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친선대회 잉글랜드전[4]
하프 타임 잉글랜드 라커룸
닐 이안은 자신의 라커 앞에 앉으려는 순간 현기증을 느꼈다.
휘처엉~
덩치가 큰 닐 이안이 휘청거리자, 주변에 있는 선수들이 닐 이안을 부축해주었고, 닐 이안은 선수들의 부축을 받으며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다.
“미.. 미안..”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의료진을 불러 닐 이안을 체크하게 했다.
“이안. 괜찮은 거냐?”
“괜찮습니다. 아까 피를 좀 흘려서 그런 것 같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감독님.”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닐 이안이 의지와 각오가 담긴 눈빛에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옆에 있는 의료진이 입을 열었다.
“뇌진탕 증상입니다. 아무래도 경기가 끝나면 정밀 검진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시겠지만 뇌진탕 증상은 빨리 검진하면 할수록 좋습니다.”
그 말을 들은 닐 이안은 크게 소리쳤다.
“저는 정말 괜찮습니다. 제발 감독님. 이번 경기는 끝까지 뛰게 해주십시오.”
“으음..”
사우스게이트 감독이 고민에 빠졌을 때 등 뒤에서 윌리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감독님. 선수가 저렇게 뛰길 원하는데 굳이 뺄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아. 협회장님.”
평소 경기 중 라커룸에 나타나지 않는 협회장인 윌리엄의 등장에 선수들은 순간 긴장했고, 윌리엄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런. 제가 들어오면 안되는데 들어와서 죄송하군요. 아까 닐 이안 선수가 다쳐서 괜찮은지 걱정돼서 와봤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투지를 불태우는 걸 보니 더는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군요. 안 그런가요? 감독님.”
윌리엄은 말을 돌려 말했지만 결국 닐 이안을 교체하지 말라는 협박과 같았고,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할 사우스게이트 감독이 아니었다.
“그렇습니다. 협회장님.”
윌리엄은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듣자, 슬며시 웃은 후 라커룸 밖으로 나갔고,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닐 이안을 보며 입을 열었다.
“오늘 경기도 중요하지만 더 많은 미래가 너에게 있다. 닐 이안. 만약 몸에 무리가 온다 싶으면 즉각 벤치에 신호를 보내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너희들도 너무 닐 이안에게 가람의 수비를 맡기고 있다. 축구는 팀워크다. 모두 닐 이안이 놓쳤을 때를 대비해서 보조해서 김가람을 막아라. 인정하기 싫을 수도 있지만, 오늘 경기의 향방은 김가람을 막느냐 못 막느냐에 달려 있다. 알겠나?”
사우스게이트 감독의 말에 잉글랜드 선수들은 크게 외쳤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뜻을 하나로 모은 잉글랜드는 후반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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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라커룸
“오늘 경기 잉글랜드에서는 김가람 선수의 공격 찬스를 막을 생각으로 나온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김가람 선수가 아닌 다른 루트로 공격을 해낼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전반전에 많은 공격 찬스가 이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골로 연결하지는 못했다는 게 문제입니다.”
벤투 감독의 말을 통역해주는 김철수의 말에 선수들은 귀를 기울이며 집중했다.
“이대로 간다면 경기는 0 대 0으로 끝나거나 잉글랜드에게 실점을 할 가능성이 높은 경기가 될 겁니다. 지금까지 김가람 선수에게 의지했던 경기에서 벗어나 각자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김가람 선수.”
“넵. 감독님.”
“후반전에도 지금처럼 수비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것을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감독님. 저만 믿어주세요. 그리고 전반전에는 닐 이안 녀석한테 고생했지만, 후반전에는 활로를 찾았느니 걱정하지 마세요.”
가람의 말에 선수들의 시선은 가람에게 쏠렸고, 가람은 대답 대신 웃음을 보였다. 그리고 가람의 모습에 벤투 감독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무언가 돌파구를 발견한 것 같군요. 하지만 그의 플레이와 주심의 성향을 봤을 때 파울을 얻어내기는 힘들 겁니다. 최대한 부상은 피하면서 플레이 하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후반전에 지난번 독일전처럼 김가람 선수에게 2~3명의 선수가 마크가 들어간다면 그 빈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김철수의 통역이 끝나자, 기성룡은 선수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스탭진들도 거기에 참여하여 큰 원을 만들기 시작했고, 큰 원이 만들어지자, 기성룡이 입을 열었다.
“오늘이 친선 대회의 마지막 경기이다. 유종의 미를 거두자. 모두 힘내고, 가람이는 더 힘을 내고!!”
“알겠습니다. 주장.”
가람이 힘차게 대답하자, 다른 선수들도 미소로 화답했다. 그 표정을 읽은 기성룡이 선창했다.
“우리는!!”
“강하다!!”
그러자 다른 선수들이 후창하며 선창에 화답했다. 그렇게 선수들이 라커룸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고, 가람도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그때 벤투 감독이 다가와 포르투갈어로 물었다.
“어떤 활로를 찾은 건가?”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까 그 녀석 전반전에 당한 부상이 가벼워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아까 가람의 프리킥 골을 막기 위해 몸을 날려 골대와 부딪혔던 닐 이안을 기억한 벤투 감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아무래도 그런 종류의 부상이면 처음에는 괜찮다가 나중에 큰 문제로 다가올 수도 있지. 그래서 너는 그 친구가 후반전에 나오지 않을 거라고 예상하는 건가?”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 그런 종류의 선수들은 몸에 부상 때문에 경기를 포기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활로는 무슨 말이지?”
“마음은 포기하고 싶지 않지만, 머리에 부상을 당하면 자기가 생각한 것만큼 빨리 반응할 수는 없을 겁니다. 만약 그런 틈이 보인다면 저는 골을 노릴 겁니다.”
가람의 말에 벤투 감독은 고개를 끄덕였고, 가람은 경기장으로 들어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린 친구라고 생각하기에 너무 베테랑 같아... 이런 경험은 배운다고 알 수 있는 게 아닌데..’
벤투 감독은 잠시 고민을 하고 있는데 그 모습을 본 수석코치인 세르지우 코스타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감독님.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가요?”
“아니. 그건 아니고 가람이는 나이에 비해 너무 성숙한 것 같지 않아?”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런데 그렇잖아요.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홀어미와 외할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세상을 좀 더 빨리 알게 되고, 성공에 목 마른 그런 거 아닐까요?”
“그런 생활이 아니라 축구에 대한 경험 말이야.”
“아.. 그 부분은 저도 좀 의아한 부분이 있지만, 게르트 뮐러씨가 스승이라고 하기도 하고요. 요즘에는 너튜브나 여러 가지 매체를 통해서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으니 그런 거 아닐까 생각합니다.”
세르지우 코스타의 말에 벤투 감독은 일부 인정할 수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상함을 쉽게 지울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문제가 되는 건 아니라 개인적인 의구심이었기에 벤투 감독은 그냥 마음 속에 묻어두고 후반전을 위해 경기장으로 나섰다.
후반 85분
“경기가 시작한 지 40분이 지났지만, 경기 양상은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양 팀의 공격수들은 경기가 끝난 후 한 소리를 들을 정도로 상대방 수비를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죠. 그나마 활발하게 움직였던 잉글랜드의 공격수 해리 케인 선수가 후반 15분에 허벅지 뒤쪽을 잡고 경기장 밖으로 나가면서 도미닉 칼버트르윈 선수로 교체되었는데요. 그 후로 잉글랜드는 별다른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촤르르르~~
장재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도미닉 칼버트르윈이 어설픈 개인기를 하다가 가람의 정확한 태클에 걸려 넘어졌고, 가람은 공을 전방에 있는 손홍민에게 바로 연결했다.
뻐어엉!!
“대한민국!! 찬스를 잡아냅니다. 이번에는 그 결실을 맺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손홍민과 잉글랜드의 오른쪽 윙백인 알렉산더아놀드 뒤쪽으로 날아가는 긴 공간 패스에 두 선수는 자신의 최고 속도를 내며 공을 따내기 위해 경합했다.
그리고
토오옹!!
“손홍민 선수!! 알렌산더아놀드 선수와의 속도 경쟁에서 이겨내고 공을 따냅니다.”
손홍민은 공을 잡은 순간 한 번 더 가속해서 패널티 에어리어 안쪽으로 들어갔고, 손홍민의 빠른 움직임에 잉글랜드 수비진은 순간 흔들렸다.
그리고 안쪽 패널티 에너리어로 파고 들면서 패널티 에어리어 오른쪽 꼭지점 일명 '손홍민 존'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슈팅 자세를 가지고 갔다.
유려한 드리블과 속도를 살린 슈팅 자세에서 강력하게 슈팅한 공은 상대편 골대 왼쪽 상단을 향해 날아갔다.
뻐어엉!!
파아앙!!
“아!! 이걸 또다시 막아낸 딘 핸더슨 골키퍼!! 슈퍼 세이브가 나옵니다.”
“와. 이걸 막아내는군요. 딘 핸더슨 골키퍼가 지난 시즌 챔피언쉽에서 꾸준히 경기에 출전하면서 결국 포텐이 터진 것 같습니다. 괜히 기존 골키퍼였던 조던 픽포드 선수를 밀어내고 오늘 경기에 나온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것 같은 플레이입니다.”
딘 핸더슨이 걷어낸 공은 패널티 에어리어 밖으로 나갔고, 그 공은 잉글랜드의 왼쪽 윙백인 벤 칠엘이 잡아냈다.
그리고 벤 칠엘이 전방에 있는 필 포든을 보고 공을 길게 차려고 했다.
그때
퍼억!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막기 위해 점프를 뛴 황희천의 몸에 벤 칠엘이 찬 공이 맞고 굴절되어 공은 경기장 중앙으로 굴러갔고, 그 공을 향해 두 명의 선수가 달려들었다.
“벤 칠엘 선수가 걷어내기 위해서 찬 공이 황희천 선수에게 맞고 굴절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공을 향해 후반 내내 경합을 벌였던 김가람 선수와 닐 이안 선수가 달려듭니다.”
후반전에 가람이 생각한 것보다 닐 이안은 투지를 보이며 계속 가람을 막았고, 가람은 그런 닐 이안의 투지에 화답이라도 하는 듯 계속적으로 둘은 부딪혀왔다.
게다가 중간 중간 닐 이안이 가람을 놓칠 때마다, 적재적소로 등장하는 잉글랜드 선수들의 수비 커버에 경기는 지금까지 0대 0으로 유지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경기 종료까지 5분이 남은 이 시간.
가람은 여태까지 보여주었던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공을 향해 가속했다. 지금 여기서 결판을 내겠다는 듯 단 번에 뚫어내는 속도에 닐 이안도 어떻게든 가람을 잡기 위해 손을 뻗고 어깨를 집어넣어 방해하려고 했다.
‘끄으으윽!!’
닐 이안은 입에서 침맛이 아니라 피맛이 날 정도로 자신이 낼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했다. 하지만 여태까지 에너지를 저장하다가 폭발 시키는 듯한 가람의 속도를 쉽게 따라 잡을수는 없었다.
‘젠장.. 젠장.. 젠장!!!’
지금까지 어떻게든 막아왔다. 남은 5분에 막아내기만 한다면 자신의 케러어에 처음인 이 영광스러운 국가대표 자리가 단 한번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더 이어질수도 있다.
그만큼 닐 이안은 이 자리를 지키고 더 있고 싶었다. TV로만 봤던 선수들이나 감독과 훈련장을 같이 쓰고 함께 땀 흘리고 웃고, 그들은 자신을 인정해주었다.
친선 경기 한 경기 뿐 아니라 함께 더 같이 하고 싶었다.
그때
티이이잉!!!
순간 몸에서 전류가 짜릿하게 관통하는 듯한 느낌을 들었고 닐 이안은 방금 전까지 호흡이 부족해 힘들었던 고통이 사라졌고, 수많은 관중들의 환호성과 동료들의 외침도 들리지 않았다.
자신과 경쟁하는 딱 한 명의 선수인 김가람만이 이 경기장에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점점 가람과의 격차를 줄이며 달려갈 수 있었다.
타타타탓!!
“과연 지금 이 경합에서 이기는 건 누구가 될까요? 기대되는 순간입니다.”
흥분한 배선재의 말에 두 선수의 경합은 계속 되었다.