약을 하면 계속 국가대표 경기에 나올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제안을 거절하면...”
그 뒷말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기회는 없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자신은 리그1에서 거친 경기를 주로 뛰는 선수였다. 그런 자신에게 친선 대회라고 하지만 국가대표로 뛸 수 있는 영광을 준다면 그건 영혼을 팔아서도 얻고 싶은 자리였다.
그래서 닐 이안은 윌리엄의 제안을 수락했고, 영광스럽게도 자신은 잉글랜드 삼사자 군단의 일원으로 뛸 수 있었다.
물론 가람을 어떻게든 막으라는 지시가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은 누가 뭐라고 해도 자신은 국가대표 선수였다.
그렇게 마음 속에 기쁨이 차오르는 순간 눈 앞이 갑자기 붉게 물드는 게 보였다.
“어? 이건..”
닐 이안은 순간 자신의 이마를 손으로 만져봤고, 다시 자신의 손을 봤을 때 붉은 선혈에 자신의 손이 물든 걸 확인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삐이익!
주심은 닐 이안의 출혈을 보고는 잉글랜드의 의료팀을 불렀고, 닐 이안은 상처를 처치하기 위해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젠장.. 여기서 내가 나가면...’
지금까지 막은 가람이 자신이 비운 사이에 골을 만들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자신은 더 이상 국가대표에 뛸 자리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출혈만 멈추면 바로 투입하겠습니다.”
닐 이안의 절박한 목소리와 모습에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닐 이안을 보며 입을 열었다.
“아까 보니까 골대에 상당히 크게 부딪혔어. 지금은 괜찮을지 몰라도 정밀 검진을 받는 게 좋을 것 같아.”
“아닙니다. 저는 뛸 수 있어요. 아니요. 뛰어야만 해요.”
윌리엄이 어떤 마법을 부린 건지 모르겠지만, 닐 이안의 표정과 목소리에는 절박함과 함께 경기를 계속 뛰겠다는 투지가 느껴졌다.
원래 대로면 그를 다시 경기에 투입하면 안되겠지만, 전반 내내 가람을 막아낸 건 다름 아닌 닐 이안이었다.
“알겠다. 대신 몸에 무리가 가면 바로 나오는 거다.”
“제가 몸 튼튼한 거 빼고는 장점이 없습니다.”
그렇게 닐 이안이 다시 경기장으로 나가려고 터치 라인을 서는 순간 이미 경기는 시작된 상태였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공격 속에서도 가람은 적극적으로 공격에 나서지 않고, 뒤쪽에 빠져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는 터치 라인에서 들어오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닐 이안을 보며 어서 오라는 듯 손짓을 했다.
잠시 후 주심의 신호에 닐 이안은 경기에 투입되었다.
닐 이안은 큰 덩치와 다르게 빠른 속도로 웃음을 띤 채 가람의 곁으로 뛰어갔고, 그런 그를 보며 가람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웃지 마라. 난 남자한테 관심 없어.”
“나도 마찬가지다.”
“출혈은 괜찮나?”
“물론이지. 몸 튼튼한 거 빼고는 장점이 없거든.”
“그런가? 나도 튼튼하니 계속 해보자고. 네놈이 없을 때 골 넣는 건 치사한 거 같아서 싫거든.”
그리고 그렇게 가람이 말하는 순간 기성룡의 패스가 가람과 닐 이안 뒷 공간으로 나아왔고, 그건 기성룡이 가람에게 닐 이안과의 속도 경쟁에서 이기고 공을 따내 보라는 무언의 신호와 같았다.
타타타탓!!
그 순간 김가람과 닐 이안은 전력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다.
가람의 폭발적인 스피드와 그를 막기 위해 흑인 특유의 탄력 있는 근육의 스피드를 살린 닐 이안의 영리한 위치 선정이 다시 한 번 경쟁하게 되었다.
그렇게 둘은 공을 두고 치열한 싸움을 펼쳤고, 이번에 공을 잡은 건 가람이었다.
가람은 닐 이안을 두고 헛다리짚기 일명 스탭오버를 한 차례 펼쳐 보인 후 공을 오른쪽으로 차는 척하며 왼쪽으로 돌파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동작에 보통의 선수들은 균형을 잃을 법도 했지만, 닐 이안은 나이는 그냥 먹은 것이 아니라는 듯 가람의 페이크 동작에 속지 않고 집중력을 발휘해 가람을 끈질기게 쫓아갔다.
하지만 가람의 빠른 속도를 잡는 건 무리였고, 어쩔 수 없이 손을 뻗어 가람의 유니폼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찌이익!!
가람은 유니폼이 찢어지는 것을 개의치 않고 그대로 앞으로 나가려고 했고, 조금만 더하면 닐 이안을 벗겨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삐이익! 삑!!!
주심의 휘슬이 울렸다. 가람은 좋은 찬스에 어드밴티지를 주지 않고 파울을 주는 주심의 판정에 화가 나려고 했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니 선수들이 라커룸으로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전반전 끝이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닐 이안의 말에 가람은 썩은 미소를 날리더니 입을 열었다.
“전반에는 0대 0이지만 후반에는 골을 넣을 거다.”
“나는 너를 끝까지 막을 거다.”
그렇게 가람과 닐 이안은 각자의 라커룸을 향해 걸음을 옮겨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